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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배경이 된 역사 이야기 (3)
by 전재훈
2024-06-03
성경 읽다가 보면 이집트 문명이 힘을 발하다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다시 페르시아가 나타나더니, 신구약 중간사를 건너뛰고 신약에 오면 대뜸 로마가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요?앗수르나 바벨론, 페르시아는 같은 동네 사람들로 지금의 이란, 이라크, 터키가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손들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똑똑한 왕이 나오느냐에 따라 힘의 패권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지중해 윗동네인 발칸 반도의 마케도니아에서 나타난 알렉산더에게 호되게 당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구약 중간의 시기에 일어난 일이지요. 알렉산더는 이집트까지 정복하고 동쪽으로 인더스강 유역까지 왔었던 인물로 가히 대왕이라 할 만한 전쟁의 신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서른두 살의 나이에 요절합니다. 이후 알렉산더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어서 그가 세운 거대한 제국은 분열됐지요. 알렉산더는 그리스 지방 출신이라 헬레니즘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는 정복한 나라들에 헬라 문화를 전파해 주었는데, 이것이 제법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헬라화되었습니다. 알렉산더 이후에는 지중해의 장화 모양으로 생긴 반도 땅에서 신생 로마가 등장하여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지요. 로마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을 통일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지중해 아래 동네랑 싸우면서 아무도 건들 수 없는 거대 강국이 됩니다. 헤롯이 이 로마에 아부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왕으로 등극하지요. 일종의 로마 속주가 된 곳의 왕이 된 것입니다. 로마가 거대 강국으로 팍스로마나를 구가하며 지중해를 자기네 바다로 만든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내부에 부패가 일어나 내전이 발생하고, 돈 많고 시간 남아도는 애들이 타락하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네로 같은 미치광이 왕이 나타나 로마시에 불 지르고 그 범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하는 바람에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잡혀가 사자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사자 밥은 할 일 없는 로마인들의 유흥거리 같은 거였습니다. 일종의 쇼인 셈이지요. 사람을 굶주린 사자와 싸우게 하고 그것으로 오락거리를 삼았을 정도니, 제대로 부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가 되면 자연히 처녀가 귀해지게 되고, 돈 있고, 힘 있는 귀족들은 처녀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인 처녀를 며느리로 삼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독교를 공인해 주었던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로 아들이 내전으로 혼란했던 로마를 다시 평정하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이 전쟁에서 이기게 도와준 것이 하나님이라고 믿어서 기독교를 공인해 주고, 기독교의 재산을 인정해 주게 되었지요. 이후 4세기 말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일대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의 재산은 점점 늘어가고 지켜야 할 땅이 생긴 것이지요. 이로써 기독교는 대표를 구성할 필요가 생겼고, 그에 따라 교황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금의 로마 교황청을 바티칸 시국이라고 부르지요. 이탈리아 안에 바티칸에서 자치권을 인정받는 나라라서 바티칸 시국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안에 성벽으로 둘러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 싶습니다. 고대에는 교황이 생기면서 로마 제국 내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들었는데, 소위 황제와 교황의 세력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황제가 다스리니까 황제가 높냐, 황제에게 대관식을 해 주는 교황이 높냐의 싸움이었습니다. 황제 자신의 신앙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유럽의 사람들 속에서 교황이 어떤 존재로 대접받느냐에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그 위상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극한 대립 속에서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11세기 말경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 7세에게 카노사라는 지역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 사건을 말합니다. 교황 밑에 일종의 지역 책임자 같은 주교라는 직책이 있는데, 이 주교를 교황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임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시 그레고리 교황이 자기가 가져오려다가 황제와 쌈이 붙은 사건이지요. 교황은 이 일로 황제를 파문하고 이단이라고 정죄를 해 버렸습니다. 당시에 신앙인이 많았던 탓인지, 교황이 자기를 파문한 일로, 자기를 폐위시키려는 정치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황에게 달려가 무릎 꿇고 사죄했던 것입니다. 지중해 아래 동네에서는 7세기경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고,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장악하고 심지어는 유럽 본토인 스페인까지 치고 들어오는 일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지중해 패권이 아래는 이슬람, 위로는 기독교가 대치하였습니다. 근데 위에서는 황제와 교황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하다가 교황이 간발의 차로 황제를 누르고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 카노사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11세기 말경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다시 찾기 위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데 자그마치 7차에 걸쳐 200년 동안 진행됩니다. 결과는 십자군의 타락으로 실패하고, 교황은 대중의 인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황이 인기가 땅에 곤두박질치는 시기에 유럽은 잦은 전쟁으로 인해 돈이 부족해졌는데, 그 이유의 하나가 교회의 사유재산에는 세금이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성직자에게 과세하려는 황제와 이를 거부하던 교황 세력이 다시 한번 부딪혔습니다. 교황의 권위가 실추된 시기라 이번에는 황제가 이기고 교황청을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비뇽으로 옮겨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11세기 말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이 200년을 끌어왔으니 이 시기는 14세기 초쯤이 됩니다. 로마 교황청이 탈탈 털리고 아비뇽으로 그 거처를 옮긴 뒤 프랑스는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교황도 세우고 주교도 임명하고 했었지요. 다시 교황청이 로마로 옮겨가기까지 아비뇽에서 약 67년간을 지내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바벨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70년 만에 돌아오는 것과 비슷해서, 바벨론 유수를 패러디해서 아비뇽 유수라고 불렀습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을 겪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아비뇽에도 교황청이 존재하는 바람에 교황이 난립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로마에서도 교황을 세우고, 아비뇽에도 교황을 세우면서 서로를 가짜라는 둥, 적그리스도라는 둥 비난하며 강력하게 싸웠습니다. 당연히 민심은 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지요. 요 시기가 15세기 말쯤 됩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면죄부 사건으로 인해 마르틴 루터가 일으키지요. 교황이 면죄부로 이런(15) 삽질(17)을 했던 1517년이니까 십자군 사건이 14세기에 끝나고 15세기 시절에 아비뇽에서 헤매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교황이 난립하면서 온갖 싸움을 해대는 바람에 종교개혁을 통한 민심 이반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일은 다시 유럽 땅을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두 세력의 싸움터가 되게 합니다. 르네상스도 이 시기에 일어났는데, 르네상스라는 게 고대로 회귀하려는 운동이라, 교황이 다스리기 전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웠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문예부흥이었던 것도 교황의 잘못들이 한몫했던 것입니다.
교부들이 교회 금식에 답하다
by 최창국
2024-05-29
한국 교회는 금식을 물만 먹고 하는 것으로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서 반드시 금식은 물만 먹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경에는 단지 물만 먹고 하는 절식 형태의 금식보다는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하는 부분 금식과 큰 위기 가운데 주로 했던 절대 금식이 소개되고 있다. 먼저 고기 등과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한 부분 금식이다. 대표적인 예가 다니엘이다(단 10:1-3). 다니엘은 주로 부분 금식을 하였다. 그때 그는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었다. 다니엘이 고기를 먹지 않고 부분 금식을 주로 하게 된 이유는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표시이기도 했다. 성경에는 절대 금식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에스더이다.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때 하만이 유대 민족을 말살하려는 계략을 세웠다. 유대인으로서 왕후가 된 에스더는 민족의 수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산에 있던 유대인들과 더불어 사흘간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 기도를 하였다. 에스더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모든 음식을 먹지 않고 생명을 걸고 절대 금식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와 함께 절대 금식을 한 유대 백성에게 응답하셔서 모든 위기와 상황을 바꾸어 유대 민족이 생존하도록 반전의 역사를 이루셨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물만 먹고 하는 금식보다는 부분 금식이 주로 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예가 있다. 어느 날 “교부 요셉이 교부 포에멘에게 물었다. ‘금식은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포에멘이 대답하였다. ‘내 경험으로는 매일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족하지 않기 위해서 단지 조금씩만 먹는 것이 좋다’”(Benedicta Ward, ed.,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144). 교부들은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금식보다는 평소보다 음식의 양을 줄여서 조금씩만 먹는 금욕적인 금식이나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부분 금식을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금식은 더 넓은 의미에서 이해되고 실천할 수 있다. 금식은 단지 음식을 먹지 않는 것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까지도 모두 절제하는 의미에서 금식을 실천할 수 있다. 절제란 인생의 즐거움을 모두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달라스 윌라드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세상적인 것을 즐거워하고 그것에 빠져 있으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만큼이나 그 즐거움을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Dallas Willard, The Spirit of the Discipline, 180). 절제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대신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도 현대적인 의미에서 금식의 형태가 될 수 있다. 또한 육체의 건강에 열중하며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이 밖에도 이 기간에는 옷을 사는 것을 절제하는 ‘옷 금식’도 실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절제를 통해서 금식은 다양하게 실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금식의 중요한 목적이 금식을 통해 절약한 물질을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함이었다는 점이다. 초대 교회와 교부들의 금식은 거룩한 삶을 위한 실천이었을 뿐 아니라 이웃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자를 위해 헌금할 형편이 안 되면, 금식을 통해 절약한 양식을 헌물로 드려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다.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 부흥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려고 애썼던 율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자기들뿐만 아니라 우리까지도 도와주는 것을 볼 때 참 부끄럽다”라고 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열심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약자를 돌보고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우리의 모습은 많은 우리 반대자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브랜드다”라고 했다(로드니 스타크, 기독교의 발흥, 136에서 인용). 금식은 교회 공동체의 매우 중요한 영적 실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금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금식의 실천이 약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금식은 물만 먹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물만 먹고 하는 금식은 모든 성도가 참여하기 어렵고, 특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부분 금식은 모든 성도가 참여할 수 있다.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실천되었던 부분 금식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회력에 따라 부분 금식을 통한 물질 나눔과 이웃 사랑 실천은 절기의 정신을 실천하는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에 적게는 1주, 많게는 4주 정도 부분 금식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절기별 금식을 실천할 때, 성도들의 부분 금식이 시작되기 전에 구체적인 실천 계획, 방법, 목적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 교회는 금식해서는 안 되는 상황 가운데 있는 성도는 금식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부분 금식 기간에는 평소 음식 비용의 절반 정도를 절약하는 데 목표를 둔다. 예를 들면, 부분 금식 기간에는 고기와 기호 식품을 먹지 않거나 평소 먹던 것의 반절만 먹으며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금식을 통해 절약한 돈을 교회의 일반 재정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교회는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성도들의 추천을 받아, 명단은 익명으로 작성하고, 익명으로 작성된 명단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상황을 간략하게 작성하여 부분 금식이 시작되기 전에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다. 성도들이 부분 금식 기간에 익명으로 작성된 명단과 도움이 필요한 내용을 보며 부분 금식에 참여하도록 하면 좋다. 부분 금식 기간이 끝나면 성도들이 금식하면서 돕고 싶거나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 사람의 익명을 헌금 봉투에 써서 절약한 돈과 함께 절기별 주일에 헌금함에 넣도록 한다. 이때 돕고 싶은 대상 후보를 세 명 정도 쓰도록 하여 교회는 한 사람에게만 도움이 집중되지 않도록 분배하는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 좋다. 또는 부분 금식하면서 직접 대면하여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는 절약한 돈으로 식사를 직접 대접하며 절약한 금액을 직접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식사를 대접할 때는 대접을 받는 당사자만 알도록 조용히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고난주간의 부분 금식은 의미 있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와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받고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실천적인 방법으로 부분 금식을 하고, 그 금식을 통해 절약한 물질을 교회 안팎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중요하다. 교회 공동체가 교회력에 따라 이렇게 부분 금식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면 더욱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많은 유익과 기쁨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추수감사절도 부분 금식을 하며 지키면 더 의미 있는 절기가 될 수 있다. 추수감사절에 감사에 대한 설교와 헌금, 과일과 곡식을 드리는 것으로 마치는 교회가 많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역사적 의미와 목적은 과거를 기억하고(신 16:12),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모든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는(신 16:11)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축제의 절기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생각하며 감사하고(신 16:10), 성경에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녀를 위한 실물 교육의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드려서 그 물질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함께 나누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신 16:11). 교회가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가르침과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감사절 설교와 헌금만을 드리는 절기로 지키기보다는 실천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추수감사절도 부분 금식과 함께 실천하면 뜻깊은 절기가 될 수 있다. 성도들이 추수감사절 약 두 주 전에 부분 금식을 시작하여 절약한 물질을 헌금으로 드려서, 그 헌금을 특별히 가난한 이웃과 과부와 고아와 함께 나누면 더 의미 깊은 성경적 절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물질적으로 자립한 교회가 추수감사절 헌금을 일반 재정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추수감사절 헌금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도와 이웃을 위한 축제를 위해 쓰는 것이 더욱 좋다.
기독교의 배경이 된 역사 이야기 (2)
by 전재훈
2024-05-24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거대한 제국 아시리아(앗수르)가 있었는데 이들을 아시리아인, 그 지역을 아시아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는 서쪽을 정복한 땅이라고 해서 식민지라는 의미로 아프리카라고 불렀지요. 그러므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싸움은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이웃 싸움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유하는 바다는 지중해였고, 지중해 위쪽으로 그리스와 로마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세력다툼이었다면 신구약 중간사에는 그 패권이 그리스로 넘어갔다가 다시 로마로 넘어갔습니다. 그리스권의 마케도니아에서 위대한 왕 알렉산더가 등장해서 고레스로 대변되는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이집트까지 점령해 버렸습니다. 알렉산더가 정복한 나라들에 그리스문화를 전파했는데, 이 문화가 헬라 문화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북이스라엘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앗수르가 다시 같은 동네 바벨론에게 망하면서 남유다는 이 바벨론에게 먹혔습니다. 그 후 그 동네를 페르시아가 먹었는데, 이들은 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손들로 아람어를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각지로 흩어 놓았고, 이 덕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히브리어를 잃어버리고 아람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했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아람어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위에 달리 명패는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써 붙였지요. 그 이유가 알렉산더가 지중해 패권을 잡았을 때 헬라 문명을 퍼트렸는데, 이 문명이 참 잘 만들어진 고급 문명이 되어서 이후에 로마가 패권을 장악했을 때는 공용어로 라틴어가 아닌 헬라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흩어짐을 면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했고, 끌려갔다가 되돌아온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돌아오지 않은 유대인들, 곧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유월절에 이들이 한데 모이다 보니 이 세 가지 언어가 혼용되었고, 당시 정복국은 로마이고, 십자가는 로마 총독 빌라도가 집행한 사형이었으므로 로마어 곧 라틴어가 죄목으로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무력으로 팍스로마나를 실현했을 때, 이스라엘은 70년경 완전히 초토화하여 멸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었습니다. 4세기경 콘스탄틴 대제가 역사에 등장하면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고 로마에는 교황청이 생기면서 지중해 패권은 헬라 문명과 교황 문화가 겹치게 되었지요. 하지만 7세기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마호메트가 등장하여 이슬람을 창시하게 되지요. 이들은 위로는 지중해가 있지만, 아래로는 인도양이 있어서 인도와 중국까지 걸쳐 상업을 하던 사람들로,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낙타를 이용할 줄 알았고, 사막을 다룰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이들이 종교심까지 무장하여 성전이라고 부르면서 이슬람을 확장하는 정복 전쟁을 치르지요. 이 덕분에 서남아시아는 물론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아프리카까지 이슬람 세력권이 되어 버립니다. 자연스럽게 역사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 구도가 되지요. 이 와중에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이후 십자군 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이슬람이 아웅다웅 할 때 북쪽 평야 지대에서 유목 생활하던 북방 민족이 말을 탈 때 발을 걸치는 등자라고 하는 물건을 발명합니다. 이 등자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말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두 손을 놓고도 말을 탈 수 있게 했지요. 이전까지만 해도 이 등자가 없어서 기마병들은 다리로 말을 끌어안고 한 손으로 고삐를 잡아야 했기에 한 손으로만 싸웠습니다. 하지만 등자를 만든 북방 민족은 태생부터 말을 타는 민족이라 말도 잘 타고 거기에 등자까지 만들었으니, 말을 타고 달리면서 양손으로 활도 쏠 수 있는 엄청난 기마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칭기즈칸의 지도력에 하나가 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세계의 패권은 몽골제국이 이어가게 됐습니다. 나중에 다시 이어서 역사를 거론하긴 하겠지만, 이후 세계를 약술하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총과 대포가 나오면서 세계의 힘은 대포 잘 쏘는 사람이 차지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바로 이 대포에 능한 포병 출신으로 세계를 주름잡지요. 하지만 바다에 눈뜨면서 해군력은 역시 섬나라나 바다 연안 국가들이 좋기 마련이라, 영국과 스페인 등이 무적함대를 내세워 역사를 새로 써나갑니다. 독일은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질 좋은 탱크를 만들었고, 이 탱크로 세계 전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핵무기 아래 굴복했고, 세계는 이 핵을 가진 러시아와 미국으로 양분됩니다. 이 두 나라는 하늘을 보며 제공권을 노렸고, 서로 앞다투어 우주로 비행선을 쏘아 올리는 나라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연합하기 시작했고, 전쟁은 차츰 우리의 삶에서 조금씩 멀어져갔습니다. 총보다 IT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 IT 기술이 힘이 되는 시대에 오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질문 잘하기: 신학자의 모델, 마리아처럼
by Matthew Lee Anderson
2024-05-14
질문은 위험한 일이다. 근대에 들어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질문 자체를 두려워했던 신앙의 선배와 달리 질문의 가치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질문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세상에 중립적인 질문은 없다. 질문은 들판에서 비누 거품을 날리며 노는 놀이가 아니다. 질문은 지적 생활의 기본 방식이며, 그만큼 세상과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의 방향성을 형성한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사랑을 증언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 의지, 생각, 심지어 육체까지 더 가까이 가도록 하거나 아니면 거기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둘 중 하나다. 두 번의 기적적인 탄생에 대한 발표와 더불어서 두 번의 질문이 기록된 누가복음 1장에서 우리는 질문이 내포한 위험과 함께 좋은 질문이 가져다주는 약속을 만난다. 첫 번째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가랴 제사장의 회의적인 질문이고, 두 번째는 우리 주님의 어머니가 던지는 경건하고 신실한 질문이다.사가랴의 회의주의주님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났을 때, 누가는 그 제사장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였다”(눅 1:12)고 말한다. 천사의 발표는 사실상 자녀가 없어 슬픔에 잠긴 이 남자에게 최고의 소식, 가장 좋은 소식의 하나이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14절).하지만 사가랴의 질문은 회의적으로 들린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18절). 사가랴는 결국 이 말로 인해 징계를 받는다. 사가랴의 신분을 상기시킨 가브리엘이 말한다. “보아라,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네가 믿지 않았으므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20절).겉으로만 보면 사가랴의 질문은 매우 합리적인 거 같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담긴 내용과 형식을 보면 그가 책망을 받은 이유가 어느 정도 밝혀진다. 누가가 사가랴의 질문에 사용한 문법은 킹제임스성경이 “내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산뜻하게 번역한, 창세기 15:8에 있는 아브라함의 질문에 대한 칠십인역의 번역을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다. 5절에서 아브라함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말씀을 믿었다. 그래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6절). 따라서 8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질문은 단지 자기가 땅을 차지할 거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가랴의 질문의 중심을 차지하는 건 선명한 불신앙이다. 사가랴의 지금 상황은 과거에 아브라함이 맡았던 역할을 잠재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아브라함이 성공한 바로 그 지점에서 사가랴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식을 낳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 대한 확실한 약속과 더불어 앞으로 그가 그 땅을 “소유”할 거라는 다소 모호한 미래까지 믿었던 아브라함과 사가랴의 차이가 발생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아이를 낳을 거라는 말을 듣고 믿음으로 의로움을 인정받았다. 반면에 사가랴는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에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로마서 4:17에서 바울은 창세기 15장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죽을 몸에 생명을 주시고 비존재를 존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증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다름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서 드러난 바로 그 능력이다(롬 4:17; 8:11). 사가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재창조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질문이 드러내는 것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가랴는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질문 때문에 징계를 받은 사가랴는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하나님의 길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행위는 벌을 받아야 한다. 가브리엘은 사가랴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다른 이도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천사가 앞에 있고 또 그 천사는 사가랴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보냄받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가랴는 믿지 않았다(눅 1:19-20).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말씀 이상의 어떤 표준에 따라 확인하고자 했다. 그는 말씀이 스스로를 진리로 증거하는 자기 인증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질문은 겸손해 보이지만 근거 없는 불신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사가 왔을 때 사가랴는 성전 대제사장이었다.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 앞에서는 늙은 나이가 출산에 장애가 될 수 없음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천사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신뢰성에 대한 사가랴의 의심은 계속된 질문과 이런저런 말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가랴의 질문은 모든 질문이 다 옳지 않음을 분명히 상기시킨다. 세상에는 냉소주의와 의심을 키우는 태도와 그것을 반영하는 질문 방식이 있다.사가랴의 경우에, 그가 쌓은 학문과 훈련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계시의 실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가 믿기 위해서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가랴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에 대한 추가적인 확신까지 원했던 건, 노골적인 불신앙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마리아, 신학자의 모델하지만 누가가 성육신에서 질문을 묘사하는 방법이 사가랴의 회의주의로 끝나지 않는다. 사가랴가 들었던 비슷한 천사의 발표 앞에서 마리아는 자신만의 질문으로 그 소식을 받아들인다. 마리아를 향한 천사의 첫인사, “은총을 받은 자”라는 말에 마리아는 매료되었다. 누가는 마리아의 반응을 묘사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용어를 사용한다(눅 1:28). 첫째, 그는 철학자가 그러하듯이 마리아를 당황한 사람(ESV, “심각하게 혼란에 빠진”)으로 묘사한다. 이 용어는 신약에서 오로지 여기에만 나오지만,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작품에서 혼란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런 다음 누가는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을 마리아가 했다고 말한다. 즉 마리아는 천사의 선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별하려고 노력했다(29절).마리아에게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천사지만(30절), 누가복음 다른 곳에 천사가 나타나는 경우를 보면, 동산에 계신 그리스도(22:43)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가는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말한다(12절; 2:9, 24:5). 마리아가 당황했을지는 모르지만, 두려워하진 않았다.대신에 그녀는 질문을 한다. 혼란을 헤쳐나감으로 내면의 혼란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1:34). 그녀의 질문이 종종 사가랴의 질문 방식으로 번역되곤 하지만, 누가가 사용한 그리스어는 정확하다. 사가랴가 원했던 것은 천사의 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사가랴가 똑똑히 알 수 있도록 천사가 사가랴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마리아는 천사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녀는 천사의 말이 이루어질 것임을 알기에 미래 시제 동사 “이뤄질까”를 사용한다. 그녀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이 사실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다. 그렇기에 그 말씀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한 독립적인 검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가랴의 질문이 의심을 나타내는 반면, 마리아의 질문은 믿음을 드러낸다.더욱이 마리아가 질문하는 건 두려워서가 아니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순응하기 위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한다. 이해하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는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따르기 위한 준비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굴복함으로 질문을 완성한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창세기에서 하와는 뱀의 속임수 앞에서 질문하기를 꺼렸고, 그 결과 모든 인류가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반면에 마리아는 천사에게 질문을 던짐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마리아의 질문은 기독교 신자에게 패러다임이 된다. 최소한 질문하는 마리아는 신학자를 위한 신약성경의 모델이다(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 신학자이다). 성경 공부를 사랑하는 마리아는 이미 천사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해하기 위해 믿었고, 순종하기 위해서 이해했다. 자신의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녀는 모든 질문에 자유로웠다. 왜냐하면 그녀는 하나님의 계시가 자신과 이 세상에 유익을 가져올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질문 평가우리는 질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창세기 4장에는 두 가지 예배 방식이 등장한다. 아벨의 예배는 주님께 받아들여졌지만, 가인의 예배는 그렇지 않았다. 누가복음 1장에는 두 가지 탐구 방식이 나온다. 하나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니다. 5세기 시리아 신학자 사루그의 야곱(Jacob of Sarug)은 이렇게 썼다. “보시오, 그대 신중한 사람이여, 세상에는 유익한 탐구가 있는 반면에 의심으로 인해 해를 끼치는 질문도 있습니다. 또한 질문을 던지나 진리의 편에 서므로 멸시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있는 반면에 단지 논쟁하는 자, 자신의 말로 인해 결국에는 망하는 자가 있습니다.” 질문 속에 숨은 신실함을 식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사가랴는 자신의 방대한 지식의 정교한 과시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그가 가졌던 두려운 불안은 그로 하여금 더 깊이 성경을 파도록 했고 결과적으로 전혀 정답이 아닌 것을 정답이라고 오판하도록 만들었다. 대조적으로, 마리아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소한 순간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와 말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붙타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해를 목표로 하는 질문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가랴는 책망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소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유하기 위한 책망이다. 사가랴가 던진 불신앙의 질문이 누가가 그에 대해서 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다.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두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다”(6절)고 말한다. 그리고 요한이 태어났을 때, 사가랴는 천사의 지시에 따라 아들의 이름을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그러자 그의 혀가 풀렸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다”(64절). 사가랴가 던진 어리석은 질문은 평소 신실하기만 했던 그의 삶에 찾아온 하나의 돌발상황이었다. 누가가 이를 기록한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처럼 질문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사가랴처럼 질문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하기 위함이다. 질문의 기술을 습득하기란 어렵다. 인간의 마음이 워낙 깊어서 뚫을 수 없는 심연이며, 어둠과 속임수, 그리고 자기기만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그날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의 마음이 찔렀듯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를 때, 우리는 종종 말씀 앞에서 혼란과 불확실성, 그리고 주저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말로 마리아처럼 신실함과 믿음으로 말씀 앞에서, “주님,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이까?”라고 질문하는, 하나님의 약속 앞에 설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이다. 그래야만 우리도 마리아와 함께,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라고 말할 준비가 될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은 독자는 Matthew Lee Anderson이 쓴 Called into Questions: Cultivating the Love of Learning Within the Life of Faith (Moody, 2024)를 읽기 바란다. 출처: Mary, Model Theologian: Learning to Question Well
그들이 현관문을 두드릴 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여호와...
by Justin Taylor
2024-05-10
다음은 ESV Study Bible 부록에 있는 자료들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이 믿는 것에 대한 간략한 개요이다. 이 자료는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것과 대비하여 실려 있다. ESV의 허락을 받아 싣는다. 1. 하나님의 이름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유일한 진짜 이름, 곧 하나님을 식별할 수 있는 이름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라고 믿는다.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나온다. • 하나님 (Hb. ‘elohim; 창 1:1),• 전능하신 하나님 (Hb. ‘El Shadday; 창 17:1),• 주님 (Hb. ‘Adonay; 시 8:1),• 만군의 주님 (Hb. yhwh tseba’ot; 삼상 1:3).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GK. Patēr; Matt. 6:9). 그리고 제자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고전 1:3).2. 삼위일체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고 또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므로 삼위일체를 비성경적이라고 믿는다.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것이 사실이지만(사 44:6; 45:18; 46:9; 요 5:44; 고전 8:4; 약2:19), 성경에서는 세 위격을 다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 아버지 (벧전 1:2),• 예수님 (요 20:28; 히 1:8), 그리고• 성령 (행 5:3-4).이 각각의 세 위격은 다 하나님의 속성을 갖는다. 다음과 같다. • 편재하심 (시 139:7; 렘 23:23-24; 마 28:20),• 전지하심 (시 147:5; 요 16:30; 고전 2:10-11),• 전능하심 (렘 32:17; 요 2:1-11; 롬15:19), 그리고• 영원하심 (시 90:2; 히 9:14; 계 22:13).더욱이, 세 분은 각각 우주 창조와 같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셨다. • 아버지 (창 1:1; 시 102:25)• 아들 (요 1:3; 골 1:16; 히 1:2), 그리고• 성령 (창 1:2; 욥 33:4; 시 104:30).성경은 하나님 안에 삼위일체가 있음을 가리킨다(마 28:19; 참조 고후 13:14).따라서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적 확증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다. 3. 예수님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은 여호와에 의해서 물리적 세계가 존재하기 전에 대천사 미가엘로 창조되었으며, 비록 그가 능력이 있지만 한 단계 아래의 신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며(요 1:1; 8:58; 참조, 출 3:14) 아버지와 똑같은 신성한 본성을 갖고 계시다(요 5:18; 10:30; 히 1:3).실제로 구약과 신약을 비교하면 예수님이 여호와와 동일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사 43:11을 딛 2:13과 비교; 사 44:24을 골 1:16과 비교; 사 6:1-5을 요 12:41과 비교).예수님 자신이 천사들을 창조하셨고(골 1:16; 참조, 요 1:3; 히 1:2, 10) 그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셨다(히 1:6).4. 성육신여호와의 증인은 이 땅에 탄생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인간에 불과했다고 믿는다.이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 참조 빌 2:6-7)는 성경의 가르침을 위반하는 것이다. “충만”이라는 단어(Gk. plērōma)는 총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신성”(Gk.theotēs)은 하나님의 본성과 존재와 속성을 가리킨다.그러므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와 속성을 육체 안에서 구현하신 총체이시다.실제로 예수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셨다(마 1:23; 참조, 사 7:14; 요 1:1, 14, 18; 10:30; 14:9-10).5. 부활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적인 부활이 아니라 오로지 영적인 부활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단순한 영이 아니라 살과 뼈로 된 몸을 갖고 계심을 주장하셨다(눅 24:39; 참조, 요 2:19-21).예수님은 여러 차례 음식을 먹음으로써 부활 후에 자신이 진정한 육체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셨다(눅 24:30, 42-43; 요 21:12-13).이 사실은 그를 육체적으로 만진 제자들에 의해 확증되었다(마 28:9; 요 20:17).6. 재림여호와의 증인은 재림이 1914년에 이미 일어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미래의 재림은 물리적이고 가시적일 것이며(행 1:9-11; 참조 딛 2:13), 전우주적 차원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흔들림이 뒤따를 것이다(마 24:29-30).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재림하는 예수님을 볼 것이다(계 1:7).7. 성령여호와의 증인은 성령이 별개의 인격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하나님의 힘이라고 믿는다.그러나 성경적으로 성령은 인격의 세 가지 주요 속성을 다 갖고 있다.• 마음 (롬 8:27),• 감정 (엡 4:30), 그리고• 의지 (고전 12:11).더욱이 성령을 지칭할 때 인칭 대명사가 사용된다(행 13:2).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은 인격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한다. • 가르치심 (요 14:26),• 증언하심 (요 15:26),• 위임하심 (행 13:4),• 명령을 내리심 (행 8:29).• 중재하심 (롬 8:26).성령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시다(마 28:19).8. 구원여호와의 증인은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조직(즉 그들의 종교)과의 연합, 그 조직의 규칙에 대한 순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그러나 성경적으로 규칙에 대한 순종을 구원의 조건으로 보는 것은 복음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갈 2:16-21; 골 2:20-23). 구원은 신자의 행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베푸심(은혜)에 기초한다. 선행은 구원의 기초가 아니라 열매나 결과이다(엡 2:8-10; 딛 3:4-8).9. 두 종류의 구원받은 백성여호와의 증인은 두 종류의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고 믿는다. (1) 기름부음 받은 반열 (144,000명), 이들은 천국에 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이다. (2) “다른 양들” (나머지 신자들), 이들은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천국의 운명이 기다린다(요 14:1-3; 17:24; 고후 5:1; 빌 3:20; 골 1:5; 살전 4:17; 히 3:1).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다 새 땅에서도 거할 것이다(벧후 3:13; 계 21:1-4).10. 비물질적 영혼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이 비물질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영혼”은 단순히 사람 안에 있는 생명력에 불과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 생명력은 몸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영혼”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 용어의 핵심 의미 중 하나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살아남는 인간의 비물질적 자아이다(창 35:18; 계 6:9-10). 믿지 않는 자들은 의식적인 재난 속에 있지만(마 13:42; 25:41, 46; 눅 16:22-24; 계 14:11), 신자들은 천국에서 의식적인 행복 속에서 살 것이다(고전 2:9; 5:6-8; 빌 1:21-23; 계 7:17; 21:4).11. 지옥여호와의 증인은 지옥이 영원한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평범한 무덤이라고 믿는다. 악인은 멸망한다. 즉, 의식이 없어짐과 동시에 영원히 사라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지옥은 의식적이고 영원한 고통이 있는 실제 장소이다(마 5:22; 25:41, 46; 유 7; 계 14:11; 20:10, 14).출처: The 11 Beliefs You Should Know about Jehovah’s Witnesses When They Knock at the Door
바울의 복음은 예수의 복음과 다르다?
by Donny Ray Mathis II
2024-05-09
어느 날 저녁,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자기 교회는 바울의 복음이 초래하는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의 편에 서 있다고 말하는 어느 목사의 영상을 보았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을 많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에 비하면 사실 내가 받은 충격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바울에 대한 이런 식의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바울은 예수님이 전파하신 “사회적, 윤리적” 복음과 모순되는 예수님에 관한 “신학적” 이야기를 새로 만든 걸까? 이 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일단 공통 기반을 구축하면 더 쉽게 불일치를 좁힐 수 있다. 한번 솔직해져 보자. 사실 복음주의자는 의도치 않게 예수님보다 바울에게 더 큰 초점을 둘 수 있다. 바울의 서신서는 일반적으로 복음서 속 서사보다 더 직접적이고 문자적이며 또 논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누구나 더 관심을 두는 성경 속 장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우리는 자신만의 “경전 속 경전”을 만드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의미는? “두 복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울은 간접적으로 접한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파했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관련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설교하셨다고 그들은 주장한다.그러한 메시지는 확실히 마가가 예수님의 설교를 요약한 내용과 일치한다(막 1:14-15).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절은 마가가 그 자신에게 전달된 목격담을 요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간접적이라는 면에서 바울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이 과연 “사회적, 윤리적” 복음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이라고 정의하셨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마가복음의 시작 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가는 1장 1절(“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에, 그러니까 사실상 제목에 “복음”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이 제목에서 마가는 “복음”을 다름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또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유대인과 로마인의 왕 칭호)로 묘사하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마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제1 세기 로마 세계에서 “복음”(euangelion)이라는 용어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전기적 서술이 아니었다. 당시 복음이 의미하는 바는 전쟁터에서 신들이 준 승리뿐만 아니라 신성한 통치자의 탄생, 권력 상승, 신성한 권력자가 내리는 법령(예: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칭송하는 프리에네 비문) 등을 의미했다. 동사 euangelizō(“나는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는 칠십인역, 특히 이사야서(예: 사 40:9-10; 52:7-10)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포로 생활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행동하고 계심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는 통치자를 타도하시고 당신의 통치를 확립하셨다. 마가는 서문에서 이사야 40:3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떻게 그를 왕의 통치에 들어가도록 했는지, 그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복음”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복음은 바울의 복음과 모순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5:3-11에서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선포가 어떻게 구약의 이야기를 성취하는지 강조한다.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두 복음” 주창자들이 바울의 대적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사람들) 나타나신 예수님을 통해 부활의 역사성을 확증한다. 로마서 11:1-7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파한 복음이 선지자들의 약속의 성취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그 결과 예수님이 왕으로 즉위하실 것이다. 왜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했을까? 바울과 예수님이 피차 동의한다면, 바울은 굳이 왜 “나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바울은 총 60번에 걸쳐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가운데 6번만 “나의/우리의”라는 수식어를 추가했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자신의 복음이 왕이신 예수님이 행하신 심판을 포함하고(롬 2:16),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을 가능하게 하며(롬 16:26), 신자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방법(고후 4:3; 살전 1:5)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예는 바울이 자신의 메시지를 예수님의 메시지와 차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치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바울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복음”을 27번이나 사용한다. 이와 같은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그가 전파한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가 전파한 복음과 같다는 그의 이해를 반영한다(행 15:22-30). 게다가 바울은 마가복음 1:1, 1:14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예: 롬 15:19)과 “하나님의 복음”(예: 살전 2:2)을 사용한다. 바울에게 계시된 복음(갈 1:11-12)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곧 예수님의 왕권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계획과 일치한다(마 24:14; 26:13; 막 13:10; 14:9; 눅 24:44-49).예수님과 바울의 통일된 복음은 오늘날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할까?먼저, 우리는 행여라도 내가 바울을 너무 좋아해서 예수님과 경쟁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신약과 구약 사이에 편향성이 있는 건 아닌지 또 특정 장르와 저자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건 아닌지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경 전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하게 표현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의 개념과 언어는 구약성경과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과 메시지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마지막으로, 우리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완벽하게 계시하신 통일성 있는 말씀이라는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에 66권의 책을 맡겼고, 초대교회는 이 모든 책을 기독교 정경이라는 테두리 안에 나란히 두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계시의 일부를 풀겠다는 교만에 빠져서 인간의 이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남겨진 이성을 소위 말하는 성경적 논쟁에 악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더 중시하는 오류에 빠질 것이다. 출처: Did Paul Preach a Different Gospel than Jesus?
칼뱅의 편지에서 찾아내는 그의 신학 발전
by Christopher Osterbrock
2024-05-07
중요한 인물의 편지 연구는 시간의 간격이나 문화의 차이에 상관없이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온 관행이다. 종교개혁 사상가 사이에서는 단연 장 칼뱅(1509-64)의 편지가 가장 사랑받는다. 칼뱅의 편지는 그의 내면의 묵상을 드러낸다. 그는 친구나 교인들과 관계 가운데서 편지를 씀으로써 자기 성찰의 한 형식으로 이를 활용했다.칼뱅의 편지 중 특정 시기(흔히들 말하는 1538-41년의 스트라스부르 시대)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신학 발전을 검토할 수 있다.칼뱅은 신학적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편지는 아예 쓰지 않았다. 이러한 함의는 세 가지 특별한 윤곽, 곧 우정과 교회와 믿음의 연합하는 능력에 대한 칼뱅의 견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우정칼뱅은 하나님과의 연합이 하나님을 아는 체험적 지식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연합의 본질이 다른 사람들과 격리된 일종의 개인 수도원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칼뱅은 정기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특별히 사역 중에 생긴 고립이 가져다준 낙담을 이기는 힘을 얻었다. 스트라스부르 시절 그가 느꼈던 고립감은 인내할 힘을 주는 우정이라는 측면을 깊이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을 경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는 것임을 더 깊은 차원에서 깨달았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형제자매들 맺는 깊은 우정과 하나님과의 상호 연합이야말로 삶에서 더 큰 만족감을 누리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요소가 빠진 세상의 우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칼뱅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만큼이나 그를 믿는 신자들이 서로 싸워서 찢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교회(칼뱅이 스트라스부르에 있고 윌리엄 파렐이 뉴샤텔에 있을 때) 제네바 양 떼를 섬기는 기능적인 목자였던 칼뱅은 자신과 파렐이 축복의 전달자로서 제네바 사람들을 각자의 교회를 섬기는 다른 목회자들과 결속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실하고 우호적인 애정으로 말이다.칼뱅이 부재중에도 제네바 교회에 조언을 했다는 사실은 그가 교회에 대해 느꼈던 친밀감과 청지기직에 대한 영적 의무뿐만 아니라 교회를 향한 그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그는 멀리 있으면서도 감독자로서 그들을 가르치고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얼마든지 보기에 따라서 뻔뻔스러운 영적 권위로 여겨질 수도 있는 내용을 썼다. “먼저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부탁하건대 무엇이든지 먼저 그 문제를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때 조금도 서두르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다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으니,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그의 편지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거리나 물질적 수단에 구애받지 않고 행사하는 진실한 영적 책임으로 보아야 한다. 칼뱅은 편지를 통해서도 친교의 유대 (그리고 심지어 어느 정도의 권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에게 교회는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이었다. 그러한 연결이 가능했던 건 신앙의 역할에 대한 그의 개념 때문이었다. 믿음의 연합칼뱅에게 믿음이란 “신자 개인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 주어진 선물이지만, 동시에 교회의 삶과 하나님의 섭리라는 손길을 통해서 얼마든지 성숙한 차원에서 체험되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비록 신앙의 형제자매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친교는 중단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기회가 되는 대로 기꺼이 온 마음을 다해 서로 나누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제네바 회중 및 가까운 친구들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칼뱅은 그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원했다. 비록 거기에는 펜과 종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지만, 그럼에도 단지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특별한 애정”이 요구하는 만큼 지속적인 교제를 원했다.칼뱅은 이런 교제를 통해 드러내는 믿음과 관련하여 교회에 관한 어떤 기대를 표명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 구성원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사랑의 교감, 비록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교회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칼뱅은 이렇게 썼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비록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를 향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증거로서 멀리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서로 연합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라고 촉구했다.제네바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칼뱅은 편지를 나누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분명한 신학 원칙을 견지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도하셔서 그의 신실한 백성을 이끌어가시는 연합은 실로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성도라면 누구나 모든 가능한 선한 형태로 그 연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칼뱅과 동료 개혁가 마르틴 부써(Martin Bucer)는 편지 교환을 통해서 교회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친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종종 개인적인 신앙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공동체는 다 함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비록 (성찬식 같은) 지역별로 이뤄지는 관행이라고 해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전체 공동체의 일부로서 자리를 잡는다. 비록 칼뱅은 작은 프랑스 난민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지만, 칼뱅과 부써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상대방의 통찰력을 즐기는(앞서 언급한 파렐과 제네바 회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기초는 이러한 공동체 성장에 기초를 둔다. 이들의 편지는 각자가 간직한 개인 경건을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동시에 지역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존재하는 성도들 사이의 친교에 대한 개념을 확증한다. 편지 쓰기를 통한 성화훈련으로서의 편지 쓰기는 칼뱅이 자기 말과 소명을 성찰하면서 제네바 사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그리고 스트라스부르와 그 너머로까지 우정을 꽃피우는 데에까지 도움을 주었다.스트라스부르에 잠시 머무는 사이에 꾸준히 편지를 썼기에 칼뱅은 제네바로의 귀환이 순조로울 수 있었다. 더불어서 유럽 전역에 퍼진 개혁파 사역과의 파트너십이 열매를 맺는 것도 가능했다. 칼뱅은 부써에게 그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서 얻은 혜택과 명예에 대해서 자신이 결코 “무신경하지 않다”라고 말했다.스트라스부르 편지는 칼뱅이 개인적 사역의 혼란 속에서 견디게 한 힘이었고 또한 그가 풍부한 교회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수단이었다. 이런 유익은 칼뱅 개인뿐 아니라 미래의 제네바 공동체에도 유익이 되었다. 비록 칼뱅이 성경의 정경을 위해서 글을 쓴 건 아니지만, 그의 글은 편지라는 틀에서 볼 때 사도 바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칼뱅의 편지를 연구하고 거기에 담긴 그의 사상을 신학적인 이점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결코 뭔가를 “훔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칼뱅이 편지 교환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인식했던 믿음으로 연합된 공동체 유대를 계속 이어가는 당사자이다. 비록 칼뱅과 몇백 년이라는 시간으로 떨어져 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Christopher Osterbrock, “The Spiritual Utility of Calvin’s Correspondence During the Strasbourg Years,” Themelios 49, no. 1 (April 2024)에서 간추린 글입니다. 출처: Read John Calvin’s Mail to Discover His Theological Development
헤르만 바빙크를 읽기 위한 다섯 가지 원칙
by N. Gray Sutanto
2024-05-02
2023년에 헤르만 바빙크의 Christianity and Science의 영어 번역본이 출판되고 그의 사상에 관한 문헌이 증가함에 따라 점점 더욱 많은 독자가 그의 신학 그리고 그가 대표하는 신칼빈주의 전통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1] 그러나 Reformes Dogmatics(개혁파 교의학), Christianity and Science, Philosophy of Revelation 등으로 대표되는 바빙크의 책을 읽는다는 건 절대로 만만치 않다. 그의 글은 우아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문제는 그가 배경으로 하는 19세기 및 20세기 유럽 학문이 독자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때때로 그는 우리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신학 용어를 사용한다. 게다가 바빙크 저술의 방대함은 잠재 독자들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하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읽기 시작해야 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모더니즘의 급속한 진화와 성장을 실시간으로 겪은 사람이 바빙크였기에, 그의 저작은 21세기 독자들에게 매우 귀중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개혁파 정통주의의 입장을 견지하며 보편성(catholicity)을 목표로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신학적 반대자들과 벌인 학문 논쟁에도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돌입했다. 당시 사상가들의 올바른 부분에 관해서 긍정적으로 인용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바빙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작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라도 서슴없이 비판을 던지곤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빙크는 당시의 상황에 비춰서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했음에도 오늘날 시각에서 바빙크의 실제 관점이 어디에 들어있는지 파악하는 데에 독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바빙크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함께 다뤄지지 않는 특정 미덕을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성경적으로 철저한 개혁파 정통에 대한 추구와 이 정통이 현대 시대의 문제에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주장을 넘어서 그 사실을 보여주는 능력. (2) 공정한 시각으로 반대파의 글을 읽고 그들을 비판하는 능력. (3) 주요 문제의 양면을 보고 이를 넘어서 더 큰 통합을 향해 나아가려는 비전. (4) 성경의 권위에 주의를 기울이는 동시에 교회사 전반에 걸쳐 일어난 교리 발전에 대한 공정한 평가. 바빙크 독서가 주는 도전과 더불어서 그를 이해할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을 고려할 때, 가장 좋은 바빙크 독서 방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함정을 피하면서 글을 읽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1. 맥락을 설정하라여느 작가와 마찬가지로, 지금 읽겠다고 손에 든 책이 바빙크의 전체 저작물 안에서 차지하는 맥락과 위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의 저작물은 크게 다음 두 가지 범주에 속한다. (1) Kampen의 신학대학원 재직 기간과 그 전까지의 저작물(1883-1902)과 (2)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시절(1902-21)의 저작물이다. 초기 작품은 주로 다양한 신학 주제에 대한 짧은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개혁파 교의학 초판에서 절정에 달했다.[2]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의 말년은 개혁 신학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예를 들어, Christian Worldview(1904)는 철학의 세 가지 주요 영역, 즉 형이상학(존재 연구), 인식론(지식 이론), 윤리학(도덕적 삶에 관한 연구)에 대한 신학적 함의에 관한 내용이다.[3] Christianity and Science는 같은 해에 출판되었는데, 세계관에 관한 소책자의 자매 편이자 또한 기독교 대학을 위한 일종의 선언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 자연과학, 종교, 인문학 전반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유익함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바빙크는 계시야말로 모든 인간 존재의 “비밀”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는 이런 관점을 1908년 스톤 강연에서 깊이 있게 제시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나중에 Philosophy of Revelation으로 출판되었다. 바빙크는 이 기간에 끊임없이 성찰을 수정하고 발전시키려고 애썼다. 개혁파 교의학은 확실히 그의 대표작이지만, 1906년에서 1911년 사이에 심리학과 종교과학에 관한 부분이 추가된 2판이 증보판으로 나왔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생각과 씨름했고, 1921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록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본문에 대한 추가 수정과 확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바빙크의 신학적 견해에 대한 간결하고 성숙한 진술을 원하는 독자라면 The Wonderful Works of God(1909)와 Guidebook for Instruction in the Christian Religion(1913)을 포함한 그의 후기 저작을 보는 게 좋다. 이는 각각 평신도와 학생을 위해서 쓰였으며, 여기에는 보다 많은 독자에게 신앙의 깊이를 “전달”하고 싶어 한 바빙크의 열망이 담겨있다. 따라서 이 두 작품은 바빙크의 전체 저작에 입문하려는 새로운 독자에게는 최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2. 개혁주의 보편성을 준수하라바빙크는 건설적인 신학 저술에 관해서 의도적으로 개혁주의 보편성 접근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을 인용하는 경우에 한 구절에서는 그의 신학을 끊임없이 비판하다가 다른 구절에 가서는 도리어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습관이 바로 그것이다. Wolter Huttinga는 이 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에, 심지어 자신이 명백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빙크는 항상 깊은 공감을 표시하기 때문에 독자는 바빙크가 논의 중인 저자의 의견에 실제로 어느 정도나 동의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바빙크를 읽을 때 종종 “이것은 누구의 목소리이지?”라고 궁금할 수 있다. 바빙크가 표현한 형태로만 보면, 가장 명백한 이단조차도 매혹적으로 들릴 수 있다. 바빙크 자신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종종 “거기에도 크고 깊은 진리가 담겨 있다”고 고백한다. 비록 나중에 보면 그게 바빙크 자신의 의견이 아닐 때도 말이다. 바빙크의 지성이 추구하는 종합적 특징으로 인해서, 우리는 사실 무엇이 바빙크 신학이라는 맥락에 속하는지, 또 어떤 것은 아닌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기가 어렵다.[4]독자는 심지어 바빙크가 가장 문제가 많은 작가들에게서조차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의해서) 항상 선하고 참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내가 에든버러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에 만난 한 사람은 바빙크를 “탐욕스러운 진공 상태”라고 부르며 그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바빙크는 자신이 인용하는 사상가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조차도, 그들로부터 최대한 좋은 점만 찾아서 부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점이 바빙크를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도리어 너그러움을 가지고 다양한 사상가를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에게 개혁적 기독교가 참으로 보편적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은 종종 우연한 방식일지라도 시대를 초월한 모든 철학과 가치 속에는 필연적으로 개혁신학과 공명하는 측면이 있음으로 드러난다. 개혁주의 신학은 참으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Cory Brock은 바빙크가 정통적이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이라고 주장한다.[5] 예를 들어, 그가 살았던 시기의 “철학 체계”로 눈을 돌려보자. 바빙크는 “칼뱅주의”의 중심 노선이 “칸트의 도덕적 원칙” 속에, 쇼펜하우어의 “비관적 철학” 속에 그리고 실제로 ‘의지의 비결정론’을 부정하는 19세기의 ‘거의 모든 철학 체계’ 속에 스며있다고 주장한다.[6]그렇다고 개혁주의 신학이 모더니즘과 결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시대의 철학을 수용하고 전유할 수 있는 칼뱅주의야말로 19세기 철학과 대화하는 데에도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초기 기독교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적 시녀로 사용했던 경향에도 불구하고,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학에는 특정한 철학이 필요하지 않다. 신학은 어떤 철학 체계에도 반드시 적대적일 이유가 없다. 도리어 선험적으로나 또는 아무런 비판 없이 플라톤이나 칸트의 철학에 우선권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신학은 자신만의 기준을 따라 움직이며, 그 기준에 따라서 어떤 철학이든 테스트하고, 진실하고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7]기독교가 반드시 따라야 할 영속적이거나 자연적인 철학은 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기독교는 그 어떤 세상 철학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8]그러므로 독자는 바빙크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출처를 같이 사용하더라도 놀랄 필요가 없다. 그가 특정 사상가를 참고했다고 해서 거기에 완전한 동의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빙크가 누군가를 특정한 용도로 활용한 게 그 사람에 대한 전적 승인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함으로 우리는 바빙크가 일관성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바빙크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바빙크는 일반적으로 (1) 성경적 주석, (2) 교리의 역사적-신학적 발전 추적, 그리고 (3) 해당 교리를 현대에 맞게 신선하고 규범적으로 표현할 것이라는 특별한 삼중 접근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한다. 개혁 윤리 조직에 대한 바빙크의 의도적인 설명을 살펴보자. 1. 우리는 성경의 자료를 모아 죄, 중생, 성화, 부모와 자녀의 관계 등에 관해 가르치는 모든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2. 그리고 교회, 특히 개혁 교회가 이런 자료를 다루는 방식을 주의 깊게 조사해야 한다…. 3. 마지막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규범적인 방식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동시에 우리 시대에 적용해야 하며, 특히 윤리적 교리를 완성할 방법까지 제시해야 한다.[9]이러한 구조는 그의 윤리학과 교의학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 염두에 두면 독자는 나무를 면밀하게 조사하는 중에도 숲을 바라보는 전체적 시각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성경 자료에 대한 조사와 특정한 역사적 사상가 및 운동에 대한 평가가 도움이 되지만, 주어진 주제에 대한 바빙크의 건설적인 진술을 보려면 해당 부분을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한다. 바빙크의 이런 독특한 패턴은 책임 있는 신학자라면 단순히 낡은 것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1895년판 개혁파 교의학 서문에서 그는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교의학을 발전시키려는 목표가 개혁주의 보편성의 정의에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고대라는 이유만으로 고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개혁주의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다. 교의 신학의 저작물은 무엇이 참되고 타당했는지를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여전히 참되고 타당한지를 기술해야 한다. 그것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10] 따라서 그는 의도는 교리의 발전과 현대의 맥락을 모두 고려하여 자신만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4. ‘유기적’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라앞의 원리에 이어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유기체의 개념을 잡아야 한다. “유기적(organic)”이라는 개념은 유기체가 다양한 부분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심” 또는 “통합”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관찰에 근거한다(예: 심혈관계는 심장에 의해 통합되어 몸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바빙크는 이 아이디어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는데, 그건 창조물 속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통일성과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한 구조화 장치이다. 엄격한 삼위일체론적 관점에 따라 바빙크는 창조가 수많은 영역에서 다양성 내의 통일성(unities-in-diversities)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삼위일체 자아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하나님은 독특한 의미에서 다양성 속의 통일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적 존재는 단순하고 따라서 결코 부분들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은 유비적 복제물이고, 서로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한 통일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바빙크는 우주의 다양한 측면을 계속해서 “유기체”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우주 전체는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된 유기체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법칙은 단일 유기체이며, 지식은 과학의 유기체라는 등의 설명이다. 이 유기적 동기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유한 존재인 인간을 묘사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이 세 분인 동시에 한 분인 것처럼, 또한 절대적 수준에서 다양성 내의 통일성인 것처럼, 인류도 원자 수준의 개인들이 모인 집합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는 머리 아래에서 만들어진 연합체(a corporate entity)라는 것이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쓴다.오직 인류만이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로서, 하나의 머리 아래에 연합하여 온 땅에 퍼져 있다.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장으로서, 땅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말이다. 실로 그것은 온전히 완성된 형상이요, 하나님의 가장 뚜렷하고 놀라운 형상이다.[11]인간을 묘사하는 바빙크의 유기적인 방식은 계시, 성경과 그 영감, 언약, 윤리, 죄의 기생적 성격, 교회 등 신학의 다양한 주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글 속에 담긴 유기적 동기를 찾아보라. 바로 그 곳에서 당신은 바빙크의 건설적인 목소리를 찾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5. 전체적 사고를 추구하라아브라함 카이퍼와 마찬가지로 바빙크는 획일성, 일방성 또는 잘못된 이분법을 사상의 역사에서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오류로 본다.[12] 획일성은 모든 다양한 창조 현상을 하나의 이념이나 사물로 축소하려는 유혹이다. 예를 들어, 자연주의는 모든 것을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 축소하려는 유혹이고, 범신론은 모든 것을 신성한 것으로 축소하려는 유혹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질적인 것과 신성한 것의 차이를 적절히 구별하기에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포용할 수 있다. 일방성도 심각한 오류이다. 역사주의는 한 시대나 민족 집단을 황금 시대로 특권화하고, 비슷하게 발전된 다른 문화와 지적 삶이 다른 시대와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유주의는 수평 관계, 이웃사랑과 윤리적 삶을 지나치게 우선시하는 바람에 올바른 종교마저 거부하게 만드는 해악을 끼친다. 또한 종교 광신주의는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면서 엄격한 개인적 경건만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러한 일방성은 세 번째 오류, 즉 잘못된 이분법의 발생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경우에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옵션이 전부이다. 반드시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결코 이분법이 아니다. 대신에 창조 질서가 주는 풍요로움을 정당하게 평가한다. 이 점이 바로 Christianity and Science에서 바빙크가 과학주의나 급진적 경험주의에 대해 제기하는 일종의 비판이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주의는 인간이 데이터를 분리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파악이 가능한 기계와 같은 존재라고 가정하는 일방성이며 속임수라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자도 사람이고, 그들이 아무리 “사실”에 대해 “중립”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들 또한 종종 자신의 개인적인 전제 또는 가정을 몰래 숨기는 경우가 많다. “어디서나 생명은 철학보다 앞선다.”[13] 과학자들의 중립성 주장 뒤에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인 설명이 깔려 있으며, 그런 식의 일방적인 인류학은 일종의 획일성을 낳기도 한다. 인간의 단지 그들의 관찰 대상인, 감각적 인지 능력을 가진 물질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경험 데이터만으로는 이런 사실 자체를 증명할 수 없다).바빙크는 통합의 관점이 부족하거나 “이원론”이라는 등의 이유로 특정 입장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독자들에게 어떤 추론이나 관찰의 패턴을 쉽게 거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대신 특정 통찰력이 과연 전체적인 기독교 세계관에 통합 가능한지를 검토하라고 촉구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를 편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생각과 삶이 더욱 온전해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실제로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지혜를 더 풍성하게 키운다. 우리가 더욱더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방식에서 바빙크의 지향점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의 논의가 어디로 흘러갈지 훨씬 더 쉽게 예측하고 이해할 것이다. 바빙크를 읽자바빙크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심 있고, 여유가 넘치지만 동시에 열정의 독서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양극화를 피하고 자신의 신념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나와 다른 사상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하는, 일종의 원칙에 입각한 유연성을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원칙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최고의 신칼뱅주의 신학자, 바빙크의 책을 읽으려고 할 것이다. 바빙크를 읽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의 책은 고통을 보상하고도 남을 유익을 선물할 것이다. 톨레 레게(Tolle lege)!1. Herman Bavinck, “Christianity and Science,” trans. and ed. N. Gray Sutanto, James Eglinton, and Cory Brock (Wheaton, IL: Crossway, 2023); Cory Brock and N. Gray Sutanto, “Neo-Calvinism: A Theological Introduction”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3). 2. 초기의 이 논물들은 그 일부가 다음에 들어 있다: Herman Bavinck, “Essays on Religion, Science, and Society,” trans. Harry Boonstra and Gerrit Sheeres, ed. John Bol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3). 이 두 편이 더 중요하다: Herman Bavinck, “The Catholicity of Christianity and the Church,” trans. John Bolt, in “Calvin Theological Journal” 27 (1992): 220–51; and Herman Bavinck, “Common Grace,” trans. Raymond C. Van Leeuwen, in “Calvin Theological Journal” 24, no. 1 (April 1989): 35–65. 3. For a further introduction to 바빙크의 “Christian Worldview”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하라: “RTS Washington DC: Dr. Gray Sutanto ‘Bavinck's Christian Worldview,’”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January 25, 2020, YouTube Video, 2:33, https://www.youtube.com/watch?v=6VZKgOxQTBE&t=153s; and N. Gray Sutanto, “Bavinck’s Christian Worldview, Context, Classical Contours, and Significance,” in “Reformed Faith and Practice” 5 (2020), 28–39. 4. Wolter Huttinga, “Participation and Communicability: Herman Bavinck and John Milbank on the Relation Between God and the World” (Amsterdam: Buijten & Schipperheijn Motief, 2014), 78. 5. Cory Brock, “Orthodox Yet Modern: Herman Bavinck’s Use of Schleiermacher”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6. Bavinck, “Future of Calvinism,” in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Review” 17, trans. Geerhardus Vos (1894): 22. 7.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1, Prolegomena,”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609. 8. 바빙크의 보편성(catholicity)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Neo-Calvinism: A Theological Introduction,” chap. 3; Cory Brock and N. Gray Sutanto, “Herman Bavinck’s Reformed Eclecticism: On Catholicity, Consciousness, and Theological Epistemology,” in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70 (2017): 310–32. 9. Herman Bavinck, “Reformed Ethics, vol. 1, Created, Fallen, and Converted Humanity,” ed. John Bol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9), 29–30. 10. Herman Bavinck, “Foreword to the First Edition (volume 1) of the Gereformeerde Dogmatiek,” in “Calvin Theological Journal” 45, trans. John Bolt (2010): 10. 11.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2, God and Creation,” 576. 12. 특별히 다음을 보라: Abraham Kuyper, “Uniformity: The Curse of Modern Life,” in “Abraham Kuyper: A Centennial Reader,” ed. James Bratt (Grand Rapids, MI: Eerdmans, 2008), 19–44. 13. Bavinck, “Christianity and Science,” 108. 출처: 5 Principles for Reading Herman Bavinck
기독교의 배경이 된 역사 이야기 (1)
by 전재훈
2024-05-01
역사는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민족들의 전쟁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무력을 행사하여 권력과 부를 쟁취한 이야기가 역사인 셈이지요. 그 힘이 강을 중심으로 농경문화를 일찍 이뤘던 고대에는 농경이 발달한 국가가 힘이 있었을 터이고, 결국 그 힘을 이용해 정복 전쟁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인구가 많은 국가가, 그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똑똑할 때 그 국가는 강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반드시 늙고 죽기 마련이니,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가 죽고 나면 그이 나라도 붕괴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고대사는 이런 구도로 역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생김새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는 여러 대양과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한국에서 동쪽으로 미국에 갈 때 어마어마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이 바다가 태평양입니다. 유럽으로 가려면 중국과 인도를 넘어 날아가게 되는데 인도 밑에 있는 거대한 바다를 인도양이라고 합니다. 유럽에 도착하면 이탈리아반도 아래에 있는 바다를 만나게 됩니다. 이를 지중해라고 부르지요. 이스라엘 서쪽에 있는 바다입니다. 이 바다는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생겼습니다. 아프리카와 스페인 사이가 가까워서 마치 협곡처럼 생겼는데 이 해협을 지브롤터 해협이라고 부르고, 스페인 서쪽의 거대한 바다가 대서양입니다. 유럽인들이 자기네 기준으로 스페인 서쪽에 있는 거대한 바다라는 의미로 대서양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바로 이 세 개의 거대한 바다를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이라고 하고, 러시아 위쪽으로 북극해, 호주 밑으로 남극해를 합쳐서 오대양이라고 합니다. 이 물의 양이 지구의 70퍼센트 정도 되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행성은 ‘지구(地球)’보다 ‘수구(水球)’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인류가 이 바다에 눈을 떴을 때 바다를 지배하는 쪽이 힘을 가지게 됩니다. 농경문화에서는 인구와 지도자로 힘을 발휘했다면 중세 항해술이 발전할 때는 해군력이 강한 나라가 힘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면서 바다가 아닌 하늘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제공권을 장악한 나라가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대륙은 크게 여섯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아시아이지요. 아시아는 거대한 땅이라 다시 여섯 덩어리로 나누어 부릅니다. 러시아 쪽을 북아시아, 우리와 중국을 동아시아, 중국 옆 카자흐스탄 쪽을 중앙아시아, 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 쪽을 서남아시아, 그 옆으로 인도와 이란 쪽을 남아시아,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까지를 서남아시아로 구별합니다. 이스라엘이 있는 팔레스타인이 서남아시아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이집트 쪽으로 홍해를 건너가면 나오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아프리카입니다. 이스라엘 서쪽 바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 위쪽이 유럽이 됩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이 유럽에 속합니다. 스페인 서쪽 바다인 대서양을 건너면 나오는 아메리카는 다시 미국 쪽을 북아메리카, 브라질 쪽을 남아메리카 또는 라틴아메리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배 타고 남쪽으로 쭈욱 가면 만나게 되는 거대한 섬나라 호주는 그 자체로 오세아니아 대륙입니다. 더하여 이 대륙 주변에 있는 태평양의 여러 섬을 포함하여 오세아니아주라 일컫기도 하지요. 호주의 동쪽은 태평양이고 서쪽은 인도양입니다. 이렇게 여섯 대륙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입니다. 참고로 여기에 북극과 남극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북극과 남극에는 사람이 살기가 좀 추워서 말이지요.고대 사람들은 강을 중심으로 문명을 이루고 살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4대 문명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이집트 문명,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인더스 문명, 황하강을 중심으로 황하 문명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집트의 바로(파라오)는 이집트 문명의 지배자였고,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손입니다. 인더스 문명은 지금의 인도, 황하 문명은 중국입니다. 그 밖에 유럽이나,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는 그냥 야만족이었지요. 인더스 문명과 황하 문명은 서로 너무 멀었던 반면에 나일강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중간에 팔레스타인을 두고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강은 특이하게도 물이 흐르는 방향이 서로 다릅니다.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유프라테스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릅니다. 이집트인들의 눈에는 물이 태양에서 흘러오는 것으로 보였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의 눈에는 태양 쪽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지요. 이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태양신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달의 신을 숭배하게 됩니다. 이 둘은 이렇게 서로 생각이 크게 다르다 보니 툭하면 싸웠습니다. 이 둘의 거대한 싸움이 인류 마지막 싸움 ‘아마겟돈’이라 생각했고, 그 싸움터가 팔레스타인이 될 거라고 예언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습니다((계 16:16; 왕하 23:29).
이사야가 교회 금식에 답하다
by 최창국
2024-04-30
성경에는 금식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예수님도 금식하셨고, 성경의 다윗, 다니엘, 에스더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금식 기도를 실천하였다. 특히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금식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고, 교회의 교부들과 교모들도 금식을 실천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내용, 즉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KJV에는 “기도와 금식”(prayer and fasting)으로 되어 있다. 성경도 금식을 중요한 영적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성경에는 금식의 이유와 목적이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먼저 극한 슬픔을 표현하는 방편으로 금식을 하였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며 금식하였다(삼상 31:11-13, 삼하 1:11-12).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고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었다는 것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 자기 원수였지만 슬퍼하며 울며 금식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신랑이신 예수님을 빼앗기고 난 후에 금식할 것이라고 하였다(마 9:14-15). 이처럼 금식은 극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행하였다.다음으로, 개인의 죄나 민족의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금식하였다. 니느웨 성의 왕과 백성은 요나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다(욘 3:3-10).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세계 선교에 대한 성령님의 계시를 받게 된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3)라고 기록하고 있다. 금식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충실한 봉사를 하고자 할 때, 내적으로 자신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금식하였다.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금식도 바로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출 24, 왕상 19, 마 4). 예수님은 사십일 금식 후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였다.한국 교회 안에도 금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한국 교회 안에는 금식에 대한 신앙과 공식이 있다. 하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금식은 물만 먹고 해야 한다는 신앙과 공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금식할 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가? 아쉽게도 성경의 답은 그 반대이다. 성경의 사람들과 초기 교회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은 물만 먹고 금식을 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 교회 안에는 이사야 58:6의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이라는 내용을 통해, 우리가 금식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가르치며 설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본문의 전후 문맥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금식을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하고 있다. 당시 금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영적 실천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식하면서도 이웃을 압제하며 위선적인 일을 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금식보다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금식은 정의로운 삶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진정한 경건은 금식보다 사회 정의와 인권과 관계된다는 말씀이다. 성경은 금식을 근본적으로 금하지 않는다. 금식은 영성 생활에 많은 유익을 줄 수 있다.나아가 중요한 문제는 이사야 58:6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라는 구절이 없다. 즉, 마소라 사본에는 “기뻐하다”라는 용어가 없고, “선택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바하르”(bachar)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내가 선택한 금식은”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대부분의 영역본은 마소라 사본에 따라 “내가 선택한 금식은”(the fast that I choose)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오로지 TNK만 “내가 바라는 금식”(the fast I desire)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어 성경도 “선택한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손석태, 성경을 바로 알자, 213). 한글 개역 성경을 비롯하여 최근에 번역된 거의 모든 성경이 한결같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오역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금식의 목적을 재정의하고 있다(사 58:6).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금식은 이 땅에 존재하는 불의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불의에 대한 가장 온당한 반응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고 이 땅에 정의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사야가 말하는 금식의 목적은 정의와 연대이며, 다른 하나는 거룩이다. 이사야가 말하는 금식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유익과 세상 속에서, 더욱더 거룩한 삶을 위해 스스로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금식의 첫 번째 목적은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베풀기 위한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정의를 실현하는 방편이다. 금식하면서 먹지 않은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금식함으로써 절약된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거룩한 행위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초기 기독교 문헌, 헤르마스의 목자(The Shepherd of Hermas)에는 “그날 먹었을 음식을 돈으로 계산해서 과부와 고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야 한다. 그대가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 가난에 처하면, 그대의 겸손한 행위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마음의 감동을 받고 그대를 위해 주께 간구할지도 모른다”(25)라고 기록하고 있다. 속죄를 위해서 금식할 뿐 아니라 금식을 자선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문헌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금식하는 목적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한 영적 실천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얻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기 위한 것이었다. 금식은 자신의 거룩한 삶과 스스로 가난을 경험하며 다른 사람의 가난에 반응하는 몸의 빈곤을 경험하는 실천이었다. 금식은 경건한 삶을 위한 영적 실천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경청하며, 그 고통에 참여하기 위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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