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목회

제임스 패커로부터 얻은 세 가지 유익
by 고상섭2020-07-21

J.I.패커 목사님이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몇 년 전, 그가 시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천국을 매일 묵상한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임종의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의 소식을 듣고 하루종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패커라는 소중한 신학자 겸 목회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슬픔도 있었지만, 영적 거장들이 즐비했던 한 세대가 끝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 시절 신앙적으로 많은 방황을 했다. 조금은 이단같은 기도원에서 신앙을 시작했고, 또 잘못된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했기 때문에 신앙에 대해 늘 혼란스러웠다. 그때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좋은 신앙의 선배들이 쓴 저서들을 만났다. 존 스토트, 달라스 윌라드, 유진 피터슨, 헨리 나우웬, R.C.스프로울과 같은 영적 거장들의 책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동시대를 살고 있던 그분들이 하나 둘씩 떠나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J.I. 패커의 소식은 그렇게 한 시대를 함께 했던 영적 거장들의 마지막 남은 한 분을 떠나 보내는 것 같아서 더 힘들었다.


패커는 ‘교회를 위한 신학자’라는 명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다. 신학을 위한 신학과 목회를 위한 목회가 아닌 신학과 목회에 다리를 놓아주는 저서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그분의 저서들을 통해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세우는 신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패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저서들이 나의 인생과 목회에서 중요한 세 번의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거룩한 삶에 대한 가르침


영적인 체험을 위주로 하는 기도원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선교단체식 제자훈련을 접하게 되었을 때 둘 사이에서 엄청난 혼란이 있었다. 특히 훈련으로 사람이 성장한다는 완전주의 성화론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늘 신앙이란 금욕적인 삶이라 생각했고 자기부인을 인간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라 믿었다. 그때 패커 목사님의 간증을 읽었는데, 그는 옥스퍼드에서 기독교 서클을 다니면서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경험했지만 성화와 거룩에 대해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았고, 오직 믿음으로 평안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영적 진보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때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준 책을 만났는데 그것은 존 라일의 ‘거룩’과 존 오웬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이었다고 말했다.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패커의 안내는 한줄기 빛이었다. 곧바로 존 라일의 ‘거룩’을 읽고, 거룩은 금욕이 아니며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자동적으로 변화 되는 것도 아니라 은혜와 감사의 반응으로서의 순종과 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패커의 ‘거룩의 재발견’을 통해 거룩에 대한 개념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그는 성화를 추구하는 거룩한 삶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이미 주셨고 지금도 주시며 앞으로 주실 것처럼, 당신도 그분을 위해 전부를 바치라는 뜻이다. 이 철저한 헌신이 그분에 대한 당신의 감사와 애정을 표현하여 결국 그분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완전한 헌신이야말로 당신이 그분께 드리는,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고 가능케 하시는, 진정한 예배의 본질이다.” (거룩의 재발견, 119)


두 번째, 기도에 대한 가르침


제임스 패커와 캐롤린 나이스트롬의 공저인 ‘기도’에서 패커는 기도를 ‘의무를 넘어 기쁨으로 나아 가는 길’ (Finding our way through Duty to Delight) 이라 정의한다. 당시 청년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내가 기도하는 것과 또 사람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일에 어려움이 많은 시기였다. 나의 기도 생활도 풍성하지 못했고 또 청년들도 바쁜 시대를 살면서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먼저 기도라는 행위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에서 ‘의무’(duty)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기쁨’(delight)으로 변화된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를 알려주었다. 일단 기도를 시작하면 쉽게 식어버리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기도할 때 제멋대로 몽상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무력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며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나를 알게 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기도의 시작은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런 단계를 통해서 결국 기쁨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나의 기도생활에서 늘 넘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었고, 사람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도 좋은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초점을 잃어버린다. 멍해져서 생각도 없는 말을 늘어 놓으며 더듬거리고 마침내 침묵에 빠져버린다. 그 침묵을 이용해 기도하려고 하면 제멋대로 몽상에 빠져버린다 … 우리의 말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 우리 모두 지극히 잘 아는 이런 어리둥절함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우리의 영적 체계 안에 있는 반(反)하나님적 혐오감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모든 교제를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 좋은 기도는 의무이자 기쁨이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기도가 주로 의무인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기도를 알고 실천하는 일에서 자라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을 성화시키실 것이며 그 결과 기쁨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기도, 13)


세 번째, 하나님과 교리에 대한 중요성


패커의 저서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이 있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일 것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 (Knowing about God)과 하나님을 아는 것 (Knowing God)의 차이점을 구별하면서, 오늘날 현대 교회가 무력해진 이유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하나님의 도(way)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대한 무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 지성이 현대의 풍조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하나님 그분 자체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게 해준다.  찰스 스펄전이 “당신 자신의 슬픔을 잊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바다에 빠뜨려 보라, 그분의 무한하심 속에 빠져보라, 그러면 당신은 휴식의 침상에서 원기를 되찾고 다시 힘이 넘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라고 선포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기력하던 나의 신앙에 뿌리부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공급해 주었다.


특히 ‘심판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노’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늘 불편하게 생각하고 설교할 때도 그런 본문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내가 지옥에 가서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이다. 그렇다면 구약에 나오는 모든 심판들은 하나님이 너무 과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은 죽어서 지옥불에 들어가야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현대의 사조에 물들어서 성경의 표준이 아닌 세상의 합리성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있음을 결국 깨달았다.


“만일 우리가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신 구원자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그 일에 침묵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단지 세상과 자신의 문제로부터 해결해주시는 분으로 제시하는 것이므로 그분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거짓 증인이 되는 것이며 또한 가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된다.”(Puritan papers 1, kindle 3658 location)


패커는 ‘복음에 뿌리를 내려라’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 교리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고 또 ‘근본주의와 성경의 권위’는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하면서도 예의를 갖추어 토론하는 것과 인간의 이성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또 그의 ‘청교도 사상’을 읽으면서는 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옛길’을 ‘선한 길’이라고 말씀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패커는 청교도의 깊은 우물로 나를 인도하는 두레박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패커는 다양한 저서들을 통해 희미해진 우리의 신앙에 회초리를 드는 것 같이 정신이 들게 하고, 회개로 이끌며 결국 하나님 그분의 존전 앞에 무릎을 꿇게 한다. 앞으로 이렇게 기독교 교리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신앙적인 기초를 놓아주는 신학자가 또 나올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참된 복음의 길로 인도해주신 패커를 추모하며 앞으로 패커와 같은 귀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