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목회

리더십 전문가가 좋은 목사가 되는 건 아니다
by Chase Replogle2020-09-09

나도 목사가 하는 사역은 지루하고 주변적인 일, 그러니까 나의 잠재력과 애초 계획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처럼 틀린 것도 없었다

I imagined pastoral work would be pedestrian and marginal—a sacrifice of my potential and plans. Nothing could have been further from the truth.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목사’라는 타이틀을 좋아한 적이 없다. 원래 나의 계획은 법률 쪽 일을 하다가 정치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일찍부터 리더십에 매료되었고, 그동안 진로와 관련된 모든 테스트의 결과들은 내가 리더십을 행사하는 분야에 꽤 소질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고등학교 3학년 교회 수련회에서 나는 목사가 되라는 강한 부르심을 받았다.


고등학교 토론 클럽 교사에게 더 이상 대학교에서 주는 토론대회 우수 장학금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중서부에 있는 작은 신학교에 갈 거라고 말했을 때, 교사 중 한 사람은 내게 이렇게 호소했다. “왜 하나님이 네게 준 소질을 갖다버리려는 거니?” 그 말을 했던 교사처럼 나도 목사가 되는 길은 지루하고 아웃사이더 같은 일, 그러니까 나의 잠재력과 애초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리더십에 두는 희망


21세기 후반은 기독교 사역 전반에 걸쳐 리더십 테크닉과 그 잠재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요즘은 ‘담임 목사’(senior)라는 타이틀 대신 좀 더 리더십과 연관이 있는 ‘리더 목사’(lead pastor)라는 호칭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목사는 서재 대신 ‘사무실’ 또는 ‘회의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신학교는 ‘목회 신학’(pastoral theology)이라는 학위를 ‘교회 리더십’(church leadership) 학위로 이름을 바꾸었다. 리더십과 관련한 전문용어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리더십 컨퍼런스, 리더십 도서, 리더십 팟캐스트, 리더십 잡지, 그리고 리더십 개발 과정 등등 … 우리는 리더십이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리더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더 좋은 목사가 되고 또 더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순수한 열망 때문이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목사라는 일은 힘들고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한 일들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나은 리더가 되는 방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목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라면 어느 목사가 리더십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 교회 사역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다이어리 맨 뒷장에 이렇게 썼다. “리더십 교훈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거기에 리더십과 관련한 소소한 지혜를 적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적어놓은 이 내용들이 담임 목사가 되어 교회를 이끌게 될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실패하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리더는 독서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리더는 만들어지지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리더십에 따라서 번성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런 나의 열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교훈들이 내가 이전에 꿈꾸던 리더로 나를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말하는 대로 현실에서 적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리더십에 대한 나의 욕망이 영혼을 돌보겠다는 바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목사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깊은 고민도 없이 목사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 이것이야 말로 리더십에 집착한 목사가 치르는 대가가 아닐까?


결국 리더십에 대한 나의 낭만적인 관심이 사실은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내 속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감을 감춰주던 싸구려 금박 포장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더가 되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사실은 평범한 일개 목사로 끝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의 표출은 아니었을까?


물론 목사라면 누구나 다 리더로서의 책임을 가진다. 나는 지금 리더십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사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피할 수 없고 또 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더 좋은 리더가 된다고 더 좋은 목사가 되는 건 아니다. 목회 사역은 결코 리더십 개발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영향력과 테크닉을 발휘하는 것 이상을 위해 부름 받았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단지 교인들의 리더가 되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사가 되라고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 이 차이를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새로운 방식으로 ‘목사’ 이해하기


언제부터인가 나는 리더십과 관련한 그 어떤 책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것을 거창하게 엄청난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 있어서 “목사”라는 타이틀의 의미를 좀 더 제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결심했던 중요한 순간이었다.


교회를 개척한 첫 해 어느 날, 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멕시코 식당에 있었다. 처음 본 번호로 전화가 울렸고 나는 식당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전화한 사람은 교인이었지만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내게 전화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지금 막 병원으로부터 자기 동생에 대한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는 말을 그가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동안 준비했던 리더십 교훈 중에서 이 상황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단지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아픔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게 긴 대화도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계속 상황을 알려달라고 말했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화를 끊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그 순간 그가 나를 부른 “목사님”이라는 호칭은 내 타이틀도 아니었고 또 교회 내에서 내 직책도 아니었다. 그건 내 소명에 대한 확인이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신 이유였다. 멕시코 식당이 제공해주는 아주 맛깔난 음식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시간을 들여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그 사람과 함께 하라고 나를 ‘목사’로 부르신 것이었다. 나는 이제 목사가 되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자주 자주 느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사실 그날 그 순간까지 목사가 되었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낀 적이 없었다. 그날의 경험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목회 정체성(pastoral identity)과 복음의 능력


목회적 리더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독특한 목회 정체성을 세워온 역사가 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사의 소명을 단지 그때그때 완수해야 하는 과제(task)가 아니라 무의식의 단계까지 포함한 삶 전체를 관통하는 소명(habitus)으로 이해하고 있는 목사들과 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목회적 기질 또는 습관을 개인적으로 훈련받아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1세기에는 리더십이 가진 잠재력이라는 면에서 좋은 롤 모델이 있었다. 위대한 왕 헤롯은 조직을 이끌고 건물을 짓는 면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한 혁명을 일으킨 마카비 가문도 리더십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 게다가 정치적 권력이라는 면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수많은 로마 황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런 리더십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이 소유한 독특한 리더십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리더를 따랐고, 그랬기에 그들은 스스로 양들을 이끌도록 부름 받은 겸손한 목자로 인식했다. 그들 중에서 초대 교회를 이끄는 직업적인 성취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까? 기도를 인도하고 설교하고 또 양들을 위로하는 목사로서의 이미지가 중요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목회적 소명이 주는 특별함은 결코 조직의 리더라는 값싼 이미지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여 그렇게 된다고 할 때, 우리의 경력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다름 아니라 복음의 능력,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능력을 잃을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애초에 부름 받은 고유한 소명을 재발견하고 그 소명을 더 신실하게 붙잡아야 한다.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그러나 결코 좋은 목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훌륭한 리더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Leadership Savvy Doesn’t Make a Pastor

번역: 무제

목사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깊은 고민도 없이 목사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 이거야 말로 리더십에 집착한 목사가 치르는 대가가 아닐까?

This is the great cost of our leadership obsession: we’re too often left with an anemic interest in what it means to be a pastor.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Chase Replogle

체이스 레플로글 목사는 미국 미주리 주에 있는 Bent Oak Church의 개척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