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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에게서 예수님을 보는 여섯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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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onathan J. Routley /  작성일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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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원수의 목을 밟았던 것처럼(수 10:24), 미래에 그리스도께서도 재림하셔서 모든 통치와 권위를 그의 발 아래 두실 것이다(고전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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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서사적 기록이 담긴 여호수아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경이다. 놀라운 기적이 많이 담긴 이 성경은 강력하고, 그렇기에 읽는 이의 머리에 오래 남는다. 요단 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며 해와 달이 멈추는 기적이 담겨있다. 여호수아는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하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경건한 방식을 잘 보여주는 위대한 신앙 선배이다.


여호수아서의 역사적 서사 안에는 여호수아의 탁월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들여다보도록 암시하는 몇 가지 측면이 들어있다. 여기  여섯 가지를 소개한다. 


1. 주님의 율법에 순종한 지도자


여호수아서 전체에 걸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온전히 따르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며 그것을 묵상하고 그 율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신다(수 1:6-8). 그는 주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경우에 군사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이보다 더 위대한 방식으로, 예수님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셨고,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기를 기뻐하셨다.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전부였으며, 그의 목적이자 또한 사명이었다. 인간에 불과한 여호수아가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다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은 얼마나 탁월하게 율법을 잘 지키셨겠는가?


2. 죄인을 구하는 구속자(Deliverer)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전투에서 라합에게 지켜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잊거나 무시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라합이 구한 정탐꾼으로 말마암아 그녀를 구하게 함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수 6:22-23). 라합의 난잡한 삶은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그가 그녀와 그녀 집안 전체를 “구하는 것” 데에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수 6:25).


여리고성과 아이성의 멸망 후, 이스라엘을 속였던 기브온의 변덕스러운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구원을 부르짖었다(수 10:6). 이스라엘 백성은 불과 얼마 전에 이웃 백성에게 속았던 경험이 있었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이중성을 이유로 기브온 백성의 처형을 원했다(수 9:18-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그가 했던 약속에 충실했고 남부 가나안의 왕들의 연합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했다. 라합과 기브온 백성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다 여호수아에 의해 구출되었다.


예수님은 또한 은혜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도 구원을 베푸신다. 바울은 로마서 5장 6-8절에서 그리스도의 자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삶과 행동이 구원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조차 구원을 가져다주신다. 


3. 적을 정복한 전사


여호수아는 종종 가나안 군대를 멸망시킨 전사 또는 정복자로 기억된다. 아이성 전투에서 그는 성을 불태우고 그 왕을 처형하는 공적을 세웠다 (수 8:28-29). 그는 남부 가나안 연합군 왕들을 처형했고(수 10:26), 북쪽에서는 하솔성을 불태웠다(수 11:11). 여호수아의 평생에 걸쳐서 감히 그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수 1:5)은 그의 정복 기간 내내 진리였음이 증명되었다. 


예수님 또한 신약성경에서 특별히 영적인 영역과 관련하여 종종 승리하는 전사로 묘사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천사 세계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골 2:15).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죽음을 물리치셨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그리고 여호수아가 원수의 목을 밟았던 것처럼(수 10:24), 미래에 그리스도께서도 재림하셔서 모든 통치와 권위를 그의 발 아래 두실 것이다(고전 15:25).


4.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


여호수아는 정복 과정에서 여러 번 이스라엘의 선지자 역할을 한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말함으로 백성들에게 신성한 계시를 전달한다(참조, 수 3:7-8, 9-13). 그는 여러 세기 후에 벧엘의 히엘에게 제정되어(왕상 16:34) 여리고 성을 재건할 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저주를 약속한다(수 6:26). 가장 극적인 장면은 여호수아가 해와 달이 하늘에 머물도록 명령하고, 그 시점에 맞춰서 이스라엘 백성은 적들을 추격할 때이다(수 10:12-14).


예수님은 놀라울 정도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역할을 감당하신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유대 민족에게 말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으로서, 즉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본성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자로서도 말씀하신다(요 1:18). 예수님의 사역 곳곳에는 예언적 예언이 뿌려져 있다(요 2:19; 마 20:18-19; 24:2). 그가 바다를 잔잔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여호수아가 원형인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전통 안에 예수님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5. 그의 백성과 함께 유업을 나누는 승리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분할한 것은 정복 이야기의 종말론적 후속편으로 비췰 수도 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런 결말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한참 전부터 그들이 추구했던 행복한 결과이다. 4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창 15:18, 17:8). 그리고 승리를 거둔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각각의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에 제사장 엘르아살 옆에 섰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기업이 실현되었다(참조, 수 21:43-45).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신 후에 자기 백성에게 큰 기업을 주신다. 그 기업의 일부가 이미 신자에게 제공되었다. 죄의 용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화해,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됨, 그리고 내주하는 성령이라는 기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언약적 약속의 상속자가 되었다(갈 3:29).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실 때에 이르러서 완전한 형태로 계시될 상속에는 종말론적인 측면도 들어있다.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에게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주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러운 새 창조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는 영원한 고향을 우리에게 약속하신다(요 14:1-2; 계 21-22).


6. 주님의 뜻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종


여호수아서의 핵심 질문은 모세의 후계자가 과연 모세의 명성과 유산에 부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여호수아에게는 실패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의 생애를 놓고 내리는 최종 분석의 결과는 그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수 24:29).


여호수아의 비문에 그의 승리나 성공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비문이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하나, 그가 주님의 충성스런 종이었다는 사실 뿐이다. 바로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종으로 오셨다(막 10:45).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온전히 살아가신 하나님의 종이다. 


 


원제: 6 Ways We See Jesus in Joshua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여호수아의 비문이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하나, 그가 주님의 충성스런 종이었다는 사실 뿐이다. 바로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종으로 오셨다(막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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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athan J. Routley

조나단 라우틀리(ThM, Western Seminary)는  Columb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 박사 과정 중에 있으며, 아이오와 주의 더뷰크에 있는 Emmaus Bible College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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