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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위선자들과 맞서되 단절하지 말라
by Will Anderson2021-11-05

죄가 누군가의 목회를 무력화시킬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무효화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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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는 실족한 목회자들의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 유튜브, 팟캐스트 및 온라인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고 대중에게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촉망받던 지도자일수록 그를 향한 더 큰 분노의 외침이 들린다. 죄악이 심각할수록 청중은 더 늘어나게 마련이다.


종교의 탈을 쓴 거짓 목회자에 관해 알리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것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나쁜 리더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며, 섬김이 아닌 명성을 지향하는 데에 뿌리를 둔 잘못된 리더십 모델에 경고를 한다. 하지만 치욕스러운 위선을 드러내는 것이 정의를 향해 접근하는 확실한 단계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 중요한 첫 단계에 불과하다.


위선은 마주치는 영혼을 상하게 하며 방향을 잃은 성도에게 배신이란 자갈밭에서 비틀거리도록 만드는 방해물이다. 가짜 목자들은 양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만든다. 이에 실망한 어떤 이들은 기독교와 결별하겠다면서 회심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신들만의 방법을 고민한다. 교회 밖이 아닌 내부에서 치유를 찾기로 하고 머무는 사람들에게도 분노, 불신, 그리고 자기 의심은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다. ‘어떻게 목사를 다시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지침은 정의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을 탈진하게 한다. 영적 학대자들을 고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응급 구조요원도 되어야 한다. 상처 입은 형제자매들을 붕대로 싸매어주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맹렬히 꾸짖으시는 예수님을 기록한 마태복음 23장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이다.


몇 가지 중요한 방향으로 마태복음 23장은 세 가지 교훈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위선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법을 가르쳐 준다.


1. 지도자의 위선으로 우리의 복종을 무력화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지옥 자식”과 “맹인 된 인도자”라 부르시며 신랄하게 비판하시지만, 놀랍게도 그의 첫마디를 듣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은 따르라고 가르치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마 23:2-3).

예수님의 말씀은 반문화적이긴 하지만 분명하다. 모든 제자는 누가 가르치든 성경의 진리에 따라야 한다. 당혹스럽게도, 잘못된 목회자들이 종종 좋은 내용으로 가르칠 때도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짓 목회자에 관해 관심을 갖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랄한 비평은 나중에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목욕시킨 아기(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진리)를 목욕물(믿음을 궤멸시키는 위선)과 함께 버리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계신다. 죄가 누군가의 목회를 무력화시킬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무효화 되어서는 안 된다(사 55:9~11). 주석가 마이클 J. 윌킨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에 대한 모든 정확한 해석은 우리가 따라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좋은 말을 많이 했고, 그들의 교리는 다른 집단들보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 가까웠다. 예수님은 정의의 추구 자체를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는 정의로워지려는 노력 안에서 표출되는 특정한 태도나 관습만을 비판하신다.

영적인 권위가 사람들을 속일 때,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르친 모든 것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교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영적 권위에 대해 욕하며 순종에 대한 요구를 율법주의로 받아들이는 냉소주의자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압제자들에게는 엄격하여야 하지만 성경 말씀에 대하여는 온순하여지기를 원하신다. 진리를 포기하는 것은 악에 대항하여 싸울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는 늘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위선을 우리가 싫어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신다


마태복음 23장은 대부분의 성경(겔 34장 참조)의 내용에서 보여주듯 영적 지도자들이 그의 백성을 오도하고 학대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훼손하거나 자신의 신부를 괴롭히는 악행을 은폐하거나 최소화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동정심을 품지 않으신다. 그의 거룩한 진노는 그저 그런 모호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구체적이다. 


마태복음 23장 4절에서 3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비난, 즉 외식하는 자, 지옥 자식, 눈먼 인도자, 어리석은 맹인, 맹인, 탐욕과 방탕, 회칠한 무덤, 불법, 뱀, 독사라는 단어로 꾸짖으신다. 이는 과도한 비난이 아닌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해치려는 누군가를 꾸짖는 것처럼, 그 꾸짖음의 강렬함은 사랑을 나타낸다.


사랑은 또한 예수님의 진노의 구체성에서도 명료하게 보인다. 윌킨스가 이 구절에 대한 논평에서 언급했듯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고(4절),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며(5절), 자신들의 위치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하고(6~12절), 종교를 빙자하여 왜곡하며(15~22절),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며(23~34절), 전통을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25~28절)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 의로운 목소리를 억누른다(29~32절)는 예리한 지적을 통해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웃을 희생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자들이여,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그렇게 하라. 언젠가 정의가 찾아올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위선자들의 치유를 갈망하신다


그의 핏줄에 의로운 진노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마태복음 23장에 있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충격적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7절)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위선자들을 꾸짖으시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고쳐주려 하신다. 그들이 종종 그렇듯 그의 은혜를 거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신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예수님의 진노와 연민을 본받고 싶은 의향이 있는가? 모든 기독교인은 같은 변화를 경험한다: 하나님의 원수는 그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롬 5:10).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이 우리 안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뿌리내리는 것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위선자들과 단절하기


위선자들과 맞서는 예수님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우리 시대의 정신과 상충한다. 그분의 급진적인 모범을 따르기 위해서는 양극단의 경우는 피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극단은 비하에서 비롯된 분노인 오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위선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로운” 분노는 정의보다는 자존심에 의해 자극되어 빠르게 정의롭지 못한 분노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안다. 거룩한 분노는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는 절제를 수반한다. 그러한 절제는 취소문화(기존에 맺은 SNS 관계나 팔로우를 취소하는 것과 같은 단절)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위선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면서 우리의 분노는 무모하지 않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두 번째 극단은 잘못된 겸손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는 모두 위선자이기 때문에” 위선을 위선이라 부르길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판단을 회피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은 교회에 규율이 필요하다는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을 무시한다(마 18:15~19).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칭하면서도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거부한 것을 책망하기도 하였다(갈 2:11~21).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분노가 우리에게 무언가 교훈을 준다면,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위선에 대하여는 목청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때에 꾸짖기를 거부한다면(눅 17:3) 우리의 침묵은 겸손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내가 좋아하는 신학 교수 중 한 분은 마태복음 23장을 매년 읽자고 우리에게 권면했고, 나는 그와 함께 이를 실행하여 왔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리더십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는 어리석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원제: Confront Hypocrites, But Don’t Cancel Them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장명근 

위선자들과 맞서는 예수님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우리 시대의 정신과 상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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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Will Anderson

윌 앤더슨은 Talbot School of Theology에서 공부(MA)했고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에서 거주하며 교회 개척 멤버로 Southlands Church에 출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