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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목사-신학자가 필요하다
by Kevin DeYoung2021-12-17

내가 교회에 목사-신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는 신학적으로 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신학적 오류를 분별하며, 성도들이 바른 진리를 알고 전하도록 가르칠 수 있는 목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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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주의사항을 하나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목사-신학자(pastor-theologian)는 한 발은 학계에 담그고 또 한 발은 교회에 담그고 있는 절반의 학자, 절반의 목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뉴스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논평하는 목사-전문가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기고하고, 책을 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목사-작가도 아니다. 이들도 목사-신학자의 한 유형이 될 수는 있다. 이들도 귀하고 또 필요하다. 나 자신도 학자로, 전문가로,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목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글에서 목사-신학자라고 할 때에 내 머리 속에 있는 개념은 더 단순하고 더 성경적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내가 교회에 목사-신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는 신학적으로 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신학적 오류를 분별하며, 성도들이 바른 진리를 알고 전하도록 가르칠 수 있는 목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성경적 비전


이런 목회 비전은 개혁주의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몽상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목회자의 리더십이다. 우선 ‘목사’는 ‘목자’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목자는 용기 있는 열정과 부드러운 권위를 가지고 양들을 책임지는 이다. 목자의 일은 양들을 보호하고, 먹이고, 훈련하고,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인도하는 것이다(시 23:1-3, 요 10:1-15). 장로/감독에게 부여된 책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사나운 이리 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말씀이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행 20:17-31). 이것이 바로 목사-신학자가 해야 할 일이다. 바울처럼 2년 동안 날마다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칠 수 있고(행 19:9), 3년간 매일 밤 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으려면(행 20:31) 제대로 훈련 받은 깊이 있는 신학적 목사가 되어야 한다.


목회서신의 가르침도 이를 말하고 있다. 디모데와 디도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목회란 그저 따뜻한 공감과 도덕적 교훈을 제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목회의 목적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가르친다(딤전 1:5). 이 사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사랑은 헛된 말에 빠져서 진리를 떠나 믿음에서 파선하는 사람들을 경고하는 것이다(딤전 1:6, 19). 또한 이 사랑은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다(딤전 3:2). 이는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훈련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딤전 4:6). 그리고 성경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딤전 4:13). 또한 바른 교훈과 바른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진리를 고수하는 일이기도 하다(딤전 6:2-3). 목사-신학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지켜내는 이다(딤전 6:20). 


신학적 통찰


교회 안에서 목사-신학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만 기록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나무만 바라보지 않고, 좀 더 높은 관점에서 숲을 바라보면 목회 사역이 필연적으로 신학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당신을 계시하셨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계시를 이해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해가 부족한 사람에게도 은혜로 구원을 베푸신다. 그러나 수많은 신학 책들과 논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우리는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신학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려고 하는 학문이며, 목사는 성도를 그 방향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신약성경은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를 지키라고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진리가 있다. 거짓 가르침을 분별해야 한다. 바른 교훈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한다. 이 일은 신학교에 있는 교수들만의 사명이 아니다. 이 일은 사도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열정을 품으셨던 우리 모두의 일이다. 주님은 거짓 교사를 용납하지 않고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다(계 2:2, 6).


(3) 신약성경의 윤리적 가르침은 신학적 토대 위에 있다. 


많은 바울서신이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반부에는 교리를 가르치고, 후반부에서는 순종을 촉구하는 윤리가 제시된다. 둘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로마서 1-11장에 나타나 있는 방대한 신학적 교리는 로마서 12장에서 우리 삶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부르심으로 연결된다. 그렇다. 바른 교리가 바른 윤리로 연결된다. 바른 윤리가 없이는 바른 교리를 가질 수 없다. 제자도는 이러한 바른 교리에 달려 있다. 


(4) 신학적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더욱 온전하고 풍성한 기쁨을 누리게 한다. 


진리들은 단순하면서도 경이롭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으로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라고 찬양할 때에 우리 주님은 분명히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시고,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가 왜 이 진리를 믿어야 하는지 알면서 찬양하고 기도하면 주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만 알아도 이렇게 기쁜데,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취를 깨달을 때에는 얼마나 더 기쁨이 충만하겠는가? 또한 모든 것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영원하심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뻐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 앞에 경탄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더 기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신학적 가르침은, 우리의 머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을 키우고 더 나은 시각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라보며 그분이 하신 일을 맛보게 한다. 


결론


당신이 교회의 목사-신학자가 되는 비전을 품었다면, 나는 이렇게 권면하고자 한다. 목사-신학자가 되려고 학위를 받을 필요는 없다(물론, 이러한 전문 신학 훈련도 중요하다). 대중적 지식인이나 존경받는 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물론, 이런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그렇지만 실행하기는 말만큼 그리 쉽지 않다. 우리는 (독서를 통하여) 머리의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기도 가운데 성장하고, 기꺼이 나의 잘못을 고치고, 우리가 확신하는 것들에 대하여 용기를 가짐으로써) 가슴의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최선의 것을 위하여서 현상의 선에 안주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의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모든 교회가 이런 목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교회에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목사는 바로 이런 목사-신학자이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이런 목사가 되어야 한다. 




원제: Why We Need Pastor-Theologians in the Church

출처: www.9marks.org 

번역: 박광영

우리는 머리의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가슴의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시간의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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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Kevin DeYoung

케빈 드영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마태에 위치한 Christ Covenant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미국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University of Leicester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현재 샬롯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Just Do Something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