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by Sinclair Ferguson2021-12-23

이 찬송은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 두 절은 예수님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서는 우리의 삶을 그에게 드리라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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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채터턴 딕스(William Chatterton Dix, 1837-98)가 작사한 “이 아기 누구신가?”(What child Is This?)는 아마도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찬송의 하나일 것이다. 영국 전통 민요 “그린슬리브즈”(Greensleeves)에 맞춘 곡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찬송은 또한 우리를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핵심으로 이끈다. [이 찬송은 새찬송가 “저 아기 잠들었네”로 번안되어 있으나, 원 가사와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찬송은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 두 절은 예수님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서는 우리의 삶을 그에게 드리라고 권고한다(3절).


이 찬송이 던지는 질문은 근본적이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아기 누구신가?”) (2) 그는 무엇을 하기 위해 오셨는가? (“왜 그는 이토록 초라한 땅에 누워 계시는가?) 그의 정체성과 사명이 이 찬송의 성경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다. 


“이 아기 누구신가?”  


이 찬송을 시작하는 이 질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다양하게 전면에 등장한다. “죄를 용서하시는 그는 누구인가?”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그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까?”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까?”


딕스는 성경적인 대답을 하면서 두 가지 요소에 주목한다. 첫째, 이 아기는 “왕이신 그리스도”이시다(1절 5행).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예수님의 계보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핵심이 바로 ‘왕이신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그의 보좌에 앉으실 메시아로 오래 전에 약속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결코 끝이 없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다(3절 3행). 그래서 천사들은 “감미로운 찬송”으로 그의 탄생을 맞이했다(1절 3행).  


그런데 왜 딕스는 목자들이 그를 “지킨다”(1절 6행)는 시적 표현을 썼을까? 왜냐하면 딕스는 마태가 우리에게 거듭 말하듯이 또 다른 왕이 그가 왕이 되시는 것을 질투하여 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마 2:13).


둘째, 이 아기는 또한 “고요한 말씀” “육신이 되신 말씀”(2절 3행, 7행)이시다. 그는 ‘프로스 톤 데온’(pros ton theon, 요 1:1)이셨던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 헬라는 “하나님과 함께” 또는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의미다. 하나님과 대면하셨던 그가 우리와 대면하시는 육신이 되셨다. 참 하나님이신 오직 한 분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또한 육신이 되신 오직 한 분만이 우리를 대신하실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을 대면하신 분,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분 앞에 두려워 떨라고 하는 이 노래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2절 3행)


그런데 왜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까? 그 답은 딕스의 이 두 번째 질문에 있다. 


“왜 이토록 초라한 땅에 누워 계시는가?” 


2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 신비에 대한 설명을 더 밀고 나간다. 1절에서 아기는 “마리아의 무릎”에 누워 계신다. 그런데 2절에서는 “소와 나귀를 먹이는 곳”에 누워 계신다(2절 2행). 그는 나무 구유에 누워 계신다. 마치 그가 나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고 “못과 창이 그를 꿰뚫게 되는” 날을, “그 십자가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지실”(2절 5-6행) 날을 예언하려는 듯이.      


이제 우리는 성탄의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의 핵심으로 이끌려 간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그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 “오 주여,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만나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영접해야 합니까?”(O LORD, how shall I meet thee, how welcome thee aright?)라는 가사를 [중세 시대 그리스도 수난곡] “슬픔과 수치의 무게로 상하신 거룩하신 머리”(O sacred head, now wounded, With grief and shame weighed down)의 멜로디에 넣어 음악으로 고백한 것을 딕스는 말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구간은 골고다를 향하고 있다. 오직 십자가에서만 구유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3절이 그리스를 우리 마음에 왕으로 모시라고, 왕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그분께 드리라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이 계절에 그분을 찬양하라고 강권하는 이유이다. 


이 성탄 찬송에는 (다른 많은 찬송가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중요한 누락 사항이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의 돌봄과 보호와 양육과 교육을 맡기신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다. 딕스가 살아온 환경을 생각하면, 이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딕스의 외과의사 아버지는 슬프게도 알코올중독자였고 가족을 버렸다. 이것이 어린 딕스에게 온전히 상처로 남았다. 이것으로 딕스가 목자들과 동방박사들과 마리아와는 이야기하면서 요셉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된다 하더라도, 이 찬송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3절 3행). 크리스마스의 그리스도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길을 잃고 희망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유일하게 합당하신 구주로 당신을 내어 주셨다. 이 구주를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그리스도 나셨으니(Joy, joy for Christ is born), 

이 아기, 마리아의 아들 나셨으니(The Babe, the Son of Mary).  



원제: The Word Made Flesh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서은성 

이 찬송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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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inclair Ferguson

싱클레어 퍼거슨 박사는 Ligonier의 작가이며,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객원 교수였고, 현재는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특임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롬비아에 위치한 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담임 목사로 섬겼다. '온전한 그리스도', '성숙의 길'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