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ARTICLES

우리 혀가 (그리고 손가락이) 불이 될 수 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Jon Bloom /  작성일 2022-01-12

본문

Photo by ROBIN WORRALL on Unsplash

그 때가 되면 우리가 내뱉은 말, 심지어 별 생각 없이 나온 말까지도 다 증인이 되어서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바리새인과 벌인 매우 긴박한 토론에서 예수님은 말의 중요성과 관련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4-37).

이 얼마나 불편한 생각인가? 그렇게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말하는 (그리고 자판으로 치는!) 말은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 때가 되면 우리가 내뱉은 말, 심지어 별 생각 없이 나온 말까지도 다 증인이 되어서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이다. 


말이 드러내는 것


예수님께서 우리가 우리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고 말씀하셨을 때(마 12:34),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조금 전 마귀의 압제에서 한 사람을 구하셨다. 그리고 이 기적을 목격한 군중은 예수님이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군중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 미리 준비한 대답을 했다.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마 12:24).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고발 속에 담긴 노골적인 위선을 폭로하면서 가장 엄한 책망을 쏟아내셨고, 더불어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의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경고하셨다(마 12:31-32). 그리고 예수님은 말이 드러내는 것과 관련해서 요점을 밝히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그들에게 그대로 돌려줌으로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 악의 세력, 곧 바로 그들의 마음에 있는 악을 폭로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중하고 의도적으로 할 말을 선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근거 없는 비난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심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여론을 동요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압제에서 해방하심으로 맺은 “좋은 열매”를 의도적으로 악이라고 불렀지만, 부정직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스스로가 맺은 “나쁜 열매”는 인식하지 못했다(마 12:33).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악한 일에 너무 눈이 멀어 스스로가 처한 영적 위험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성령님의 능력을 마귀라고 부르도록 만드는, 마귀의 영향력을 분별하지 못했다. 그들의 말은 단지 그들의 마음에 가득한 악에서 우러나왔을 뿐이었다. 


부주의한 말까지도


아마도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행여나 바리새인에게 번개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싶어 몇 걸음 물러섰을 것이다. 그러나 말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는 단지 바리새인만을 향한 게 아니라 모두를 다 포함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예수님을 고발했던 바리새인들의 말은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무익한 말(careless word, 부주의한 말)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보다 아주 신중하게 예수님을 비난할 말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신중하고 사려 깊은 말뿐 아니라 생각 없이 내뱉는 무익한 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을 당시 유대인뿐 아니라 우리도 알기를 원하셨다. 이런 점은 문제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만든다. 


“무익한”은 헬라어 ‘아르곤’(argon)을 잘 번역한 것이다. 무익한 말은 경솔하고, 나태하고, 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말일 수도 있다. 인내심을 잃었을 때 내뱉는 말 또는 평소 자주 생각하지 않던 문제에 관해서 아는 척하면서 하는 말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공개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우리가 평소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 화를 내며 거칠고 모욕적인 어투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에게서는 아주 드물지만, 부주의한 말이 인내, 친절, 존경, 평화, 그리고 겸손의 말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의 요점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우리를 변호하거나 아니면 공격하는 증인으로 소환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말은 무익한 말조차도 다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익한 말이 주는 교훈은 우리의 영적 경계심이 무너질 때 그런 말이 나오기 쉽다는 것이다. 


아픈 비유


최근 미국 내셔널 풋볼 리그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살펴보자. 돈 잘 버는 눈부신 경력을 자랑하던 존 그루던(Jon Gruden) 감독은 무익한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2021년 10월, 두 개의 유명 신문은 그루던이 라스베이거스 레이더스(Las Vegas Raiders)의 감독이 되기 전인 2010년과 2018년 사이에 쓴 수많은 이메일에 대한 폭로 기사를 게재했다. 그 메일에는 그루던이 분명히 (그러나 결국은 멍청하게도) 비공개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단어들이 들어 있었다. 한 뉴스 사이트가 요약한 바와 같이, 공개된 이메일에는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성차별적 모욕의 말과 더불어서 상체를 노출한 워싱턴 풋볼 팀 치어리더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10월 11일은 그루던에게는 여론이라는 법정에 서는 심판의 날이 되었으며, 한 스포츠 기자가 말했듯, 그루던은 “바보스럽고 부주의한” 단어를 쓴 자기 자신에 의해 철저하게 비난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레이더스의 감독직을 사임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잘 깨달을 수 있다.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3).

미국의 법 제도에서 기소를 당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은 법정에서 당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고 또 사용될 것이다”라는 경고를 받는다. 예수님도 같은 경고를 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고 또 사용될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말하고 사적인 방에서 속삭인 모든 것, 우리가 내뱉은 어리석고 부주의한 모든 말들이 우리에 대한 저주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조치는 법정에 가기 전에(마 5:25) “우리의 고소자와 최대한 빨리 합의를 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와 함께 기도하자.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3-4).

우리의 심판자가 의로우시기에,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혀와 손가락에 재갈를 물려라 


그러나 회개의 모습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은 또한 회개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말, 특히 부주의한 말에 관한 한 회개는 우리의 혀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특성상 그 재갈은 자판을 치는 손가락까지 포함한다. 


나는 재갈 또는 고삐라는 은유를 혀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세 가지 유용한 비유를 사용한 사도 야고보에게서 가져왔다. (1) 말의 고삐, (2) 배의 키, (3) 불꽃(약 3:1-6). 이것들은 혀와 손가락처럼 큰 힘을 가진 작은 물체이다. 처음 두 가지는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통제를 보여 준다. 작은 고삐는 강력한 말을 통제하고, 작은 키는 강력한 배를 조종한다. 그러나 세 번째는 통제 부족(부주의라고 하자)이 얼마나 큰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작은 불꽃 하나가 숲 전체를 태울 수 있다. 


요점은 분명하다. 통제되는 말은 유용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명나무”가 될 수 있고(잠 15:4), “듣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 수도 있다(엡 4:29). 그러나 통제되지 않고 어리석은 말은 우정, 가족, 교회, 그리고 직업까지 불태울 수 있다(약 3:9-10). 문제는 우리가 선을 추구하기 위해 말을 통제하려 어떤 고삐를 조이고 있는가이다. 


24시간 규칙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개인적 고삐 하나를 공유하겠다. 바로 24시간 규칙이다. 내 안의 화, 좌절감, 방어 심리를 일으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대답하기 전에 나는 적어도 하루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즉각적인 답을 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응답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거의 항상 24시간이 지나면 열정적으로 폭발할 것 같던 감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보다 더 신중하고 사랑스러운 말로 응답할 수 있게 된다. 그뿐 아니라, 나는 종종 처음보다 상대방의 관점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 규칙은 글로 생각을 표현할 때에도 매우 유용하지만,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이 고삐는 특히 남편과 아버지로서 사용될 때, 항상 더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우리 각자는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고삐를 찾아야 하며, 그 일은 남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하는 게 중요하다. 예수님을 위해 말(words)이라는 거친 말(horse)에 고삐를 씌우는 힘든 일을 기꺼이 하는 사람은 그런 노력을 통해 예수님을 향한 사랑(요 14:15)뿐 아니라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는 열망(마 22:39)까지 함께 드러낸다. 그리고 혀와 손가락에 고삐를 물리지 않는 자들은 심판 날에 그들이 내뱉은 말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느냐 않느냐는 우리 마음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준다. 



원제: Our Tongues (and Fingers) of Fire: What Words Reveal About Us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회개는 우리의 혀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특성상 그 재갈은 자판을 치는 손가락까지 포함한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CTCK
공동체 성경읽기
Bible Project
Bible Project
Bible Project
right now media
Mytwelve
CTS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