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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프로이트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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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선일 /  작성일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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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라스트 세션’의 매진 행렬을 보면서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모멘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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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C. S. 루이스와 관련된 영화와 연극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학로에서는 ‘라스트 세션’이라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3월 6일까지). 루이스의 회심 여정을 다룬 영화 ‘가장 반항적인 회심자’(The Most Reluctant Convert)를 1월말까지 인터넷으로 (유료로) 볼 수 있다. 또한 북촌나래홀에서는 연극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3월 말까지 공연된다. 


필자는 며칠 전 연극 ‘라스트 세션’을 관람했다. 줄곧 종교적인 대화를 담았음에도,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징어게임’의 배우 오영수씨가 출연해서 화제가 된 연극이다. 10년 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작인 이 연극의 원제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Freud’s Last Session)이다. 무신론자이면서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프로이트가 1939년 9월의 어느 날 죽음을 20일 앞두고 유신론자인 C. S. 루이스를 불러 격정의 대화를 나눈다는 가상의 무대를 설정한 것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살긴 했지만, 실제로 만났다거나 연극에서처럼 심오한 대화를 나눴다는 근거는 없다. 극작가 세인트 저메인의 흥미로운 상상일 뿐이다. 

  

작가가 희곡을 작성하는 데 모태가 되는 작품이 있다. 그것은 하버드 대학교의 정신의학자인 아멘드 니콜라이(Armand Nicholi)가 쓴 ‘루이스 vs. 프로이트’라는 책이다. 니콜라이 박사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하나님에 관한 질문’(The Question of God)이라는 과목으로 30년 동안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루이스 vs. 프로이트’는 두 사람의 생애와 학문적 주제와 관심, 그리고 그들의 이론과 삶의 경험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설명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어릴 때 상처를 안고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과 유물론에 빠지게 된다. 인간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프로이트는 종교를 나약한 인간의 의존으로 간주하는 무신론적 유물론을 평생 견지한 반면, 루이스는 31세의 젊은 학자였을 때 유신론으로 전향하게 된다. 니콜라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고 기독교 변증의 의도를 갖고 강의와 집필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전체 논조는 루이스의 주장과 그의 회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연극은 ‘루이스 vs. 프로이트’의 주요 내용들을 축약해서 담고 있지만, 원작자인 니콜라이의 변증적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고 두 인물의 논쟁을 동일하게 반영하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한다. 연극의 시작과 결론이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두 인물의 대화도 프로이트가 말년을 보낸 그의 런던 자택에서 이루어진다. 연극 내내 출연 배역은 프로이트와 루이스 외에는 아무도 없으며, 연극 무대도 시종일관 프로이트의 집이다. 연극 제목 또한 프로이트의 마지막 상담 세션을 의미하는 것을 보아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연극은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의도로 알려진 것 같지 않다. 골든글로브 수상자인 오영수가 출연한다는 것 외에도 신구, 이상윤, 전박찬 등의 호화캐스팅으로 관심을 얻고 있다. 연극은 화려한 볼거리나 재미있는 대사는 별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극단에서 사전에 조용한 대화로 진행되는 연극이니 소음을 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할 정도다. 그럼에도 공연은 거의 매진 행렬이다. 


실제 연극은 어떨까? 대부분의 대사들은 ‘루이스 vs. 프로이트’에 나오는 줄거리와 무대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예의 없는 스포일러일테니 자제하겠다. 연극에서 두 인물이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는 가상의 설정은 프로이트의 요청으로부터 비롯된다. 전쟁의 암운이 드리어지던 1939년 프로이트는 9월에 생을 마치기 전까지 런던에서 살았고 루이스는 옥스퍼드에서 교수로 지냈다. 연극에서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을 방문한 루이스는 자신이 당시에  낸 책 ‘순례자의 귀향’(The Pilgrim’s Regress)에서 불신자 프로이트를 패러디한 것을 따지고자 부른 줄로 알았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정작 루이스를 부른 이유는 루이스의 다른 책 ‘실락원 서문’(Preface to Paradise Lost)을 읽고 자신과 같은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변모하게 된 이유를 묻기 위해서였다. (이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실락원서문’은 1941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연극의 배경인 1939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이후 전개되는 두 사람의 불꽃 튀는 논쟁에서 루이스의 유명한 도덕률을 통한 신존재 증명, 욕망충족 논증, 완전한 신화이자 완전한 사실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이 열거된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변증을 그의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경험과 연관시켜 해석을 시도하거나, 인간의 나약한 종교적 의존성향을 지적하며 고통과 악을 방치하는 신에 대한 분노를 표하고, 종교가 세상을 결국 유치원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절규하기도 한다. 루이스는 시종 단호하면서도 단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프로이트의 다소 신경증적인 반응에 답을 하지만, 그 또한 사이렌이 울릴 때는 기겁을 하며 탁자 밑으로 숨어 버린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옆의 전우가 포탄에 갈기갈기 찢기는 광경을 목격해서 가끔씩 사이렌 소리가 나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원작에서는 무신론자 프로이트에 비해 유신론자로 회심한 루이스가 한결 자기 사상에 일관되고 건강한 삶을 영위했다고 하지만, 연극에서는 두 인물을 여전히 괴롭히는 신경증적 고통을 공히 드러낸다. 필자는 음악에 대한 프로이트의 태도가 흥미로웠다. 그는 나치가 일으킨 전쟁 상황을 설명하는 공영 라디오 방송을 시간에 맞춰 청취하려 하면서도, 영국 총리나 국왕의 연설 부분만 들으려고 할 뿐 중간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음악이 끝나고 연설이 나오면 자신에게 전화로 알려 달라고 할 정도다. 이는 프로이트가 특정한 음악이 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연관된 신경증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프로이트가 루이스와의 치열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논쟁을 거친 뒤 루이스를 배웅한 다음에는, 라디오의 음악을 틀어 놓으며 무언가 상념에 잠긴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연극은 끝이 난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신을 부인하며 우주에서 인간이 홀로 자신의 운명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가 젊은 기독교 유신론 학자와 가졌던 라스트 세션이 그의 생애에 대한 회한을 가져오게 한 단서일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추리일 뿐이다.     


이 연극의 매진 행렬을 보면서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모멘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특히 근래에 비종교인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앙을 중립 지대에서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필요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루이스에게 의존해서 기독교 변증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극에서 궁극적으로 보여 주는 점은 기독교 신앙의 증거를 놓고 벌어지는 팽팽한 대립이라기보다는 두 사상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살피며 걱정해 주는 태도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태도에서 신앙을 소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학문적으로는 라이벌이 되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기초를 정립한 거성이지만, 루이스는 자신이 대변했던 기독교 신학자가 아니라 중세 궁중 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이며 대중의 언어와 논리로 기독교를 제시하는 평신도 변증가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BBC 방송을 통해서 울려 퍼진 기독교 신앙과 선악에 대한 그의 설명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런던 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이 내용은 후일에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라는 20세기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 잡는다. 루이스와 프로이트가 만나서 대화한다는 연극의 상상에, 나의 아쉬운 상상을 덧붙인다. 만일 프로이트가 2년을 더 살아서 41년까지 살았다면, 그는 생전에 루이스의 기독교 변증을 실제로 들을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만일 루이스가 2년을 더 살아서 41년까지 살았다면, 그는 생전에 루이스의 기독교 변증을 실제로 들을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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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선일

김선일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쳐 풀러신학대학원(MDiv, PhD)에서 수학하고 2008년 9월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한인 최초의 캠퍼스 교목으로 일했으며,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섬겨왔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 ‘교회를 위한 전도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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