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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하나님은 사람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하신다
by David Briones2022-03-08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질적 은혜를 베푸는 모든 사람에게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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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란 무엇일까?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부요하심”이라고 정의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선물”이나 “과분한 호의”로 표현한다. 또 혹자는 은혜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향해서 가지신 선의의 성품으로 파악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신약에서 은혜라는 단어(그리스어 ‘카리스’)는 단순히 “선물”을 의미한다. 선물의 내용은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부요하심”이라는 정의는 에베소서 2:8이라는 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완벽하게 이해된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럼 고린도후서 12:9에 비춰서도 똑같은 정의를 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5:10은 또 어떤가?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와 후서의 이 구절 속 “은혜”에 대한 보다 적절한 정의는 “능력”인 것 같다. 첫째로 바울의 연약함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고, 둘째로 바울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은혜가 나타난다. 


우리가 은혜를 베푼다?  


그럼 고린도후서 8:3-4은 어떤가? “무조건적인 선물”, “과분한 호의” 또는 “선의의 성품”이라는 용어가 여기에서 통할까? 


내가 증언합니다. 그들[마케도니아 성도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은혜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구원이나 영적 능력과 같은 비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나 자원과 같은 물질적인 선물이다. 


이런 사실은 당신을 놀라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돈을 주는 행위를 “은혜”를 베푸는 행위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가?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후서 8-9장에서 한 번이 아니라 무려 여섯 번이나 분명하게 이렇게 말한다(8:4, 6, 7, 19; 9:8, 15). 바울이 주로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거둬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건네준 돈주머니는 참으로 이상하게도 “은혜”였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8-9장에서 발견하는 더욱 놀라운 점은 인간의 물질적 은혜가 하나님의 비물질적 은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은혜, 그리스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부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고후 8:1). 그런 다음 바울은 고린도후서 8:9에서 이 은혜의 정의를 확장한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가장 으뜸가는 은혜의 표현은 한 분(딛 2:11-14), 곧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승천하신 우리 구주라는 선물이다. 이 은혜의 선물이 성취한 모든 혜택을 받기 위해 우리는, 칼뱅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밖에 계시고 우리가 그와 분리되어 있는 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그가 고난을 받고 행하신 모든 것은 헛되고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기독교강요, 3.1.1).


고린도후서 8:9에서 우리는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라는 한 분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음을 발견한다. 그가 자신을 낮추신 것은 그의 가난함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리고 이 선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이것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고후 8:1)이다. 


나는 바울이 교회에서 구제 연보를 장려하면서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은혜를 기치로 내건 것은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신 은혜의 근본 표현이다.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질적 은혜를 베푸는 모든 사람에게 패러다임이 되어야 함을 교회에 가르치기 위해 바울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린도후서 8-9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구절이 나오는 유일한 두 경우는 바울이 하나님의 주시는 것(고후 8:1)과 사람이 주는 것(고후 9:14, “여러분[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을 말할 때이다. 이 둘 사이의 연결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데 연료가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은혜


고린도후서 9:7-8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잠언 22:8의 인용)라고 말한 후, 바울은 한 걸음 물러서서 기부의 근원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사람의 은혜]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11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베풂을 촉진한다. 


그런데 왜 이런 걸까? 사람의 베풂이 하나님이 주신 최초의 은혜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사실 때문이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롬 11:36). 바울이 교만한 고린도 교회에 던진 질문을 생각해 보자.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고전 4:7). 여기에 관한 유일하게 적절한 대답은 이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윗도 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으므로, 우리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님께 바쳤을 뿐입니다”(대상 29:14). 세례 요한은 다윗의 이 말을 확증한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 1:17). 이 말에 야고보도 동의한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약 1:17).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당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린도후서 9:8(“이는”(so that, 개역개정)으로 ‘목적’을 나타냄)과 9:11(“함은”(to be, 개역개정)으로 ‘목적’을 나타냄)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한다. 세상 사람들이 선물을 줄 때 나름 선물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경으로 선물을 줄 때에는 그 목적이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 


모든 감사의 근원이신 하나님


왜 그런가? 우리의 모든 소유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또한 은혜의 소유자이시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중간에서 전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도 공동소유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에 대한 당신의 고유한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런 사실은 고린도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한 선물을 놓고 누가 감사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볼 때 분명해진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후 9:11-15).


우리는 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걸까? 궁극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받기 때문이다.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최종 영광을 받을 자격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사람에게 절대 감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장 칼뱅의 제네바 교리문답 237번이 여기에 도움이 된다. 


문: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 때 우리는 굳이 감사하지 않아도 되는가? 


답: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통해 당신의 너그러움의 무궁무진한 샘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을 시냇물(또는 작은 시내)로 우리에게 보내심으로써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그들에 대한 의무를 지게 하시고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선물이 그들로부터 온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9:15을 끝맺은 것처럼 그들을 향한 감사를 지나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람의 사랑에 하나님의 사랑이


최근에 친한 친구가 내게 아주 큰 선물을 주었다. 나는 나와 내 가족, 특히 내 어머니를 향한 그의 깊은 사랑에 감동했다. 그는 과부들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내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단순한 사람의 사랑이 아니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 말은 내 친구가 하나님이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친구라는 통로를 통해 사랑을 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 친구를 통해 당신의 풍부한 사랑을 우리에게 전달하셔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은혜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목격하게 하셨다. 내 친구의 넉넉함은 실로 은혜로운 자기를 내어주는 행위였으며, 그의 사랑을 받은 즉시 나의 눈과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크신 사랑, 자신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향했다. 그러므로 그 친구를 향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그대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후 9:14). 



원제: God Loves Through Human Love: How Grace Breeds Generosity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우리는 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걸까? 궁극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받기 때문이다.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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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Briones

데이비드 브리오네스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학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는 ‘바울의 재정 정책: 사회신학적 접근’(Paul’s Financial Policy: A Socio-Theological Approach)이 있고 현재 빌레몬서 주석을 집필 중이다. 또한 ‘바울 읽기: 개혁주의 입문서’(Reading Paul: A Reformed Primer)을 공동 저술 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