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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회의 쇠퇴와 갱신: 복음주의의 쇠퇴(2-2)
by Tim Keller2022-04-22

일부 상충되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조차 복음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데에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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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교회의 쇠퇴 원인을 성찰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팀 켈러 목사의 4부작 중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주류 교회의 쇠퇴”이며, 앞으로 이어질 글은 “갱신의 길”과 “갱신을 위한 능력”입니다. 


[2-1] 

쇠퇴하는 신앙 

 왜 신앙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는가? 

 계몽 프로젝트의 실패 

[2-2]

쇠퇴하는 복음주의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2-3] 

 복음주의의 쇠퇴

 왜 쇠퇴는 역전될 수 있는가


쇠퇴하는 복음주의


지난 몇 년 동안 복음주의의 영향력에 엄청난 관심이 주어졌다. 그 이유의 하나는 현재 복음주의가 미국 종교계에서 가장 큰 단일 범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80퍼센트 이상의 백인 복음주의자가 2016년 도널드 트럼프와 새로운 우익 포퓰리즘 및 민족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이런 요인들이 복음주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주된 이유였다. 


일부 상충되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조차 복음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데에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9] 한편, 복음주의 안에는 여러 분파가 있다. 학자와 사회과학자가 복음주의의 실제 정의를 놓고 논쟁하는 것처럼, 주도권을 쥐기 위한 복음주의 내 싸움은 살벌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모든 것이 혼란을 야기한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실제로 복음주의는 지금 어떤 위기에 직면해 있는가? 그리고 복음주의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겉으로 보기만큼 쉽지 않다.


복음주의 신학


한편 데이비드 베빙턴(David Bebbington)이 열거한 복음주의 신학의 기준 (지금은 베빙턴 포 (Bebbington Four) 또는 베빙턴 사변형(Quadrilateral)이라고도 불림)을 충족하는 개인이나 그룹은 복음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다.[10] 복음주의의 네 가지 특징은 (1)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 최고의 규범으로서 성경이 가지는 완전한 권위, (2) 성령으로 거듭남의 필요성, (3)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 (4)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할 책임이다. 이 네 가지가 복음주의자를 주류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그리스도인과 구별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표지(marks)와 더불어, 복음주의자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고 사도신경 및 니케아 신경에 대한 믿음을 공유한다. 


복음주의 사회학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 또는 신학적 신념 외에도 모든 교파에는 사회학적 “위치”가 있기 마련이다. 즉, 복음주의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초 대각성 운동, 남북전쟁과 노예제도 논란, 주류 교단의 복음주의자 축출, 20세기 중반의 시민권 운동, 그리고 20세기 후반 기독교 우파의 부상 등, 지난 세기 동안 미국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특징 즉 문화적 태도와 관습이 생겨났는데, 이는 미국만이 가지는 독특함이다. 즉, 동일한 복음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사회적 맥락에 살고 있는 외국의 복음주의자가 전혀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11] 


따라서 복음주의를 논할 때에는 신학과 사회학이라는 “두 가지 주소”(addresses)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사항을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살펴본 네 가지 신학적 특징의 틀 내에서도 내가 복음주의의 여섯 가지 사회적 특징(social marks)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 강할 수도 있고 또는 더 약할 수도 있다(아래 내용 참조).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과거에 이러한 사회적 특징을 특히 더 강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었다. 여섯 가지 사회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도덕주의 대 너그러운 참여―행동 규범에 대한 엄격한 준수. 독선의 결과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일차적 가치로 바뀐 이차적 교리. 모든 것이 전적으로 선하거나 아니면 악하다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정죄하는 습관. 분리주의와 종파주의. 인내, 겸손, 희망, 또는 반대 의견을 관용으로 받아들일 능력 자체가 없음. 


• 개인주의 대 사회 개혁―우리 각자는 다 전적으로 개인 선택의 결과라는 믿음. 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도 또는 조직적 또는 제도적 악의 세력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게 없음. 


• 이원론 대 삶 전체에 대한 비전―문화와 성경적 믿음을 대립시킴. 적대적 인수를 추구하거나 아니면 일과 삶에서 기독교 신앙을 아예 차단함. 신앙이 세속적 영역에서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형성하고 그것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음. 


• 반지성주의 대 학문―전문가에 대한 불신, 교육에 반감을 갖는 역속물주의(reverse snobbism). 대부분 사람에게 “상식”으로 여겨지는 학문적 성취 또는 연구 결과에 대한 불신. 학문 자체에 대한 불신. 과학에 대한 회의론. 다른 관점에 대한 존중 거부. 성경 원문에서 저자가 의도한 의미와 그것을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을 무시. 성경 해석에서 얕은 “상식적” 접근으로 일관.


• 반제도주의 대 책임주의―전통적 제도에 대한 불신. 유명 목사 및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및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빠르게 성장하지만 책임감이 낮음. 권위주의로 흐를 경향이 큼.


• 토착화 대 문화적 반성―대중적이고 전통적인 미국 문화와 기독교를 결합한 형태. 두 가지 특징: (a) 젠더 과장-미국 문화를 “성역화”하는 근본주의 경향으로 인해 비성경적 젠더 고정 관념(특히 1950년대 젠더 고정 관념)에 빠져 있음, 예를 들어, 여성 모독 또는 학대 은폐로 이어지는 율법주의 경향. (b) 민족주의-미국 역사와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고 다민족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하나님과 미국”의 강조. (c) 인종차별-종종 노골적으로, 그게 아닌 경우에도 최소한 인종적 그리고 문화적 불감증에 함몰되어 있음.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역사적으로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에는 구별이 있었다. 조지 마즈던(George Marsden)은 여기에 관해 중요한 책을 저술했다. 1930-50년대, 칼 헨리(Carl Henry)와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 주도한 “신복음주의 운동”이 북부 백인 복음주의자에게 진지한 성경 연구, 더 깊은 지적 사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불러일으키려고 시도했다.[12] 그들은 역사적 정통 개신교 신앙에 충실하려고 애썼지만, 그러가 그 결과는 도리어 반지성주의, 미국 문화와의 결합, 분파주의, 종파주의, 율법주의와 2차 및 3차 교리에 대한 강조, 그리고 경건주의와 개인주의의 강조로 연결되었고, 결국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사회 개혁과 문화 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바로 이런 복음주의가 194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약 한 세대 동안 번성했다. 그 후에, 특히 1979년에 설립된 도덕 다수당(Moral Majority)의 등장과 함께 근본주의가 복귀하기 시작했다.[13] 


근본주의는 모든 보수적 개신교와 동일하지 않다. 신학적 표지에 있어서는 확실히 정통적이며, 비록 그 특징에서 더 보수적인 형식(예를 들어, 형벌 대속 및 믿음에 의한 법의학적 칭의)을 띈다고 해도 대체적으로 도덕주의, 반지성주의, 등의 사회적 특징이 결여된 교회와 신자들이 많다. 언론이나 대중의 의식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정확한 구분을 여기에서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개괄한 역사와 사회적 특성의 영향에서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많은 교회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등과 같은 역사적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이다. 또한 반계몽주의(obscurantism), 거친 수사, 개인주의, 율법주의, 그리고 근본주의의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복음주의 지도자의 지도를 받는 교회들도 있다. 


‘베빙턴 포’로 대표되는 신학적 특징에 대한 강조와 “근본주의자”라는 경멸적 단어 사용의 회피는 이제 근본주의자가 아닌 보수적 개신교도와 근본주의자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복음주의 또는 보수적 개신교를 정의하는 배타적인 방법으로 ‘베빙턴 포’를 강조할 때 중요한 차이점이 사라지고 숨어버린다. 크리스틴 코베스 뒤 메즈(Kristin Kobes Du Mez)는 미국 복음주의자가 사회학적 특징과 역사를 무시하고 단지 교리로 스스로 정의하기를 선호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 사실 그렇게 할 때 복음주의는 매우 거대해 보인다. 그런 복음주의는 “인종적으로도 다양하고 세계적인 운동으로 보인다.”[14]  


그러나 메즈의 지적에 따르면, 백인 미국 복음주의자가 아무리 자신들의 신학적 특징을 다른 그룹과 공유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사회학은 필연적으로 신학적 특징이 강조되고 표현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희생적인 봉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며 성경 속 군사적 은유를 강조할 것인가? 구속사의 모든 전환점―창조, 타락, 구속, 재림―을 과연 동등하게 파악하고 가르치는가?[15] 따라서 제대로 된 정의와 식별을 위해 단지 신학적 특징만을 독점해서 사용할 때, 보수적 개신교 내의 많은 중요한 차이점이 쉽게 가려지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라는 단어는 차이점을 가리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근본주의자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가장 흔한 사전적 정의이다. 제임스 패커는 이런 식의 정의가 어떻게 성경에 대한 역사적 복음주의의 접근을 미묘하게 제거할 수 있는지를 능숙하게 보여주었다.[16] 묵시적 예언 문헌과 관련해서조차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분별하려는 노력을 아예 무시하는 근본주의 사고방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문자 그대로 육체적으로 죽음에서 부활했음을 강조하는 복음서 저자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까지도 얼마든지 상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패커가 보여주는 방식은 복음주의자가 본문의 자연스러운 의미 즉 저자가 원래의 맥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는 모습이다. 우리는 본문에 문자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를 강제로 주입해서도 안 되며, 무엇보다 성경 저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근본주의를 “성서적 문자주의”로 정의하는 것은 주류 자유주의 그리스도인이 보수적인 개신교 모두를 다 근본주의자로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보수 개신교 내에서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근본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모두 다 허용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우파와 좌파는 모두 다 내가 지금 여기서 근본주의자와 보수 개신교인을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게 평범한 복음주의 신자와 “엘리트” 복음주의자를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물론 “진짜 엘리트”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을 견지하고 보수 교리를 추구하지만, 사회학적으로 볼 때에는 근본주의와 거리가 먼 블루칼라 교회를 목회했을 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많은 노동계급 교회를 봐왔다.


최근 팟캐스트 시리즈 “마즈힐의 흥망성쇠”는 주요한 복음주의 거대 교회의 붕괴를 추적했다. 온라인 논평에서 보수 청취자는 비판이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불평했고, 교회의 폭발로까지 이어진 결정적인 결점은 대부분 리더십의 실패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즈힐이 분명하게 드러낸, 교회 파괴의 주범인 권위주의를 야기한 근본주의의 사회적 특징을 무시한다. 


스펙트럼의 다른 쪽 끝에서, 마즈힐 사례 연구를 바라보는 진보주의자는 성경적 권위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이라는 신학적 특징을 가진 교회는 불가피하게 이단과 같은 단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는 종종 마즈힐을 해치는 사회적 특성이 신학보다 역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같은 신학을 가졌다고 해도 다른 나라의  복음주의자는 (심지어 미국 내 많은 사람들조차) 결코 동일한 사회적 특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사회 역사를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요약


진보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특성을 특정 신학에 뿌리를 둔 믿음이 가져다주는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로 본다. 따라서 진보주의자가 아닌 보수적인 개신교는 모두가 다 근본주의자이거나 앞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주의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특성을 특정 신학에 뿌리를 둔 믿음이 가져다주는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로 본다. 따라서 근본주의자가 아닌 보수 개신교인은 모두가 다 진보주의자이거나 앞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는 사회적 특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신학과 사회를 아예 병합하려고 한다. 어느 쪽이든, 근본주의가 아닌 이상 복음주의나 보수 개신교라는 개념 자체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이 중요한 구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우리 모두가 사용할, 완전히 새로운 용어를 제안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양한 범주를 설명하기 위해 ‘베빙턴 포’가 보수 개신교를 설명하고 있고, 그 안에는 스펙트럼 상 근본주의와 복음주의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근본주의자는 앞에서 이미 살펴본 여섯 가지 사회적 특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복음주의자 (그리고 그 용어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보수 개신교인)는 반대로 사회적 특성이 약하다. 나는 이 그룹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상태와 미래를 이해하려면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또한 복음주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특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전 세계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과 함께 사역해 왔으며, 우리가 서로를 가족으로 포용하고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신학적 특징이다. 그건 기본이다! 은혜와 회심의 경험, 그리스도 희생의 충분성에 대한 깨달음, 살아 있는 성경 말씀이 가진 능력에 대한 지식, 이 모든 것이 문화적이고 사회적 차이까지 넘어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그러나 일단 함께 사역하기 시작하면 사회 문화적 차이가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종종 그 차이가 사역까지 방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문화적 차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교회의 쇠퇴와 갱신: 복음주의의 쇠퇴(2-2): 왜 복음주의의 쇠퇴는 역전될 수 있는가로 이어집니다  



[주]

09. Ryan Burge에 의하면 교회에 가지도 않으면서 여론 조사에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점점 더 자신의 정치관을 기반으로 종교를 선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복음주의자의 수를 부풀리고 그 운동이 실제보다 더 회복력 있고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 Ryan Burge의 “Think US Evangelicals are dying out? Well, define evangelicalism…,” The Conversation, Jan 21, 2021.

10. D.W. Bebbington, 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 A History from the 1730s to 1980s, Routledge, 1989.

11. 각 시대에 대한 출처로 다음을 참조하라: Harry S. Stout, “What Made the Great Awakening Great?” in H.Carter and L.Porter. eds, Turning Points in the History of American Evangelicalism, Eerdmans, 2017; Nathan O. Hatch, The Democratization of American Christianity, Yale, 1989; Mark A. Noll, The Civil War as a Theological Crisis,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2006; Mark A. Noll, God and Race in American Politics, Princeton, 2008; Luke E. Harlow, “The Civil War and the Making of Conservative American Evangelicalism” in H.Carter and L.Porter. eds, Turning Points in the History of American Evangelicalism, Eerdmans, 2017; George Marsden, “The Rise of Fundamentalism” in H.Carter and L.Porter. eds Turning Points in the History of American Evangelicalism, Eerdmans, 2017; Lydia Bean, The Politics of Evangelical Identity: Local Churches and Partisan Divides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12. Carl FH Henry가 지은 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Eerdmans, 1947)을 참조하라. 헨리가 그의 책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역사가들은 “신복음주의”의 초기 지지자는 여전히 시민 운동(Civil Rights)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며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데 소극적이었음을 지적한다. 

13. 적지 않은 복음주의 비평가는 신복음주의의 창시자들(Henry, Ockenga, Graham)이 리더십을 행사하던 기간 중에 1980-90년대에 찾아온 근본주의 부활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말한다.

14. Kristen Kobes Du Mez, Jesus and John Wayne: How White Evangelicals Corrupted a Faith and Fractured a Nation (W.W.Norton, 2021, 5)

15. Kristen Kobes Du Mez, Jesus and John Wayne: How White Evangelicals Corrupted a Faith and Fractured a Nation, W.W.Norton, 2021, 5-7. 더불어 M. Noll, D.W.Bebbington, G.M.Marsden, Evangelicals: Who They Have Been. Are Now. And Could Be, Eerdmans, 2019, 123-187에 등장하는 베빙턴 정의에 관한 토론이 담긴 “Roundtable”을 참고하라. 

16. 근본주의에 대한 좋은 개요와 더불어 역사적 복음주의와의 구별은 Packer,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 IVP, 1958의 처음 두 장에서  다루어진다. 복음주의 비평가(및 지지자)에 대한 패커의 언급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지만, 여전히 그의 주장은 유효하고 오늘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특히 102ff를 참조하라.



원제: The Decline and Renewal of the American Church: Part 2-The Decline of Evangelicalism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은혜와 회심의 경험, 그리스도 희생의 충분성에 대한 깨달음, 살아 있는 성경 말씀이 가진 능력에 대한 지식, 이 모든 것이 문화적이고 사회적 차이까지 넘어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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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이이다. City to City의 회장과 The Gospel Coalition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