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by Leland Ryken2022-08-11

밀턴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범위는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까지의 전체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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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앞으로 함께 읽을 기독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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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구스티누스_고백록

• 조나단 에드워즈_신앙감정론

• C. S. 루이스_순전한 기독교

• J. C. 라일_거룩

• 존 오웬_죄 죽이기

• 존 밀턴_실낙원

• 아타나시우스_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 J. I. 패커_하나님을 아는 지식

• 리처드 십스_상한 갈대  

• 존 번연_천로역정

• 개혁된 목회자

(글 싣는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기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알려주는 작은 지표로, 1941년 프린스턴 대학의 한 영어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에서 특별히 목사를 대상으로 한 책을 출판했다. 나는 교사와 작가로서 살았던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책을 참고했으며, 심지어는 ‘은총의 수단으로서의 시(Poetry as a Means of Grace)’라는 그 책의 제목을 필요한 경우에 변형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첫 장에서 저자는 목사 (암시적으로 모든 교회 지도자와 문학에 관심 있는 평신도를 위해) 정말로 적절한 조언을 하나 한다. 그리스도인도 한 사람의 저자를 확실하게 ‘우리의 저자’로 지정하고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특정 저자를 파고들 듯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조언을 저자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하나의 걸작을 선택할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폭넓은 독서를 방해하는 건 아니다.)


바로 이 조언을 염두에 두고 내가 평생 친구로 지낼 후보로 추천하는 책은 다름 아닌 실낙원(Paradise Lost)이다. 실낙원에 관한 논문을 썼고, 실낙원을 200번이나 가르쳤으며, 밀턴에 관한 기사와 책을 저술했고, 또한 밀턴 컨퍼런스(Milton conferences)에서 연설까지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밀턴의 이 걸작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사랑이기도 하다. 


목사에서 시인으로


실낙원은 17세기 중반 존 밀턴(John Milton)이 쓴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밀턴은 여러 정황상 목사가 될 운명이었다. 목사의 길을 예상한 밀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남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장애물이 그가 의도하던 성직자의 소명을 무산시켰다.


신념에 따라 청교도가 된 밀턴은 영국국교회에서 목회 후보자로 환영받지 못했다. 밀턴 자신도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쫓겨난 교회”에 관해 말한 적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성공회를 지배하는 계층에 의해 교구 사역을 거부당했음을 의미한다. 


밀턴 학자들은 밀턴이 정확하게 언제 목사를 포기했는지를 놓고 꽤 오랫동안 토론해 왔으며, 그에 관한 가장 좋은 결론은 그가 결코 목회적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밀라 라레스(Jameela Lares)가 ‘밀턴과 설교 예술(Milton and Preaching Arts)’에서 효과적으로 주장했듯, 그는 단지 강대상에서 시로 장소를 변경했을 뿐이었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산문에서 밀턴은 그리스도인 시인의 소명을 “강대상 직분 바로 옆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까지는 강대상에서도 열매를 맺었다. 밀턴에 대한 많은 논평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제10장로교회에 가입한 어떤 사람의 간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나는 존 밀턴에 의해 주님께 인도되었습니다”라는 말로 간증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람의 회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도구가 바로 실락원이었다. 


진짜 삶보다 더 차원 높은


실낙원의 내용을 논의하기 전에 나는 C. S. 루이스가 그의 획기적인 책 실낙원 서문(A Preface to Paradise Lost)을 시작한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할 필요성을 느낀다. 필요한 출발점은 시가 속한 장르 파악이다. 그리고 그 장르는 서사시이다. 


서사시는 고대부터 17세기까지 가장 중요한 문학 장르로 여겨졌다. 당당하게 책의 위상을 가진 긴 시로서 서사시는 하나의 장엄한 활동이다. 서사시의 목적은 범위에 있었다. 문학 이론가 노스롭 프라이(Northop Frye)가 말한 대로, 서사시는 “만물의 이야기”였다(The Return of Eden, 3). 이와 유사하게, C. S. 루이스는 서사시는 한 시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바를 요약한다고 주장했다(English Literature in the Sixteenth Century(Excluding Drama), 339).


서사시는 하나의 이야기(사실상 그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를 말하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현대 독자가 익숙한 방식과 크게 다르다. 긴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서사시를 계승한 것은 소설이고, 소설을 특별히 새롭게 만든 점은 사실주의였다. 소설은 우리에게 일상에서 만나는 삶의 조각을 제공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사시는 초자연적인 인물과 사건과 장소를 이야기하는 신화이다. 따라서 서사시를 읽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그것이 사실주의에 기반한 게 아니라 신화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서사시 때문에 놀라는 또 다른 이유는 시라는 사실 때문이다. 보통 긴 허구의 이야기라면 산문으로 쓴다. 그러나 문학사의 측면에서 볼 때, 이는 18세기 중반에 들어서 책을 읽는 주된 대중으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생긴 최근의 변화이다. 서사시는 시와 이야기의 혼합체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 두 가지 측면에 다 동등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밀턴의 신학 이야기


서사적 범위를 유지하면서 밀턴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범위는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까지의 전체 역사이다. 첫 번째 주요 사건은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 그리고 사탄과 그 추종자들의 추방이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의 낙원 생활, 순결에서 타락, 타락한 인류 역사에 대한 조사, 타락이 초래한 파멸을 역전시키는 수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 그리고 종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매우 친숙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이게 다 성경이 말하는 우주 역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낙원을 처음 가르쳤을 때, 한 학생이 나에게 청교도인 토마스 보스턴(Thomas Boston)이 쓴 ‘사중 상태의 인간 본성’(Human Nature in Its Fourfold State)이라는 책을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보스턴의 책이 가진 연관성을 내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랬다. 인간 본성의 완전성과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하늘에서의 영광에 대하여 보스턴이 그리는 패러다임은 밀턴의 이야기를 구체화한다. 


실락원이 “교리적이고 국가에 모범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 밀턴의 말은 유명하다. 실낙원을 읽을 때 우리는 즐거움뿐 아니라 교화를 받는다. 밀턴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큰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중심성과 주권, 우주와 인간의 영역 모두에서 발생하는 선과 악 사이의 큰 갈등,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피조물의 운명, 인간이 하나님과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들, 죄의 본질상 불순종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삶의 가장 큰 의무로서 수행해야 할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 그리고 죄에 찌들어 타락한 상태에 빠진 인간에 대한 해독제로서 그리스도의 속죄. 


이것들은 큰 주제이지만,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의 삶을 묘사한 것처럼, 선한 삶의 본질과 같은 소소한 주제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와서 보라


실낙원을 깊이 탐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조언이 있다. 


실낙원은 문학 이론가들이 소위 백과사전 형식(상부 구조 내 개별 단위를 모아놓은 형태)이라고 부르는 것이므로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실낙원이 암시하는 풍부한 성경과 고전 신화의 내용 때문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그것들은 사실상 실락원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나의 의도는 실락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독자들이 실낙원과 깊은 만남을 갖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점은 실낙원은 아름다움과 공포가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밀턴의 서사시는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많은 신학적 아이디어를 다룬다. 그러나 문학적 동기는 말하기보다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추상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구체화하고 구현하려고 한다. 신학자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미지를 만들고 또 이미지를 사용하는 피조물이다. … 그리고 우리는 마음속 이미지에 의해 인도되고 만들어진다”(The Responsible Self, 151).


우리가 실낙원을 읽는 방법은 아이디어 모음집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배경과 사건이 있는 이야기로, 또 보고 즐길 수 있는 이미지와 상징과 은유로 구성된 시로 읽는 것이다. 밀턴은 그가 쓴 20권이 넘는 주석(조직 신학 포함)을 읽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그의 이 서사시를 읽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문학 작품에는 “부가 가치”로 따라오는 미적 요소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실락원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저명한 문학 이론가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가 받은 느낌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영국 문학의 주요 운동과 작가(셰익스피어 포함)에 관해 약 50권의 책을 쓴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최고의 찬사를 보낸 책은 다름 아닌 실낙원이다. 그는 실락원을 “영국 시가 이룬 가장 완벽한 성취,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도 가장 복잡하며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극찬했다(Romantic Image, 196). 


원제: Paradise Lost: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우리가 실낙원을 읽는 방법은 아이디어 모음집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배경과 사건이 있는 이야기로, 또 보고 즐길 수 있는 이미지와 상징과 은유로 구성된 시로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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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Leland Ryken

리랜드 라이큰은 Wheaton College에서 50여년 간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 지은 책으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in English)’과 ‘성경 속 문학 형태 완전 정복(A Complete Handbook of Literary Forms in the Bibl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