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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가정의 달에 ‘독신’을 설교하라
by 고상섭2022-05-13

결혼하지 않는 청년의 비율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은 어쩌면 아름다운 가정, 건강한 가정생활 이전에 건강한 독신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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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한다. 자연히 5월이면 ‘가정’이 설교의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5월만 되면, 또 그래서 ‘가정’ 설교를 들을 때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청년이 그들이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마저 생긴다고 그들은 고백한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청년의 비율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은 어쩌면 아름다운 가정, 건강한 가정생활 이전에 건강한 독신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이다. 성경이 독신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독신과 결혼에 대한 잘못된 문화 내러티브의 영향을 받게 될 위험성이 참으로 큰 시대이니 더욱 그러하다. 


독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삶의 형태이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기독교야 말로 독신을 삶의 형식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첫 번째 종교”라고 주장했다. 고대 종교와 문화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일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독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형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 어디에서도 독신이 기혼 성인보다 미숙하거나 완전히 영글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온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삶을 사셨고, 많은 신앙인의 모범이 되는 사도 바울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온전한 삶의 형태라면, 독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창 2:18)을 근거로 결혼의 절대성을 이야기하지만, 이 구절은 결혼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연합으로 존재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홀로 행복한 존재로 살 수 없다. 사랑의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담을 보시며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혼자서는 바른 신앙의 관계성을 가질 수 없다는 말씀이며, 영적 우정을 나누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그러나 독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과 오늘날 문화 내러티브 속에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독신을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독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결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결혼을 꿈꾸며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여부를 따지는 세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팀 켈러 목사는 “전통 사회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상으로는 삼는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그 자리를 개인의 독립성이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273쪽). 결혼을 절대시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결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독신이 결혼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독신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믿는다고, 이것이 곧 결혼을 거부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결혼의 때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 전까지의 삶을 외로움이나 시기심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건강한 독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충만한 은혜 가운데 보내야 한다. 


건강한 독신은 경건과 공동체를 통해 세워진다 


건강한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세워 가야 하는 중대사이다. 모든 삶의 문제를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인주의 영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성경은 교회 안에서 개인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 가르치고 있다.


건강한 독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이 건강한 독신을 위해서도 동일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신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외로움이다. 


사도 바울은 홀로 된 과부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으로 그 외로움을 해결하라고 권면한다. 


참 과부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이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립니다. 향락에 빠져서 사는 과부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디도데전서 5:5-6


사도 바울이 외로움을 향락과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외로움을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하면 결국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외로움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해결책을 두면 관계중독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다. 건강한 독신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자신의 영혼이 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독신으로 살면서 맞닥뜨리는 외로움의 문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향락이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흐를 수 있다. 


독신생활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두려움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다. 독신으로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면 삶은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경제적으로 홀로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 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이는, 예순 살이 덜 되어서는 안 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사람이라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9)  


과부로 명부에 올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지원할 사람의 명단을 만든다는 것이다. 과부는 미혼의 독신과는 다른 삶의 형태이지만, 경제적으로 홀로 되었다는 점은 동일하고 그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공동체가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건강한 결혼의 모델도 필요하지만 또한 건강한 독신의 모델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건강한 공동체라는 뿌리에서 열리는 열매들이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 없이는 건강한 결혼도 건강한 독신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한 독신생활은 공동체가 함께 정서적, 재정적 책임을 감당할 때 더 건강한 방식으로 세워질 것이다.


독신의 유익


사도 바울은 독신의 유익을 온전히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집중력에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고린도전서 7:32


건강한 독신은 결혼한 사람들과 달리 시간과 돈과 에너지에 여유가 있다. 이는 곧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섬길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아이들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든 젊은 부부가 있다면, 예배드릴 때나 소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할 때 아이를 건강한 독신자에게 맡겨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 일로 독신자는 건강한 결혼생활의 모델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준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독신자와 기혼자가 서로의 필요를 채우면서 더욱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독신의 시기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보내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집중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집중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할 때 독신의 시기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독신의 시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결혼의 때가 오면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결혼생활을 하면 된다. 독신과 결혼은 삶의 형태만 바뀐 것이지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독신의 시기는 온전히 소명에 집중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가 될 수도 있다. 


웨인 그루뎀은 그의 ‘기독교 윤리학’에서 독신을 주제로 다루면서 오늘날 결혼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한 자매의 질문을 소개한다.  


“결혼을 바라지만 결혼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미혼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자매가 처한 상황은 베드로가 말한 ‘여러 가지 시험’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윤리학, 3권 65쪽)


베드로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이 우리를 더욱 연단시켜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베드로전서 1:6


기독교 박해의 시대에는 순교를 각오해야 할 만큼 온갖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면, 오늘날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어려움의 상황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결혼이 우상이 된 사람은 믿음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나누지 못하는 상대와의 결혼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결혼이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 


웨인 그루뎀은 이런 고난을 마가복음 10:29에 나오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사람으로 비유하면서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 강조한다. 


분명히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가족을 이룰 특권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현세에 있어 백배나 받을 것을 약속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에서의 교제 및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에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기독교 윤리학, 3권 62쪽)


성경은 독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완전한 삶의 형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삶의 과정을 외로움이나 교만으로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세워 가는 건강한 결혼과 건강한 독신의 모델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 어려운 현실의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알고 믿음으로 그 길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충만히 채워 주실 것이다. 


건강한 가정의 모델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독신의 모델이 더욱 절실한 오늘이다. 

성경은 독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완전한 삶의 형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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