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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를 상황화하자
by Trevin Wax2022-06-09

켈러는 상황화의 중요성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우리의 자세, 접근 방식 및 관행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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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나는 (1) 문화 전쟁의 간략한 역사, (2) 예의와 신념을 갈라 놓는 경향, (3) 우리가 지금 “부정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심층 고찰, (4) 왜 이런 사실이 내게는 과거로부터 기인한 폭발처럼 느껴지는지, 그리고 (5) 부정적인 세계”라는 틀(framework)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렌즈의 변경, 이런 순서로 시작하는 신-종교 우파(neo-Religious Right)의 부상에 관한 시리즈를 시작했다. 


다음 칼럼에서 나는 어떻게 공적 생활에 유익하고 충실하게 참여하는지에 대해 좀 더 규범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논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팀 켈러 목사의 문화 접근 방식이다. 


제임스 우드의 팀 켈러 비판


제임스 우드(James Wood)가 쓴 “팀 켈러에 대한 내 관점은 어떻게 달라졌는가”(How I Evolved on Tim Keller)는 정치 참여와 관련하여 복음주의적 “제3의 길”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켈러에 관한 가장 건설적인 비판으로 유명하다. 우드는 이렇게 썼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욕을 덜 먹고 싶어 하는 복음주의적 열망은 현 정치적 순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우드는 지금 교회가 기존 기독교의 도덕적 비전을 전적으로 뒤집어 놓은 사회가 만들어낸 “부정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아론 렌(Aaron Renn)의 평가에 동의한다. 켈러의 전략은 [기독교에 대해] “중립적인” 사회에서는 그나마 효과가 있었지만 “부정적인” 세계에서는 효과가 없으며, 그가 추구하는 “제3의 길”은 종종 그를 실질적인 선택과 양보가 이루어져야 하는 싸움에 발을 담구고 손을 더럽히고 싶어 하지 않는, “싸움에서 한 발 떨어진”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드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세기 전환기에 이미 맨해튼은 기독교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았고, 한참 전부터 “부정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 여러 지역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몇 년에 걸쳐서, 맨해튼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지금 우리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켈리의 경고를 들어 왔다.)


우드는 후속 글 “이것은 팀 켈러에 관한 글이 아니다”(This Article Is Not About Tim Keller)에서 켈러에게 분명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이 글의 목적은 켈러의 사상 구조가 “제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전유된” 나머지, 부족주의를 피하려는 고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기독교 지도자가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도덕적 동등성을 암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비판하는 데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우리에게는 상당한 양의 기독교 현실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하고 싶다. 이를 본회퍼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더 잘 적응하고, 그 안에서 ‘책임 있는’ 행동이 어떤 모습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드의 두 번째 글을 뉴스레터 독자를 위한 Trevin's Seven의 링크 목록에 넣었다. 그건 그가 쓴 모든 내용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과 같은 문화적 상황에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판을 주로 하는 대화에조차 내가 관심이 많고 마음이 열려 있는 건, 팀 켈러의 영향이다. 나는 팀 켈러 때문에 비판에 열린 사람이 되었다. 


나는 우드의 칼럼이 다음 두 부류로부터 공정한 고려와 평가를 받기 바란다. (1) 팀 켈러를 문화에 대한 구식(심지어 ‘비현실적 진보주의자’(closet-progressive)라고까지 부르는!) 접근 방식의 대표자라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 그리고 (2) 팀 켈러를 신성시하고 비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켈러의 공적 신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증오와 두려움 또는 불의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정당화와 방어


첫째, 팀 켈러가 수십 년간 사역에서 내내 강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특히 오로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변화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로 인해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진리가 마음에 스며들 때, 우리는 더 이상 비판에 방어적이고 독선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내 성품과 관점에 남아 있는 결점을 다른 누군가가 드러내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속물근성에 빠질 때마다,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기를 기도한다. 만약에 정치적 계산이나 공적인 입장이 다를 수 있는 사람을 조롱하는 켈러의 제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켈러가 강조하는 은혜와 그 능력을 배반하는 것이다. 


사역 모델 검토


둘째, 모든 사역 모델은 결국 다음 세대 지도자에 의해 검토되고 변경되며 때로는 거부되기도 한다. 


켈러는 다양한 사역 모델에 대해 글을 썼고, 다양한 사역 철학에서 드러나는 과잉을 비판했다. 모든 사역 모델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으며, 이를 지적하는 데 켈러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비판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목회 모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와 문화에 대한 켈러의 접근 방식이 젊은 복음주의자의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켈러가 가장 경계하는 건, 한 가지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모든 것에서 통찰력을 얻으려는 시도 자체를 배제하는 태도이다. 어떤 문제에 관한 자신의 말이 “마지막 결론”이 되어 이 시대에 유일한 믿을 만한 접근방식으로 신성시되는 것을 켈러가 가장 경계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황화와 사역


셋째, 켈러는 상황화의 중요성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우리의 자세, 접근 방식 및 관행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이가 오해하는데, 상황화는 결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시대와 장소를 사는 사람들이 가진 삶에 대한 질문에 그들이 전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경의 대답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거부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형태로, 강력한 호소와 논증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팀 켈러와 변증론, 교리 교육의 필요성, 문화 변화 및 사역 대응과 같은 주제를 토론하는 그룹에 참여한 적이 있다. 토론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자신의 과거 설교가 오늘 토론 모임에서 하루 종일 다룬 내용에 관한 훌륭한 모델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다음 세대는 자신과 다른 사역을 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그렇다고 팀 켈러가 자신이 설교한 방식이 틀렸다고 유감을 표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의미한 바는 다음과 같다. 다음 세대에 필요한 것은 팀 켈러의 방법이나 접근 방식을 단순히 답습(model)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가 논의한 모든 방식으로 응답하는 설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흉내 내지 말고 상황화하라는 것이다!


세워야 할 시간


넷째, 우리보다 먼저 간 신실한 신앙 선배와 단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을 내다보고 나아간다면, 젊은 복음주의자는 교회를 잘 섬길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태도는 우리의 작업이 그들의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작업을 넘어서야 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문화적 상황(moment)에 맞지 않는 측면에는 수정까지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 담론이 신학자, 작가, 지도자, 목사 또는 정치인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좋은 쪽” 또는 “나쁜 쪽”이라는 범주에 집어넣는, 한마디로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접근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은 우리를 빈곤하게 만든다. 단지 최신 신학적 입장이나 정치적 제안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실하고, 성경에 뿌리를 둔, 게다가 신학적으로 유익한 목사나 신학자를 배제한다면, 우리는 지혜의 길을 거부하는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이미 구축한 명성을 허물고 그 위에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종종 온라인에서 반대자를 향해 “무지하다” 또는 “사악하다”라며 경멸하는 목사와 신학생을 보면서 큰 실망을 느낀다. 켈러는 이런 식의 조롱을 받는 쪽이었다. 하지만 켈러를 모델로 삼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켈러가 받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대우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식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접근 방식은 전도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 가로막는다.


교회의 사계


마지막으로, 팀 켈러의 글을 활용해서 우리는 교회가 속한 “계절”에 따라 가장 좋은 정치적 자세가 무엇인지에 관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다. 교회의 계절을 설명하는 켈러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 겨울: 과거 기독교가 없었던 문화와 교회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상태를 묘사한다. 교회가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다. 독특하고 활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공동체를 만나기 힘들다. 복음의 열매는 없다. 오늘날 많은 문화권에서 교회는 전쟁에 휘말리고 영적으로 취약하다. 


• 봄: 과거 기독교가 없었던 문화에서 교회가 곤경에 빠지고 심지어 핍박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성장하고 있는 상황(예: 중국 교회)이다.


• 여름: 니버(Niebuhr)가 “동맹 교회”(allied church)로 묘사한 상황이다. 교회는 대중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기독교 문화가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문화 생산의 중심지에서 활동한다. 


• 가을: 오늘날 서구 교회의 상황이다. 탈-기독교 문화에서 교회가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으며, 교회의 독특성을 강화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상황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 맺는다. 


“교회는 우리가 가진 확신과 가장 잘 맞는 모델 속에 거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확신에 필요한 ‘도구’는 우리의 은사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문화적 계절과 맥락에 따라 다른 도구까지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켈러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은사를 가장 잘 적용하고자 하는 다양한 교회와 개인을 향해 열려 있다.


비판에 열린 자세


팀 켈러에 대해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 중 하나는 그가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방식이다. 


팟캐스트 Mere Fidelity의 최근 에피소드에서 켈러는 기독교가 결코 이념적 범주에 쉽게 들어맞는 종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중도가 아니라 ‘극단의 결합작품’(patchwork of extremes)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 대한 “제3의 길”을 찾는 것은, 켈러의 잦은 경우처럼, 신학만큼이나 변덕스러운 모두와 평화하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된다. “내가 가끔은 좀 과하다”고 켈러는 스스로 인정했다.


하나님이 많은 사역 모델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자기 인식은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한 확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리고 사역의 열매는 말씀에 충실한 설교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향후 50년 팀 켈러의 방법과 모델 중 무엇이 살아남더라도, 그가 지향한 개방성과 호기심이라는 특성만은 점점 더 부각되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원제: Let’s Contextualize Tim Keller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켈러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은사를 가장 잘 적용하고자 하는 다양한 교회와 개인을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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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