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

J. I. 패커를 기리며

by J. I. Packer2022-07-24

무시무시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괴로워하는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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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이넬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6년 7월 22일 - 2020년 7월 17일) 


은혜란 무엇인가? 신약에서 은혜는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것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행동으로 베푸시는 사랑을 의미한다. 은혜란 자신을 구원하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움직이시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란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하늘 나라에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로 보내셔서 지옥에까지 내려가도록 하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신약은 은혜의 뜻과 은혜의 역사 둘 다에 대해 말한다. 은혜의 뜻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은혜의 역사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너희 안에서 [행하신] 착한 일”(빌 1:6)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교제로 부르시며(고전 1:9),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리시고(엡 2:1-6), 하나님의 영을 선물로 주사 당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치시며(엡 1:13-14), 당신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시며(고후 3:18), 마침내 영광중에 서 당신의 몸을 살리실 것이다(롬 8:30; 고전 15:47-54).


수년 전 개신교 학자들 사이에서는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와는 별개로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성경적 구분이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10을 보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라는 말은 분명 바울 안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그 사랑의 역사로 바울을 먼저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다음에는 사역자로 만드셨다.


은혜의 목적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리하여 이 회복된 관계의 기초를 놓으시는 것은, 이후로는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향해서 사랑과 신뢰와 기쁨과 소망과 순종을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만들며, 사실상 그러한 행동으로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서다. 우리 편에서 보았을 때 그러한 행동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더욱 깊어지는 지식 그리고 하나님과 계속 친밀해지는 교제야말로 모든 은혜의 역사가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그분께로 점점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 안에서 어떻게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시는가? 그분은 우리를 세상과 육신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막아 주시거나, 부담스럽고 좌절되는 환경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거나, 우리 자신의 기질과 심리로 인해 생겨나는 문젯거리들을 막아 주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이 모든 것에 노출되도록 하신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이러저러한 괴로움들과 당혹스러운 일로 채우시는 궁극적인 이유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꼭 붙잡는 법을 확실히 배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강력한 반석이시며, 견고한 방어물이시고, 확실한 피난처시며, 연약한 자들의 도움이시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데 그처럼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이유는,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연약하다는 것과, 옳은 길을 찾거나 따르기 위해 감히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시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거칠 것 없는 길을 따라가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돕겠다고 팔을 잡아 준다면, 우리는 성급하게 그 사람을 뿌리쳐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폭풍우가 점차 거세지고 힘은 다 빠져 가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거친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돕기 위해 팔을 잡아 준다면,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기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이 험하고 혼동스러울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 경건한 삶의 비결을 가르쳐 주는 전형적인 성경의 문구를 빌린다면 ‘여호와를 앙망하도록’ 하기 위해, 조처를 취하신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이 진리는 여러모로 적용된다. 가장 놀라운 적용 중 하나는 하나님이 사실상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 죄와 실수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실패와 실수라는 교육적 징계 수단을 매우 자주 사용하신다. 성경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경건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와, 그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을 연단하시는 것에 대해 다루는가!


아브라함은 아들을 약속받았으나, 그 아들을 갖기까지 기다려야 했고, 참지 못하여 섣불리 스스로 하나님의 섭리를 시행하려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말씀하시기까지 13년을 기다려야 했다(창 16:16-17:1). 모세는 권력을 휘두르고, 애굽인을 죽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사사로운 문제까지 해결하려 하면서, 주제넘게 나서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 애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고는 자부심과 허영심이 사라질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광야의 뒷전으로 추방당해 있었다. 다윗은 밧세바를 유혹하고, 우리아를 죽였으며, 자기 가족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인구 조사를 하는 등 연달아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 호된 연단을 받았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도망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점은 인간의 실수에 이어 하나님이 즉시 불쾌함을 보이신 것이 결코 이야기의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모세는 그의 자신감을 치유받았다(실로 그 이후 모세는 너무 심하게 바뀌어 그의 태도는 거의 죄에 가까웠다! 출애굽기 4:10-14을 보라). 다윗은 실수를 저지른 후에 회개했으며, 처음보다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으며, 살아난 뒤 니느웨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각한 어리석음에서도 선을 이끌어내실 수 있다. 하나님은 메뚜기가 먹어 버린 수년의 시절을 회복하실 수 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분명 이 사람들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실수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가르치셨다. 그런 실수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실패감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고 있는가? 무시무시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괴로워하는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종교에서 비현실성은 불행한 것이다. 비현실성은 저주다. 하나님에 대한 비현실성은 현대 기독교의 고질병이다. 우리 자신과 하나님 모두에 대해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아마도 존 뉴턴(John Newton)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찬송가는 우리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이 찬송가에서 뉴턴은 자신이 현실주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나는 주님께 구했네.

믿음과 사랑과 모든 은혜에서 자라게 해 달라고

주님의 구원을 더욱 알게 해 달라고

그리고 더욱 진지하게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해 달라고


나는 어떤 은총의 시간에

주님이 즉시 나의 요청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랐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의 억제력으로

나의 죄를 진압하고, 내게 안식을 주시기를 바랐네.


그러나 그 대신에 주님은

마음속에 감추어진 죄를 느끼게 하셨네.

그리고 지옥의 성난 세력이

내 영혼의 전부를 공격하도록 하셨네.


그뿐 아니라 주님 자신의 손으로

나의 비통함을 더 깊게 하시느라 애쓰셨네

내가 세운 모든 훌륭한 계획을 방해하셨고

나의 모든 희망을 사라지게 하셨으며 나를 쓰러뜨리셨네


나는 떨면서 울부짖었네.

“주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세요?”

“벌레 같은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주님은 대답하셨네.

“바로 이것이 은혜와 믿음을 구하는 기도에 대한 나의 응답이니라.”


“이 내적 시련들을 사용해서

나는 너를 자아와 교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 한다.

그리고 지상의 기쁨을 위한 너의 계획들을 무산시켜

네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구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글은 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IVP)의 21장 “내적 시련”의 일부를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간추린 것입니다. 

 

은혜의 목적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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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 I. Packer

 J. I. 패커(1926-2020)는 리젠트 대학(Regent College)의 신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스테디셀러 '하나님을 아는 지식' 등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2020년 7월 17일 소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