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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회의 쇠퇴와 갱신: 갱신을 위한 전략(4-3)
by Tim Keller2022-08-02

예수님은 그 어떤 종잣돈도 없이, 그 어떤 조직이나 기관도 없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을 시작하셨다. 그는 심지어 책이나 비전, 사명 또는 가치 선언문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가 남긴 것은 고작해야 몇 명의 사람이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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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교회의 쇠퇴 원인을 성찰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팀 켈러 목사의 4부작의 마지막 글입니다. 


1부 주류 교회의 쇠퇴

2부 복음주의의 쇠퇴

3부 갱신의 길

4부 갱신을 위한 전략


[4-1

갱신이 필요한 이유

갱신을 위한 비전   


[4-2]

갱신 앞에 놓인 함정

갱신을 위한 리더십


[4-3]

갱신 프로젝트

부록: 클래펌 그룹



갱신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 목록은 완성된 게 아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당신의 뜻에 맞게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제시하는 이 목록은 세 번째 기사에 이미 나와 있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1. 교회 개척과 갱신. 우리는 미국에서 새로운 교회 개척의 수를 현재 매년 3-4천 개에서 6-8천 개로, 그러니까 두 배로 늘려야 한다. 현재의 교회 개척 모델이 바뀌어야 한다. 첫째, 빈곤층과 노동계급 인구 사이에서 개척 자원이 너무 부족하지만, 조건이 좋은 지역에서는 개척 비용이 너무 비싸다. 전반적으로 교회 개척자에게는 (a) 훨씬 더 많은 코칭과 지원, (b) 사역에 필요한 보다 다양한 훈련과 교육, (c) 마케팅과 교회 이전을 통한 성장 모델이 아니라, 초신자 개종을 통해 성장하는 복음주의 모델에 대한 더 많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2. ‘교리로 반격하는’ 제자도. 일반적으로 기독교 교육은 대대적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성인에게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기독교 교리를 사용하여 교인들의 삶에 깊이 파고드는 기본 문화 내러티브를 전복해야 한다. 우리는 교리 자료를 모든 사람에게 널리 배포할 뿐 아니라, 지역 교회와 협력함으로 사회에 범람하는 기존 문화의 채널을 방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3. 탈 기독교 시대의 전도. 서구의 기독교 교회는 역사상 최초로 탈 기독교 시대가 주는 깊은 세속 문화에 직면해 있다. 교회는 아직까지 세속적인 사람과 “종교 없음”(none)을 천명하는 사람들을 전도할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그들을 전도하기 위한 내용과 수단을 모두 개발하는 것이다. 전도 수단은 초대 교회에서와 같이 전도에 평신도를 동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도 내용은 기독교가 존경받을 만하고 바람직하며 믿을 만하다는 것을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담을 것이다(파스칼의 팡세, 187 참조).


4. 사회 정의를 위한 네트워크. 우리는 네트워크(최소한 하나의 초교파 사역 또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는 지역사회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 또한 지역 사회 수준에서 보다 더 공정한 사회 질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규모가 있는 교회만이 사회 문제를 다루는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해당 지역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고 만성적인 불의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에 제공할 것이다.


5. 믿음의 사역 네트워크.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직업에 신앙을 통합함으로써 공동선에 봉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들의 직장에서 ‘빛과 소금’(faithful presence)[19]이 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조직하고 준비시키는 네트워크(기존 또는 새로운 사역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는 교회로 하여금 제자훈련 사역을 실행함으로 교인들이 교회 따로 직장 따로의 생활을 하지 않도록, 또한 직장에서 직업을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로 악용하지 않도록 훈련시킬 것이다. 


6. “기독교 지성” 프로젝트.[20] 복음주의는 대다수의 인구에 대한 호소력을 잃지 않으면서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강력한 반지성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한 목표에는 정통 개신교를 위한 강력한 지적 문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대학 교수진과 기독교 공공 지식인의 수를 늘리는 것이 포함된다. 이런 목표가 단지 기본적으로 (a) 대체로 진보적인 대학과 (b) 대체로 보수적인 싱크 탱크의 기존 지적 및 문화 경제 속에 더 많은 그리스도인을 키우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학문과 지적 작업을 위한 일종의 대체 문화 경제를 만드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7. 새로운 리더십 파이프라인. 우리는 전국의 청소년 사역과 캠퍼스 사역을 갱신, 재창조, 확장, 그리고 크게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역 교회 및 교단, 사역/신학 훈련 센터, 그리고 대학과 (과거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리더십 개발을 위한 일관되지만 매우 다양하고 유연한 경로를 형성할 수 있다(예: 개종, 학생 리더십, 인턴십, 직원 및 기타 리더십 직위). 이 모든 사역의 목적은 잘 갖추어진 기독교 지도자를 보다 더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일곱 개의 프로젝트 뒤에는, 기독교 자선 사업이라고 부르는 여덟 번째 ‘메타’ 프로젝트가 있다. 강력한 재정 지원 없이는 교회를 새롭게 할 수도 없을뿐더러, 교회가 사회에 도움이 될 수도 없다. 이 자선 프로젝트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기부하고 부를 관리하는 방식에 변화를 요구한다. 그 결과 그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재정을 사역을 위해 헌신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결론: 예수님은 그 어떤 종잣돈도 없이, 그 어떤 조직이나 기관도 없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을 시작하셨다. 그는 심지어 책이나 비전, 사명 또는 가치 선언문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가 남긴 것은 고작해야 몇 명의 사람이 다였다. 그들을 통해 동일한 가치와 경험을 공유한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눅 10:23).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열어 동일한 것을 보고, 진리와 열망으로 축복하고, 주님이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새롭게 하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들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필요하다(행 20:28).


부록: 클래펌 그룹


윌버포스. 1787년 28세 국회의원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두 가지 큰 목표를 내 앞에 두셨다. 노예 매매 금지와 사회 풍속 개혁이다.” 그는 불과 2년 전에 개종한 초신자였다. 노예무역 폐지는 그 가능성이 희박했다. 노예제도는 인간이 기억하는 한 인류 역사 속에 원래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여론은 일반적으로 그런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대영제국의 경제는 노예제도에 완전히 묶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윌버포스가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가 소속한 지역 대부분 유권자의 장기 소득과 번영이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자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존 웨슬리는 죽기 열흘 전에, 젊은 윌버포스에게 편지를 썼다.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하여 당신을 일으키지 아니하시면,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과 마귀의 반대에 치여서 지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신다면, 누가 감히 당신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긴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윌리엄은 그 후 46년이 흐르고 죽음을 딱 사흘 앞뒀을 때까지, 대영제국 내 노예무역 폐지의 성공 전까지 겪어야 했던 물리적 폭행을 포함한 각종 반대를 고스란히 모두 다 견뎌냈다. (참고: 노예를 해방시킨 노예 소유주 보상을 위해 그는 영국 국고를 열도록 했다. 실로 엄청난 액수였다!) 윌버포스가 도덕과 관련한 문화적 기준을 개혁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그의 놀라운 재능과 탁월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의 성공이 가능했던 건 클래펌 펠로우십이라는 흥미로운 기독교 공동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이렇게 썼다. “윌버포스가 노예무역의 심장을 꿰뚫은 화살이었다면, 클래펌 펠로우십은 그를 날아가게 한 활이었다”(J. Hart, “Every Arrow Needs a Bow,” Regeneration, Fall 99).


클래펌 모임의 형성 


클래펌 런던에서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은행가이자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윌버포스의 그리스도인 친구 헨리 손톤(Henry Thornton)이 윌버포스 가족에게 클래펌에서 큰 집을 하나 사서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여기에 합의를 한 후, 손톤은 에드워드 엘리엇(Edward Eliot)과 찰스 그랜트(Charles Grant)가 임대한 땅에 두 개의 작은 집을 지었다. 그랜트와 나중에 테인머스 경(Lord Teignmouth)이 된 존 쇼어(John Shore)는 둘 다 인도에서 경력을 쌓았고, 나중에 강력한 인도 선교의 후원자가 되었다. 노예제도에 강력히 반대했던 또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학자이자 활동가인 그랜빌 샤프(Granville Sharp), 그는 노예제 반대 협회(Anti-Slavery Society)의 회장이 되어 시에라리온 프로젝트(Sierra Leone Project)와 영국 및 해외 성서 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다른 한 사람은 고작 16세에 서인도 제도의 부동산 감독관이었던 자카리 마컬리(Zachary Macauley)였다. 그는 노예무역이 주는 피해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절감한 상태에서 영국으로 돌아와 클래펌 그룹에 합류했다. 스태포샤이어 욕살(Yoxall in Staffordshire)의 지주이자 더햄(Durham)의 성직자인 토마스 기스본(Thomas Gisborne)은 매년 일정 시간을 윌버포스와 함께 사역에 투신했다. 한나 모어(Hannah More)는 교육자이자 작가였다. 교구 목사인 존 벤(John Venn)은 직접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목사이자 교사였다. 그는 전체 지역 사회를 영적으로 양육했으며 그의 조언은 클래펌 모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783년, 존 벤은 존 뉴톤(John Newton), 찰스 시미온(Charles Simeon), 리차드 세실(Richard Cecil) 및 기타 여러 사람을 포함한 복음주의 성공회 성직자들과 격주 토론 그룹을 만들었다. 일렉틱 소사이어티에서 교회 선교 소사이어티(Church Missionary Society)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무려 9,000명 이상의 남녀가 해외로 파송되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은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정기 간행물인 크리스천 오브저버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클래펌 회원이 향후 70년간 이 잡지가 계속 발행되는 데에 관여했다. 


클래펌 펠로우십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또한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노예제 반대 사회 개혁이었지만, 그들의 관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 외에도 그들은 광범위한 이해관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노예제 폐지가 클래펌의 핵심 관심사였으며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또한 다른 다양한 사회 운동 및 자선 사업에도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형법 개정, 기자단 폐지, 정신질환자 돌봄 개선 [특히 아동노동법 개혁], 굴뚝 청소 소년 돌봄, 공장 조건의 규제와 학교 및 기타 교육 사업의 진흥을 들 수 있다.”[21]


교훈


클래펌 펠로우십이 문화적 갱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사회 정의에 집중했던 것만큼 개종과 선교를 통해 개인의 신앙을 전파하는 데에도 전념했다. 놀라울 정도로 균형 잡힌 그들은 단지 ‘한 가지 문제’만 파고든 편협한 단체가 아니었다. 교육과 문학 그리고 신학 저널과 교회 확장 및 정치적 대의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2) 그들은 종파에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핵심 종파는 성공회였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 성공회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종파는 말할 것도 없고, 노예제 반대 활동과 관련해서는 기독교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그들이 강조한 것은 ‘종파주의’가 아니라 복음 중심이었다. 


3) 그들은 개인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사역을 구축했다. 단순히 자신의 개인 경력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에게 헌신했다. 그들의 관계는 평생 이어졌다. 그들은 함께 예배하고,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하고, 또 함께 살았다.


4) 그들은 단지 목표 추구라는 면에서만 그리스도인이었던 게 아니라, 그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었다. 윌버포스와 오늘날 우리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거리는 상당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이미 이미지와 돈 그리고 동원된 유권자를 기반으로 한 정치공학이 만연했고, 거기에 더해서 야당에 대한 분노와 ‘우리가 남이가’(rally the base) 식의 선동적 수사가 넘쳐났다. 그러나 윌버포스가 택한 것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의 정치에는 단지 기독교적 내용(사회 정의)만 있는 게 복음이라는 형식(관계, 정직, 성실, 지속성)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5) 그들은 자신이 재능이 넘치고 헌신했기에 똑같이 재능 있고 헌신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들의 “두뇌는 그들의 종교를 비웃는 사람들조차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백과사전 수준의 지식, 연구 능력, 번뜩이는 재치와 문학적 스타일, 사업적 현명함, 외교 정책의 전문성, 법률 능력, 웅변 및 의회 활동에서 보여준 실력 등 놀라운 범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어떤 수상도 윌버포스가 도움을 요청해야 할 수준의 내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22]


6) 마지막으로,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초점을 잃지 않았다. 핵심이자 구체적이며 전략적 목표는 단 하나, 노예무역의 종식이었다. 이 하나의 목표야말로 그들을 하나로 묶은 ‘접착제’였다.


클래펌은 죄인인 인간으로 구성된 집단이었고, 따라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23] 그러나 클래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화를 바꾸었다. 




[주]


[19] See Hunter, To Change the World, for a description of the concept of “faithful presence”.

[20] 나는 마크 놀(Mark Noll)의 획기적인 저작인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 Eerdmans, 1994)을 기리기 위해 이 ‘기독교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21] Nigel Scotland, “The Social Work of the Clapham Sect: An assessment,” Themelios, Volume 18, Issue 1.

[22] Garth Lean, God’s Politician, Helmers and Howard Publishers, 1987, 135.

[23] 클랩햄 그룹의 사회 개혁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이전에 인용한 나이젤 스코틀랜드(Nigel Scotland)가 쓴 훌륭한 글을 참조하라. 스코틀랜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가 아니라 단지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영국 상류층의 경우처럼), 클랩햄은 그런 면에서 분명히 시대를 앞서갔다고 지적한다. 클랩햄은 “샤프츠베리 경(Lord Shaftesbury),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그리고 수백 개의 복음주의 단체 속 여러 인물들을 포함해서 19세기 이후 수많은 자선 사업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빈곤하고 소외된 이를 위한 현대 국가의 원조와 지원 모델의 토대가 클랩햄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원제: The Decline and Renewal of the American Church: Part 4-The Strategy for Renewal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클래펌 그룹은 단지 목표 추구라는 면에서만 그리스도인이었던 게 아니라, 그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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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이이다. City to City의 회장과 The Gospel Coalition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