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지구’ 주장에 대한 응답

[지구는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by Wayne Grudem2022-08-17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138억 년이 전혀 긴 시간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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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우리는 웨인 그루뎀 교수와 제이슨 드루치 교수에게 각자의 오래된 지구와 젊은 지구 관점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 다음 서로 응답하도록 요청했다. 



나는 젊은 지구에 찬성하는 드루치 박사가 사려 깊고 명확한 주장을 전개한 점에 대해서 감사하고 싶다. 또한 이번 토론이 지구의 나이와 관련해서 얼마든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지만, 여전히 교리적 정통 내에서 우리가 피차 한 형제라는 사실을 확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 강조한 그에게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전개한 여섯 가지 논증에 설득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가장 자연스러운 읽기’라는 주장


대답 1: 어떤 구절을 읽었을 때 처음 이해되는 내용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드루치 박사는 “성경의 서문을 가장 자연스럽게 읽을 때 우리는 젊은 지구를 받아들이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는 창조의 6“일”이 왜 “비록 나흘째까지 태양이 창조되지 않았더라도(창 1:14-19), 일관되게 이 계시의 전달자가 하루를 달력상 24시간에 해당하는 날로 묘사하고 있는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그는 젊은 지구 관점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성경 읽기의 결과”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표현을 “읽었을 때 드는 첫인상”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일반 독자가 어떤 구절을 처음 읽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바로 그 의미 말이다. 


그러나 여러 번 본문을 반복해서 조사한 결과 첫 번째 이해가 옳지 않았음이 드러난 사례는 성경 안에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전 1:5)를 읽고, 성경이 해가 밤에 되면 빠른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돈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해는 다음날 아침이면 동쪽에서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 과학적 관찰은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자전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했고, 첫인상 또는 “가장 자연스러운 읽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전도서 1:5은 지상에 서 있는 관찰자의 눈에 보이는 태양의 움직임을 묘사했을 뿐이다. 비록 태양 중심이 우리가 읽은 첫인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올바른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에 대해서 읽고 이해한 우리의 첫인상은 올바른 게 아닐 수 있다. “날”은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창 2:4에서와 같이) 얼마든지 긴 기간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최초의 독자는 나흘째까지(창 1:14)는 어차피 “날과 해”를 구분하는 데 필요한 태양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따라서 창조의 처음 사흘은 (적어도) 보통의 날과는 어떤 형태로건 달랐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그럼 과학은 어떻게 되는가? 


대답 2: 과학적 증거는 설명을 요구한다. 


나는 드루치 박사가 젊은 지구 지지자로서 지구, 달, 암석의 방사성 연대 측정, 수많은 별 사이의 수십억 광년 거리, 우주의 팽창률, 수백만 년 전에 타버린 먼 별의 관찰, 대륙 이동 속도, 북극의 수십만 년의 얼음층, 호수에 있는 수만 년에 걸친 퇴적층 등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극단적으로 많은 나이를 가진 우주, 특히 지구의 나이에 관한 증거에 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은 것에 약간 놀랐다. 이러한 과학적 관찰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래된 지구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이며, 이 증거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적 해석이 제공되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창세기 1-4장 전체를 다 ‘태초로’ 


대답 3: 신약성경은 창세기 1-4장 모두를 “시작”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성경의 주요 이야기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인간의 창조, 타락, 구속의 역사를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4장의 사건이 모두 다 “태초”로 언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학적 관점에서 바로 그 사실이 창세기 1-4장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관련하여 기능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가 드루치 박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야구의 “9이닝”이 아니지만, 창세기 1-4장은 모두 첫 번째 이닝과 더 비슷하고,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나아가서 바벨론 유배와 귀환, 예수의 삶과 사역 및 죽음과 부활, 교회의 설립,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진행되는데,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구속 이야기 속 남아있는 나머지 8이닝을 구성한다. 


족보의 역할


대답 4: 창세기 5장과 11장에 있는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주는 신약성경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족보는 홍수 이전 세대의 놀라운 장수 능력과 건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결코 지구의 나이 또는 인류의 나이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드루치 박사는 성경에서 아들이라는 단어가 때때로 손자 또는 증손자를 의미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따라서 그는 (원칙적으로)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가 만든 창조가 발생한 날짜, BC 4004년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족보에 담긴 나이를 다 더하면 인류의 나이가 약 6,000세임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사실상 어셔 주교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족보에 얼마든지 공백이 있을 수 있고, 족보가 특정 개인만 강조해서 표시했으며, 초기 세대의 많은 개인이 수백 년을 살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인류와 관련해서 10,000년 또는 20,000년이라는 숫자를 반대할 이유가 거의 없다. 


하나님의 영원성과 오래 참으심


대답 5: 수십억 년 동안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지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더 큰 영원하심과 그의 무한한 오래 참으심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숙고하도록 자극한다.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라고 기록했다. 우리는 이 말씀이 말하는 현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138억 년이 전혀 긴 시간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그 시간은 초속 186,000마일로 여행하는 먼 별에서 오는 빛이 땅에 닿아 우리의 경외심을 일깨우고, 그토록 광대한 우주를 만드실 수 있는 창조주의 무한한 지혜와 권능을 생각하면서 경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동물의 죽음이라는 가능성


대답 6: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전에는 식물처럼 동물도 정상적인 수명을 살다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경고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그들이 죽는 것이지, 결코 짐승도 죽는다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고 말한다. 타락과 더불어 죽음은 동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anthropos의 복수형, “사람, 인간”)에게만 퍼졌다(동물은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1975년에 변증가 프랜시스 쉐퍼는 과학의 사실과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결코 “결정적인(final) 충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타락 전에 동물이 죽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따뜻한 굴뚝 구석에서 개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거기에는 그 어떤 고통이(struggle) 없다.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 같다. … 인간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동물에게는 쫓기거나 괴로움이 아닌, 평화로운 죽음이 드러내는 자연적인 순환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1]


드루치 박사는 다가올 시대에 우리가 먹을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동물의 죽음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식물처럼 동물도 얼마든지 이 지구에서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정상적인 삶의 과정을 살다가 평화롭게 죽었다는 생각에 원칙적으로 이의가 없어야 한다. 그 동물의 시체가 부패하고 죽은 식물과 함께 분해되어 오늘날 지구에서 발견되는 석탄 및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를 생산하는 물질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드루치 박사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논증에 대한 답을 제공할 타락 전 평화로운 동물 죽음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해서만은 적절한 고려를 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드루치 박사의 사려 깊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시작한 곳에서 끝을 맺겠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구의 나이를 알려줄 의도를 갖고 있지 않으시다. 대신 다양한 과학 분야의 압도적인 양의 증거가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고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라는 결론을 내리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우주를 창조하셨다.




[주]

1. Francis Schaeffer, No Final Conflic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75), 31.  



원제: A Response to Young-Earth Arguments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하나님은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우주를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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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Wayne Grudem

웨인 그루뎀은 피닉스 신학교의 연구 교수이다. 저서로는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 있다. 그는 성경적 남성됨과 여성됨에 관한 협의회를 공동 창립했으며 ESV 성경의 편집장으로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