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소비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가?
by Shaun Cross2018-12-31

소비주의는 우리 사회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미 소비주의는 우리 삶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는 일은 마치 공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은 단지 살기 위해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하기 위해 산다. 우리는 ‘더 새로운 것’,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으로 내적 공허를 채우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발표되는 연구마다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뚜렷이 증명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는 더 많이 소비할수록 오히려 더 적은 만족감과 더 낮은 성취감을 느낀다. 


소비의 대상이 된 교회


슬프게도 교회는 소비주의라는 덫에 쉽게 빠진다. 우리(교회)는 고객(교인)에게 품질 좋은 제품(하나님, 설교, 음악)을 주기적으로 공급한다. 


교회라는 기업에서 담임목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목자에서 CEO로 변한다. 그들은 성도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경영하려 든다. 장로는 하나님이 맡기신 양 떼를 보살피는 대신(벧전 5:2), 이사가 되어 회사의 이익을 관리하고 투자 금액에 맞는 수익을 보장하려 한다.


나아가 직원은 거대한 괘종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반복적으로 사업 시행과 고객 만족의 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회원 수(교인)는 우리가 제품을 얼마나 잘 팔았는지 보여 주는 지표가 된다. 그러나 교회가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죽어가는 경우도 있다. 전도, 섬김, 봉사 활동이 하나님보다 교회의 브랜드를 견고하게 하고, 더불어 ‘대상’인 청중을 솔깃하게 하는 전략으로 전락하는 경우이다(여기서 ‘대상’인 청중은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변질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모인 성도들의 모임에서, 고객으로 가득 찬 상업적 기업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 지점에 이른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나 죄인의 회심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말 그대로 기업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는 세속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건강해 보일지라도, 사실은 죽어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건강한 주님의 몸


예수님은 우리를 소비하도록 부르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며, 정의와 자비를 행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 가르침은 초대교회가 보인 자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초대교회의 성도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여기서 음식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이 가족을 위해 내가 어떻게 은사와 물질을 활용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보다 형제자매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초대교회에는 소비가 아닌 섬김이 있었고, 시장이 아닌 가족이 있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소비주의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방법은 바로 교회 개척이다. 교회 개척을 통해 적어도 세 가지 방법으로 소비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1. 교회 개척은 하나님 나라와 선교를 위해 ‘파송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새 교회를 개척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교회는 파송하는 것에 대한 질문과 하나님 나라 중심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인력, 재정, 자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새 교회를 지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미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할 좋은 목회자를 양육할 수 있을까? 복음 안에서 이처럼 협력하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이런 질문은 교회의 임무와 목표, 그리고 방향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답을 따라 성도들이 고심하며 노력할 때, 이러한 질문들은 성도와 또한 교회 밖 사람들에게도 이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소비주의는 힘을 잃게 된다. 


2. 교회 개척은 모두가 ‘섬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교회 개척은 종종 명확하게 정해진 사역 없이 조그맣게 시작된다. 따라서 교회의 구성원은 기존의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하나님이 내게 어떤 은사를 주셨을까? 내가 이 교회를 위해 어떤 은사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하고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다. 


나는 교회에서 다음의 현상을 목격했다. 한 성도가 주기적으로 찬양을 인도하기로 자처했다. 그는 처음 지원했을 때 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지만 교회에서 은사를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무너졌다가 회복되고 있는 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정의와 자비 사역을 감당할 만한 구체적인 제도가 아직 없었다. 그에 따라 성도가 주도적으로 그러한 사역을 감당해야만 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는 이와 같은 환경 때문에 예배와 성례를 단순히 소비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섬김을 통해 복음 안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교회에 미리 준비된 직원과 사역 체계가 없었던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그들을 복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이다.


3. 교회 개척은 숨거나 불편함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 교회는 참으로 작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지 않으면,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님은 내 안에서 일하신다. 그 예로 작은 교회가 성도를 양육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들을 보여 주신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면 교인들의 눈에 띄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교회보다 좀 더 큰 개척 교회를 가더라도 이는 마찬가지다.


교회 개척 팀은 종종 더 크고 체계적인 교회는 시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방문자를 섬길 수 있다. 왜냐하면 작은 교회는 왔다가 소리 없이 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즉 작은 교회에서는 소비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곳의 공동체를 소개받게 되고, 그렇게 한 번 뛰어들면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게 된다.


교회 개척 자체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소비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성령님과 복음의 인도를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신부가 어떤 모습인지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교회의 소비주의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교회 개척은 이러한 시작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소비가 아닌 섬김의 자세를 갖게 하실 것을 기대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3 Ways Church Planting Kills Consumerism

번역: 하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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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haun Cross

션 크로스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Union Church의 선임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