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제자도
by 박혜영2024-05-13

사람 사이를 이해하고 목회를 하는 데 격려 상담이라는 책이 크게 도움 되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은 두 겹의 모습입니다. 속모습에는 두려움이 있지만, 겉모습에는 그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방어막이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한 교회에서 오랜 기간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성경공부를 해도 상대방 속에 있는 그 두려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겁니다. 그러면 교회는 피상적인 곳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완전 솔직해지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지적한다는 게 이 책의 장점입니다. 해결책은 상대방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격려라고 합니다. 그러한 격려만이 상대방의 방어막을 뚫고, 두려움에 도달하여, 인격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한답니다.


저는 이를 체면 차리는 문제와 연관시킵니다. 체면을 차리면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중년 이상의 분들은 더 그렇습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나온 중년의 문제는 정말 중요한 지적입니다. 중년은 그 영혼이 세상에 엮여 산 지 꽤 되니까, 그만큼 살아있는 신앙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세상에 산 세월만큼 세상 사람이 되었을 테니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중년의 제자도’는 체면을 얼마나 버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제 나름대로 믿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특히나 중년 이상 분들이, 체면을 차리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역시 그 속에 있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뭐 했느냐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이 나이가 되어 남들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체면이라는 방어막을 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어막이 쳐진 상태에서도 경건의 훈련을 받을 수 있지만, 성경공부로 깨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서로 체면을 차리는 범위 안에서는 아무리 교제를 나누어도 신앙이 깊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교회는 피상적인 곳이 되고 맙니다. 피상적인 교회는 다시 피상적인 중년 교인을 배출합니다. 그러면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피상적인 신앙은 그 기도를 들어보면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주로 전형적인 말로 기도하지요. 전형적인 말이란 이런 것입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시민들을 보여주는 방송에 무슨 말이 나올지, 리포터가 어떤 곳에 서 있을지 우리는 보지 않아도 다 압니다. 화창한 봄이 되어 첫 휴일이 되면, 헬리콥터에서 무슨 방송국 아무개입니다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 장면을 머리에 그리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알 수 있을까요? 전형적인 모습이요 진부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말은 형식에 안정감을 주고 무난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경우에 맞는 말을 하고, 좋은 내용을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이 없는 겁니다.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게 전형적인 말의 특징입니다. 마찬가지로 체면을 차리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안정감을 주고, 부담스럽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깊이가 없습니다. 서로 하나 되지 못하지요.


이러한 전형적인 말과 기도가 언제 조금 깨어집니까? 힘든 일을 당했을 때입니다. 이때 교인들은 기도 제목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기도제목은 내놓지만, 자기를 내놓지는 않습니다. 기도할 만한 몇 교인들에게 기도제목을 알리는 것으로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만족하고 맙니다. 물론, 기도제목을 말하는 것도 큰 일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내놓는 일까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속을 건드리는 해결책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있어야 온전한 기도제목이 됩니다.


왜 이래야 할까요? 그래야 진실한 교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말로 자신의 두려움을 내놓지 않고 진실한 교제를 할 수 있을까요? 진실한 교제에서 기도응답이 나오는 것이지, 기도제목 자체에서 응답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는 건 그 문제만 달랑 해결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문제를 통해서 너의 두려움을 보고, 너의 자존심을 보고, 너의 체면이 얼마나 굳은 것인지 보라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곤경을 벗어나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힘든 일을 통해서 내 고집을 보는 데 있습니다. 그 고집을 보고, 그 두려움을 보고, 그 어리석음을 보았다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주실 것이라 믿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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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혜영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자’ 외치는, 안양시 관양동에 있는 산오름교회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