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은혜를 어떻게 온전히 소망할 수 있을까?
by Jen Wilkin2019-03-18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베드로는 ‘그러므로’라는 중요한 말로 이 권고를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당신에게 가져다 줄 은혜를 온전히 소망하라는 말로 마친다. 베드로가 말한 그리스도의 계시는 그분이 재림하시는 날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 날은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이들에게는 슬픔이 가득한 날이 될 수도 있다. 즉,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내게 주어지는 그날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가 내려 주실 은혜를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대비하고 또한 깨어있으라는 의미이다.


마음을 대비하라


‘마음을 대비하라’는 말은 전투를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고대인들은 주로 긴 외투를 입었는데, 이는 그들이 싸움을 할 때에 큰 어려움을 주었다. 따라서 전투를 하러 나서기 전, 그들은 움직이기 쉽도록 허리를 띠로 묶었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옷을 입고 그대로 출전한다면, 이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자세가 아닌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악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베드로에 따르면, 은혜를 소망하는 행위는 좋은 의도를 갖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거룩한 전투는 싸움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없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행동을 우선 요구한다.


그렇다면 전투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신자의 마음이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고자 분투할 때, “나는 욕을 줄여야 해”, “나는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습관을 멈춰야 해”라고 하면서 종종 그릇된 행동을 줄이려는 시도를 먼저 행한다.


하지만 베드로는 바로 우리의 생각이 죄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그릇된 행동은 죄를 열망하도록 이끄는 악한 생각의 결과이다. 따라서 소망을 진정으로 은혜에 두기 원한다면, 우리는 죄의 근원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유혹은 나의 생각이 정당하다고 착각하도록 그 마음에 거짓을 속삭인다. 이러한 거짓된 유혹에 넘어가 나의 생각이 정당하다고 결정하면, 그 생각은 행위를 향한 욕망에 불을 붙이게 된다. 야고보가 말하듯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5).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행동이나 욕망을 새롭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추구하라고 충고한다(롬 12:2).


우리는 생각이 욕망을 잠재우고,줄어든 욕망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과정을 일상에서 종종 경험한다. 밀크쉐이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하지만 어느 날 용기에 적힌 영양 성분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밀크쉐이크가 내 건강을 매우 나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이 밀크쉐이크를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이를 먹고 싶은 욕망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건강에 좋은 다른 음료를 고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죄의 결과를 먼저 이해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죄에 내어주려는 욕망을 보다 쉽게 끊어낼 수 있다. 죄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달콤해 보이던 죄가 더 이상 나를 쉽게 유혹하지 못할 것이다. 바른 생각은 욕망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바른 행동으로 이어진다. 다만, 바르게 생각하는 일은 마치 전투와 같이 격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깨어 있으라


두 번째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모든 소망을 두는 일에는 마음의 근신, 즉 깨어 있음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깨어 있는 모습의 반대는 취한 상태이다. 술 취한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라. 인지 능력은 왜곡되어 명백하게 생각할 수 없고, 욕망이나 행동을 다스릴 수도 없다.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지혜로운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우리에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통제와 바른 마음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진정으로 모든 소망을 그리스도께만 두고자 한다면, 모든 생각과 행위를 그리스도의 기쁨에 온전히 맞추어야 한다.


베드로가 ‘온전히’라는 말을 언급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소망을 은혜에 두라고만 표현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우리의 소망을 은혜에 '온전히' 두라”라고 강조했을까?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저 소망의 일부만 은혜에 두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두는 불순종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우리 자신의 선한 행위, 배우자나 자녀, 또는 심지어 목회자에게 소망을 두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은행 잔고나 직장에서의 지위, 혹은 SNS 계정의 인기 여부에 소망을 두기도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망한다고 스스로 고백하지만, 많은 경우에 이는 그리스도와 세상적인 무엇인가에 함께 소망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소망을 결코 나누어 두지 말라. 우리는 야고보서 1장 6절부터 8절에서 언급되는 의심하는 자, 곧 두 마음을 품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재물을 하늘과 땅에 모두 쌓아 놓는 일에 대해 경고하신 사실과 내가 바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임을 기억하라. 베드로는 소망을 온전히 주님의 은혜에만 두고, 의심과 유혹에 대한 전투를 준비하며, 깨어 있는 상태에서 나의 순종을 항상 세심히 살피라고 조언한다. 소망을 은혜에 온전히 두는 사람은 이 세상의 헛된 쾌락을 멀리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는 자이다. 그러한 백성은 현재의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미래에 얻을 유산을 귀하게 여긴다. 베드로 당시의 청중은 회심의 결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관계적 안정감을 상실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세상에 소망을 둘 여지가 거의 없는 고단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온전한 소망을 미래에 두라는 말로 자비를 표현하며 장차 맞이할 영원한 구원을 기뻐하도록 격려했다.


우리도 역시 이생에서 불안과 상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베드로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할 것이다. 헛되고 잠시 뿐인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대비하는 마음과 깨어 있는 상태를 통하여 미래의 은혜에 온전히 소망을 두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자.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wo ways to fix your hope on future grace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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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en Wilkin

젠 윌킨은 작가, 강연자, 성경 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None Like Him: 10 Ways God Is Different from Us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