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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와 존중으로 신앙을 변론하자
by Jared S. Oliphint2019-10-21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믿을 수 있거나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지식과 다양한 진리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기독교가 더 포괄적인 종교였다면 크리스천의 삶은 훨씬 더 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객관적인 진리들이 거기에 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자유롭게 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그냥 자연의 주기적 패턴에 의해 점진적으로 진화된 하나의 생물학적 종이 아닌가? 상처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왜 성별 문제를 사회적 산물로서 유동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식당 메뉴에서 음식을 고르듯이 성 정체성을 취사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문제가 중요한 사항으로 대두될 경우, 보통 갈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그 문제가 중요하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바로 지키려면 주변 문화 및 그 가치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객관적 진리,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인류의 특별한 신분, 그리고 결혼과 가족의 핵심 역할 등과 같은 문제를 중요한 사안으로 본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사안이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로 하여금 주변 문화와 사상들에 반하여 살게 하셨다. 크리스천들은 자연 과학, 예술과 예능, 사회학, 심리학, 철학 등의 모든 학문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왔다. 이러한 학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사람 중에는 때로 기독교에 대항하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논쟁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 왔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 우리 편에 계시며, 그분은 우리가 지적으로 어두워지지 않도록 말씀해 주신다. 그분의 자녀들에게 매일의 양식을 주시는 분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인식론적 지식 또한 제공하신다. 


우리는 성경 말씀이 전지전능하고, 주권적이며, 선하고, 편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쓰여졌음을 종종 잊어버린다. 성경 말씀이 기록되고 선별될 때 어느 것도 하나님이 모르시는 채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모든 단어가 쓰여질 때 그분은 거기에 계셨으며, 우리가 지금 읽는 성경 말씀으로 정해지는 과정에서도 신성하게 지휘하고 흠이 없도록 안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역사를 전능하게 통치하시며, 그 말씀이 완성된 후에는 그분의 신부인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신다.    


기독교가 공격을 받으면, 그 공격이 개인에 대한 것이든지 혹은 기독교 전체에 대한 것이든지, 성경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과 증거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주의 기원이라고 한다. 인간은 그분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그 사실은 인간이 모든 다른 피조물로부터 구별됨을 뜻한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여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방대한 피조 세계와 그 세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서도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신다.


그러므로 교회 밖의 사람들(혹은 심지어 내부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 기원과 인간의 지위와 역할, 옳고 그른 것 등에 대해 기독교 신앙과 상반된 신념을 따르면 놀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베드로전서에서 말씀하신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3:15–16).


베드로는 이 본문에서 기독교 신앙이 주변 문화와 갈등을 빚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언제 방어를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가? 항상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온유와 존중으로 우리 자신과 하나님을 방어한다. 우리와 그분이 모욕을 당하면 그러한 우리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 된다. 


베드로가 원리를 제공했다면 바울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 양쪽 모두에서 기독교 신앙을 신학적으로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가 자신의 믿음을 방어하는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성경 말씀으로 그들과 논쟁했다. 베뢰아에서도 바울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지 보려고 성경 말씀을 점검한 사람들은 베뢰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덴에서는 바울이 방어하는 모습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바울이 아덴 사람들과 변론할 때, 그는 유대인과 헬라인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을 전함으로 방어했다(행 17:18).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을 당혹하게 하려고 할 때 이 주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신앙에 대해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그들이 신을 믿고 있지만 그 신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고 변증한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은 아담과 그 자손들을 모두 창조하셨고, 모든 이들을 구원한 그리스도가 심판의 날에 다시 오기 전에 회개하라 하셨다고(행 17:30) 역설했다. 바울의 방법은 창조와 타락, 구속과 완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과 변론했다. 그는 아덴의 철학과 예술에 익숙했다. 바울은 상대방의 문화와 신앙을 잘 알고 존중하면서도 기독교의 본질을 타협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좋은 본을 보여 주었다.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의 삶은 지적으로 쉬운 삶이 아니며, 또한 아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학문 분야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공격으로 교회를 에워싸려는 것을 보아 오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도전을 주권적으로 통제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그러한 도전에 답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주셨다. 지적인 거물들과 변론할 때, 우리는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받을 수도 있겠지만, 전지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은 우리 신앙을 항상 강하게 지켜줄 것이다. 상대방과 그 문화를 가능한 한 많이 아는 것은 설득력 있는 전술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독교를 방어하는 모든 내용은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온유와 존중으로 제대로 방어하면, 도전하는 사람과 도전을 받는 사람 모두를 만드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Defending the Faith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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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ared S. Oliphint

제러드 올리핀트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동창회장으로 섬기면서 현재 조직신학으로 석사과정(ThM)을 이수하고 있다. 그는 Gordon College를 졸업하고,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종교학석사학위(MAR)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