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신앙과 일

악마들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하는 일
by Greg Morse2019-12-23

이 글의 형식은 C. S. 루이스의 고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를 반영한다. 원래 삼촌 악마인 스크루테이프로부터 편지를 받던 웜우드(Wormwood)가 여기서는 자신의 조카 글로브드롭(Globdrop)에게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에 관해 조언한다.


사랑하는 글로브드롭에게,


저번에 네가 아주 노골적으로 반응한 대로, 최근에 보낸 편지가 너를 꽤나 메스껍게 만들었나 보구나.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네 등골을 오싹하게 하고 토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게 했다니. 그런데 아마도 나한테 그런 말을 쏟는 게 편하다고 느낀 모양인데, 잊지 마라 조카야, 넌 지금 삼촌이 아니라 상관에게 보고하는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 사실을 너에게 상기시키기도 싫구나.


뭐 네가 경솔하게 말하긴 했어도, 도저히 못 믿겠다는 네 심정도 이해는 간다. 어떻게 내가 그 원수(예수 그리스도)와 싸워야 하는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정말 너한테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며 편지를 맺을 수 있었겠냐. 오히려 우리는 저 옛날, 바로 그날에 일어난 일만 생각하면 몸서리를 치는 자들이 아니냐. 다른 수많은 악마들도 그날에 대한 기억을 마치 전염병처럼 피하려 하더구나.


원수가 이 땅으로 침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극한 혐오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무슨 일이 시작되었는지 바로 알아차렸지. 선전 포고도 없이 전쟁이 시작된 거야. 당시 나는 신참내기 악마였는데, 그때 내가 간절히 바라던 일은 하나밖에 없었단다. 우리의 대장(사탄) 뒤에서 격분하던 스크루테이프 휘하에 들어가는 일이었지. 그런데 바로 그 아기를 수색하며 모든 남자 아이를 다 집어삼키던 우리의 전략에 한 가지 결점이 드러나고 말았어. 당시 본부에서는 우리의 습격이 성공했다고 추측했지만, 그 아기는 애굽으로 탈출하고 말았던 거야. 그 기억의 트라우마가 가시지를 않는구나.


하지만 우리가 저 음울한 날에 적군에게 패배했다고 단정 짓지는 마라. 지금도 약해 빠진 악마들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면 불을 끄고 문을 걸어 잠그지만, 제대로 된 군사들은 목숨을 걸고 적군으로 뛰어들어 싸우지. 그 결과 지금까지 많은 땅을 차지해서 원수에게 현혹되지 않은 영혼들을 우리 진영에 편입시켰어.


악마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법


물론 원수의 출현만 생각하면, 언제나 오싹해지는 이 기분은 영원히 피할 수 없을 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 끔찍한 휴일을 기념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를 거다. 우리는 저들과 함께 노래하고, 축제를 벌이고, 선물을 주고받고,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영화를 관람하며 시간 때우는 일을 몹시도 좋아하지. 너는 그 휴일에 살그머니 물러나 상처를 어루만지며 전의를 다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우리에게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잃어버린 땅을 상당히 되찾았단다. 그 휴일에 우리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설마 못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1. ‘Xmas’를 기념하게 하라


오랜 옛날에 그 아이를 제거하는 데 실패하고 나서 우리가 어떻게 해 왔는지를 네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봐 이야기한다.


지금은 멋진 트리와 선물, 각종 장식과 반짝이는 조명, 산타와 눈사람, 달콤한 쿠키와 즐거운 파티, 이런 게 다 크리스마스를 말해 주지 않냐. 이렇게 우리는 그 아기를 건초더미 아래에 숨겨 두었단다. 이제 사람들이 말하는 메리 크리스마스란, 빈방이 없다고 외치던 여관들과 같지. 그들은 자기 양만 치는 목자들이 되었고, 서로 교환할 선물은 가졌어도 베들레헴을 향해 빛나는 저 별은 주목하지 않는 이상한 동방박사들이 되었어. 봐라, 기분 좋게도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축약되었는지. 우리는 그날을 단순히 ‘Xmas’라고 표기한단다(역주: 여기서 ‘X’는 헬라어에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단어의 첫 자음이 아니라 무엇이든 대입할 수 있는 미지수 ‘X’를 의미한다).


그처럼 들뜬 날에는 스크루지도 필요 없지. 그저 초콜릿 생각만 저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돼. 아니면 칠면조라든가 화로에 구운 밤이나 호두를 맛보도록 유인해도 좋겠고. 그렇게만 해도 저 2천 년 전의 아기는 사라지게 되니까. 물론 우리가 저들의 마음에서 원수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더 많단다.


2. 예수를 아기로만 생각하게 하라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통을 지키려고 하지. 저 종교 의식에 물든 인간들은 그 아기를 결코 버리진 않을 거야.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예수를 그저 힘없고 귀엽기만 할 뿐, 사실상 위협이 안 되는 아기의 모습으로 저들의 마음에 두면 되니까. 이런 절기에만 생각하거나 찬양하는 또는 장식품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모습으로 두면 된다는 거야.


저들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날의 예수를 한번 봐라. 얼마나 포근하게 마리아의 품에서 쉬고 있냐? 얼마나 순하고, 고분고분하고, 유순한 모습으로 안겨 있는지를 보라고. 원수가 저렇게 불분명한 소리로 옹알거리고, 누구도 심판하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냐? 그러니 결코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가 성장하도록 놔두지 마라. 우리는 여태까지 죄라든가 거룩 또는 그 아버지의 영광 따위는 신경 쓸 수 없는 혀짤배기 젖먹이의 모습으로만 원수를 생각하도록 사력을 다해 왔다. 그 결과 원수를 바라보는 이들이 그 아기를 경외하며 예배하기보다 그저 사랑스럽게 여기며 손으로 한번 쓰다듬고 마는 그런 마음만 갖게 되었지.


나의 경우도 말하자면, 저 구유에 있는 메시아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원수의 탄생은 하나같이 크리스마스카드에나 어울리는 장면으로 묘사되지 적군의 작전회의실을 떠올리게 만들지는 않거든.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임마누엘’을 아무런 명령도 못하고 깊이 잠든,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아기로 대체해 놓았단다. 그런 아기라면 저들의 용사가 될 수 없으니까. 심지어는 사람보다 못한, 한낱 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하나님이 아니라 이유식 거버(Gerber)의 아기가 등장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구.


3. 매사가 즐거운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게 하라


일단 원수를 아기의 모습에 묶어 두었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작업이 있다.


너는 이 시즌이면 느껴지는 희망이나 평화 또는 기쁨 따위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냐?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훈훈한 정서를 느껴 본 적이 있냐는 말이다. 이런 분위기는 일종의 크리스마스 망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가족 모임, 연말 휴가, 선물 교환, 자선 사업까지 더 즐기게 만들어서 정작 왜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옛적부터 노래해 왔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게 해 놨단다.


그러니 매사에 들뜨고 즐거운 날을 보내게 만들어라. 그렇게 자기 정서에만 집중하게 하면, 네가 다스리는 백성들은 결코 “큰 기쁨의 소식”을 알지 못하게 될 테니. 그래 센티멘털리즘, 조카야, 감상주의에 빠져들게 하라구. 기분이 업되어 헛된 감상에 젖어들수록 유리하단다. 잠시만 고통을 거두자는 거야. 그렇게 하루만 지나 봐라. 선물은 포장이 뜯긴 채로 놓여 있고, 거실은 텅 비어 있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사라지고 없지. 다시 일터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 그러면 12월 26일은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허탈한 날이 되지.


4. 크리스마스용 신자가 되게 하라


조카야, 마지막으로 이 사실을 기억해라.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추진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바로 스물네 시간짜리 기독교를 만드는 프로젝트지. 너도 이 시즌이면 사람들이 어떻게 종교적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지 알지? 그날에는 교회 출석률이 급등해도 개의치 않아도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날 하루만 신자같이 행동하도록 저들을 부추겨야 해. 가끔씩 치과 진료를 받듯, 저들의 종교 생활에도 연간 검진은 필요할 테니.


글로브드롭,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사람들의 마음에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좋단다. 그러면 저들의 양심은 깊은 잠에 빠져들거든. 일회성 신앙으로 면죄부를 얻는다고 여기니 얼마나 편히 잠들겠냐. 물론 너도 알다시피, 원수는 크리스마스에도 출석 체크를 한다. 그리고 저들이 매년 교회에 들르려고 노력하는 한, 크리스마스이브에 참석하는 비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들도 정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이 크리스마스용 신자들은 교회에서도 그저 쿠키 생각밖에는 안 한단다.


즐거운 Xmas를 보내기를


아무튼 그날이 원수의 승리를 상기시켜 사람들을 우리 손아귀에서 더 멀리 벗어나게 하려고 만들어졌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거라. 그런데 이 생일 파티에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선물을 주고받고 달콤한 기분에 빠져들며 화목한 모임을 갖고 좋은 음식까지 나누는데, 정작 그 아기는 행방불명이 되고 없는 상태란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최고의 Xmas를 꿈꾸고 있지.


아직 그날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구나. 그러니 저들과 함께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지나간 캐럴이라도 부르면서 흥겨운 정취를 자아내라. 물로 일 년에 한 번이니까 교회에 가도록 좀 부추기고(그래야 출석 체크라도 받을 게 아니냐). 그러고는 저들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어라. 어쨌든 가난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일만 아니라면, 무슨 일로라도 저들의 스케줄을 다 채워도 좋다. 다만 누구도 그 아기와 직접 대면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아무튼 불결한 메시아를 예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물론 우리가 그 아기를 나중에 매달았던 저주스러운 나무 주변에도 모이게 해서는 안 되고. 한자리에 모여 기도한다든가, 성경을 읽는다든가, 아니면 영혼이 죽어 있는 우리 백성들을 꾀어내 시간을 함께 보낸다든가, 그런 일을 못하게 하라는 말이야. 그날은 그저 기분 좋게, 피상적으로, 안전하게 보내는 게 최고다.


그러니 다시 말하지만, 즐거운 Xmas를 보내라!


벌써부터 들뜬 너의 삼촌,

웜우드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Dark Side of Christmas

번역: 장성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