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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

‘이건 말이 안 돼’ : 갑작스레 충격을 받은 친구에게
by Jon Bloom2020-01-20

“이건 정말로 말이 안 돼. 이게 사실일 리가 없어.” 또 한 번의 자살.


이 내용을 나에게 문자로 보낸 친구에게는 아주 신앙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모든 면에서 봐도 진실하고 활기가 넘치는 신앙의 소유자였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어둠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져버렸다. 그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친구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비극 앞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우리가 흔히 “악의 문제”라고 부르는 게 있다. 전지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악과 고통이 만연한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용어이다. 그것을 단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실제로 겪는 경험을 제대로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다.


짐을 다시 맡기라


어떤 일이라도 이겨낼 것 같던 친구가 갑자기 인생을 끝내버렸다. 사랑하는 자녀가 병으로 죽는다. 고문이 자행된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믿었던 배우자가 나를 버린다. 비행기가 날아와서 건물이 무너져 3천 명의 영혼 위에 쏟아져 내린다. 우리가 겪은 끔찍한 현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픈 기억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런 비극과 죄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다. 사탄이 가져온 사악한 파괴를 더 가까이에서 보면 볼수록 세상은 더 혼란스럽다.


이런 경험을 겪으면서 우리는 악의 진짜 본질을 엿볼 수 있다. 그 본질은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다. 악한 일들, 그리고 그런 악을 막지 않고 선한 경륜 안에서 악을 허락하는 하나님은 그 자체로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을 초월한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 앞에서 절망하고 또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는 분명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왜 이런 비극과 그에 따른 절망적인 파괴를 허락하는지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비극 속에 숨겨놓은 특별한 목적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발견한 것은 이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인간이 선과 악 속에 있는 지식 전체를 감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지식이다. 선과 악의 두 측면은 우리의 이해 수준을 초월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은혜로운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지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맡기라고 말한다.


자비로운 신비


자비로움의 신비가 있다. 실로 위대한 자비로움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이 신비로 남아야 한다고 명령한 바로 그 비밀을 품고 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만약에 그들이 먹는다면 그 결과는 죽음이라고 했다. 선과 악의 신비를 아는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했다(창 2:17).


그러나 사탄은 이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이 가진 높이와 깊이, 그리고 넓은 지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창 3:4-5). 인간은 사탄의 말을 믿었고 열매를 먹었다. 그러자 정말로 그들의 눈이 열렸고, 선과 악을 보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그날 이후 이 지식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


그 첫 번째 결과가 죄였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허무한 데에 내어주었다(롬 8:20). 그리고 사탄은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았다(요1 5:19). 죄는 우리를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 지식을 향한 눈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사탄의 속임수에 취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 안에 내재한 죄성은 선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왜곡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엡 3:18-19) 능력이 필요하다. 괴로울수록 기도를 통해 더 열심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 4:7)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하고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엡 1:17-18)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설령 우리가 죄성이 없는 존재라고 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런데 하물며 죄에 빠져있는 지금 우리의 상태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고전 2:9).


하나님처럼 지혜로울 수 있다고 믿은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하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욥의 고통 속에 있는 신비


신비는 우리의 인식(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나 이해력(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것)의 범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현실 차원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어떤 신비는 하나님이 그것에 대하여 알게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신비로 남는다. 또 어떤 신비는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현재 이 세상의 수준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에 신비이기도 하다.


욥기는 고통의 신비 앞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우리가 신비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또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욥의 비극 뒤에 숨은 것은 욥과 그의 친구들이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비 그 자체였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욥의 고통을 진단할 정도로 선과 악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욥 42:7).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은 고통의 이유를 욥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 욥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자 욥은 그의 손을 자기 입에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3:3,6). 욥은 성공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시 맡겼다.


욥기의 메시지는 고통과 비극 속에서 혼란을 토로하는 인간을 하나님이 미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머물렀을 때 그도 고통 속에서 울부짖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성경 전체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나를 믿어라”이다. 우리가 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이유는 하나님이 거기에 선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계획하셨다는 것,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까지도 애초에 하나님의 소유였다. 결코 인간의 소유일 수 없는 것이기에 다 하나님께 다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 분을 믿는 것


선과 악의 실재가 우리의 제한된 감각을 뛰어넘고, 이해력을 압도할 때, 우리의 한계를 눌러버릴 정도로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기묘하게 만들어진 존재이다(시 139:14).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끔찍할 정도로 제한된 존재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평안(빌 4:7)은 너무도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런 평안은 우리가 주님을 이해하는 이해력에 의지하지 않고(잠 3:5) 온 맘으로 믿기만 하면 주어진다.


친구의 비극적인 자살 때문에 고통받고 슬퍼하는 내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을 때, 나는 이런 진리를 몇 줄 안에 어떻게 담을지를 고민했다. 그는 내게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 요청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끔찍한 비극을 앞에 놓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과 악의 지식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선하신 진리는 우리에게 그 지식을 감당하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다. 자신에게 모든 짐을 맡기라고 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It Doesn’t Make Sense’: When We’re Blindsided by Suicide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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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 Bloom

존 블룸은 Desiring God의 공동 설립자로 이사장과 작가로 섬기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믿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와 'Not by Sight'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