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by R. C. Sproul Jr.2021-08-09

우리는 지금부터 주님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과 돼지 목에 진주를 거는 것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모순어법(oxymoron)일 법한 것이 매스컴의 안 좋은 관심일 것이다. 지금 시대의 방송은,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당신에 관해 어떻게 말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대중에게 얼굴을 비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교회도 세상의 이러한 생각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매스컴이라는 새로운 신 앞에 절을 하고, 이것이 바로 권력으로 향하는 티켓이라고 믿는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세상의 관심 속으로 파고들어가 예수님의 빛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풋볼 영웅들은 엔드 존(미식축구에서 점수를 얻는 구간 – 역주)에서 엎드려 기도함으로써 잃어버린 영혼들을 “전도하고,” 홈런을 치는 타자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다. 저 위의 계신 분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브로드웨이 처럼 분석하여 무대에 세웠다. 그것이 너무 고상해 보일 때는 팝송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이마저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을 때, 우리는 더욱 필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문신이나 팔찌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물건을 몸에 걸친다. 우리는 기독교적인, 예수를 나타내는 옷을 입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할 때 기뻐한다. 즉 기독교인들은 “This Blood’s For You”(이 피는 너를 위한 거야)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예수님이 패션 유행의 가운데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 20년 전에 십자가 목걸이가 굉장히 유행했다. 이제는 모두가 마음속에는 아닐지라도 옷이나 액세서리를 통하여 예수님과 가까이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얼굴은 유행을 이끄는 사람들의 티셔츠를 장식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우리는 이것을 축하하기 전에 성경적 교리와 대중문화를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이 “짧은 유명세”(Fifteen minutes of fame – 다중 매체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짧게 유명했다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 앤디 워홀의 말 – 역주)를 깨뜨렸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작을수록 더 커진다고 말한다. 반대로 대중문화는 역설적으로 커질수록 작아진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것과 애처롭고 보잘것없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명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대중문화 아이콘이란 대중을 대표하는 것이다. 즉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중요한 모든 부분을 뒤로해야 한다. 예수님이 티셔츠 위에 축소되어 이미지화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미는 뒤로 감추어져 버렸다. 티셔츠는 예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아이콘처럼 원래의 의미를 벗어나서 쓰인 것이다. 장식처럼 쓰이는 예수님은 관심을 끌 수 있으나 본질적인 것이 없는 그저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하나의 패션 소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괴하게 만들어서 십계명의 제2계명과 제3계명을 범하며 그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말았다.


예수님의 모습은 애초에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뉴스는 아니었다. 무덤에서 걸어 나올 때 맞이하는 기자들은 없었다. 그 어느 누구도 속보를 전하며 우리에게 최신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의 특별한 면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부활과 승천 사이 40일 동안 그는 수백 명의 사람에게 나타나셨다. 부활의 사실을 증명할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것이 예루살렘의 원형극장을 채울 만큼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결코 유명한 뉴스가 되지 않았다. 그분은 비하(humiliation, 예수님의 인성을 취함으로 낮아짐 – 역주)하셨다가, 승귀(exaltation,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 역주)하셨다. 바뀐 것은 그의 인기 순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그분의 자리가 바뀐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한 곳, 그 하나님의 자리로, 영광의 자리로 옮겨 가셨다.


예수님의 승귀, 그 이후에 비로소 주님이 신문 1면을 장식할 것이다. 그 위대한 날에 사람들은 티셔츠의 이미지가 아닌 예수님 발아래 서기 위해 소리를 높이거나 아니면 산 아래 숨으려고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리고 왕의 심판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판단할 것이다. 각 사람은 이를 갈며 혹은 큰 기쁨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십니다”(Jesus Christ is Lord”)라고 외칠 것이다. 요점은 대중문화가 주는 보편적인 인정을 받는 예수님이 아니라 오직 높은 곳에서만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주님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과 돼지 목에 진주를 거는 것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 대중에게 널리 보급된 예수님의 티셔츠가 신앙을 기품있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의 인기를 축하하기보다는 슬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오직 본질 없이 맹목적인 마케팅을 멈출 때만 바른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조용히 순종의 삶을 살려고 할 때 우리는 높아질 것이다. 그 높아짐은 제이 레노(Jay Leno,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한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 역주)의 토크쇼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저택에 있는 자리로 가는 것이다.


우리의 길은 주님의 길과 같다. 단지 낮아지면 가는 길인 것이다.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한다. 우리가 살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풍요로운 삶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십자가를 매는 것뿐이다.


대중문화는 보완하고 적용할 대상이 아니라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척하는 모든 자들을 낮출 때 그리스도는 비로소 완전히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온전히 주님에게만 있을 것이다.




원제: Jesus Christ Superstar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허예송

우리의 길은 주님의 길과 같다. 단지 낮아지면 가는 길인 것이다.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한다. 우리가 살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R. C. Sproul Jr.

R. C. 스프로울 주니어는 본명이 Robert Craig Sproul로 Grove City College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Whitefield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칼빈주의 작가이며, 신학자인 그는 Ligonier Ministries의 설립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