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목회

목회자의 교만과 겸손
by Nate Pickowicz2021-01-27

인간의 마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교만의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년생 목회자에 관한 이야기다. 언젠가 그가 지역 목회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모든 인원이 모이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 “짐 뉴턴, 팔십.” 그러자 모든 목회자가 웃었다. 두 번째 사람이 말했다. “빌 월터, 백이십오.” 또다시 다들 웃었다. 이번에는 초년생 목회자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몰랐기에 이렇게 얼버무렸다. “잭 뷰캐넌, 오백사십일!” 그런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목회자가 모임에서 으레 주고받는 농담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평소 관례대로 자기 이름과 교인 수를 밝히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교회 사이즈를 두고 사역의 성공 여부를 따지는 오늘날의 목회 세태를 조소하는 관례였다.


물론 목회자의 교만이 만연해진 오늘날 상황은 결코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 인간의 마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교만의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목회자가 우쭐해지면, 언제나 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난다. 때로는 친구의 질책 정도로 미묘한 수준에서 결과가 나타난다. 또는 목회 자격을 상실하고 사역 전체를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그 결과가 끔찍할 때도 있다. 이 아티클을 쓰는 나 역시 먼저는 내 자신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직 난 젊은 사역자로서 교만하고 건방진 태도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유혹을 쉽게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통해 그러한 죄의 유혹과 싸우자고 동료 목회자에게 간청하면서 내가 쓰는 글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교정하는 데 부드러운 지침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자기 과시에 빠지는 목회자


교만은 목회 현장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에 따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중 정말로 포착하기가 어렵지만 그 결과는 불치병처럼 치명적인 방식이 있는데, 바로 목회자의 자기 과시다. ‘자기 과시’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 설명해 보면, 자신을 인위적으로 혹은 거짓으로 꾸미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신을 타인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스스로를 뽐내는 태도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과장되고 그릇된 자기 이미지를 만들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목회자의 자기 과시는, 자신의 영성이나 업적 또는 영향력이나 존재감 따위를 부풀리기 위해 행해진다.


이와 같은 자기 과시는, 우리가 그저 다른 사람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에서 교회 규모라든가 최근에 이룬 업적을 살짝 언급함으로써 매우 미묘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 혹은 지난주 설교에서 몇몇 성도가 ‘아멘’으로 반응했던 문장을 이야기함으로써 순식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아니면 인터넷에 자신의 선행을 선전하거나 목회 현장에서 얼마나 수고하는지를 아름답게 묘사하여 마치 성도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헌신하는 사람처럼 자기를 드러내려는 모습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죄악된 마음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이려고 한다. 비록 우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 행하는 잘못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러한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한지는 충분히 깨닫지 못한 채로 살 수도 있다.


교만과 겸손


그렇다면 교만이란 대체 무엇일까? 바울이 로마서 12장 3절에서 언급한 말을 빌린다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타인보다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교만이다. 스튜어트 스콧(Stuart Scott)은 교만을 자기 숭배의 한 형태로 정의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선하고 올바르며 칭찬받을 만한 일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라고 (혹은 그런 사람인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또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해내는 사람이며 모든 일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혹은 그런 사람인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한마디로 모든 일이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통하여,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선한 일의 참된 근원이며 성취자이실 뿐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만이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롬 11:36). 그러므로 교만을 드러내는 일은 하나님 자리에 스스로를 세우려는 죄악에 다름 아니다. 즉 그분을 모독하며 우상 숭배하는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구절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잠언 6장 16-19절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을 열거하는데, 그중에 첫 번째로 '교만한 눈'을 언급한다. 또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악한 행실'과 똑같이 취급하시며(잠 8:13), 그 결과가 '치욕'과 '멸망'이라고 경고하신다(잠 11:2; 18:12). 나아가 교만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도 기록되어 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 16:5).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높이는 자가 낮아지게 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23:12).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런데 성경은,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미워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약속도 함께 제시한다(약 4:6; 참고 시 138:6; 잠 3:34; 벧전 5:5). ‘겸손’은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에 대해 죽는 상태를 일컫는다(눅 9:23; 갈 2:20).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서로를 대할 때 겸손한 태도를 보이라고 권면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이처럼 바울은 우리 마음의 낮아짐을 겸손이라고 보았다. 그렇다고 우리를 바닥까지 낮추어 아예 일으키지 않으려는 게 하나님의 목적은 아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이는 모든 신자, 특히 목회 현장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진리다.


목회자의 겸손에 대한 요청


겸손히 사역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가 맡기신 모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쉬지 않고 수고하셨다(요 5:30; 12:49; 17:1-5). 그러면서 자신의 사역은 스스로를 내주기 위한 섬김이라고 선언하셨다(막 10:45). 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다(요 13:14-15). 이처럼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바로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회 사역의 모델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타락하고 죄악된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약하고 불안정하다. 나는 목회자가 자기를 과시하려는 마음속에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간절한 열망이 왜곡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목회는 힘든 일이고, 그에 수반되는 온갖 고초를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만족과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자들이다(고후 3:4-5). 그러므로 열심히 애써 수고한 후에 사람의 칭찬을 구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베드로가 권하였듯이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벧전 5:5).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기에 이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잠 27:2). 그리고 늘 불안한 마음으로 다른 이와 경쟁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기에 이 권면도 새겨야 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6).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추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따라오는 인파에 둘러싸여 칭찬과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에게 찾아오는 교만과 싸우며 그에 반응하였는지 다음 이야기가 잘 보여 준다.


“다른 데서는 듣기 힘든 아름다운 열변으로 찰스턴 시에서 설교를 마친 휫필드 목사는 강단을 내려와 교회 밖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누군가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방금 들은 훌륭한 설교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오 휫필드, 너무나 감명 깊은 설교였어요.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휫필드는 우쭐하기는커녕 매우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이렇게 답했다. ‘형제여, 한발 늦었습니다. 강단을 내려오기 전에 마귀가 벌써 그 말을 하더군요.’”


친애하는 동료 목회자여, 이제 교만과 가식의 탈을 벗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그분만을 높이도록 하자.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말이다(미 6:8).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Humility in Ministry

번역: 장성우

우리는 타락하고 죄악된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약하고 불안정하다. 나는 목회자가 자기를 과시하려는 마음속에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간절한 열망이 왜곡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Nate Pickowicz

네이트 피코비치는 뉴햄프셔주 길맨턴아이언웤스에 있는 Harvest Bible Church의 목회자로 'Why We're Protestant'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저술하고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