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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믿음의 세 가지 요소
by Guy Richard2021-01-17

믿음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정통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구별함으로써 답변해 왔다. 곧 지식을 의미하는 '노티티아'(notitia)와 동의를 의미하는 '아센수스'(assensus), 그리고 신뢰를 의미하는 '피두키아'(fiduci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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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어요, 믿는다고요. 그게 어리석지만, 믿는단 말이에요.” 고전적인 크리스마스 영화인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 1947)에서 어린 수잔 워커가 말했던 유명한 대사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에서 흔히 믿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잘 보여 준다. 캄캄하여 앞이 보이지 않아도 도약해 보는 일, 아무 근거도 없지만 한번 신뢰해 보는 일이 세상이 말하는 믿음이다.


하지만 믿음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성경은 믿음을 설명할 때 비이성적이거나 어리석은 결단으로 말하지 않는다. 맹목적인 신념이라든가 하나님과 친밀하다고 여기는 주관적인 느낌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느낌이나 신념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은 수많은 군중 가운데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나 한 사람을 골라내 그 사람에게 심장절개술을 맡기는 일이나 다름없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그건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정통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구별함으로써 답변해 왔다. 그리고 세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라틴어 단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해 왔다. 곧 지식을 의미하는 ‘노티티아’(notitia)와 동의를 의미하는 ‘아센수스’(assensus), 그리고 신뢰를 의미하는 ‘피두키아’(fiducia)다.


노티티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첫 번째 요소는 노티티아, 즉 지식이다. 이는 진정한 믿음이란 어떤 내용, 이를테면 지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내용을 포함한다는 의미다. 결코 공허한 대상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게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믿음은 근본적인 사실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한다. 우리는 이 요소를 성경의 여러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러한 본문은 흔히 ‘~을 믿나이다’라는 문형으로 표현되며, 이어서 특정 종류의 교리적 진술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문으로 로마서 10장 9절을 들 수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밝힘으로써 믿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20장 31절도 믿음의 내용을 이렇게 명시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한 예문에서 우리는 믿음에 교리적 내용이 수반되고 있음을 본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믿음은 특정 진술을 믿는 일을 우선적으로 의미한다. 앞선 예문에서 그 진술은 “하나님께서 그(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으로 각각 주어진다.


아센수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두 번째 요소는 아센수스로 불리는 동의다. 이 요소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이 객관적으로 사실일 뿐 아니라 그로부터 개인적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지성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어떤 내용을 단순히 아는 지식만으로는 믿음이 되기에 부족하다. 우리는 그러한 내용이 사실이며 또한 우리의 필요를 실제로 만족시킨다고 믿어야만 한다. 이러한 믿음의 요소는 요한복음 5장 46-47절, 8장 31-38절 및 45-46절, 그리고 10장 37-38절과 14장 11절 등의 본문에 묘사되어 있다.


피두키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세 번째 요소는 피두키아, 바로 신뢰다. 이 요소는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요소가 빠지면, 믿음은 그저 지성적인 활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치 예수님에 관한 사실은 알고 있어도 그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는 싫어 결국 그분을 거절하고 마는 귀신들의 ‘믿음’과 같다(약 2:19; 마 8:29). 따라서 이 요소는 복음에 제시된 그대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라든가(요 3:15-16; 롬 9:33; 10:11) 그분을 의지하는 믿음(시 71:5-6; 잠 3:5-6),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요 6:40; 히 12:1-2), 또는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믿음(딤후 1:12; 마 11:28; 시 37:5) 등을 설명하는 본문에서 이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믿음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한 예화


다음에 소개하는 예화를 한번 생각해 보자.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이 매우 광활한 지뢰밭 한가운데 갇힌 세 사람이 있다. 이중에 한 명은 마구잡이로 한 길을 선택해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방향을 따라 나선다. 물론 이 경우는 믿음이 아니라 서두에서 언급했던 어리석은 행동을 보여 주는 예시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참된 믿음은 지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결코 맹목적일 수 없다.


이어서 다음 상황이 벌어진다. 곧 헬리콥터 한 대가 지뢰밭에 남겨진 두 사람 위로 날아오더니 거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가 어느 길로 그 밭을 통과할 수 있는지 알려 준다. 그러자 두 사람 중 한 명이 그 조종사의 말을 따라 망설이지 않고 지뢰밭 사이를 헤쳐 나간다. 이 경우 또한 믿음의 예시가 될 수 없다. 물론 이번에는 (조종사가 알려 준 정보에 대한) 지식과 (그 정보를 사실로 간주하고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되겠다고 여긴) 동의에 근거한 행동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행동은 (알지 못하는 조종사가 알려 준 불확실한 정보에 따른) 부족한 지식에 근거하고 있기에 여전히 맹목적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믿음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대상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


이제는 최종적으로 남겨진 사람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떻게 지뢰밭의 탈출 경로를 조종사가 알게 되었는지, 왜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지, 또 얼마나 확실히 그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조종사가 안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본다. 나아가 자신이 아는 지인 중에 조종사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알아본다. 심지어는 조종사가 알려 준 방향으로 돌멩이를 던져서 폭발물이 정말 없는지도 테스트해 본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그 사람은 충분한 지식을 확보해서 헬리콥터 조종사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지식(노티티아)과 그 지식에 대한 동의(아센수스)에 근거하고 있는 신뢰(피두키아)가 비로소 참된 믿음을 완성한다. 이러한 믿음은 전혀 어리석지 않으며, 오히려 전적으로 이치에 부합하다고 할 수 있다.


행함으로 증명되는 믿음


믿음의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주어졌을 때, 그 모든 요소는 필연적으로 바른 행함을 통해 드러난다. 위에서 소개한 예화를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마지막에 남겨진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믿음이 진실하다거나 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만일 그 사람이 원래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하여 헬리콥터 조종사의 말을 거부한다면, 혹은 자기 스스로 생각한 방향을 따라 길을 나서기로 한다면, 그는 조종사의 말을 실제로 믿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헬리콥터 조종사의 말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그는 조종사가 알려 준 방향을 따라 길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조종사의 인도를 따라갈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믿음의 진정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노티티아, 아센수스, 피두키아가 모두 갖춰졌을 때, 참된 믿음이 이뤄진다. 그리고 참된 믿음이 형성되면, 바른 행함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바른 행함은 믿음을 구성하는 부분이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다. 즉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이지만 그 믿음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바른 행함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원제: What Faith Is and Is Not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장성우

믿음의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주어졌을 때, 그 모든 요소는 필연적으로 바른 행함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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