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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증오와 약함, 희망: 인종갈등 속 목회에서 배우자
by Steven Lee2021-08-28

우리가 사는 오늘이 킹이 연설을 하던 1963년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그의 꿈이 현실이 된 시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여전히 폭력, 적개심, 분열, 편견, 인종적 적대감, 원한, 분노, 냉담함, 무관심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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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랄 때에도 우리 동네에서 인종 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주제였지만, 오늘날처럼 격렬하고 심각했다고는 기억하지 않는다.


거의가 다 백인인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나는 “칭크”(chink) 또는 “국”(gook)이라고 불리곤 했다(역자 주: 칭크와 국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반에서 어떤 아이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지껄이면서 나의 가늘게 찢어진 눈을 흉내 내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 지역에 난민으로 들어온 동남아 학생들과 나는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나는 놀이터와 농구장에서 흔히 쓰는, 인종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말들을 웅얼거리듯 슬프게 지껄이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이제 목사가 된 내게 인종, 인종주의 그리고 인종간 화합을 이야기 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양극화된 주제 중 하나를 건드리는 것인데, 그건 일반 사회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심지어 교회에서도 다르지 않다. 누구나 나름의 생각이 있고 누구나 다 지지하는 입장이 있기에, 인종 문제는 승자 없는 패자만 나오는 주제라고 느낄 정도이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만큼이나 분열적이고, 적대적이며, 취약하고 또 도전적이면서도 복잡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주말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의 사역과 비전을 기억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근거로 여전히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다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1963년 8월 28일, 링컨 메모리얼에서 행한 연설, “나는 꿈이 있습니다”에서 킹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언급했다. “큰 시험과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 … 박해의 폭풍을 경험하고 또 경찰의 잔혹함에 시달린 사람들 …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고통을 당한 사람들 …” 그럼에도 킹은 연설을 듣는 이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이렇게 당부했다.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말합니다. 절망의 계곡에서 몸부림치지 말자. 우리가 오늘과 내일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드림에 깊은 뿌리를 박은, 바로 그런 꿈 말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지금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진실의 강령대로 살아가는, 그런 날이 있을 것이라는 그 꿈이 내게는 있습니다.

킹은 그가 꾸는 꿈이 현실이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우리가 사는 오늘이 킹이 연설을 하던 1963년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그의 꿈이 현실이 된 시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여전히 폭력, 적개심, 분열, 편견, 인종적 적대감, 원한, 분노, 냉담함, 무관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절망에 빠지는 대신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지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또 단지 마틴 루터 킹의 꿈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은 꿈,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가진 모두에게 다가오고 있는 종말 계시의 현실(the end-time Revelation reality)이라는 더 나은 꿈을 위해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박은 꿈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준 권위에 힘입어 모든 믿는 자와 지역 교회는 온 세상을 제자로 만들어야 하는 부름을 받았다(마 28:18-20).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어 제자를 만드는 이 글로벌 미션은 세상의 모든 민족으로 구성된 천상의 합창단, 다양성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합된 그 모습을 통해 절정에 이를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우리를 위한 이 영광스럽고 종말적이며 또 그리스도를 높이는 성경적 꿈을 이렇게 요약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

이것이 끝이다. 모든 나라가 다 나아올 것이다. 모든 족속과 모든 민족이 다 나아올 것이다. 모든 언어가 다 등장할 것이다. 거기에 이등 국민은 없다. 엘리트도 없다. 오만함과 적대감과 증오도 없다. 당신은 이런 광경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날에는 모든 잘못이 다 바로잡힐 것이다. 모든 원한, 오해, 헛점, 완악함, 적대감, 인종적 선입관, 시스템적 불법, 그리고 개인적인 죄성까지 모두 다 바로잡힐 것이다. 어떻게? 예수님이 자신을 믿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그의 피를 통해서 죄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런 구원의 무료 선물을 거부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재판정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날에는 모든 분열, 불일치, 그리고 적대감이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이들 위로 쏟아내리는 그의 보혈로 인해 다 사라질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위한 교훈


당신이 이런 미래를 정말로 믿는다면, 그런 미래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이 미국에서 인종 문제에 대한 해법이 생길지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예상하기로 나의 사역이 끝날 때가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노예제도, 시스템적인 인종차별, 불의, 경찰의 잔혹함 그리고 인종간 적대감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인이자 목사로서 나는 큰 슬픔을 느낀다. 너무도 느리게 또 힘들게 움직이는 이런 잔인한 현실에 탄식한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이런 현실이 끝을 맞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감사한다. 다음과 같은 날이 올 것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 여기에서도 성경적인 정의를 이뤄내는 주도자가 될 수 있으면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정의를 완벽하게 구현할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살 것이다.


그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종족, 방언, 언어, 국가로 구성된 다민족 모임에 대한 이 영광스런 종말의 비전을 더 사랑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개인 생활, 교회, 가족 및 지역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야 한다. 다양성의 연합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교회를 목회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오로지 우리 구세주에게만 우선순위로 맞추며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다음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한다.


1. 다양성을 사랑하고 추구하라

존 파이퍼(John Pip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에게 교회에서 만나는 인종적 다양성이 주는 아름다움과 인종적 다양성이야말로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디자인의 일부라는 확고한 성경적 확신이 실종된 상태이다. 교회 속 인종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나라의 민족적 다양성에 대해서 적대적인 그리스도인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내가 목격하는, 다른 인종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적대감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을 화해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깊고 성경적인, 십자가 중심의 우러남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올바를지 모르는 다양성의 관용이 가진 아주 얕은 수준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요한계시록 5장 9-10절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핏값으로 사신 다양한 인종의 신부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필요하다.


2. 정의를 사랑하고 추구하라


하나님이 성경에서 드러낸 원칙에 따라서 옳고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정의이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한다. 이사야 30장 18절을 보라.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시편 37편 28절도 보자.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완벽한 정의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한다.


하나님은 동시에 그의 백성을 통해서 이 세상에 정의를 이루길 원한다. 시편 106편 3절을 보자.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잠언 21장 3절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공의와 의를 행하는 것은 불법을 참는 게 아니다. 대신 우리는 이사야가 받은 환상에 주목해야 한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7).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날 참된 성경적 정의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이 땅이 아니라 다시 오실, 완벽하게 정의로운 그분에게만 희망을 가지고 사는 존재들이다.


3. 외부인(Outsider)을 사랑하고 추구하라


우리는 더 이상 국경 남쪽의 이웃들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 박해, 대량 학살 또는 정치적 불안에서 도망치는 난민들이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백성들에게 나그네를 사랑하고(신 10:19), 그들을 압제하지 말고(슥 7:10),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돌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시 146:9) 명령했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 잠시 머무르는 나그네이자 또한 유배자이면서도(벧전 2:11), 상상할 수 없는 은혜로 구원받아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 우리들은 얼마나 열심을 다해 압제받고 취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할까?


우리는 난민 위기와 이민 논쟁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 아니라 사랑과 인내, 친절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왜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


예수님은 “미움으로 나누는 벽”을 허물었다(엡 2:14). 우리가 보여주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 우리가 드러내는 이 세상에는 없는 타인을 향한 사랑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요 13:35). 아무리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정치 정책, 문제 해결 전략, 교회와 선교 단체를 포함해서 특정 문제를 어디까지 다뤄야 하는지의 정도 그리고 무엇이 가장 현명하고 유익하며 시기적절한 경로인지 등등에 대해서 얼마든지 서로 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지체로서 서로를 향한 사랑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결코 분열과 적대감이 생길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하나됨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킬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의미있는 발걸음을 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좌와 우로 나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의 왕국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찬 행동을 하도록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또한 우리 모두가 달성하려는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전략, 전술 및 이해 수준이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마침내 그의 왕관 주변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의라는 옷을 입고 마침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되는 마지막 날에 이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인종 차별이라는 문제와 관련한 대화에서 완전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다루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누구나 다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더 높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다 동일한 장소에 서서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이 땅에 살았던 동안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연약함과 신실한 기도, 수고함과 적극적 참여를 통해 그분의 종말 사명을 진전시키는데 참여할 수 있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될 것이다.


오 주 예수님이시여, 빨리 재림하소서. 만일 그 재림이 지체된다면, 그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우리가 서로의 팔을 꽉 잡고 당신이 주시는 능력으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당신이 오는 그날까지, 당신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원제: Hostility, Fragility, and Hope: Lessons from Pastoring Through Racial Tensions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지체로서 서로를 향한 사랑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결코 분열과 적대감이 생길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하나됨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킬 능력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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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teven Lee

스티븐 리는 베들레헴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니애폴리스 베들레헴 침례교회 노스캠퍼스의 설교 담당 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