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기대를 성취하는 하나님 나라
by Iain Duguid2021-07-13

하나님 나라, 또는 마태복음 식으로 표현하면 ‘천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새것과 옛것 모두와 관련이 있다. 그 나라는 천지창조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지만,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 땅에 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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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지상 사역을 시작하셨다(마 4:23). 그러나 복음서 어디를 살펴봐도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명확히 제시하시는 장면을 찾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청중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구약성경의 가르침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정의하실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알고자 했던 문제는, 예수님이 오신 일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약의 기대에 부합하는가였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 하나님 나라, 또는 마태복음 식으로 표현하면 ‘천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새것과 옛것 모두와 관련이 있다. 그 나라는 천지창조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지만,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 땅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 아티클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구약적 기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그 나라가 새롭게 실현된 방식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하나님 나라는 그분의 창조 행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만유 위에 계신 왕으로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만물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하늘의 모든 별과 행성을 통치하시는데, 이 통치는 낮과 밤과 계절과 연한을 이루는 해와 달의 움직임을 통해 반영되도록 하셨다. 그분은 또한 지구와 그 안에 있는 전 피조물을 통치하시는데, 이 통치 역시 아담과 하와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며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신 사명을 통해 반영되도록 하셨다. 처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 위대한 왕의 법도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특별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주어졌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던 최초의 시절은 바울이 그 나라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묘사했던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되자, 모든 게 상실되었다.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인간의 반역이 침범했던 것이다. 그로써 의가 불의로 대체되어 왕과 그 백성이 함께 누리던 평강과 희락의 조화로운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류를 향한 자신의 은혜로운 통치를 다시 확립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이교 문화가 지배하던 지역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그에게 새롭게 거주할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출애굽 시대가 되었을 때는, 아브라함 자손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그들을 향해 자신의 특별한 백성이 되리라고 선언하셨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백성이자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출 19:5-6).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상의 목자가 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지혜롭게 다스릴 지상의 목자도 허락하셨다(신 17:15). 또한 자기 백성을 위해 정의와 공의로 온 세상에 주권을 행사하기로 작정하셨다(시 99편).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일찍이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반역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듯이, 이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분의 주권에 도전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곧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분에게 반역하여 언약을 깨뜨리고 다른 주인을 대신 섬기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도하라는 사명을 부여하며 세우신 왕들도 우상을 따로 세워 숭배하게 함으로써 그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의와 평강과 희락 대신 언약의 저주를 경험하며 마침내는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었다. 위대하신 왕이 성전, 즉 예루살렘에 있는 지상의 처소에서 떠나시자 그 장소는 무방비 상태로 적군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겔 9-10장).


다행히도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의 범죄로 역사가 종결되게 놔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유다가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도 선지자들은 새로운 미래가 도래하리라고 선언했다. 곧 새로운 언약에 기초한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리라고 예언했다(렘 31:31-33). 더 나아가 하나님이 친히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보이시는 날이 오리라고 선포했다(사 65:17). 이는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평강과 풍요를 다시금 경험할 수 있는 창조 세계를 의미했다(사 11:6-9). 또한 하나님이 새로운 출애굽 사건을 일으켜 이전까지 마른 뼈와 같던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도 주어졌다(겔 37장). 이와 같은 새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새로운 왕에 의해 지도를 받게 되며(겔 34:23-24), 그 결과 이방인까지도 그분의 백성에 속하리라고 예언되었다(사 2:2-4; 56:6-7).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작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바벨론 유배에서 귀환한 후에도 그 백성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왕도 없이 생존해야 했다(슥 4:10). 사실 그들은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 종말이 아직 멀었으며 하나님과 그 백성이 함께 다스리는 통치가 시작되려면 길고 험난한 여정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나라를 종식시킬 새로운 나라는 긴 시련의 역사를 거쳐야만 도래한다는 예언을 이미 들었던 것이다(단 8장). 그러한 차원에서 앞서 겪은 유배 기간은 그와 같은 시련과 환난을 잠시 보여 주는 시간일 뿐이었다. 다니엘은 환난의 때가 단지 칠십 년이 아니라 “일흔 이레”의 기간이 되리라고 예언했다(단 9:24; 참고 마 18:22). 또한 그는 하나님 나라가 작은 돌 하나로 시작하여 온 세상을 지배하는 태산을 이루게 되리라고도 예언했다(단 2:34-35). 그래서 종국에는 그 나라에 대적하는 어떠한 인간의 반역과 영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나라가 기필코 승리하게 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지상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은 바로 이러한 구약의 기대를 배경으로 삼아 말씀을 전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새롭고도 구체적인 방식으로 임했다고 가르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을 세우고자 사람들 가운데 몸소 거하셨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분이 오심으로써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도 함께 임하게 되었다(눅 4:18-19). 바로 이 하나님 나라는 새 이스라엘이신 예수님 자신의 출현을 통해 임하는 나라였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계보는 그분이 곧 새 이스라엘이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또한 다윗의 아들로서 바벨론 유배 이후로도 남은 자임을 보여 준다(마 1:2-16). 그래서 예수님은 과거 이스라엘과 같이 어린 시절에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결국에는 그곳을 빠져나오신다(마 2:13-15). 또한 세례의 물을 통과하시고 사십 주야를 광야에서 보내신 후에 자기 백성에게 율법을 주기 위해 산에 오르신다(마 3-5장). 이는 모두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보여 주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이렇듯 그분은 이스라엘이 지키지 못했던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다(마 5:17). 또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죄와 사망의 속박으로부터 해방하시는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고자 하셨다(눅 9:31). 그리하여 그분 안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뿐 아니라 다른 이방인까지 모두 하나가 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세워졌다(요 4장; 엡 2:11-22).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다시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는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임하기는 했지만, 그 나라의 최종 완성은 아직 미래의 소망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그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마 6:10). 그리고 그 나라가 혹 더디 임할지라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깨어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5장).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는 그 백성에게 평강과 희락을 이미 가져다주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아직 목격하지는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죽음과 부활을 겪으심으로써 이미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계 11:15). 그러나 우리는 아직 새 예루살렘에 당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에덴동산의 모습과 인류의 역사가 최종적인 완성에 이르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 결말을 지금 당장 볼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결론은 확실하다. 이미 돌 하나가 세상의 권력 구조로 세워진 신상의 발을 부서뜨리며 그 파편을 공중에 먼지처럼 흩어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단 2:34-35). 또한 세상의 왕과 제국이 스스로의 영광과 자태를 뽐낼지라도 그 종말이 머지않았음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단 5장). 결국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히 존속한다.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우리는 가슴 뛰는 소망을 안고 승천하신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그분은 자신의 통치에서 비롯되는 열매인 의와 평강과 희락을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하여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부름 받은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며 그 통치를 온 세상에 편만하게 이루실 것이다. 결정적인 전쟁은 이미 치러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그 승리도 명백해졌다. 이처럼 그분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임하였다. 그리고 그 통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원제: Old Expectations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장성우

하나님 나라는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임하기는 했지만, 그 나라의 최종 완성은 아직 미래의 소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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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Iain Duguid

이안 두기드는 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구약학 교수이며 온라인 학습 학과장이며, 펜실베니아주 글렌사이드에 위치한 Christ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이다. 그는 리베리아 선교사였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교회를 개척했고, 켈리포니아에 위치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와 Grove City College에서 가르쳤다. 대표 저서로 '크리스천이 사는 법'과 'The Whole Armor of God: How Christ’s Victory Strengthens Us for Spiritual Warfar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