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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심리학적 이유와 성도의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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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노승수 /  작성일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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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Waldemar Brandt on Unsplash

가짜뉴스는 왜 만들어지는가? 그것을 믿고 싶은 사람 때문에 만들어진다. 소문이란 원래 사실을 따라 퍼지지 않고 감정을 따라 퍼진다. 내가 믿는 사람의 나쁜 소문은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로 반응하게 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나쁜 소문은 “내 그럴 줄 알았어!”로 반응하게 된다. 이미 믿고 싶은 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믿고 싶은 것에는 사랑과 미움이란 인간의 감정반응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데는 인간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아들러(Alfred Adler)는 “거짓말은 진실이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거짓말에 기울어지게 되는 데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짜뉴스는 우리 불안에 기생한다. 불안은 우리 내면에 적개심과 미움을 억압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해서 가짜뉴스가 혐오와 배제, 분노와 적대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각 나라마다 가짜뉴스와 거기에 따라 붙어서 혐오와 배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듣게 된 가짜뉴스는 우리가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폭제가 된다. 그렇게 가짜뉴스는 어느새 내게 사실이 된다. 가짜뉴스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그러면 어떻게 가짜뉴스는 우리에게 사실처럼 굳어지게 될까?


이것을 잘 설명해줄만한 심리학적인 실험이 있었다. 이 실험의 결과로 얻은 것은 “환상 진실 효과(The illusory truth effect)”라고 명명된 것이었다. 이 효과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믿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방어하기까지 하는 기제를 말한다. 1977년 미국 빌라노바(Villanova)대학과 템플대학에서 린 해셔(Lynn Hasher) 등이 고안한 실험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을 검증한 것이다.


피험자에게 60개의 문장을 주고 실험자들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물은 후에 2주 후에 2차로, 다시 2주 후에 3차로 참과 거짓을 묻는 것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했는데, 피험자들은 이미 읽은 익숙하고 친숙한 글을 얼마나 합리적인가에 관계없이 사실로 간주했다.1) 예를 들어, “첫 번째 공군 기지는 뉴멕시코에 세워졌다”, “농구는 1925년에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 등과 같은 내용이었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가짜뉴스에 노출되면 “환상 진실 효과”로 인해 가짜뉴스를 진실이라고 믿을 뿐 아니라 사실로 방어하기에 이른다. 사람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세계관으로 해서 다른 것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가짜뉴스를 접했을 때, 인간의 인지과정은 새 정보를 이미 사실로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하기 때문에 논리적이라고 느끼게 되고 반복된 새 문장은 반복되지 않은 문장에 비해 인지과정에서 처리하기 쉽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반복되고 익숙해진 것이 사실관계 유무와 관계없이 더 진실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가짜뉴스는 신자의 삶에서 소비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면 신자는 가짜뉴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요시다 도오루의 저서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원제 : 감정의 정치학)’에 이런 표현이 있다. “인간은 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으면, 합리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다.” 이 표현은 인간이란 존재의 정치 활동에 있어서 옳음과 좋음이 함께 경험되는 세계관이 있을 때, 합리성의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르가 다르지만 이 비슷한 말을 한 신학자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신앙감정론’에서 한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감정에 있다”는 표현이다. 원래 칼빈은 신앙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고하게 아는 것이며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신 약속의 진실성에 근거하는 것이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 지성에 계시되며 우리 마음이 인친 바 된 것”(Inst. 3. 2. 7.)이라고 말한다.

 
정치가 흑색선전과 온갖 우상이 난무하는 장이 되는 이유는 인간이 감정적이고 뚜렷한 목적과 방향이 없을 때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다(잠 29:18). 인간 내면의 불안으로 인해서 가짜뉴스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와 같은 역병이 나돌면 인간의 불안은 더 극대화되고 그 기저에 깔린 적대감과 혐오는 가짜뉴스를 명분으로 세상에 역병처럼 퍼진다.

이런 문제에 대한 신자의 대처는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고하게 아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단지 지성으로만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옳음의 자리에 우리 좋음이 함께하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다. 과거 이 나라의 세계관 운동은 학적이었다. 최근 세계관 운동이 주목하는 것은 습관이다. 습관이란 좋음을 따라 형성되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옳음이 그것이 우리 정서로서 활성화되는 그 자리에 참된 신앙이 있고 이 신앙의 자리야 말로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________________

1) Hasher, Lynn; Goldstein, David; Toppino, Thomas (1977). "Frequency and the conference of referential validity"(PDF).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16 (1): 107–112. doi:10.1016/S0022-5371(77)80012-1.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6-05-15. 

작가 노승수

노승수 목사는 경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MDiv),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핵심감정 시리즈(탐구, 치유, 성화, 공동체)’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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