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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마지막 설교에서 배우다
by Steve Bateman
2023-08-22
예수님의 마지막 공식 설교는 서기 33년 3월 31일 화요일 또는 그즈음에 있었다. 마태복음 23:1-39에 나오는 설교 내용은 위선, 특히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교만한 설교자에 대한 경고이다. 4월 3일 금요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가 역사상 가장 비범한 겸손함을 보여주며 예루살렘 도성 밖에서 처형당했다.그의 마지막 설교와 마지막 호흡 사이에는 딱 사흘이라는 간격이 있었다. 모든 목사는 마지막 설교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달리 우리 대부분은 무슨 설교를 할지 알 수 없다. 다음은 역사에서 만나는 몇 번의 사례이다. 장 칼뱅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개혁을 이끈 칼뱅은 성경 48권을 주석했다. J. I. 패커는 기독교강요를 “문학계의 불가사의”라고 불렀다. 이 모든 집필 과정에서도 칼뱅은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빡빡한 설교 일정을 유지했다. 주일에 두 번, 주중에 여러 번 설교했는데, 평균 “두 주마다 총 열 번의 새로운 설교”를 했다.1564년 2월 6일, 칼뱅이 의자에 앉은 채로 교회로 옮겨졌을 때, 모든 사람은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테오도르 베자는 칼뱅이 “천식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설교했다고 썼다. 육체의 고통과 연약함 속에서 이 위대한 개혁자는 마지막 설교를 선포했다. 나는 그날 칼뱅이 설교한 내용을 찾지 못했다. 단, 그는 임종을 앞두고 여호수아서 주석을 완성했다. 그 서론에서 칼뱅은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재능 있는 지도자들을 일으키셨다가 없애시기도 한다고 썼다. 그리고 “그러나 그분은 그 자리에 꼭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항상 준비하신다. … 그의 강력한 능력은 결코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보기시에 좋은 적절한 후계자를 때에 그때그때 맞춰서 찾아내신다”라고 덧붙였다. 며칠 후 1564년 5월 27일에 칼뱅은 54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리고 아무런 표시도 없는 무덤에 묻혔다.존 플라벨칼뱅의 사역은 대부분의 미국 목회자라면 결코 견디지 못했을 환경에서 무려 41년 동안 설교한 존 플라벨에게 영향을 미쳤다.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은 그는 성경 강해와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로 유명했다. 그러나 찰스 2세 치하에서 국가는 설교 내용과 예배 형식, 그리고 모임 장소까지 일일이 지시했다. 국가의 정책에 반대했던 플라벨은 교회에서 파문당했고, 5마일 이내 교회 접근이 금지되었다. 그는 자기 집에서든, 다른 사람의 집에서든, 밤늦은 숲에서든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돌보며 여러 해 동안 불법 설교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를 포함한 후세의 설교자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 여섯 권의 두꺼운 책을 출판했다. 1691년 6월 21일, 엑서터를 방문한 플라벨은 고린도전서 10:12을 설교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닷새 후에 그는 64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죽었다. 조나단 에드워즈플라벨은 “모든 미국 신학자 중 가장 뛰어난”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에드워즈가 살아있는 동안 설교집 17권이 출판되었지만, 그 이후로 더 많은 설교집이 나왔다. 그의 모든 작품은 현재 예일대학교출판부(Yale University Press)에서 출판한 26권에 담겨있다. 에드워즈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설교인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잡힌 죄인들”로도 유명하다. 1758년 1월 15일 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에서 행한 고별 설교는 예일 컬렉션에 포함된 그의 마지막 설교이다. 설교 본문은 누가복음 21:36이었다. 현존하는 내용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율법과 복음을 제시하는 에드워즈 특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회중에게 모든 사람이 심판 때에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날에는 “두려운 일이 많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장차 올 그 두려움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권고했다. 두 달 후, 천연두 접종에 실패한 그는 1758년 3월 22일 54세의 나이로 프린스턴에서 죽었다. 조지 휫필드역사가 마크 놀은 영국 태생의 조지 휫필드를 “조지 워싱턴 이전까지 가장 잘 알려진 미국인”으로 평가한다. 설교를 들으려고 온 군중을 수용할 건물이 없었던 당시에 그는 종종 옥외에서 설교해야만 했다. 평생 그는 18,000회 이상의 설교를 했고, 두 대륙에 걸쳐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무려 천만 명을 넘었다. 1770년 9월 29일, 뉴햄프셔 엑서터에서 휫필드는 무려 6,000명의 청중을 향해서 두 시간 동안 노천 설교를 했다. 그 설교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외쳤다. “공로로! 공로로! 사람이 공로로 천국에 간다고? 차라리 모래로 만든 줄을 타고 달에 오르라고 하십시오.” 그날 밤 피로에 절어서 잠자리에 든 55세의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찰스 스펄전역사상 설교가 가장 널리 읽힌 설교자인 스펄전은 다른 어떤 목회자보다도 설교가 많이 인용되었다. 2,500만 단어로 이뤄진 그의 설교가 지금 63권의 인쇄본으로 제공된다. 이 런던 목사의 삶은 고통, 반대, 상실, 우울, 육체의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주는 통풍을 “바이스에 발을 넣고 최대한 조이는 아픔”으로 묘사했다. 그러함에도 그는 주일마다 강단에 서서 설교했다. 1891년 6월 7일, 병든 스펄젼은 사무엘상 30:21-26을 본문으로 그의 마지막 설교를 선포했다. 그가 평생의 고통을 통해 배운 것으로부터 교인들은 많은 유익을 얻었다.믿음이 적은 자들, 낙담한 자들, 두려움이 많은 자들, 마음이 연약한 자들, 노래하는 것보다 한숨을 더 많이 쉬는 자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들, 거룩함에 대한 열망은 크지만 영적 투쟁에서 항상 패배하는 자들이여,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자녀에게 사랑과 은혜와 호의를 베푸실 것입니다.1892년 1월 31일, 프랑스 남부의 따뜻한 곳에서 회복 중이던 스펄전은 57세의 나이에 통풍과 신부전으로 죽었다. 마틴 로이드 존스대부분의 런던 교회가 쇠퇴할 때도 웨스트민스터 채플(Westminster Chapel)은 로이드 존스의 지도력 아래에서 성장을 구가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이래, 그의 사역은 그곳에서 30년 동안 계속되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그는 강해 설교를 고집했으며, 이를 “타오르는 논리”라고 정의했다.로이드 존스는 영국 전역에서 설교하면서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1980년 5월 18일, 그는 웨일스의 애버리스트위스에서 시편 2편을 설교했다. (그는 그 본문을 가지고 여러 차례 설교했는데, 그 하나는 온라인에서 들을 수 있다.) 암으로 약해진 몸을 이끌고서 그는 1980년 6월 8일 영국 바콤에서 여호수아 4:6을 가지고 마지막 설교를 했다. 7월 26일에 그는 이안 머레이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설교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매우 힘들 거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아뇨, 설교 못 해서 힘든 거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설교에 의지해서 살지 않았으니까요.”마틴 로이드 존스는 1981년 3월 1일, 81세의 나이로 죽었다.그들의 마지막 설교에서 배우는 네 가지 교훈1. 모든 목사는 마지막 설교를 한다.어쩌면 그건 최고의 설교도 또 훌륭한 설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지막 설교가 좋은 설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좋은 설교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디모데후서 2:15에 드러난 두 가지 특징은 기본이다. 바로 성품과 능력이다. 성품과 관련하여 설교자는 자신을 겸손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설교하는 내용을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설교자라면 디모데전서 3장의 기준에 따라 “책망할 것이 없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슬프게도, 위에서 다룬 사례가 공적인 삶에서는 이 기준에 모두 다 부합하는 건 아니다.) 능력에 있어서, 설교자는 말씀을 올바로 다뤄야 한다. 힘들더라도 주석 작업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 본문을 능숙하게 설명하고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2. 모든 목사는 불완전한 성화 상태로 마지막 설교를 할 것이다.맹점이 가져다주는 결함에서 자유로운 목회자는 없다. 그리고 그건 여기에서 논의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 설교와 마지막 숨결 사이 어느 시점에서 칼뱅은 “나는 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데 수없이 실패했다”라고 고백했다.이런 고백은 결승선을 앞에 둔 목회자 대부분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3. 모든 목회자는 마지막 설교를 좋은 설교로 만들 수 있다.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유명 목회자를 보면서 세상은 즐거워하고 조롱한다. 난파선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마지막 설교가 좋은 설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설교라는 것을 알고 하는 사람은 없다. 언제가 마지막 설교일지 모르는 우리는 모든 설교를 좋은 설교로 만들어야만 한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없다면, 아예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4. 모든 목회자는 섭리가 가져다주는 역경이 필요하다.많은 교인을 끌어모으는 목회자도 있다. 스펄전의 말을 빌리자면, “그분의 이름으로 위대한 일을 하십시오”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은밀한 곳에서 충실하게 수고한다. 그리고 채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잊힐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가 정죄하는 교만을 키우는, 숫자가 가져다주는 성공이라는 유혹이 언제라도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경과 성공을 같이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고후 1:9).겸손하게 하시는 그분의 자비로움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설교를 준비시키신다. 원제: You Don’t Know When Your Last Sermon Will B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청년회장” 목회
by 조성돈
2023-07-14
외령리는 충북 괴산군에 있다. 인터뷰를 위해 교회를 찾아가는 길이 정말 첩첩산중이다. 중간에 음료수라도 사 가려고 했는데 살만한 가게를 결국 만나지 못해 그냥 가야 할 만큼 깊었다. 마을에는 57가구가 있다. 최근 귀촌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45가구에서 이렇게 늘었다. 현재 교인이 20여명인데 원 토박이는 4명이고, 나머지는 귀촌한 이들이다. 그만큼 교회가 귀촌으로 인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목사는 40대였다. 교회에 부임한 지 이제 5년. 인상이 푸근했다. 손님 대접이라고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직접 커피를 내려 주고,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오랜 친구 만난 듯이. “특별할 것 없다”고 그가 말한 그의 목회는 그냥 그의 모습 그대로의 목회였다. 푸근하게 마을 청년으로 마을 가운데 들어가 사는 목회였다. 동네는 지하수를 수도로 연결해 썼다. 식수로 쓰기에는 냄새도 나고 흙탕물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정수기를 달았다. 좋았다. 주변에도 달아드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물한 개나 달아 주었다. 현재 관리까지 하는 곳은 열네 곳이다. 정수기를 달아 주니 서너 달에 한 번씩 가보아야 한다. 필터도 갈아주어야 하고 손도 봐야 한다. 그렇게 그는 마을의 세대들을 ‘심방’ 한다. 한 번은 자기 집에 LED 등을 달았다. 역시 좋았고, 또 마을 분들도 달아드렸다. 이건 한 집에 다섯 개도 달아야 하니, 쉽지 않았다. 예산도 필요했다. 교회에 요청해서 예산을 따로 세웠다. 그렇게 등을 사서 마을 세대들을 돌아다니며 달아드렸다. 형광등을 달고 살다가 더 환한 LED등을 다니 좋아들 하신다. 시골이다 보니 간식이 마땅치 않다. 논일 밭일 하다가 새참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빵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사택에 빵 굽는 기계를 들여놓았다. 새참 때가 되면 구운 빵을 들고 논으로 들로 나간다.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충북 괴산군 외령교회농촌에 있으면 마을사업도 자주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외령리에도 그런 일들이 있다. 이장님이 수고를 많이 하시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다. 그러면 역시 목사를 찾는다. 주변에 같이하자고 하고, 교인들 격려해서 함께 하면서 마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동네 와서는 내내 교회와 사택 수리를 했다. 교회 올라가는 계단도 새롭게 하고, 사택도 수리해서 이층으로 만들고, 교회 내부도 수리하고, 창고도 정리했다. 외부 교회의 지원을 받았다. 재정 지원도 받고, 자원봉사 단체를 통해서 인력 지원도 받았다. 그렇게 사택과 교회가 점점 번듯하게 세워졌다. 이렇게 해 놓으니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 어느 분은 지나가며 ‘이제 이렇게 지었으니 목사님 어디 안 가시겠네요’ 하더란다. 목회자가 자주 바뀐 교회였다. 교회 역사가 51년인데, 지금이 13대째다. 목사가 되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가는 그런 목회지였다. 목사가 되는 조건으로 담임 목회를 해야 하는데, 그 조건을 채우는 자리였다, 교회 옆에서 농사짓는 어르신은 여든이 넘으셨는데,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더란다. “내가 여기 농사지으면서 목사님을 몇 명 보낸 줄 알아? 일곱이야.” 눈앞에서 떠난 사람이 일곱이니 당신도 곧 떠나는 거 아니냐는 속내였다. 그런데 목사가 교회와 집수리를 하니 마을 사람들이 안심도 하고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아마 이제는 정착해서 사는 목회자가 왔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실제로 교회도 사택도 손볼 곳이 많았다. 전임 교역자들이 오래 살 생각이 없으니 그냥 살았다. 그래서 수리한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목회가 되다니…. 어쩌면 농촌교회는 정착하는 모습만 보여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외령교회의 목사는 그의 말 대로 ‘특별한 것 없는’ 목회일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청년회장처럼, 마을 어르신들의 손자처럼, 그는 그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그로써 농촌교회의 한 형태를 빚어냈다. 아마 담임목사의 인터뷰 내용이 그걸 잘 말해 준다. 그의 목회 철학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 것이 현재 농촌목회가 아닐까 한다. 부흥을 바라본다면 희망이 없는 지역이지만, 어르신들 모시면서 살아가는 정주형 목회, 귀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맞이하는 환대의 목회로, 외령교회의 ‘특별할 것 없는’ 그래서 더 특별한 목회는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꿈도 있고 계획도 있는데, 저는 그런 건 별로 없어요. 그냥 있는 곳에서 어떻게 그냥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까 그런 생각 정도만 하지. 어떤 분들은 도시에서 큰 목회하고 옛날 오대양육대주고 그런 얘기 했잖아요. 저한테는 그냥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탈 기독교 시대에 목회자-신학자가 필요한 이유
by Kevin J. Vanhoozer
2023-07-11
칼 마르크스는 한 때 “철학이 하는 일이라고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게 고작이다. 관건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라면서 철학을 향해 불평을 쏟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신학은 어떤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서 철학보다 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오늘날 신학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과거의 유물이라며 경솔하게 일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견해는 근시안적이다. 사실 목회자-신학자야말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이다(엡 4:8). 말씀으로 정보를 받고 성령으로 권능을 얻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해석하고 바꾸기 위해서 목회자-신학자를 쓰신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탈 기독교 세계라는 위기 가운데로 들어가 그 시대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제자를 훈련한다. 진행 중인 재난우리는 더 이상 기독교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 탈 기독교 세계의 숨길 수 없는 징후로는 기독교의 영향력 감소, 줄어드는 교인 수, 교회에 대한 존경심 저하, 우리 문화의 주요 요소인 신앙, 가치 및 관행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력 감소 등이다. 탈 기독교 세계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따로 구분해서 이해하고 반응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존 업다이크의 소설 In the Beauty of the Lilies에 나오는 목사처럼, 20세기 어느 시점에선가 서구 세계는 신앙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탈”(post)이라는 단어가 기독교를 재정의하는 속도는 말 그대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어떤 하나의 주장 또는 과학적 발견 때문에 기독교 시대가 종말을 맞은 건 아니다. 찰스 테일러의 A Secular Age는 사회가 세상을 이미지화하고 그 속에 인류를 자리매김하는 방식에서 볼 때, 탈 기독교라는 혁명은 내부적이었다고 말한다. 이유는 복잡하지만, 결과는 명백하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명백하게 느끼거나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이제 거의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과 현재가 전부이다. 탈 기독교 문화가 빚은 많은 결과 중 하나가 눈에 띈다. 문해력의 상실(post-literacy)이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그리고 종교 개혁과 인쇄술 이후로도 언제나 활자(word) 중심이었다. 그러나 탈 활자 문화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멀티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의사소통한다. 글자는 더 이상 자랑할 만한 매체가 아니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넘치는 문화에서 (장황한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집중하는 시간은 단 몇 분을 넘기지 못한다. 탈 기독교와 탈 활자를 합친 결과는 성경 문맹이다. 더 이상 성경 기독교의 문법, 이야기 또는 논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높은 관점을 갖는 것과 성경 속 66권의 다양한 책과 장르를 통일된 정경의 일부로 읽어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탈 기독교 문화에서 그리스도인조차도 성경을 잘 읽는 방법 및 해석상 불일치의 해결을 놓고 고군분투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뉴스를 소비하지만, 복음(좋은 소식)은 탈 기독교 세계에서 거의 들리지 않는다. 넘쳐나는 정보와 끊임없는 속보는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소식, 곧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우리 세상에 침입하고 있다는 진짜 속보에 대해서 둔감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생각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최초 대응자로서 목회자-신학자세속주의자에게 세상은 움직이는 물질이며, 그 물질은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 어느 정도 환멸을 느낄 정도로 디스토피아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문제의식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즐기다가 죽기를 원한다. 지금은 목회자-신학자가 최초 대응자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재난 상황이다. 이들이 긴급 상황과 위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도와야 한다. “최초 대응자”라고 하면 보통 소방관, 응급구조사, 또는 수색 및 구조 요원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목회자-신학자도 부서진 삶, 분열된 가족, 죽음, 절망의 전투가 벌어지는 치열한 참호 속에 있다. 그들은 윤리, 영성, 그리고 정치에 관한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교회의 성경 문맹은 목회자-신학자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위기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만든 사회이며, 목회자는 회중의 상상을 지배하는 이야기가 아버지가 성령을 통해 만물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려(엡 1:10) 아들 안에서 이루시는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 책임을 진다. 그렇게 함으로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고 화목하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후 5:17-19).목회자-신학자는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삶의 긴박함과 성경 읽기의 주석적 도전에 응답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루신 새로운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실재를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기뻐하는 것이다. 지역 교회: 성경적 해독력과 거듭난 기독교를 위한 장소지금은 절망할 때가 아니다. 교회를 재발명할 필요가 없지만 재발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학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모든 생각과 모든 사회적 상상이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더 깊이 파고들 때이다. 지역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드러내기 위해서 갖춰야 할 성경 읽기 능력을 배양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을 때만 지역 교회는 세상의 희망으로 남을 수 있다. 더불어서 교회를 통해서 독서 습관을 기르고, 또 읽은 말씀이 선포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신학자는 일정 부분에서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닫도록 돕는 사역을 감당한다. 즉, 그들이 기독교 문서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촉매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이름이 비롯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배우는 곳은 지역 교회이다.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도 우리가 함께하는 교회의 삶을 통해서이다. 그게 바로 탈 기독교 세계에서도 지역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의미이다. 탈 기독교 세계가 기독교를 재정의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일어나야 한다.그리스도의 통치는 새로운 인류의 선두에 선 사람들을 부르시고, 모으고, 또 화해시키실 때 가시화된다. 당신은 바람처럼 움직이는 성령의 능력을 볼 수 있는가? 기독교 시대는 반드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마르크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탈 기독교 세계가 되었다고 해서 결코 기독교 이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 세상은 이미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다”(시 24:1).원제:https://www.thegospelcoalition.org/article/post-christian-pastor-theologians/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탈기독교세계
목회자신학자
성경문맹
지역교회
산을 오르듯 한 걸음 한 걸음
by 박혜영
2023-07-08
제천 쪽에 있는 충주호에 가면 구담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남한강 뱃길을 따라 단양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이는 경승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산이라기보다는 절벽 형태로 서 있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아주 가파른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보통 계단이라 하면 한글 니은[ㄴ]이나 기역[ㄱ]자 모양 아닙니까? 그런데 여긴 계단 경사가 얼마나 심한지 알파벳 제트[Z]자 모양이었습니다. 위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오직 발 딛는 계단만 하나하나 보면서 올라갔습니다. 열 개 올라가면 쉬고, 열 개 올라가면 쉬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올라갔습니다.지난 20년을 돌아보면서, 그 계단이 떠올랐습니다. 매번 한 주씩, 한 주씩 오르다 보니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은 올려다보면 먼 미래처럼 보이고, 내려다보면 아득하기만 하여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세월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났다는 겁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여러 교인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20년이 지났다는 건 분명한데, 그 긴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지났는지, 책상에 꽂아둔 참된 목회라는 책이 손 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알았습니다. 산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는데, 펼쳐보니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참된 목회를 다짐하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게 벌써 10년이 됐다고?’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꼼꼼히 읽어야 할 책도 아니고, 다짐까지 담아 놓은 책이었는데도 읽지 않고 있다가 그냥 10년이 지난 것입니다. 느낌은 마치 어제 꽂아둔 것과 같았는데 말입니다.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렀지만, 돌아보는 마음에는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설립 20주년 기념행사 중에 지난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첫 사진 속 인물들 가운데 많은 분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떠나버렸다면, 그래서 교인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면, 20주년을 기념하는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 세월을 함께 지낸 교인들이 지금 여기 있기에 20년이란 시간이 온전해진 거 아니겠습니까? 20년을 함께했다니!그리고 기념행사를 위해 예배당을 꽉 채운 지금의 교인들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감사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늘 수 있었다니! 새로 오신 분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이미 와 있던 분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번 산오름교회 설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분이 써낸 글들을 읽어 보면서, 저 또한 산오름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들어주지 않았다면, 들은 내용으로 살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산오름교회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교인들이 과연 가능이나 했겠습니까? 그 여러 글을 읽으면서 이번에는 참된 목회를 기필코 읽으리라는 다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그러면서 앞으로 10년을 생각했습니다. 20년 세월이 이토록 빨리 흘렀다면, 앞으로 10년도 그렇게 빨리 흐를 텐데, 과연 산오름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과제는 분명합니다.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최근에 ‘지속가능한 교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도가 성도를 돌보는 지도력, 그런 지도력에 의한 운영 체계,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는 후임자,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는 이런 세 가지 요소와 기존 교회 제도라 할 수 있는 장로-권사-집사 체계와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또 다른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교회에는 양육과 돌봄을 자기 일처럼 감당하는 훈련된 교인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자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런 마음을 계발하고 훈련할 수 있는 어떤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훈련과 체계와 정체성은 지속가능한 교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동력이 필요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지도력 전환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행 20:32). 교회를 계속 든든히 세워나가려면 “은혜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스펄전은 어떻게 그의 성도들을 얻었는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 교회의 다섯 가지 전도 방법
by Geoff Chang
2023-06-22
스펄전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열아홉 살에 런던에서도 역사를 자랑하는 손꼽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 받았다. 그리고 사역 기간 내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부흥을 체험했다. 38년에 걸친 사역 동안 스펄전은 정기적으로 수많은 회중에게 설교했다. 그가 사망할 당시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교회의 교인은 5,300명이 넘었다.그러나 아무리 스펄전의 은사가 뛰어났다고 해도, 수천 명 교인이 다 오로지 그의 복음 설교 때문에 회심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스펄전은 회심의 영예를 교인들에게 돌렸다. 스펄전은 어느 스코틀랜드 목사들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교인들을 이렇게 많이 모았냐고 누가 내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한 거 아닙니다. 교인 모으는 건 내 할 일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에요. 나는 오로지 복음을 선포할 뿐입니다. 글쎄요. 교인이 늘어난 건 교인들이 스스로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태버내클 간증집은 스펄전의 말을 확증한다. 이 교회 장로들은 평신도들이 주변의 불신자를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천 건의 회심 간증을 기록했다. 이 간증집을 통해서 우리는 이 교회가 교인들을 모은 최소한 다섯 가지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1. 개인 전도스펄전은 전도가 목사만의 사명이 아님을 꾸준히 일깨워주었다. 남자, 여자,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주신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강조했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의 간증은 복음을 나눈 평신도의 신실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엘렌 메이의 간증에는 다음과 같이 장로의 기록이 있다. 엘렌은 삼 년 전까지 하녀로 일을 할 때, 성공회 소속 교회의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교회를 다녔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본성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9개월 후 우리 교회의 자매인 엘리자베스 패로우가 그 집에 하녀로 들어갔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친구 영혼의 유익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에 엘리자베스는 그리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도구가 된 엘리자베스는 어린 엘렌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도구가 되었다. 벤저민 프로드와 관련한 기록이다. 젊은 벤자민은 버먼드지에서 모자를 만드는 크리스티 부인과 그 동료들과 함께 살았다. 우리 교회 교인인 옥스포드와 테일러는 같은 직장 동료였다. 벤저민을 향한 이 두 사람의 가르침과 경고에 성령님이 기름 부으셨고, 벤저민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벤저민은 결국 길을 잃은 죄인이라는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 패로우, 옥스포드 및 테일러가 신학생 또는 장로가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이 기록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들은 단지 신실한 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으로 양육 받았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영혼의 유익”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그리스도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2. 교회의 초대스펄전의 교회에서 일어난 많은 교인의 회심 이야기는 교회의 초청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존 해밀턴의 간증은 그의 형이 그를 태버내클에 데려오면서 시작한다. “그의 형(이후로도 등록 교인이었다가 지금은 뉴질랜드에 있다)이 약 삼 년 전 어느 일요일 저녁에 그를 뉴파크 스트리트로 데려왔고, 그곳에서 그는 설교를 통해서 영혼의 평화를 찾았다.” 누군가를 데리고 온다는 게 항상 쉬울 수는 없다. 교회에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초청이 필요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제임스 보이스의 경우, 스펄전의 설교를 듣게 하려는 누이의 초청을 여러 번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밤, 술집에 가는 길에 마침 교회를 지나게 되었다. 들어갈까 잠깐 생각했지만, 얼마든지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수요일까지 내내 그는 술에 취한 채 또 술집을 찾았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개과천선하는 데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자각을 통해서 그는 교회 출석을 시작했고, 마침내 복음을 들으며 구원의 과정에 들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찰스 샌델 이야기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스펄전의 설교에 그를 초대했다. 샌델은 놀랍게도 그 설교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 후 약 12개월 동안 꾸준히 예배에 참석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어떤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로의 기록이다. 그는 설교를 듣고 자주 눈물까지 흘렸지만, 삶에서는 그 어떤 유익을 누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예배에만 참석했다. 그러던 중 스펄전이 집회를 인도하러 미국으로 갔고, 초청 설교자 래드클리프의 설교를 들었다. … 래드클리프는 샌델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데에 쓰임을 받았다. … 예배 후에 그는 장로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 그리고 마침내 샌델은 영혼을 예수님께 맡길 수 있게 되었다.샌델은 무려 일 년 동안 스펄전의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부 설교자와 장로를 통해서 그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다. 설혹 스펄전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3. 주일 대화매 주일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방문객을 비롯해서 각양각색이었다. 처음 온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는 것은 결코 목사와 장로의 몫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모든 교인이 방문객을 환영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교인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고 요청합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을 붙잡아 그리스도를 전해야만 합니다. 나는 종종 이 문제 때문에 짜증을 내는 교인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야 약간의 딱딱함도 있겠지만, 교회에서는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오늘 설교, 어땠어요?” 정도의 대화는 시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새로 온 사람을 잠시나마 곁에 둘 수 있으니까요. 교회에 등록한 사람들이 남긴 많은 간증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윌리암 카트라이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카트라이트는 지난 4월부터 예배에 참석했고, 그 후로 예닐곱 번 설교를 들었지만, 그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스팬스윅 형제가 다가와서 영혼의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고 대답했고, 스팬스윅 형제에게서 주님을 찾으라는 강력한 권고를 받았다. 그는 그렇게 했고 곧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정죄하시는 것은 공의에 의해서 당연하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탄원인 예수님의 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카트라이트는 많은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 개인 구원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기 전까지는 그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4. 등록 인터뷰스펄전의 사역 기간 내내 복음에 응답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세례와 교회 등록이었다. 복음에 반응하는 모든 방문자는 등록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교인 면접은 장로들의 전도사역이 되었다.스펄전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고려할 때, 교회 등록에는 온갖 동기가 다 존재했다. 장로들은 각각의 신앙고백을 면밀히 검토할 책임을 졌다. 믿을 만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등록 교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고백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서 장로들은 복음을 가르칠 시간을 냈다.이것이 바로 제임스 멜번의 등록 인터뷰에 관해서 장로가 쓴 내용이다.이 착한 남자는 아내가 교인 등록을 신청했기에 같이 등록하기를 원했다. 그는 스펄전의 설교를 자주 들었고, 그가 여태 들었던 그 어떤 설교보다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복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고,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다. 또한 기꺼이 교회에 등록하려는 마음은 진심일 뿐 아니라, 평판 좋고 존경할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때때로 성경도 읽지만, 그냥 막연하게 성경은 좋은 책 정도로만 생각하지,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없다. 그는 삶에서 특별히 하나님께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했던 기억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주일마다 교회에 앉아 멀쩡한 얼굴로 우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복음에 무지한 자신에 관해서 철저하게 무지한,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나는 놀라울 뿐이다. 나는 그에게 거듭남에 대해 이야기했고, 행크 형제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들어가도록 조치했다. 여러 면에서 멜번은 이상적인 등록 교인 후보로 보인다. 그는 교회에 왔다. 아내가 함께하고 있고, 또 설교를 좋아했다. 술에 취하지도 않고 모든 일에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영적인 삶의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런 그를 등록 교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로 하여금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게 한다면 그에게 심각한 영적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장로는 멜번이 성경을 더 공부하고 복음을 배울 수 있도록, 그를 “행크 형제의 반”으로 보냈다.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등록 거절에 관한 간증도 있다. 거절의 경험을 사용하여 주님께서 교만과 죄를 깨닫게 하셨다는 이야기가 많다. 한번은 해리어트 올니가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녀를 접견한 장로는 “간증이 만족스럽지 않아 등록을 추천할 수 없었다.” 이 년 후, 그녀는 다시 등록을 신청했고 거기에 관해서 장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등록을 거절당하고 (처음에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죄를 더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첫 등록 거절이 자신에게 최선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두 번 만났다. 비록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광범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서, 즉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다.한 가지 확실히 말하자면, 장로들이 인터뷰에서 높은 수준의 신학 지식이나 유창함을 요구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올니의 간증에서 그 사실을 본다. 오히려 그들이 찾는 것은 복음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회개와 믿음의 증거를 통한 신앙고백이었다. 등록 과정에서 많은 초신자가 처음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5. 새신자 반교회의 공동 예배 외에도 태버내클에는 다양한 클래스가 있었고, 그중 상당수가 구도자를 대상으로 했다. 젊은이들을 위한 교리반, 남성을 위한 성경반, 여성을 위한 성경반, 어린이 주일 학교 등이 있었다. 학급마다 배정된 명단을 가진 교사가 있었다. 교사는 수업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고, 반원들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회심의 시작을 다양한 클래스에서 찾는 간증이 적지 않다. 엘리자베스 폴리는 교회에서 자랐다. 그녀의 간증에 따르면 그녀가 회심한 곳은 주일학교였다. 그녀를 접견한 장로는 “안식일 학교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라도, 그레이브스 자매의 가르침이 이 어린 자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언급하고 싶다”라고 썼다.교회에서 자란 해리어트 피트가 등록 신청을 했을 때, 장로는 “그녀가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해서 명확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장로는 그녀를 청소년 교리반에 보냈다. 얼마간의 공부를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접견했고, 장로의 칭찬을 받았다. 에밀리 빙글리는 성경공부 시간 중에 “에밀리, 당신은 언제가 되어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릴 것입니까?”라는 선생의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은 빙글리로 하여금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게 했고, 그녀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스펄전은 모든 설교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전도 성경공부도 개인적으로 구도자가 복음을 깨닫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평신도의 전도 능력스펄전은 어떻게 그의 교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결코 단지 설교 하나만 믿고 세상을 향해 소리친 고독한 레인저가 아니었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의 성장과 부흥은 오히려 평신도의 전도 노력으로 가능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엡 4:12) 하라는 에베소서 4장의 비전이다. 스펄전에게 그 많은 교인을 가져다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평신도들이었다. 이 사실은 목회자에게 큰 격려가 된다. 전도의 과업이 전적으로 우리의 노력에 달린 게 아니다. 대신 평신도가 개인 전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때, 복음은 모든 종류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세상으로 퍼진다. 평범함 속에서 신실함을 지키는 교인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비범한 일을 행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자. 원제: How Spurgeon Got His Congregation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스펄전
전도
평신도전도
그들이 목회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by Sarah Eekhoff Zylstra
2023-06-17
팀 쿠퍼러스는 초짜 목사가 아니다. 무려 이십오 년 전임 목회를 한 베테랑이다. 그런 만큼 그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논쟁과 도전에 익숙하다. 긴 시간, 힘든 대화,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관한 한, 그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회를 계속하는 게 맞는가. 이런 질문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다.적어도 삼 년 전까지는 말이다. “끔찍한 정치적 상황에서 팬데믹이라는 절대적인 도전까지 맞으면서, 응축되어 있던 모든 게 한순간에 터져버렸습니다. 마스크를 쓰냐 마냐를 놓고 교회가 논쟁을 벌이면서 찢어질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백성이 되어 교회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교회의 본질을 놓고 의문을 품게 됩니다.” 몬태나의 맨해튼 기독교개혁교회를 담임하는 쿠퍼러스의 말이다. 쿠퍼러스만이 아니었다. 2021년 1월 바나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목회자의 29퍼센트가 지난 일 년 사이에 목회 포기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로부터 십 개월이 지나고 그 수치는 38퍼센트까지 올라갔다. 2022년 3월에는 42퍼센트였다. 주된 이유는? 사역이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 외롭고 고립된 느낌,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 분열 상황.기독교개혁교회(CRC) 교단 내 자유주의로 인해서 “마흔 명의 목사가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쿠퍼러스는 “사역의 기쁨을 잃었다”고 고백했다.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대규모 이동설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대부분이 그대로 머물렀다. 2021년 가을, 복음주의 목회자의 은퇴 이전 그만두는 비율은 1.5퍼센트로 2015년 1.3퍼센트에 비해 약간 증가했다.“오늘날 정보가 너무 빨리 퍼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누구누구 목사가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두고 마치 교회를 휩쓰는 새로운 경향이나 유행병이 생겼다고 가정하기가 쉽다. 그러나 실제 백 명의 목회자가 그만둔다고 해도, 그건 한 달 평균 진로를 바꾸는 목회자 수의 일반적인 범위 내의 일부에 불과하다.”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way Research) 전무이사 스콧 맥코넬의 논평이다.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은 바나의 조사에 응했던 목회자 세 명을 만났다. 그들은 어쩌면 전염병 기간에 “전임 사역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진지하고 진지한 고려”했다고 조사에서 말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왜 그만두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사역을 지속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목회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하다오하이오 애슐랜드에 있는 Substance Church의 로니 마틴 목사의 말이다. “정직한 목회자라면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그만둘지를 놓고 고민할 것입니다. 각종 선택으로 가득한 세상, 기술과 원격 작업으로 모든 게 훨씬 더 쉽게 가능해진 세상에서, 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 다른 길을 상상하는 건 더 쉬워졌습니다.”그가 담임한 교회는 마스크 정책 불일치로 약 예순 명의 교인을 잃었다. “목회 말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훨씬 더 쉬웠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떠난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진짜 힘든 건 대화 속에서 느끼는 과도한 불안과 편집증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계속 궁금했습니다.”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 이후, 제레미 라이트볼이 사역하는 메트로 디트로이트의 Woodside Bible Church에서는 그가 인종차별 폭력에 대해서 기도한 이후로 350명의 교인 중 무려 절반이 교회를 떠났다.라이트볼의 말이다. “교인들은 내가 인종 문제에 관해서 좌파 성향이라고, 비판적인 인종 이론을 옹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고, 마치 교회 전체를 날려 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도록 부름받은 게 맞나?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마틴도 같은 게 궁금했다. “내가 목회를 위해서 창조된 사람이 맞나? 아니면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는 게 아닐까?”왜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는가마틴은 오래 씨름하지 않았다. “어둠과 절망의 순간이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가족, 장로들, 그리고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목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또한 병적인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정말 궁금했습니다. 이걸 견뎌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주님, 내 안에서 지금 무엇을 드러내고 계십니까? 버틸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다시 태어나는지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안다. “물론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지금은 훨씬 더 낭만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낭만이 아니었다. 그가 매달린 것은 성경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다리며 소망해야 한다고 성경에서 무려 227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쿠퍼러스도 기다렸다. 육 개월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사역에서 이전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그 기쁨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사역했다. “가정에서 평화와 휴식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나는 놀라운 배우자를 만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외부 환경이 어려워도 집은 항상 평화와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이 사실은 나를 지키는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소명을 붙잡았다. “내가 목사가 된 건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목사 되어야지’ 하고 결심한 게 아닙니다. 나게는 깊은 내적, 외적 소명 의식이 있습니다.” 그가 내적 부르심과 씨름하는 동안 교인과 교단 사람들은 외적으로 그의 소명을 함께 확인시켜주었다. 교인들은 그들이 미처 알 수 없을 정도로 격려가 된 쪽지나 이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매주 두 명의 장로가 그를 만나 격려하고 또 중보기도를 했다. 그는 결코 목회자와 장로들의 지역 모임인 노회에 가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교역자와 교인들 앞에 서서 ‘나는 끝났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미시간으로 돌아가서, 라이트볼도 장로들을 의지하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장로님들, 내가 이 교회를 담임하면 안 될 정도로 지금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까?”그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끝까지 나를 지켜주었고, 그 사실은 내게 매우 긍정적이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그래요. 이제 떠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내 말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결코 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마틴과 쿠퍼러스처럼 라이트볼도 소명에서 해방되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다른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부름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나는 바로 이곳에 부름받았다고 느낍니다. … 주님이 내게 맡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습니다.”그가 그 사실을 아는 한 가지 이유는 사례금이다.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정당한 사례금과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내게는 미국 회사로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 어떤 비전도 없습니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사역했습니다. 사역은 나의 소명이자 경력입니다. 나는 다른 일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필요한 재정이 충분한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사역을 해야 합니다. 사역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일이고, 우리 가족을 재정적으로 공급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역에 머물렀는가머물기 위해 때때로 목회자들은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마틴은 주로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가 쓴 고전 소설에 빠졌다. 쿠퍼러스는 목공이나 스포츠 사진 촬영으로 시간을 보냈다.그들은 또한 성경 속으로 도피했다. 마틴의 말이다. “나는 3-4개월 동안 시편으로 기도하고 묵상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도움을 주었고 내게 향유가 되었습니다.” 쿠퍼러스도 시편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주로 시편 46편 속에 잠겨 살았다. 라이트볼은 요한계시록 속 일곱 교회에 관한 구절을 바탕으로 목회자를 위한 책을 쓰고 있다. 그는 계시록 2, 3장과 사랑에 빠졌다.“심지어 요한계시록 1장 5절, 이 구절은 내 정체성의 근거가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속합니다. 나중에 우리는 일곱 별을 손에 들고 있는 예수님의 이미지를 읽는데, 그것은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나를 손에 붙잡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은유입니다.” 요한이 쓴 편지의 수신자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 시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은 라이트볼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마음을 닻을 내리고 예수님의 충만함,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 그분의 주권, 지혜, 선하심을 상기시켜 준 중요한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고 계속해서 나를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예수님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를 똑바로 압니다.” 또 한 편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교인들은 이게 거의 없지만, 팬데믹이 가져다준 문제를 여전히 처리하고 있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고 마틴은 지적한다. “트라우마는 아주 천천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 중 일부는 이제야 비로소 그 당시가 초래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건 아닌지 궁금해합니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게는 어둠과 절망의 순간은 짧았고, 곧바로 그리움과 탐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말이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주님, 우리는 안도감을 찾고 있습니다. 오로지 당신 안에서만 찾아야 합니다”이다. 그의 교회에 일어난 분열은 고통스러웠지만, 더 하나된 회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고백한다. “시간이 지나 주변을 둘러보니 결국 남은 이들은 항상 교회를 섬겨왔고, 함께 선교 사업을 하고, 힘을 다해 우리를 격려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이 교회에 있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일체감을 느꼈고, 그 하나됨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틴은 또한 자신 속에서 일어난 변화도 실감했다. “내가 교인들의 지지를 얼마나 갈구하는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이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말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과거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나아가서 각기 다 의견이 다를 때, 나는 내가 지지나 격려를 받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그 결과,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해졌기에, 모든 게 힘든 은혜였다고 마틴은 말했다. 어려움을 은혜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는 감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이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게 된 것 같습니다.”쿠퍼러스도 내적 변화를 목격한다. 딱딱하고 화난 태도가 누그러졌다. 잃었던 기쁨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는 생명의 싹을 볼 수 있다.“2021년 5월에 나는 쉰 살이 되었습니다. 주일이었는데 예배 후 교회에서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거의 9 야드나 되는 풍선과 도넛을 준비했군요. 끔찍하고 힘든 한 해를 보낸 후, 그 축하 행사는 내게 무언가를 전해 주었다. 소중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회중에 대한 나의 부름을 재확인했습니다.”그건 마치 생존을 축하하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의 교회는 더 작아졌지만, 쿠퍼러스는 이제 예전 교회가 아닌 지금 교회를 섬기기로 결정했다.그가 섬기는 교회는 좋은 곳이다. “우리는 주일에 약 250명과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현재 임산부가 일곱 명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육체적인 새 생명을 통해 우리 회중에도 새 생명과 기쁨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앞날을 내다보다미국 문화가 세속화됨에 따라, 교회에 더 힘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마틴의 말이다. “어쩌면 팬데믹은 다른 것에 대한 준비였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앞으로 미국 교회에 어떤 시련을 주실지 몰라도, 그것이 인내와 그분을 향한 사랑이 식지 않기 위한 것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라이트볼의 말이다. “참되고 옳은 문화를 옹호하고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며 또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경우에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아마도 다가올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의지한 채 이 세상을 항해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드신다고 믿습니다. 정말로 믿습니다. 나는 계속 그분만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분만을 믿을 것입니다.”목회 사역은 높고 고귀한 소명이라는 게 라이트볼의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일은 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고백한다. “목사로서 나를 부르신 것은 십자가의 신학을 전하는 사람, 이것이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하신 일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다 주실 것입니다.” 원제: Why Pastors Aren’t Quitting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목회위기
목회포기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by Geoff Chang
2023-05-18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때는 1875년, 당신은 패스터 대학(Pastors’ College)의 2학년 학생이다. 신학, 수학, 문학, 수사학, 성경 언어 등등, 힘든 강의와 연구로 보낸 긴 한 주였다. 게다가 당신은 최근 이스트 런던 가난한 지역에서 복음전도 사역을 시작했기에 저녁에는 거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더불어서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회원으로서 꼭 가야 할 모임뿐 아니라 제자훈련을 시켜야 할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주일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금요일 오후이다. 왜냐고? 아주 가까이에서 찰스 스펄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잔뜩 든 스펄전이 따뜻한 인사와 함께 교실에 들어올 때, 당신은 급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펄전, 우리 세기의 가장 유명한 설교자이다. 그에 비해 당신은 단지 평범한 목사일 뿐이다. 간단한 기도와 서론이 끝난 후, 스펄전은 작업에 돌입한다.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미래의 목회자가 꼭 알아야 한다고 그가 꼽은 책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출판물, 고전 작품, 성경 주석, 신학, 철학, 찬송가, 과학 및 기타 모든 장르의 작품이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책은 스펄전의 칭찬이 따르지만, 의심스러운 책에는 적절한 경고 딱지가 붙는다. 당신은 항상 이 시간을 즐겼고 주의 깊게 메모했다. 스펄전의 추천을 통해 당신은 자신만의 작은 신학 도서관을 만들었고, 스펄전 덕분에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이라이트 시간이 되었다. 선배 목사로서 스펄전은 설교, 설교 준비, 개인 경건, 비판에 대처하기, 공적 기도 등등, 기독교 사역의 일부 측면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강의했다. 그렇다고 건조하고 학문적인 강의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하나같이 자기 경험에서 길어 올린 따뜻하고 개인적이며 종종 배꼽을 잡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목회자의 사역에 적용할 성경 지혜와 진리에 기반을 둔 교훈으로 가득하다. 머지않아 당신은 힘든 목회 사역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 강의의 기억은 앞으로 오랫동안 당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바로 이 ‘목회자 대학’의 스펄전의 강의에서 기독교 고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Lectures to My Students)가 탄생했다. 귀한 카운셀링이 책은 네 개의 시리즈로 (또는 네 권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가장 유명한 목회자의 삶 전반에 관한 강의를 포함한 열네 개의 강의이다. “목사의 자기 감시” “목사의 개인기도” “목사의 탈진”이 포함되었다. 이 중 몇 개는 스펄전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설교를 다룬다. 본문 선택에서부터 설교 음성의 중요성, 그리고 잘못된 본문의 영성화라는 위험에 이르기까지, 이 설교의 왕이 전하는 모든 실천적 지혜가 담겨 있다.두 번째 시리즈에는 목회의 성장, 회심 설교, 성령에 대한 의존과 같은 다양한 사역 관련 주제에 대한 열 개의 강의가 담겨 있다. 원래 ‘예화의 기술’로 알려진 세 번째 시리즈에 담긴 내용은 주로 설교와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 일곱 개의 강의이다. 여기에서 스펄전은 예화와 예증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친다. 단지 예화의 사용 방법뿐 아니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까지 제공한다. 주해 및 주석으로도 알려진 네 번째, 마지막 시리즈에는 두 개의 강의가 담겨 있는데, 하나는 “본문 해설(공동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주석 사용에 관해서이다. 나머지 내용은 주석 카탈로그이다. 놀랍게도 스펄전은 무려 1,429개 항목에 대해서 간략하고 통찰력 있는 주석을 제공하는데, 그건 무려 거의 4세기에 걸친 기독교 학문을 아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 66권 모든 책을 다 포함한다. 이것은 스펄전 시대에 놀라운 성취였으며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네 권 모두 다 읽을 가치가 있다. (최근에는 주석 카달로그가 별도의 책으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라.) 나는 스펄전의 글쓰기 스타일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잘 소통된다는 걸 발견했다. 따라서 현대 영어로 수정되지 않은 (수정되었다고 해도 최소한으로 된) 원본 읽기를 추천한다. 돈이 모자라거나 전자책을 선호하는 사람을 위해 전자책과 PDF 스캔본도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내년에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Spurgeon Library가 Spurgeon.org를 통해 스펄전 사본을 스캔하여 공개하길 바란다. 왜 목사나 교회 지도자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힘들게 얻은 지혜첫째, 이 강의는 사역의 어려움을 포함한 스펄전의 목회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당신이 목회자이고, 목회 중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기절 발작” 또는 영적 침체를 아직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고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현재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면, 스펄전은 당신이 그 길을 헤쳐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회적 멘토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라면 누구나 “눈을 감고 귀를 닫으라” 부분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무려 오천 명이 넘는 교회의 목사로서 스펄전은 각종 험담, 비판, 갈등 및 기타 목회의 어려움을 현명하게 걸러내고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했다. 이 책에 담긴 지혜는 목회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스펄전의 성공을 찬양하는 건 쉽다. 그러나 그의 목회가 승리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스펄전은 목회자라면 모두가 직면하는 재정 문제, 건강 문제, 영적 피로, 비판 및 기타 모든 종류의 시련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에는 모든 시련 속에서도 신실함을 잃지 않은 한 사람의 현명한 조언이 담겨 있다.목회자를 위한 도움둘째, 이 책은 설교에 대한 스펄전의 최고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설교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설교 자체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제시한다. 스펄전 목회 철학의 핵심은 말씀 전파였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의 구원과 교회의 연합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종종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교회 강단은 기독교 왕국의 뜨거운 전투장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싸움은 지거나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이다.” 당신이 설교에 지치고 사역에 낙담하기 시작한 목회자라면, 이 책은 설교 사역의 중요성을 새롭게 보고 각성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격려를 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설교에서 성장할까?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설교자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스펄전은 설교의 역학을 파고들어 모든 종류의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한다. 당신 경우에 설교자의 자세와 몸짓의 역할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게 언제인가? 예화를 활용해 설교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설교문 작성 과정을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스펄전은 이 모든 주제, 아니 그 이상을 다룬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에게는 설교 성장을 도울 멘토가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설교의 왕자 앞에서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 영광의 소명마지막으로, 스펄전은 목회 사역의 영광스러운 부름을 상기시킨다. 이 책은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한 많은 사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목사로서 우리에게 내려진 막중한 소명을 진지하게 상기시킨다. 제1권의 첫 세 강의(목회자를 거룩함으로 부르심,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견해, 개인적 기도로 부르심)는 목회자라면 매년 반복해서 자기 성찰을 위한 거울로 삼을 내용이다. 많은 설교자가 허영심, 세속성, 유명세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스펄전은 냉정과 절제,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목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단지 목회자의 사생활을 넘어 스펄전은 장기적 신실함에 대한 비전도 제시한다. 목회적 진보, 간절함, 성령 의존에 대한 강의는 평생 신실한 목회를 위한 로드맵을 제공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 성장 지표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에 쉽게 빠진다. 스펄전은 당신에게 당부한다. 말씀을 전파하고, 열심히 사역하고,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이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스펄전은 모든 강의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목회 사역의 비전을 제시한다. 목회자에게도 멘토는 필요하다. 무려 삼십팔 년 동안 신실하게 교회를 섬긴 목사,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한 스펄전보다 더 좋은 멘토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당장 이 책을 손에 들라. 혼자 읽기보다는 다른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와 함께 읽고 토론하라. 따뜻한 금요일 오후, 스펄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우리 함께 귀를 기울이자. 원제: Lectures to My Students: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출처: www.desiringgod.org번역: 무제
스펄전
목회자후보생들에게
목회소명
기독교고전
교회에 목사-신학자가 필요한 이유
by Douglas A. Sweeney
2023-05-13
이십 년 전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나는 자주 즉석 과제를 냈다. 한번은 학생들에게 교회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신학자 목록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중에 교회에서 (목사, 주교, 또는 교사로) 전담 사역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이 경험은 많은 학생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이 적은 그런 신학자 목록에서 이레네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 웨슬리, 에드워즈, 스펄전, 그리고 킹과 같은 이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들이 꼽은 신학자 중에 교회 전담 성직자로 일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라고 말했을 때, 강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학생들은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아차렸다. 변화오늘날까지 기독교 사상을 꾸준하게 알리는 교회 역사 속 인물 대부분은 주로 교회라는 환경 속에서 목사로 사역했다. 또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에서 가르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책도 썼다. 그렇지만 그들은 많은 시간을 교구민과 함께 보내며, 그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며 설교하고, 예수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실천하도록 돕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모든 수고에 복을 빌어주었다.그러나 지난 2세기 동안 상황이 변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목회자를 가장 중요한 지적 안내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전문 학자들과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이전에 성직자들이 했던 역할을 빼앗았다.상황이 이렇게까지 변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이제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라고 하나님 백성에게 권면하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하는 목회자가 이런 현실을 핑계 대면서 그 책임을 포기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하나님 백성의 지성을 새롭게 하고 가르치는 일을 목회자가 다시 한번 주도할 수 있는 현대적 방법이 있다.원인계몽주의 이후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해체와 함께 현대식 연구 대학이 크게 부상하고 또 기술 변화가 전 세계의 민주화 추세를 촉진하면서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성직자의 문화적 권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오래전 루터와 에드워즈는 법적으로 공인받은 지적 지도자의 지위를 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신도는 그들의 교육을 받고 또 그들의 교육 사역을 지원하는 일을 마땅히 (때로는 의무로)해야 했다. 사람들의 생계와 미래는 그들의 세계, 곧 국가와 교회의 틀에 얼마나 순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시민의 일상에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을, 마치 잘 짜인 식단에 따라 끼니를 채워주듯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교회 구조가 사라지자 평신도는 더 이상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교회 지도자는 대중이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자기 스스로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굳이 교회에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 싫어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주일 아침 예배로 데리고 와서 목회자가 준비한 지적 노력과 신학적 자양분을 섭취하도록 설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의 소재를 마치 건강에는 해롭지만 맛은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가공하여 군중을 끌어들이고 붙잡아 두는 게 더 쉽다.많은 복음주의 교회가 이처럼 패스트푸드점의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진짜 중요한 삶의 질문을 고민하는 교인들은 이제 목사가 아닌 전문가를 찾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진정한 자양분을 얻기 위해 교회가 아니라 다른 곳을 찾는다. 미디어로 큰 인기를 끄는 학자나 인기 지식인의 지혜를 구한다. 이러니 일상의 제자도와 증언은 처참해졌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신학적으로 문맹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들을 먹여 살리라는 부름을 받은 이들이 정작 그들을 신학적 영양실조에 빠트렸다.책임지금 교회에는 교인을 신학적으로 인도할 목사가 필요하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히 5:12).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걸 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지난 2세기 동안 현대식 대학이 이룬 학문의 전문화와 인간 지식의 성장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러함에도 축복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었다.목회 지도자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할 학교는 항상 필요하다. 특히 신학교는 히브리어, 헬라어, 교회사, 철학, 심리학, 해석학, 다문화 연구 등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 관련된 주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풍부한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이런 학문의 도움이 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꼭 필요로 하는 교육을 학계나 기타 비종교적 사상가에게만 맡겨놓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엄중하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설혹 기독교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의 정통을 가볍게 여긴다. 그들의 연구는 주로 세속적인 이유로 활력을 얻는다.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교내 승진과 정년 보장, 또는 미디어를 통한 명성과 재산 증식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그들에게 별다른 동기가 되지 않는다. 신학교 교수가 목회-신학자(pastor-theologians)를 섬기는 종이기를 자처하고, 목회-신학자가 앞장서서 하나님 백성을 신학적으로 일깨우는 날이 오도록 함께 힘쓰자. 목회자는 제너럴리스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역을 수행하는 과정 내내 항상 전문가들이 찾아낸 것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인생의 가장 큰 질문과 씨름하는 교인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다. 신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다 교인에게 먹이라고 명령하셨다. 신앙에 편식은 있을 수 없다. 주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하도록 서로 격려하자. 교회의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 달렸다. 원제: Why the Church Needs Pastor-Theologians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목사-신학자
신학자
교부
신학교육
성경문맹
교사
주님, 지금이 목회를 그만둘 때인가요?
by Sarah Eekhoff Zylstra
2023-05-09
담임목사로 오 년을 보낸 후에 브라이언 크로프트 목사는 말 그대로 엉망이 되었다.크로프트의 고백이다. “나를 해고하려는 세 가지 별개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폭력을 가하겠다는 협박이 있었고, 또 나를 데리고 온 청빙 위원회를 이끌던 목회자 발굴팀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내 욕을 했습니다. 교회 재정은 바닥이 났고, 서른네 살이 되었을 때,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 문제까지 생겼어요.” 그래서 그는 교회를 떠났을까? “안 떠났지요. 육 년째부터 하나님이 교회를 바꾸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십 년간 성장했어요.” 재정이나 관계 면에서도 교회를 안정시키고, 또 인턴을 훈련하고 다양한 사역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크로프트는 비로소 떠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2022년 3월 바나(Barna)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목회자 중 42퍼센트가 전 해에 전임 사역 포기를 고려했다. 현재 목회자 상담 사역을 하고 있는 크로프트는 말한다. “오십 년 이상 사역해 온 목회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로나19, 인종 문제, 불안정한 선거, 예배당 폐쇄와 마스크 착용 문제 등을 둘러싼 싸움이 전례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하나같이 이렇게 근본적으로 힘들고 광범위한 문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들 합니다. 모든 목사가 똑같은 상황을 겪었습니다.” 어려운 계절에, 심지어 건강한 계절이라고 해도, 인내해야 할 때인지 아니면 그만해야 할 때인지를 목회자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The Gospel Coalition은 전직 목회자(지금은 모두 목회자 교육 또는 상담 사역을 하고 있다) 세 명에게 최선의 조언을 구했다.월요일에 그만두면 안 된다크로프트는 몇 주 전에 트위터를 날렸다. “목회자 여러분, 월요일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중요한 결정은 오늘 내리면 안 됩니다. 골치 아픈 회의도 오늘은 하지 마세요.”그는 몇 주에 한 번씩 비슷한 격려의 글을 올린다. “나는 그것을 월요일 아침 설교 숙취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숙취는 반드시 옵니다. 따라서 월요일 하루를 계획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평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그의 조언이다. “체육관에 가세요. 좋은 커피를 마시세요. 기도하고 침묵하세요. 머리를 비우고 할 수 있는 단순한 관리 업무를 하세요. 믿을 수 있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다 내일을 위해 남겨두세요.”너무 빨리 그만두면 안 된다“목회를 그만하겠다는 목회자에게 내가 묻는 첫 질문은 그런 기분을 얼마 동안이나 느꼈는가입니다.” 약 25년간의 지역 교회 목회를 그만두고 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에서 사역하는 자레드 윌슨의 말이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목회에도 불경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침체기를 겪습니다. 불안, 우울, 낙담, 피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런 느낌은 소명에서 멀어지라는 부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다 더 집중적인 보살핌과 도움을 요청하라는 부름입니다.”지역 교회 사역에서 25년을 보낸 크로프트는 적어도 오 년은 머물라고 조언한다. 바로 그 기간이 그가 교회의 변화를 목격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진짜 목사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신뢰를 얻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점검 사항: 영혼, 가정, 사역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당신의 결정이 문제의 원인이 아닌지 점검하라. “매주 내게 와서 ‘더는 못하겠어. 진액이 다 빠져나갔어. 이젠 그만둘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크로프트의 말이다. 그럴 때 그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다.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는가? (충분한 수면은 방해받지 않고 일곱 시간 이상 자는 것이다.) 운동을 하고 있는가?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가?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는가? “목회자가 중도에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텅 빈 상태인데도 계속해서 진액을 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목회자가 제대로 자신을 돌보고 있다면, 크로프트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간다. 결혼 생활은 어떤가? 육아는? 집에는 별일 없는가? 아내가 사역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디모데전서 3장은 목사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목회자가 가족을 돌볼 것을 요구합니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사역에는 얼마든지 다른 기회가 있지만 아내는 한 명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족도 별문제가 없다면, 크로프트는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간다.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는가? (그 숫자는 50 또는 55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사역을 나눌 장로들이 있는가?이러한 일련의 질문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쩌면 진짜 문제의 원인은 부족한 수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경계, 또는 부목사일 수 있다. 아니면 무너지는 결혼 생활이나 자살 충동 같이 더 큰 해결책이 필요한 진짜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크로프트는 말한다. “이 세 영역 중 어느 하나라도 엉망이라면 목회는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무조건 사역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때로 안식년은 육체의 휴식, 결혼 생활 개선, 또는 사역을 위한 신선한 영감에 도움을 준다. 물론 종종 전혀 다른 진로를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소명을 재점검하라윌슨은 목회자였을 때 고통과 탈진, 낙담의 계절을 보냈다. 장로들은 그에게 쉴 시간과 더불어 여러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은 그의 수준 낮은 관리 능력 또는 지식을 보완하지는 못했고, 교회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능력을 보유한 누군가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나는 정말 물속에 빠진 거 같았습니다.” 윌슨의 말이다. 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에 교직이 아닌 일자리 공고가 떴을 때, 그는 딱 한 학기 동안만 있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대학원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팔 년 후, 수업을 듣던 그는 이제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원한 적도 없고, 또 비슷한 생각도 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주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차선에서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길이 옳다는 것을 주님이 친절하게도 확인해주셨고, 주님은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조너선 도슨도 소명에 변화가 있음을 감지했다. 2021년 12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영적으로 활력을 되찾았다. 그는 말한다. “내가 안식년에서 돌아온 건 맞지만, 교회에 대한 비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15년 전 텍사스 오스틴 시내에 시티라이프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임대 시설에서 쫓겨났습니다. 우리는 항상 도심 교회였고,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나는 더 이상 시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습니다.”도슨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는 장로들에게 자문을 구했다.장로들에게 물으라목회자에게 도슨이 주는 최고의 팁 중 하나는 건강하고 정직한 장로로 구성된 팀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것이다. 도슨의 말이다. “성령으로부터 온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언제나 성경과 공동체로부터 검증받아야 합니다.” 자신과 당회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라. 내가 사임하면 사역은 어떻게 될까? 교인들이 지금 잘 준비되고 또 보살핌을 받고 있는가? 경건하고 건강한 지도력이 자리 잡고 있는가? 재정은 충분한가? 나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부름을 받고 있는가? 도슨의 교회 당회는 두 가지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다. 도슨의 미래에 대한 조언과 그가 떠났을 때 더 이상 예배 장소와 목사가 없는 수백 명의 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도슨의 말이다. “장로들은 다들 생각이 달랐습니다.” 마침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성령이 너무나 분명하게 역사하셨고, 참석자 모두에게 가야 할 길이 명확해졌다. 당회는 도슨을 사임시키고, 교회 문을 닫기로 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크로프트도 신뢰할 수 있는 장로 팀으로부터 확증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Practical Shepherding에서 전임 사역으로 전환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크로프트의 말에 모든 장로가 동의했다. 장로를 한 사람이 아닌 복수로 두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크로프트는 말한다. 지혜롭고 신실한 사람들과 나누는 교제의 유익은 그들이 당신의 은사와 한계를 보고 주님의 뜻이 당신의 삶과 교회 생활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언젠가 그들이 당신을 자신들의 미래의 목사로 받아들이거나 아닐 수도 있게 된다.크로프트는 말한다. “하나님은 장로들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장로들의 축복을 받는 것은 당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입니다.”포기가 아니라 마무리 짓는 것이다도슨은 말한다. “마무리하는 것과 중도에 그만두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감정에 압도되어 링 위에 수건을 던지는 것이랑 같습니다. 과도한 감정에 빠지면 누구나 틀린 결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감정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크로프트에 따르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완수했는가?” 그는 계속해서 도전한다. “나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현재의 사역으로 그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새롭고 흥미진진한 기회가 생기면 가차 없이 떠나는 것을 봅니다. 떠나기 전에 소명을 완수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질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소명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크로프트는 말한다. 그에게 한 여자 성도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으로 여겨졌다. 처음에는 크로프트를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향해서 마음을 열고, 그의 가장 든든한 동맹 중 한 사람이 된 성도였다. “그 여자 성도는 내게 정말 특별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내 사역의 여러 측면을 상징하는 사람입니다.” 꾸준한 일관성을 통해 크로프트는 자신을 축출하려던 여러 사람과 하나씩 관계를 구축해갔다. 대부분이 그를 대하던 생각을 바꾸었다. 더불어 출석 인원과 재정이 안정되고 인턴십 프로그램과 같은 활발한 사역이 정착되면서 도리어 그를 향한 신뢰가 커졌다. 백 명이 채 안 되던 교회가 서른 가정 넘게 목회 현장이나 선교지에 파송할 정도로 성장했다. 크로프트를 반대하던 오래전 교인 중 마지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가 죽었을 때, 그는 그 교회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을 다 마쳤다고, 이제는 새로운 사역지로 옮길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또 누군가에게는 소명의 완수가 재정 기반의 회복, 교회 출석의 안정, 주요 사역의 시작, 또는 심지어 은혜로운 교회 폐쇄가 될 수도 있다. 잘 떠나기사실 어떤 면에서 목회자가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보다는 그냥 그만두는 것이 교인들에게는 더 낫다. 크로프트의 말이다. “아무리 은혜롭게 교회를 떠나려고 목회자가 애를 쓴다고 해도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경우, 남은 교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젊고 예쁜 아내를 찾아 떠난 남편을 바라보는 나이 많은 부인과 비슷합니다. 그걸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사역 자체를 떠나는 경우에는 “이건 당신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래도 목회자를 잃는 것은 단지 이웃이나 동료를 떠나보내는 것보다 더욱 큰 불안감을 일으킨다.다른 슬픔의 계절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받아들이는 게 도움이 된다. 단지 두 주 전에 던지는 사임 통보는 새로 부임하는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크로프트는 경고한다. 그는 사임을 발표하고도 교인들에게 육 개월에 걸쳐서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크로프트는 말한다. “새로운 목사 청빙을 위해서 나는 연말까지 사역했고, 마침내 교회가 새 교역자를 찾았습니다. 내가 또 시간을 두고 떠난 이유 중 하나는 교인들을 돌보는 나의 마지막 노력이 다름 아니라 그들에게 나의 사임을 슬퍼하는 데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교인의 집을 심방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앉아서 ‘내 사임과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교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라도 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게도 또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지요.”도슨의 경우, 사임을 발표하고도 두 달을 더 사역했다. “나는 그 정도가 적당했던 거 같아요. 그 이상은 힘들었고요.”교회 전체가 문을 닫을 예정이었기에, 교인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그는 걱정했다. “한번은 제 아내가 일어나더니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핼러윈 사탕을 얻을 때까지 힘들게 동네를 샅샅이 뒤집니다. 그리고는 속도를 늦추고 사탕을 음미하지요. 우리도 이제는 속도를 늦추고 우리가 가진 것을 음미합시다.’”그들은 그렇게 했다. 거의 모든 교인이 다 마지막 성찬식, 마지막 모임, 그리고 마지막 예배까지, 끝까지 머물렀다.도슨의 말이다. “우리는 성대한 파티를 열었고 교인들이 일어나서 그들의 삶이 이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간증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15년간 누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념했지요.” 잘 머물기긴 사역을 원한다면,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고 크로프트는 조언한다. “고린도후서 4장을 근거로, 목회자는 양 떼를 위해 날마다 조금씩 죽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목회 패러다임을 봅니다.” 목회자마다 역량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15년, 어떤 사람은 50년이 될 수도 있다.지치고 싶지 않다면 충분히 자라. 너무 오래 일하지 말라. 휴가를 떠나라. 자주 기도하고 당신의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고 휴식을 취하라. 목회자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쉬는 것도 괜찮습니다. 전쟁 중에도 쉬어야 합니다. 진지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고 또 병원이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또 삼 개월을 쉬기도 합니다. 당신도 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사역을 계속하지 못할 겁니다.”그런 다음 장로에게 투자하라. 교인들을 멀리 또 길게 바라보라. (“교인들의 겉에 드러난 죄가 아니라 그들 뒤에 숨은 영광으로 판단하십시오.” 도슨의 말이다.) 상처 입은 양은 늑대처럼 사나워질 수 있으며 오로지 시간과 인내만이 양을 다시 양답게 만든다는 게 크로프트의 말이다. 이런 모든 일이 내일 당장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윌슨이 말한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해야 승리합니다.” 당신이 사역을 계속하든 하지 않든, 지역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항상 있다. 몇 주 전 방문자로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도슨은 그 점을 새삼 깨달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들은 은혜롭고 따뜻했습니다. 완전히 낯선 사람인 나를 위해 누군가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사님이 세심하고 목회적이며 또한 성경에 뿌리를 둔 복음 중심의 설교를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이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포옹과 기도, 그리고 마음에 와닿는 잘 준비된 설교까지? 교회가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이런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인가요!”원제: How to Know If It’s Time to Leave Pastoral Ministr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목회사임
목회 계승의 세 가지 원칙
by T. J. Tims
2023-05-03
목회 계승은 복잡한 문제이다. 사실 복잡하지 않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된다. 영적, 정서적, 제도적 역학 관계를 다 같이 다루는 것은 항상 복잡할 수밖에 없다. 특히 관계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목회 계승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얼마든지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약 4년 전 임마누엘 내슈빌 교회에서의 담임 목회자 전환 기간은 독특하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로들은 나의 전임자인 레이 오틀룬드 목사와 함께 힘을 합쳐서 애초 모두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관계적으로 현명하고 또 온전히 성령님에게만 의존하는 계승의 길을 계획했다. 그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었다. 물론 되돌아보면 개선할 부분도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때와 똑같이 뛰는 심장으로 행복한 목회의 길을 걸을 것이다.다음은 임마누엘 교회에서 누린 즐거운 경험과 그 이후 몇 년간의 신학적 성찰에 기초해서 뽑아낸 목회 계승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이다. 1. 차분하게 또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9:23)전환기를 맞은 교회는 예수님만 바라보지 않고 이런저런 계획과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쉽다. 그러나 창세기 39:23이 강조하는 길은 우리의 그릇된 경향과 정반대되는 방향이다. 모든 축복은 신실한 자에게 내려주시는 주님의 준비하심으로 인한 것이다.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요셉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실하고 올바른 방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넓은 축복의 길을 주심으로 그의 능력을 넓히신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긴장을 푸는 것이다.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우리의 위대한 지혜가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사용하신다. 제도적 정착 과정이 성공했다고 칭찬하는 데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많은 계획이 성공하는 것은 모범 사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구원자가 계시기 때문이다. 모든 목회 계승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능력 있는 복음의 본질에 “더욱 유념”하는 것이다(히 2:1). 목회 계승이 교회 전체를 뒤덮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때일수록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차분하고 확신에 찬 믿음이다. 그 믿음은 가장 본질적인 요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리는 데에서 비롯한다.2. 뜨거운 기도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사도행전 12:5)특별한 필요는 특별한 기도를 요구한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사랑하는 목사인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서 살아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위해서 갑절로 기도했다. 이 사건이 목회 계승과 어떤 관련이 있음은 명확하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일수록 목회자를 잃는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다. 그러나 위기의식은 기도에 활력을 준다. 물론 적절한 계획도 세워야 한다. 성경은 현명한 계획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진정한 확신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에 함께하심을 아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뜨겁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뿐이다. 우리 교회에서 목회 계승 기간에 실천했던 하나님을 찾는 방법의 하나는 온 성도가 함께 모여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동시에 이 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목회 계승에 대한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피드백을 듣고, 교회와 도시를 위해 최전선에 선 기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기도회는 정기적인 의사소통뿐 아니라 성공적인 계승에 필요한 관계의 형평성을 구축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임을 통해서 교인들이 올바른 관점에서 목회 계승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슨 관점인가? 바로 목회 계승을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인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 것인가의 관점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3. 사랑을 표현하라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었다. 그들은 배 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하였다. (사도행전 20:37-38)복음을 통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생태계를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그 새로운 생태계를 교회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의 가슴 아픈 이별 장면을 통해서 사랑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목회 승계를 생각하는 교회라면 담임 목사의 사역으로 인해 축복받은 교회일 가능성이 크다. 목회 승계는 일반적으로 안정되고 성숙한 사역의 표시이며 퇴임하는 목회자에 대한 감사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감사와 이별의 슬픔은 성공한 목회를 의미한다. 목회 승계는 단지 최고경영자가 바뀌는 게 아니라 슬픔과 기쁨의 뒤섞임이다. 내 전임자를 통해서 나는 교회가 목회 계승이라는 전환기를 잘 넘기는 유일한 방법은 퇴임하는 목사에게 교회의 애정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전임자가 바른 목회를 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교회의 사랑을 표현하고 당연히 경의를 표해야 할 곳에 표할 때 비로소 교회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차기 담임 목사와 마음과 손을 잡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된다. 목회 계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조직적이고 절차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관계적인 것임을 바로 깨닫길 바란다. 영적인 부분은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다. 게다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교회마다 관계의 측면에서 다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 목회 계승에는 교회마다 독특한 지도가 필요하다. 나는 여러분의 교회를 모르기에 지도(map) 같은 걸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개한 세 가지 원칙을 참고로 해서 여러분의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존, 지도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목회 계승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간절하게 기도한다. 원제: 3 Principles for Pastoral Succession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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