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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8이 없다면
by Tim Challies
2024-03-21
나는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제시하기에 로마서 8:28이 적절하지 않다는, 그 구절이 진리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나와 관련해서 고백할 수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나는 로마서 8:28을 먹고 살았다. 마치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탐하듯,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나는 이 구절을 의지해서 살았다는 게 나의 분명한 고백이다. 나에게는 로마서 8:28이 필요했고 그 말씀은 내 영혼을 위로하고 슬픔을 덜어주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친숙한 구절 가운데 하나이고 많은 사람이 암기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당신이 혹시라도 로마서 8:28이 없는 세상이 어떨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로마서 8:28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경험을 놓고 “선을 이룬다”고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경험 중 일부가 해를 끼치며, 사탄과 하나님이 우주적으로 내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또 우리의 경험 중 어떤 건 아예 아무 소용이 없으며 삶에는 그 어떤 목적도, 의미도, 또 구원도 없는 마구 일어나는 자의적인 요소로만 가득하다고 믿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슬픔과 고통을 바라보며 “여기에는 그 어떤 선함도 없어. 여기서는 아예 선함이 나올 수도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이 구절이 없다면, 우리의 경험 중 어떤 것은 결국 선을 이룰 것이지만, 또 어떤 것은 결국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건 선을 이루지만, 어떤 건 공허하고 무의미한, 하나님 섭리의 블랙홀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없을 것이다.“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에는 그 일을 이루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일하려면 일꾼이 필요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우리도 우주와 같은 비인격적인 힘이 궁극적으로 모든 상황의 배후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 우주에 자신의 섭리를 수행하는 신이나 지적인 존재는 없고 단지 냉담하고 비인격적인 운명이 있을 뿐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우리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우리가 시련을 겪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건 하나님께 그런 시련을 통하여 성취하실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그리고 우리가 모든 시련을 강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통과한다면 우리가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제대로 숙고하지 못할 것이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고통은 참을 수 없고 모든 슬픔이 무의미하다고 내리는 결론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로마서 8:28이 있다.하나님은 은혜의 선물로 우리에게 이 구절을 주셨다. 고통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려면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황에 맞는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 과거 많은 이들이 범했던 오류, 이 구절에 대해 가혹하거나 부정확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내게 이 구절보다 더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는 말씀은 거의 없다. 로마서 8:28이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그분이 삶의 모든 환경을 통해 일하셔서 악에서 선을, 어둠에서 빛을, 슬픔에서 기쁨을 가져오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이 상황을 조종하는 데 능숙한 일종의 우주 PR맨처럼 특별히 민첩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목적만큼이나 수단을 중시하는 계획자, 엔지니어, 그리고 설계자이시다. 하나님은 고요와 폭풍, 어둠과 새벽, 기근과 절기를 정하신다. 그러므로 의미 없는 사건은 없고, 목적 없는 상황은 없고, 궁극적으로 절망적인 조건은 있을 수 없다. 어두운 날, 어려운 시련, 상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한 뜻을 이루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서’ 이루신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은 모든 상황은 그분이 자신의 좋은 계획, 즉 완전한 목적을 형성하고 구체화하는 데 사용하시는 원재료일 뿐이다. 하나님의 특기는 선에서 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로마서 8:28은 내가 눈물 가운데에서도 그를 신뢰하면 내게 반드시 웃을 이유를 주실 것이라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고통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내 입술에 찬양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슬픔 중에도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나중에 그 슬픔과 괴로움을 통해서 얻은 게 결국에는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를 보여 주실 것이다. 그분은 메마른 사막에 핀 귀한 꽃, 날카로운 가시에 맞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그리고 폭풍우 속에서도 건재한 부드러운 꽃잎을 보여 주실 것이다. 모든 검은 구름 뒤에는 노란 해가 있고, 모든 어두운 밤 뒤에는 밝은 낮이 있으며, 눈살을 찌푸리는 모든 섭리 뒤에는 웃는 얼굴이 숨어있다. 누구일까? 자기를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선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다. 원제: Life Without Romans 8:28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조선 유교의 중심을 흔들다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 안동교회
by 이종전 · 장명근
2024-03-20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대한 강토에 선 첫 세대 교회들을 찾아 떠납니다. 그 이야기들에서 우리 신앙의 근원과 원형을 찾아보려 합니다.한반도의 선교 역사에서 경상도 지방은 선교 루트가 조금 다른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선교구역에 따른 영향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경북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조금 늦게 복음이 전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주요 도시들이 1900년 이전이거나 적어도 1900년대 초기에는 복음이 전해지는 데 비해서 안동지역은 조금 더 늦은 편이다.안동 읍내에서 최초 교회는 1909년에 설립된 안동교회이다. 안동지역에는 1908년 미국 북장로교회의 선교부가 1908년에 설립되고 소텔(Chase C. Sawtell) 선교사가 정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1907년 대구 선교부에서 부임해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1년 뒤에 안동선교부가 설치되면서 27세의 나이에 자원하여 미지의 안동에 주재하는 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안동지역에 북장로교회 선교부가 설치되기 전 부산에 선교부를 마련한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와 대구 선교부에서 활동했던 아담스(James Edward Adams)가 이미 1890년대부터 순회전도를 했던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베어드는 1893년에 이미 이곳을 순회하면서 전도했고, 아담스는 1902년에 순회하던 중 읍내 장터에서 복음을 전했다.하지만 안동의 경우도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게 읍내보다는 외곽지역에 먼저 교회가 설립되고 나중에 읍내로 복음이 전해졌다. 즉 안동 읍내가 아닌 일직면 국곡교회(1902), 풍산면 풍산교회(1902) 등이 먼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3년에는 바렛(William Marshall Barrett)과 브루엔(Henry Munro Bruen) 선교사가 순회 선교를 하면서 와룡면 방잠교회(1906), 이듬해에는 영주 지곡교회(1907)를 각각 설립했다. 이처럼 중심인 안동 읍내보다도 먼저 주변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 열매가 맺혀 교회들이 설립된 것은 안동 읍내의 유교적 정서와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1908년 안동선교부가 설치되고 소텔 선교사가 주재하면서 복음을 전한 결과 원입 교인들이 생겼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1909년 한 초가에 7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현재의 안동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읍내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교회가 읍내에 없었기 때문에 영주의 지곡교회까지 왕래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아담스 선교사가 풍산교회의 권서인 김병우를 안동으로 보내 서문밖에 5칸짜리 초가를 구입하게 해서 그곳에 서점을 열게 하고, 동시에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작된 것이 오늘의 안동교회이다.그러한 의미에서 아담스와 김병우는 이 교회의 설립에 있어서 실제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처음 예배를 주관한 김병우(권서인) 외 강복영, 원홍이, 권중락, 박끝인, 정선희, 김남홍 등이 1909년 둘째 주일에 첫 예배를 드렸는데, 불과 1년이 지난 1910년에는 70명이 회집하는 교회로 성장을 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1월에 시작된 이 교회는 그해 11월 더 이상 권서인에 의해서 인도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웰번(Arthur Garner Welbon) 선교사와 김영옥 조사가 안동에 주재하면서 이 공동체를 이끌게 되었다.웰번 선교사가 주재하게 되면서 1910년 선교사 주택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공동체는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그곳이 현재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에 있었던 한옥이었다. 그러나 예배 처소는 선교사의 주택이 옮겨지는 것과 함께 옮겨 다니다가 1911년 ㄱ자 초가 11칸 규모의 예배당을 지어서 예배를 드렸다. 두 번째로 지은 예배당은 1914년 2월에 완공한 현 안동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 목조건물로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했다. 그리고 공동체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1937년 현재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을 지었다. 물론 해방 이후 1959년 증축은 했지만 그 규모나 예배당 디자인이 특별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규모의 예배당을 지을 만큼 많은 신자가 모였고, 그 영향력 또한 매우 컸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하다.지금도 안동교회 예배당은 건재하다. 석조건물로서의 위엄과 멋을 가지고 있어서 지나는 이들의 눈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이 예배당은 우리나라 근대건축사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친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s) 선교사가 설계했고 건축 시행은 화교인 왕공온(王公溫)이 맡았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식 건축을 위한 조적이나 석공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보리스 선교사가 국내에 남긴 건물들 대부분은 중국인들이 시공을 맡았고, 설계와 감리는 보리스와 그의 제자인 강윤이 맡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은 국내에 보리스가 지은 180여 채의 건물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서 사용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특별히 안동이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실세들의 고향이다.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예안 이씨, 풍산 류씨 등으로 대변되는 권세가들의 고향이고, 전통문화와 재력까지 대단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갔고, 그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유교의 정서와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안동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한국 선교 초기에 세워진 교회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민족을 깨우치는 일과 식민지 시대에 앞장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안동교회도 다르지 않았다. 백성이 주권을 갖는 개념은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물론이요, 한반도 전 역사에 존재하지 않던 사상이었다. 그 이유는 한반도에 명멸했던 많은 나라들, 그리고 그 역사를 이어 개국한 조선까지 모두가 군주국가로 역사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군주국가에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다. 다만 군주를 위해서 존재하는 백성, 신민(臣民)으로서의 위치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을 통해서 깨닫게 된 국민 의식과 특별히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국가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면서 교회와 기독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독립과 관련한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깨달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의식이 자기 안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안동 읍내에 유일한 교회로서 신문물을 접촉할 수 있었고, 신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안동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동경에 유학하고 있었던 강대극이 일본 동경에서 2.8독립선언에 참여한 후 돌아와 안동 군청 서기 김원진과 당시 안동교회 담임인 김영옥 목사, 그리고 김중희 장로와 만세운동을 모의하였다. 또한 안동교회 설립을 주도한 김병우 장로의 아들이면서 연희전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던 김재명이 고향에 내려와서 교회 지도자들과 청년들이 비밀리에 모의했다. 또한 교회 여성 지도자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이 계명학교 여학생들과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어서 3월 18일 안동 장날을 기해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사건으로 안동교회 신자들로서 김병우 장로는 2년 형을 받았고, 김익현은 1년 형, 김재성, 김계한, 이인홍, 황인규, 권점필 등은 6개월 형을 받고 복역했다. 안동교회 신자들이 주동이 된 이 사건은 안동 시민들에게도 크게 자극을 주었고, 독립운동에 대한 성원이 더해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안동교회는 어려운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외치며 분연히 나섰을 뿐 아니라 안동 시민을 깨우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을 남겨주었다.더 나아가 안동교회는 지역을 깨우는 일에 앞장섰다. 초기 선교부의 정책도 교육시설을 운영하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실시했던 것처럼 교회가 시작되자마자 1911년에 교회 내에 초등학교 과정인 계명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했다. 3년제로 남녀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27년 5년제로 학제를 바꾸어서 일제가 요구하는 학교의 면모를 갖추면서 신앙과 민족의식을 깨닫게 했다. 선교사들과 안동교회 신자들 가운데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봉사했다. 1937년도 재학생이 남자 76명, 여자 56명, 총 132명이 공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학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계명학교(초등과정)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서 안동에 중등 과정의 학교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1924년 경안중학교를 설립했다. 처음 교사 4명에 학생 100여 명이 입학하여 공부했다. 하지만 이 학교는 안동교회만이 아니라 노회 차원에서도 힘을 모아서 제대로 된 중등 과정의 학교로 양성하기를 원했지만 재정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안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먼저 배운 자로서 각각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하는 일에 보이지 않게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해방 이후에는 1948년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자처하여 교회 내에 현 교육관 자리에 있던 건물에 안동 최초의 유치원을 개원해서 어린 시절부터 복음을 알게 하고, 기독교 차원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 시대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때인지라 담임인 김광현 목사와 당시 안동지역 애국부인동지회 부회장이었던 최매지, 보모 이금석 등이 뜻과 힘을 모아서 함께 유아교육을 시작했다. 훗날 애국부인동지회는 유치원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감당하는 교육시설로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안동지역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아 교회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노력했다. 1965년에 창립한 이 신용금고는 초기 가입자 34명이었고, 출자금은 4,260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신용금고를 통해서 경제적 약자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교회는 이 일을 통해서 실제적인 경제적 도우미로서 역할을 한 셈이다. 또한 안동선교부가 설치되면서 선교사들은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병원 사역이다. 초기에 부임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복음전도자들이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주재하면서 선교사들의 집은 예배 처소이면서 주중에는 진료소가 되었다. 1909년 1월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해 10월 1일 선교사의 주택에서 진료를 시작했으니 거의 같은 시기에 의료사업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현 성소병원의 시작이었다. 이때 의료선교사로 부임한 사람이 플레처(Archibald G. Fletcher)였으며, 1910년 크로더스(John Y. Crothers)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하여 교회와 병원을 세워 나갔다. 특별히 크로더스는 국광 품종 사과와 보리 사과 100여 그루를 들여와서 처음으로 재배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사과, 특별히 대구 사과를 유명하게 한 장 본인으로 알려졌으니, 이 또한 우리의 먹을거리와 농업경제에 결정적인 전환과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성소병원은 스미스(R. K. Smith) 선교사가 원장으로 부임해서 1914년 현 위치에 베이커기념병원을 신축함으로써 경북 내륙지방에 획기적인 의료혜택을 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베이커(Cornelius Baker)는 당시 돈 1만 달러를 기증해서 병원 건물을 짓게 했고, 경북 최초의 종합병원을 만들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택호로 사용하여 기념병원으로 명명했다. 그 후 성소병원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경북 내륙지방에 소외된 사람들을 살피면서 영혼과 육신에 도움과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살피면서 챙김으로써 복음 전도에 크나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당신의 설교에 ‘모서리’가 있는가?
by Trevin Wax
2024-03-19
THE KELLER CENTER 설교는 위대한 소명이다. 우리는 열린 성경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 앞에 서서 성령의 능력으로 권면한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말씀을 연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는 이 거룩한 책임에 대한 경이로움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메시지와 성경의 메시지가 일치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포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주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거룩함의 성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이다.우리는 약을 조제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질병을 완화하고 그들의 영적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성분을 혼합하는 약사이다. 우리는 또한 경건한 삶을 위해 사람들을 훈련하고, 그들의 영적 근육이 강해지고 체력이 증가하도록 위로하고 도전하며, 그래서 그들이 믿음의 경주를 더욱 효과적으로 달리도록 격려하는 체육관 코치이다. 모서리 실종여기에 모든 설교자가 직면하는 도전이 있다. 청중의 주의를 끌고 사로잡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의 관심사와 제대로 연결하지 못할 때,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의 효율성은 감소한다. 성경적이지만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다.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에서도 성경 본문은 얼마든지 해석될 수 있다. 식사는 분명히 푸짐했지만, 너무 밋밋해서 손님들이 음식을 반 이상 남긴 채로 자리를 뜬다. 우리가 조제하는 약에 환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성분이 부족할 수 있다. 항상 쓰는 근육만 단련시키는 영적 훈련에 사람들은 당신의 메시지에 흥미를 잃고 들뜨기는커녕 오히려 지쳐 버린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나는 좋은 설교의 몇 가지 필수적인 측면을 지적할 수 있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좀 다르다. 없을 때는 당장 눈에 띄지만, 있을 때는 그 즉시 설교를 짜릿하게 만드는 그것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예리한 “모서리”(edge)라고 부른다. 좋은 설교자라면 이 경쟁력을 놓치는 법이 없다. 설교를 준비할 때 꼭 자문하라. 지금 내가 본문으로 삼은 성경 구절, 즉 거기에 담긴 전제, 태도, 적용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어떻게 거스르는가? 이 본문이 세상의 사고방식 또는 삶의 방식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점은 어디인가? 성경 본문과 세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이 가장 날카롭게 부각되는 곳은 어디인가? 모서리를 확보하라. 세상이 말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다. 그 모서리가 분명해질 때까지 설교 준비를 마치지 말라. 바로 그 모서리가 당신이 준비하는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이다. 바로 그 모서리가 당신이 조제하는 약을 만병통치약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게 훈련받는 사람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게 한다. 교인이 휴대폰을 보는 대신 설교에 집중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설교는 반드시 반문화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성경은 단지 세상의 문화에만 반대할 뿐 아니라 우리가 교회 속으로 당연하게 갖고 들어가는 세상의 가정들(assumptions)에도 반대한다. 현대의 사고방식이 성경과 일치하는 부분,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부분을 보여줄 때, 성경 강해라는 드라마가 극적으로 고조된다. 단지 성경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왜 중요한지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설교를 듣는 성도를 어떻게 세상에서 구분되게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례 하나몇 년 전, 나는 Cedarville University의 예배당에서 주기도문을 가지고 두 번 설교했다. 첫 설교의 초안은 나쁘지 않았다. 개요는 본문과 잘 연결되어 있었다. 설교 원고는 확고한 성경 주석을 바탕으로 신학적으로 건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뤄야 할 모든 기초가 담겨 있었지만, 리허설을 하는 내가 지루한데 그 설교를 들을 학생들이 몰입할 거라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더 많이 생각하고 기도한 후에 비로소 무엇이 빠졌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모서리가 무엇이지?” 설교 메시지에 틀린 건 없었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짓과 충돌하는 부분이 빠져 있었다. 일단 모서리를 찾기 시작하자 설교가 바뀌어 갔다. 나는 주기도문의 모든 구절을 다시 살펴보며 원래의 의미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더욱 예리한 적용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이 구절은 어떻게 세상의 상식 또는 교회의 현재 관행에 어긋나는가?•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사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개인주의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늘에 계신 분에게 기도한다는 사실이 하늘과 땅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와 땅과 하늘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자기 이름이 영광 받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립과 자립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등모서리 탐색이 설교를 향상시켰고, 설교 이후에 몇몇 학생들은 내 설교가 그들의 기도, 특히 주기도문 암송에 미친 영향을 놓고 내게 연락하기도 했다. 문화적 서사 드러내기모서리를 찾는 한 가지 방법은 오늘날 서구의 지배적인 문화적 서사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팀 켈러의 작업이 필수적이다. 설교에 관한 책에서 그는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다섯 가지 믿음 또는 스토리를 설명한다. (1) 인간 합리성, (2) 역사, (3) 사회, (4) 도덕성, 그리고 (5) 정체성. • 합리성: 자연계가 유일한 실재이라는 관점은 오늘날의 기술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며, 객관적이고 분리된 인간 이성(사회학, 심리학, 기술, 과학)만이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 역사: 세계 사건을 과학, 기술, 심지어 삶의 도덕적 영역까지 진보를 향한 전개로 보는 관점으로 조상들의 미련하고 퇴행적인 견해와는 달리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더 낫다고 가정한다. • 사회: 우리 사회 질서의 목적이 어느 한 집단의 이익을 증진하거나 가치와 미덕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는 견해이다. 다만 이 자유는 더 높은 목적을 위한 해방이 아니라,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 도덕성 또는 정의: 인권과 정의를 위한 노력은 하나님의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도덕적 세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 정체성: 정체성은 외부(의무 또는 공동의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응을 요구하는 외부 제약에 반대하여 나 자신을 찾고 표현하는 내부에서 기인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서사를 식별하는 것은 성경과 사회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선인 모서리를 더 잘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주의 사항모서리를 찾는 이유가 세상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켈러는 복음에 흠뻑 젖은 설교가 교인들에게 “전투라기보다는 탈옥”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문화적 서술의 허위를 드러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지금 아예 실행 불가능한 약속을 남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확하게 진단된 모서리 이후에 제시되는 약은 안도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모서리를 찾는 것이 “우리 대 그들”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치 성경이 교회 밖의 모든 사람을 대적하고, 그 결과 교인들은 독선이 주는 안도감을 느껴도 된다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문화적 내러티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친구 또는 이웃과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 예를 들어, 켈러가 언급한 정체성 서술에는 표현적 개인주의, 즉 삶의 목적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있다. 이것은 단지 저기 딴 세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처럼 (불신자는 구원을 위해, 신자는 성화를 위해)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모서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세상 철학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또한 모서리를 찾는다는 것은 모든 설교가 다 동일한 세상적 관점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교를 주도하는 것은 문화가 아닌 언제나 본문이다. 모든 설교가 언제나 한두 가지 동일한 문화적 서사에 반대하는 틀에 박힌다면, 교인들은 더 이상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상식이나 현재의 교회 관행을 역행하는, 성경의 다양한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매주 설교 준비에서 반박해야 할 현대 사상과 실천 분야를 단 한두 가지 식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경 공부와 더불어서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주석 연구까지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효약은 없다그렇다고 모서리 탐구가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설교를 위한 유일한 기술은 아니다. 성경적 충실성, 탄탄한 구조, 꾸준한 속도, 좋은 일러스트레이션, 목소리의 다양성과 같은 다른 많은 요소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모서리 탐구는 오늘날 우리 세계와 성경의 필요한 만남을 촉진함으로써 설교를 향상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때 회중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영은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성령은 하늘의 음식으로 우리를 살리신다. 성령은 하늘의 약을 내려주신다.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동안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모서리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분이 살아서 움직이는 말씀의 검을 휘두르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원제: Find the Edge in Your Preaching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고마워 빈센트, 너의 삶은 찬란했어.
by 필립 정
2024-03-18
대학 시절 젊은 작가 한 분과 티 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느라 어둑해지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그런데 끝 무렵에 그가 한 말이 내 마음에 덜컥 얹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체기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작가가 되기 힘들 거예요.” 다음 말이 궁금해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면 삶의 고통이 다 하나님 뜻이라고 믿잖아요. 분노도, 슬픔도, 괴로움도 다 삭여 은혜로 치환해 버리지 않나요? 그래서 점차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상상력의 부재가 생겨요. 그럼 어려워져요. 글쓰기가…”이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글쓰기에 치여 사는 목회자가 되었다. 일주일 내내 설교, 성경 공부 원고를 쓰느라 정신없이 살아야 했다. 그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어 내가 글쓰기라는 불치병을 앓는 환자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 봤다. 이런 상상력의 빈곤과 부재에서 오는 펜 끝의 머뭇거림을 벗어나려고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그러다 우연히 난 한 화가의 그림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져 그를 상상하기 시작했다.빈센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그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달리는 기차의 경적 소리, 뭉개 구름의 꿈틀거림, 노란 밀밭의 거친 바람 소리, 새벽녘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빈센트에게 가자고 속삭인다. 그런 그가 그립고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어 두 권의 책을 사고 말았다. Van Gogh The Life (Steven Naifeh, Gregory White Smith)와 The Complete Paintings Van Gogh (Taschen)이다. 냉정과 분노 그리고 열정빈센트의 이야기는 그와 그의 어머니와의 해소되지 못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빈센트는 훗날 그의 어머니를 냉정한 여자라고 단정하였다. 빈센트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그녀의 차가움은 어디서 왔을까. 빈센트의 어머니 안나는 유럽의 잔인한 종교 전쟁들, 각지로 퍼진 혁명과 각종 전염병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은 가족의 생존자였다. 게다가 친언니의 간질 병력과 빈센트 사촌들의 정신 병력도 목격하였다. 이 불행은 곧 자기 자녀들에게도 나타났다. 첫아들을 바로 잃고 그 후로 낳은 6형제 중 빈센트를 포함해 4명이 정신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는 평생 불행이 닥칠 것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처럼 살았다.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안나가 빈센트를 위해 한 최선은 종교적 통제였다. 빈센트가 목사관 (빈센트의 아버지는 개혁 교회의 목사였다) 밖에 나가서 가난하고 거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였고 사소한 일 하나에도 규칙을 정하여 의무화하였다. 그 규칙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자책과 회개의 기도를 하게 하여 용서를 받게 하였다. 이유 없이 평탄한 삶이 불편했는지 자주 빈센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삶이 아무 일 없이 잘되는 것은 신의 가호가 아니야. 그래서 이를 드러내어 기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지나친 염려와 통제로 애정이 결핍된 빈센트에게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도 허락되지 않자, 그는 자기감정을 격렬한 분노로 태워버리는 아이가 되어갔다. 어머니 안나의 차가움과 아들의 뜨거운 분노는 서로 섞이지 못한 채 원색의 강렬함으로 남겨지고 말았다.빈센트를 교양 있는 지성인으로 키우고 싶어 하던 안나는 일곱 살의 어린 그를 가톨릭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예상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아이들의 귀를 막아 버리거나 소리를 지르다 퇴학을 당해 버렸다. 빈센트가 열한 살이 되자 빈센트의 부모는 그를 다시 한 개혁 교회의 기숙학교로 보냈다. 이때 빈센트는 자기의 심정을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고 밤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리스도 같았다고 표현하였다. 역시 심하게 담당 교사에게 저항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빈센트의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이 있었다. 그는 자연이 드러내는 색채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의 그림에 꽃과 풍경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관심 또한 어머니 안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안나는 목사관의 정원에 각종 꽃을 심어 가꾸었고 그 꽃으로 집안을 꾸미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빈센트는 안나에게 배운 정원 가꾸기, 꽃꽂이와 수공예, 실내 장식에 열정을 보였다. 좀처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목사관을 벗어나 들로 나가 온갖 풀과 벌레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전문가적 경지에 이르렀다. 주위에서는 빈센트가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가 될 거라고 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훗날 그가 그림의 모티프를 얻기 위해 계속 따듯한 남부 프랑스를 옮겨 다닌 것도 역시 자연에서 강렬한 빛과 찬란한 색을 찾기 위해서였다. 빈센트는 자연을 보면 행복과 창의력이 샘솟아 먹는 것도 잊는다고 할 정도였다.빈센트는 훗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란색과 푸른색, 붉은색과 초록색의 대비를 통해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감정과 정열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거절당하고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던 안나의 차가운 눈빛, 애정이 결핍된 아이 빈센트의 빈 마음을 따듯하게 채워주던 자연의 빛과 색채들은 훗날 들이 되고 꽃이 되어 작품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었다. 결핍을 채워준 지성과 신앙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그의 열정은 사실 지나친 집착에 가까운 병적인 것이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좌절과 희망의 끝을 잡고 살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의 열정은 쓰레기처럼 버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치 못한 정신을 달래며 10년 동안 900여 점의 작품과 1,000여 점의 스케치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의 지성 때문이었다.그는 독서와 글 쓰기에도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그가 글을 몰랐을 때부터 빈센트의 어머니는 그를 책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이 시절 그의 어머니가 자주 읽히고 외우게 했던 안데르센의 동화 ’‘The Story of Mothe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죽음으로 잃는다. 그 어머니는 죽음이 데리고 간 아이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난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고 두 눈을 빼 주고 검은 머리까지 백발로 바꾸는 희생으로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를 데리고 간 죽음의 신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살려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곧 그녀는 아이 살리기를 포기하고 그 아이의 죽음을 택하고 만다. 죽음의 신이 보여준 아이의 미래가 너무나 비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빈센트를 향한 어머니 안나의 불안한 애착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책으로 어머니는 자기 마음을 보여주고 빈센트 역시 그 텍스트를 이해하여 글과 그림으로 해소해 내는 지적인 작업을 할 소양이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빈센트의 글쓰기를 보면 그의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자기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글들은 매우 간결하고 자기만의 창의적 문체로 쓰였다. 이 편지들은 대체로 두세 문장을 넘어서지 않는다. 길게 늘어놔야 할 내용을 새로이 단어를 조합하여 더 이상 가감이 필요 없게 글을 써냈다. 자기 그림에 대한 설명도 간단하다. 자신의 상상력들이 어떻게 색으로 입혀져 붓의 터치로 발현되었는지 시처럼 보여준다. 빠르고 두터운 그의 붓질처럼 그의 편지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것 같다. 이런 그의 글이 담긴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한글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읽기를 권하고 싶다.그가 지성인이었다는 근거는 분명하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작가가 150여명이나 되고 언급한 책도 300권 정도 된다. 책에서 인용한 문학적 표현은 800여개나 된다. 그는 고전에서 당대의 작가들까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 나갔다. 러시아, 유럽, 미국 문학가들의 시와 소설 뿐 아니라 철학과 역사 서적도 탐독하였다 . 따라서 시대의 흐름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에밀 졸라, 볼테르, 빅토르 위고, 모파상, 찰스 디킨즈 등의 근대 문학을 통해 절대적 신 중심의 시대가 끝나고 계몽 시대 조차도 저물어 세속화로 가는 역사적 흐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인상파 화가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흐름도 이론적으로 잘 꿰뚫고 있었다. 당시 자연을 그대로 그리거나 자연이 주는 인상만을 표현하던 기교적인 화가들 너머 화폭에 자기의 감정과 정신을 담아 내려 한 것도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현대적 지성 때문이었다. 그의 단순하고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질, 그리고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색과 선을 단순화 시킨 것을 보면 이미 야수파, 입체파 화가들의 설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는 현대 화가들의 선배 화가임이 분명하다.그런데 이런 빈센트의 지성보다 더 압도적으로 그를 지배한 것이 있었다. 신앙이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세월을 앞서 갔지만 신앙만큼은 오히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왜 그랬는지 그가 탐독했던 책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성경이었다. 특히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 속 예수의 삶을 심히 동경하여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다. 또 르낭의 예수전,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이 지난하고 원시적인 제자도에 관한 책들을 읽어 나갔다. 결국 주를 향한 지나친 헌신이 그를 사로잡아 그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의 눈에 산업혁명 이후 비참하게 살아가는 런던의 도시 근로자들, 시커먼 탄광의 광부들, 가난한 농부들이 어른거려 사치스런 그림 거래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급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이런 점을 단지 무모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가 자연에 자기 마음을 불어 넣어 화폭에 담은 상상력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는 역시 약자들의 고통을 자기의 마음에 그려 넣을 줄 아는 공감의 신앙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에 그려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연민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그의 신앙은 그의 결핍을 채우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밀어주었다.슬픔과 기쁨의 싸움빈센트는 17세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꽤나 잘 나가는 그림 거래 상으로 지냈다. 미술사와 비평에 해박하여 매우 인기있는 상인이었다. 그런 그가 직장에서 쫓겨난 이유는 갑자기 생긴 목회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때부터 간질과 발작, 분노 그 뒤에 찾아오는 참담한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갔다. 빈센트의 미친 듯한 열정은 목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목회자가 되기에 필요한 라틴어, 그리스어 학습 과정을 견디지 못하여 정식 목회자가 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벨기에의 탄광 지역에 무급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소원한 대로 헌신적인 목회를 하였다. 자기의 사택을 탄광 근로자들에게 내주고 먹을 것조차 나누어 최소한의 식량으로 살았다. 잠을 줄여가며 그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부족한 수면과 영양 탓에 그의 정신은 더 나빠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를 파견했던 선교 단체의 감독관은 빈센트를 보고 도저히 선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품위가 훼손되었다고 보고 그를 그만두게 하였다. 그래도 목회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빈센트는 몇 번의 시도를 더 해 보지만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가진 그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렇게 원하던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난 후 빈센트가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 그리기밖에 없었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화가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을 하며 인정받지 못하고 팔리지 않는 그림을 계속 그려가며 동생에 대한 채무감만 쌓이는 긴 세월을 견디기 힘들어하였다. 이 시절에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우울, 고뇌, 무력감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써 그의 심정이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독서와 목회에 미친 듯한 열정을 보였던 것처럼, 빈센트는 그림에도 온 힘을 다하였다. 정신이 온전할 때 힘을 내어 집중하여 빠르게 그림을 그려 내었다. 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 확신, 힘, 격렬함, 열정 같은 단어들을 써서 우울감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단호하게 표현 하였다. 이 좌절과 희망, 슬픔과 기쁨의 교차를 빈센트는 격렬한 고뇌, 적극적 우울 같은 상반된 단어들을 조합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파랑과 노랑을 대비시킨 그의 그림같이 슬픔과 기쁨의 양가 감정이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그는 지독한 우울감을 몰아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마치 희망이라는 무기로 좌절을 무찌르는 전사 같았다. 빈센트의 삶의 모토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였다. 그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찾아오는 근심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쁘게 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런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에 몰두하였다. 화가 생활 10년간 이틀에 한 점씩 그렸으니, 그가 얼마나 쉼 없이 전쟁하듯이 그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어두운 색을 쓰는데 찬란하게 빛나고, 그 붓질이 거친데 힘찰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찬란한 패배자이 글을 쓰다 오래전 본 영화 Loving Vincent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살아봐, 삶은 어떤 강한 사람도 무너뜨려 버려.” 또 가수 Don Mclean의 노래 ‘Vincent’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이제 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제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최근에 한 종합 격투기 선수의 은퇴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그가 이미 패배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 궁금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수는 종 칠 때까지 몰매를 피할 길이 없다. 그래도 ‘그래, 맘껏 더 때려봐’ 하며 더 투지를 불살라야 비참해지지 않는다. 신앙인은 삶의 고통을 피해 패배에 자신을 쉽게 내어주는 선수가 아니라 맞을수록 삶의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폭력을 쓸 수 없으니 남은 무기는 신앙, 지성, 의지, 열정, 말, 눈빛 같은 맷집밖에 없다. 내가 본 그 격투기 선수는 사실 두 번이나 챔피언에 도전하여 무참하게 꼬꾸라졌다. 심지어 팔이 빠진 상태로 싸우기까지 하였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도 비참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를 감히 누구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했다. 찬란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그의 말년에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생 레미 정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 시절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끝까지 얼마나 잘 싸웠는지 보여준다. 빈센트는 정신 병원에 갇혀 지내는 동안 밤이면 찾아오는 죽음의 충동을 견디고 눌러 새벽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 그러다 슬픔이 걷히고 기쁨이 찾아올 때쯤 병원의 창문 너머 비치는 새벽녘의 그 빛나는 별들을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밤의 좌절과 새벽의 희망의 골은 너무나 깊어 그를 지치게 하여 헤어 나올 수 없게 하였을 것이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빈센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별까지 걸어가고 싶어 했던 그의 소망대로 말이다.이제 글쓰기에 지친 나를 불러낸 빈센트에게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당신을 큰 실패자라고 부르지. 평생 거절당하고 목회자로도 실패하고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하고(평생 그림 한 점 판매했다) 끝내 그렇게 갔으니. 그런데 빈센트 그대는 원하던 대로 살았어. 근심하는 자였지만 기쁨으로 이겨내려 하였고 가난한 자였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였고 아무것도 없는 자였으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 떠났으니 말이야. 그대는 그렇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포기했지.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다 빼앗아 버리셨다고는 하지 않을게. 그리 살면 얼마나 할 얘기도 많고 그릴 것도 많겠어. 나같이 메마른 사람들은 누구나 그대처럼 살아 보기를 꿈꿀 거야. 정말 고마워 빈센트, 어떻게 살아야 어떤 글이 써지는지 알려줘서. 그러고 보니 그대는 참 찬란하게 살았네.
스펄전, 그는 사실 청소년 목회자였다
by Will Standridge
2024-03-15
스펄전이 청소년 사역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청소년 목사였다. 그가 목회한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학생 사역이 없었다. 하지만 스펄전은 그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품고 자주 글을 썼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의 중요성과 실용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스펄전은 십대 시절에 회심하여 목사가 되었다. 그는 글과 설교에서 일관되게 다음 세대를 고려했다. 목회자라면, 맡은 부서에 상관 없이 청소년 사역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를 스펄전에게서 배워야 한다. 부모의 책임스펄전은 자녀의 신앙 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 그는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녀에게 구주의 필요성을 가르치는 일을 주저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한 단지 예의에만 신경 쓰고, 복음이 가져오는 진정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겉만 번지르르한 신앙”을 경고했다.스펄전은 부모에게 신명기 6장의 명령을 수행하라고 말했다. 자녀 양육의 최전선에 지속해서 복음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거나 도덕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죄와 중생의 필요성에 관한 솔직한 대화가 있어야 했다. 스펄전은 이렇게 썼다. “자녀에게 너는 타고난 본성이 선하니까 발전만 좀 하면 된다는 식의 망상에 가까운 헛소리로 아첨하지 마십시오. 복음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세요. 행여라도 자신이 죄가 없다는 식의 환상에 아이가 빠지는 일이 없도록 아이에게 그의 죄를 보여주십시오.”스펄전은 부모의 역할에 대한 지침을 교회의 젊은이에게까지 확대했다. 그들이 부모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경건한 모범의 가치를 인식하도록 격려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영이 지혜로운 자의 입을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 보십시오. 나는 진리의 종교가 모범을 보이는 부모를 통해서 전해지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젊은이를 훈련하라는 부름을 받은 목회자젊은이의 영적인 삶을 양육하는 데서 부모의 주된 역할을 강조했던 스펄전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목회자의 책임을 무시한 건 아니었다. 그는 모든 목회자가 청소년의 제자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훌륭한 교인조차도 이 사역을 맡기에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다른 사역이 있다고 해도, 청소년 사역이라는 거룩한 소명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스펄전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로운 그리스도인과 어린아이의 영적 양육을 우선시하라는 부르심으로 해석했다. 그는 목회자가 특히 젊은 성도에게 세심하고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기를 원했다. 이런 목회적 사명은 단지 신입 목회자를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 목회자라면 누구나 중심으로 삼아야 할 과제이다. 청소년 목회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스펄전은 단순한 오락을 피하고 청소년을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는 데 필요한 지도와 멘토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목회자에게 다음 세대를 향한 가장 큰 격려자가 되라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젊은 신자의 초기 신앙 여정과 관련해서 의구심을 갖지 말라고 했다. 의심이나 회의 없는 영성을 키움으로써 목회자는 교회 공동체에 엄청난 축복을 가져올 수 있다.아이를 교리로 훈련하라스펄전에게 차세대 사역 환경의 목적은 어린아이를 단지 “질서 있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단순한 교리에 그치지 않고, 분명하고 확신에 찬 복음 교리의 학습을 우선시했다. 그에게 모든 교리는 다 어린이의 영적 발달에 필수적이었다. “왜 더 수준 높은 교리, 즉 은혜의 교리를 그들로부터 멀리해야 합니까? 진정으로 회심한 어린이에게, 단지 그가 어린이라서 너무 어려운 교리가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어린이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교리에 대해서 교사가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청소년 사역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강의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교리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작업의 주요 부분이 될 것입니다.” 설교의 왕자라고 불린 그의 심장은 교리적 명료성에 대한 사랑으로 고동쳤고, 그리고 그 열정은 젊은이를 향한 설교로 이어졌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활력을 불어넣는지 … 은혜의 교리를 굳게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사탄은 곧 당신에 대한 공격을 포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화살도 뚫을 수 없는 판금 갑옷과 같기 때문입니다.재미가 중요하고 교육이 뒷전으로 밀린 미국 교회는 스펄전의 가르침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그는 우리에게 부모의 의도, 목회적 돌봄, 청소년의 건전한 교리 교육을 방해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어린 양”을 먹일 때 학생들은 주님에 대한 지식과 열심에서 자랄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 사역자의 모델사역이 분명하게 구분된 시대에는 내가 맡은 교인만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스펄전은 목회자라면 모든 교인을 다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방위에 걸친 스펄전의 목양과 교리 교육은 우리에게 훌륭한 역사적 모델이 된다. 모든 지역 교회 목사와 장로는 자신이 돌보는 청소년을 (다른 사람이 목회할) 내일의 교회가 아니라 오늘 내가 목회하는 교회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부모를 목양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자녀를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과 동역해야 한다. 그렇기에 설교는 단지 어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향한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회 철학이 가능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에 직접 뛰어들기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만 한다. 격려가 필요한 십대, 어려움을 겪는 십대, 교리 교육을 받는 새 신자 어린이, 그리고 신앙 간증이 가능한 성숙한 청소년을 찾아라. 그들에게 성경의 깊은 진리를 가르치는 일을 주저하지 말라. 당신이 씨름하는 수준 높은 신학 개념을 절실히 듣고 싶어 하는 5세, 10세, 그리고 15세 어린이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놓고 고민하라. 그리고 당신의 교회에 전임 청소년 목사라는 축복이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를 전폭 지원하고 성공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제공하라. 젊은이를 돌보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아니다.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스펄전의 지침을 따르자. 당신의 사역 타이틀에 ‘청년’이라는 단어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목사라면 맡은 부서와 관계없이 교회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청소년이 포함되어 있다. 원제: Spurgeon the Forgotten Youth Pasto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사모를 그만두고 싶을 때
by Glenna Marshall
2024-03-14
작은 시골 교회 목회를 위해 다른 주로 떠날 때, 우리 부부를 파송한 목사는 우리가 앞으로 사역지에서 겪게 될 고통을 잘 이겨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당시 나는 그가 왜 그런 기도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는 우리가 어떤 고통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 목사 부부에게 교회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런 기도를 한 걸까?그건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만일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과거의 내게 충고할 수 있다면, 목사에게 지역 교회보다 더 큰 슬픔을 가져다주는 곳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역 중에 겪는 모든 고통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도 덧붙일 것이다. 아군이 쏠 때 가장 아프다사역이 십 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목회는 힘들었고 삶의 다른 부분으로 도무지 풀 수 없는 정서적, 영적인 부담이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교회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교회에 충성하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떠났다.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거의 언제나 인신공격으로 이어졌고, 남편에 대한 사람들의 안 좋은 이야기는 어김없이 내 귀에 들어왔다. 각종 댓글과 불만이 나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고통은 잔혹했다. 목회라는 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알고 나는 놀랐다. 교회가 하나의 가족이다 보니 형제와 자매가 입히는 상처는 깊을 수밖에 없었다. 교회가 혼란을 겪던 초기에 안식년 중인 한 선교사가 우리집에 머물렀고, 우리는 그에게 당시 겪던 어려움을 일부 나누었다. “아군이 쏘는 총이 가장 큰 상처를 줍니다.” 그가 말했다. 자신도 선교지에서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교회 내에서나 다른 선교사가 일으키는 문제만큼 상처를 주는 것은 없었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이 복음으로 연합하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서로 화목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형제 우애”(롬 12:10)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맞서면 하나님이 이루신 화해가 무너질 위험에 처한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사랑을 느껴야 할 곳이 가장 무서운 곳으로 바뀔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일이 내게 닥쳤다. 교회가 나에게 두려운 곳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떠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슨 방법을 찾아서라도 나도 예수님처럼 교회를 사랑해야만 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신다신약 전체에 걸쳐서 신랑으로 불리는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그분은 교회를 아버지 앞에 순수하고 흠 없는 신부로 올려드릴 것이다(엡 5:27). 교회가 예수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기 위해서 바울은 결혼을 비유로 사용했다. 그분은 교회를 새롭고 의롭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바치셨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의 죄로 인해 교회에서도 서로간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지만, 교회는 믿음의 성화와 인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교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히 10:25). 애초에 서로 관계 없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로 모으시고 각각에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사랑의 선물이 교회이다. 교회는 우리를 성화시키고, 가르치고, 훈련하고, 또 격려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바울은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살전 5:14)라고 썼다. 그리스도의 몸은 방황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슬픔에 잠긴 자들을 위로하고, 가난한 자들을 공급하고, 모든 사람을 가르친다. 요한은 신자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순종을 실천하라고 거듭 촉구하며 그런 사랑이야말로 그들을 세상과 구별한다고 여러 번 지적했다(요 13:35; 요일 4:20-21; 5:1).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방의 선의를 전제하고, 서로를 은혜로 인도하며, 어려움 겪는 사람을 참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순종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교회는 상처를 주지만 또한 치유한다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는 10년의 혼란을 극복하고 치유의 과정에 들어갔다.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복음연합 여성 대회에 참석했다. 나는 ‘교회 상처’를 다루는 소그룹에 등록했고, 재키 힐 페리(Jackie Hill Perry)의 “하나님은 교회를 사용하여 교회의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눈물을 흘렸다. 내게 그토록 깊은 상처를 준 바로 그 교회에서 치유가 가능할까? 나는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사랑하라고 부르신 그 몸을 사랑하겠다는 새로운 열정을 갖고 교회로 돌아갔다. 교회 가족이 더 가까워지고 다시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오늘까지 변함없는 깊은 우정을 하나씩 시험적으로 만들어 갔다. 우리 부부는 곧 우리 교회 모든 가족과 함께 19주년을 축하할 예정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선한 목적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증언하는 산 증인이다. 그분은 사역 중에 고난을 받도록 우리를 부르실 수도 있고, 우리에게 신실한 인내를 가르치기 위한 교훈을 갖고 계실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은 게 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 가족을 사랑하는 기쁨은 슬픔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항상 옳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때가 되면 우리를 아버지 앞에 순결하고 흠 없이 세우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만은 언제라도 굳게 붙잡을 수 있다.원제: When the Pastor’s Wife Wants to Quit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키워드로 읽는 로잔 운동 (1) ‘세계’
by 문대원
2024-03-13
로잔 운동을 알고 싶다2024 서울-인천 로잔대회를 앞두고, 로잔 운동의 젊은 지도자 문대원 목사가 로잔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 역사적 복음주의 운동의 ABC를 앞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드립니다.세계 선교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로잔 운동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키워드가 필요합니다. 바로 (1) 세계 (2) 복음주의 (3) 선교 (4) 운동이라는 키워드입니다. 앞으로 총 4회에 걸쳐서 각각의 키워드가 가진 신학적, 선교학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은 “세계”라는 키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세계(world)는 기독교 복음의 보편성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만을 위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세계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땅의 모든 족속을 축복하기 위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창 12:3).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시내 산에서 선포된 율법의 전문(前文)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온 세계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그분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하는 책임을 받았습니다(출 19:5-6).기독교 복음의 보편성은 성경이 기록된 방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그 경전이 창시자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 쿠란은 무함마드가 사용했던 아랍어로 기록되었고, 유교의 경전 십삼경(十三經)은 공자가 사용했던 중국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하셨지만,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세계 모든 종교 중에서 유일하게 창시자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기록된 경전입니다. 헬라어는 신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언어가 아니라,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의 공통어(lingua franca)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 복음은 처음부터 다른 언어로 표현되고 번역되었는데, 이는 기독교 복음이 특정한 언어와 문화에 뿌리내린 진리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위한 보편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 예일 대학의 라민 사네(Lamin Sanneh) 교수는 “성경 번역은 교회의 태생적 특징(birthmark)이자,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benchmark)이다. 왜냐하면 자국어 성경 없이는 현지 교회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다른 종교와 대비되는 기독교의 또 다른 특징은 기독교에는 다수의 중심(center)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모든 종교에는 특정한 지리적 중심이 있습니다. 가령, 이슬람의 중심은 메카이고, 유대교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며, 힌두교의 중심은 인도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다수의 중심을 가진 다중심적(polycentric) 종교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를 중심 거점으로 해서 발전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콘스탄티노플, 캔터베리, 비텐베르크, 취리히, 제네바 등 여러 지역이 기독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앤드류 월스, 필립 젠킨스, 데이나 로버트와 같은 세계 기독교학자들은 기독교 복음이 한 방향이 아니라 다방향(multi-directional)으로 전파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를 상세하게 살펴보면, “복음의 서진(西進)”이나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과 같은 단순화된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선교 운동이 있었습니다. 일례로,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북미 대륙에 도착하기 1세기 전에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은 인도와 일본, 중국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세계 여러 지역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하였고, 복음을 위해서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 경계를 넘어갔던 수많은 선교사의 헌신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신앙 운동이 되었습니다.1974년에 시작된 로잔 운동은 당시 부상하던 세계 기독교의 현실을 자각하며 비서구권 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다음과 같이 주목했습니다. “선교의 새 시대가 동트고 있음을 우리는 기뻐한다. 서방 선교의 주도적 역할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은 신생 교회들 중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위대하고도 새로운 자원을 불러일으키신다”(로잔언약 8항). 국제로잔위원회는 리더십 구성과 참가자 선정에 있어서 현재 세계 교회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의 프로그램 위원장은 홍콩 출신의 패트릭 펑(Patrick Fung, 국제 OMF 대표)이 맡고 있으며, 다수의 아시아 선교학자와 선교 리더들이 신학 위원회와 프로그램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로잔대회를 통해서 세계 기독교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일터의’ 보통 사람들
by 김선일
2024-03-12
얼마 전 딸아이가 급히 병원 응급실에 가는 일이 생겼다. 진단 결과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빨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순서가 되는 대로 수술 시간을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종합병원이 늘 그렇듯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다 큰 딸이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아무 기별이 없다고 하니 부모 마음이 초조한지라 ‘따지러’ 갔다. 그냥 보이는 대로 응급실 데스크 앞에 앉은 간호사에게 물었다. “우리 애가 아파서 와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만 있는데 수술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응급실에 더 늦게 온 사람들도 먼저 수술받으러 가던데요.” “어 그러시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님. 따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앳되게 보이는 간호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친절을 다해 응대한다. 아이의 이름을 입력해서 확인한 그녀는 자기가 모든 상황을 한 번 더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순순히 아이 옆으로 돌아가고 얼마 뒤, 그 간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아버님, 제가 지금 담당 선생님에게 여기 환자분 상황이 급하다고 알려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더 급한 환자들이 있어서 그랬다고 곧 수술 일정을 잡아주시겠다고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간호사의 정성어린 조치에 더는 정색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돌아간 간호사는 약 10분 뒤 다시 와서 묻는다. “환자분, 혹시 불편하진 않으신가요? 제가 지금 또 확인해 봤는데 수술을 위한 입원수속을 도울 선생님들이 오신다고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윽고 입원수속을 돕는 스탭들이 와서 병실로 이동하는데, 그 간호사가 나와서 “수술 잘 받으시고 잘 나으세요!” 응원을 한다. 나도 웃으며 고맙다고 화답하는데, 그녀의 자리에 놓인 (나는 식별할 수 있는) 큐티집이 보인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을 뿐 아니라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오래 전에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의 하나님이 부르신 보통 사람들이 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같이 우리가 위대한 신앙의 선배로 추앙하는 이들은 원래부터 특출한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대하게 쓰신 보통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 젊은 간호사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그리고 그녀가 아마도 좋은 신앙인이라는 추정하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터의” 보통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근래 일터 사역, 일터 영성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앙의 무게 중심이 교회와 주일에서 이제는 일상과 평일로 이동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 중 가장 많은 관심과 에너지가 쏠리는 일터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런데 종종 일터 사역과 영성을 위한 모델은 평범한 일터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보다는, 성공적인 기업인이나 선망할 만한 전문직 종사자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모임에서 일터 사역 강좌를 인도하는데, 그날의 주제가 일터에서의 압박이었다. 이미 정해진 교재와 외국 저자의 동영상 강의가 주어진 나는 그 내용을 해설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일터에서의 압박이라는 아주 중요한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사례로 나오는 이들은 모두 변호사들이었다. 기독법률가회 모임이라면 참으로 적절한 모델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더욱 평범한 일터에서 단순한 업무나 육체노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와 닿을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사례로 나온 변호사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자신의 소명을 감당하는 이들이었다.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일터의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의 나라를 위해 쓰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일터 영성과 소명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아니, 평범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터 신앙의 영웅이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일터 사역의 건강한 방향이자 가능성이라고 믿는다.언젠가, 집 앞의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순댓국 하나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와서 반찬은 셀프라고 웃으며 일러주신다. 반찬 코너로 가니 따라오셔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신다. “고추절임이 참 맛있어요. 꼭 한번 드셔보세요!” 별로 당기는 반찬은 아니지만 자상함에 몇 개 가져왔다. 식사하는 중간에도 오셔서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으며 챙기신다. 사실 혼자 외로이 밥 먹는데 뜻밖의 친절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계산을 하며 고요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자세히 들으니 익숙한 멜로디다. “요게벳의 노래!” 한 가지 예를 더 들겠다. 몇 주 전, 학교 신입생 면접을 한 일이 있었다. 비신학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아직 믿음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학교의 어떤 점이 끌렸냐고 물으니, 학교 분위기가 따뜻하고 직원들이 친절했단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는 부담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누가 친절했냐고 물으니, 학교 카페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특히 상냥하고 친절했다고 한다. 또 한 번 뿌듯했다. (우리 학교 카페에 한번 와보시라!)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일터에서의 작은 섬김과 친절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터 사역은 바로 나와 내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터의 보통 사람들이 이제 일터사역의 방향과 가능성이 되어야 한다. 거창하고 성공적인 일터사역의 사례보다 작고 평범한 영웅들에서 공감과 동기부여를 받아야 한다. 수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에는 버스 기사로 일하는 린다라는 여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녀는 자기 버스에 자주 타는 손님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늦으면 기다리곤 한다. 한 80대 할머니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힘들게 걸어오는 것을 보고 운전석에서 내려 노파의 장바구니를 대신 들어 버스에 실어줬다. 이 노파는 그 뒤로 린다가 모는 버스만 기다리게 되었다. 한번은 추수감사절 즈음에 버스 정류소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는 여성을 보았다. 그 여성은 그 지역에 처음 이사를 와서 모든 게 낯설었다. 린다는 그 여성에게 다가가 이 지역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지 묻고는 추수감사절에 자기 집에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초대했다. 이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신문기사는 린다는 자신의 버스를 작은 축복의 공동체로 만들었다고 평한다. 때로 승객들은 린다에게 종종 꽃다발을 비롯한 선물을 주곤 한다. 취재 기자가 묻는다. “짜증내는 승객들을 대하고, 교통 정체에 시달리며, 때로는 좌석에 붙은 껌도 떼어야 하는 고된 버스 운전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까?” 린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새벽에 일어나 주님 앞에서 30분 동안 기도하고 무릎을 꿇는 데서 저의 하루 기분이 결정됩니다.” 린다는 버스 노선 종점에 도착하면 사람들에게 “이제 운행이 끝났습니다. 사랑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말한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느 버스 기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우리는 이 복잡한 도시의 어디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샌프란시스코를 지나가는 린다의 45번 버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나는 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어느 미국 목사님의 설교 블로그에서 읽었다. 하지만 미국 교회에서만 배울 수 있는 선진 사례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이처럼 일상과 일터에서 발견하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의 그 평범하고 위대한 이야기를 찾자.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무엇을 할 것인가
by 양혜원
2024-03-11
항암치료 중이신 어머니가 입맛이 뚝 떨어지시고 그나마 찾으시는 게 햄버거이다. 남들은 몸에 안 좋다고 뭐라 하지만, 아무것도 못 드시는 거보다는 낫지 싶어서 그날 저녁도 퇴근길에 버거 사냥을 나섰다. 어머니가 잘 드시는 브랜드의 가게는 너무 멀리 있어서 어디서 사가나 고민하는데 예전에 버스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들렀던 버거 가게가 생각났다. 큰 기대 없이 시켜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 버거집으로 갔다.하지만 때는 이미 저녁 7시를 넘었고, 학교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이라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그래도 주방 안쪽에 사람이 있어서, 아직 영업하시냐고 물었더니, 연세가 좀 있어 보이시는 아주머니가 지금 마지막 버거가 딱 두 개가 남았다고 하신다. 사이드로 감자튀김이랑 치킨 너겟은 튀겨줄 수 있다고 해서 간병하시는 아버지 생각해서 함께 주문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주방의 아주머니는 그 버거집의 주인이셨는데, 몸의 움직임이나 얼굴로 보아서는 연세가 좀 있어 보이셨지만, 머리카락이 검어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손님은 나 혼자라 너무 조용한 게 오히려 어색해서 소소하게 말을 주고받다가,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었더니, ‘58년 개띠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만으로 올해 예순여섯이 되신다는 이야기다. 색은 까만데 두피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숱이 적고 가는 머리카락이 그 나이를 말해주는 듯했다. 지난번에 여기 우연히 와서 먹었는데 버거가 맛있어서 또 왔다고 했더니, 자신이 미국에서 햄버거 가게를 오래 했었다 하신다. 미국에서 38년을 살았다는데, 그곳에서 자리를 잘 잡으신 분이 어쩌다가 늦은 나이에 다시 한국에 와서 버거 가게를 시작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탈북자 선교하러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셨던지, 나더러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셨다. 다닌다고 하자 그때부터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부름으로 한국에 다시 나와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길게 풀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의 눈길은 정수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분의 검은 머리에 머물렀다. 흰머리 한 가닥 보이지 않게 새까맣게 물들인 그 머리는 마치 ‘뒤로 물러나 숨기’[隱退]를 거부하는 강한 의지처럼 읽혔다. 내일도 햄버거 백 개를 주문받았다며, 감자와 치킨 너겟을 튀기는 틈틈이 재료 준비를 하는 손이 분주했다. 어쩌면 그는 한국으로 다시 나올 때, 텐트메이커로서 제2의 인생을 산다는 생각에 제법 들떴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생들의 선생이라고 불리는 파커 팔머는 곧 벼랑을 넘어갈 인생의 끄트머리(brink)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면서, 죽음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 일을 어떻게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지만, 해 뜸과 해 짐 사이를 어떻게 걸어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묻는다. 해가 진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갈 것인가, 거기에 저항하며 갈 것인가, 아니면 협력하며 갈 것인가.여기에서 선택이라는 말이 애매하게 마음에 머문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근대 이래로 우리 문화가 선택은 마치 운명이나 주어진 상황을 거스르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선택은 치고 나가는 능동성만큼이나 받아들이는 수용성도 필요로 한다. 버거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근 40년을 살던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며 선교사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치고 나가는 능동성이었지만, 한국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며 선교사 생활을 하는 데에 따라오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상황은 수용하면서 갈 수밖에 없다. 머리는 까맣게 물들여도, 약해지는 관절과 체력은 수용하면서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용감한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해가 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인생 2막이 아닌 3막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지도 제법 되었다. 심지어 배우자도 두 번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미덕일 수 있었던 것도 다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불평이 반복될 때는, 엄마도 진작에 한 번 갈아타실 걸 그랬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완전 흰소리는 아니었다. 나의 박사 과정 지도 교수는 40대에 이혼을 하고 홀로 십대 입양아를 키우며 종교여성학 과정을 신설했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종교여성학자들과 네트워크를 다지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러다가 일흔이 다 되어갈 무렵 열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이 결혼은 여지껏 싱글인 제자들에게 부러움과 함께 ‘나도 어쩌면’ 하는 희망도 품게 한 결혼이었다.) 결혼 얼마 후 지도 교수는 은퇴하고 남편과 같이 아프리카 지역 엔지오 활동을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블로그도 시작했다. 학술적인 글만 쓰다가 처음으로 대중 독자를 위해서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거스르며 살아온 것 같은 지도 교수도, 아프리카에서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죽다 살았고, 열 살 어린 남편은 원인 모르는 장 질환으로 영양 섭취가 안 되어 한동안 고생을 했다. 능동적인 선택 뒤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상황들이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일흔 후반에 들어선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생은 많이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눈빛은 마치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는 길의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선 것 같아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너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것 같다는 내게 딱 좋은 나이에 시작했다고 말씀해 주신 분이었다. 그때 나는 마흔 초반에 집을 박차고 나가 박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서사에 제법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딱 1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박사 학위 하나로 팔자를 고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 사회의 온갖 모순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며 살고 있다. 능동적 선택 뒤에 따라오는 또 하나의 불가피한 상황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차이는 사십 대의 계단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풍경과 오십 대의 계단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풍경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좀 식상하지만 산의 비유를 쓴다면, 산 밑, 산 중턱, 산 정상의 풍경이 다르듯이 그 풍경이 사뭇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지는 해를 향해 가는 이 길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애초에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한 동기이다. 팔머는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혼란스러운 것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나도 비슷하다. 이건 도대체 왜 이런 거야, 하는 의문이 나를 글로 이끌었다. 흔히들 자신이 아는 것을 글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글을 쓰면서 알아간다. 어떤 때는 내가 뭐가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던 나의 글은 학부 졸업 논문이었는데, 이 글도 이해하기 어려운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그때 나의 의문은 왜 현실은 이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하는 것이었다. 그 논문으로 졸업생 우수 논문상을 받았는데, 이 질문은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내 글쓰기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여성학 석사 과정에 지원할 때 나의 의문은, 왜 나는 똑같은 나인데 평신도일 때랑 사역자 부인일 때랑 교회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다른가였다. 이 주제로 쓴 나의 연구 계획서로 석사 과정에 합격했고, 이 질문은 훗날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할 때 나의 의문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문화적 문제인가 종교적 문제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여성주의 의식을 가지고도 보수적 신앙관을 수용한 여성 작가들을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연구교수 생활을 거쳐 특임교수 타이틀을 달고 영문 학술지 편집 일을 하는 지금도 나는 궁금한 것들이 많다. 왜 여성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공격성은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사회가 여성을 억압한다고만 할까? 왜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한때 여성주의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이런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쓴다. 하나의 궁금증을 풀다 보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고, 세상은 이해 못 할 일을 쉼 없이 던져주기에, 연구 논문도 쓰고, 이렇게 짧은 에세이도 쓰고, 책도 쓴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의 자세를 더 잘 갖추기 위해서 더 열심히 듣고 관찰하려 한다. 내가 선택한 것도 그 선택이 나를 데려간 곳도 모두 이런 관찰을 통해 글이 된다. 이런 선택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을 기독교 전통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소명일 것이다. 근대 이후의 사회가 선택을 마치 운명이나 주어진 상황을 거스르는 일에만 해당하는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었다면, 소명을 마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꾹 참고 위에서 부르는 대로 질질 끌려가는 일처럼 생각하게 만든 것은 교회의 실수다. 소명도 선택과 마찬가지로 치고 나가는 능동성과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있다. 그리고 사실 선택이라고 하는 것도, 어디까지가 내 선택이었는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소명 또한 어디까지가 주어진 것인지 선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다만, 삶이 던져주는 것들에 응답하며 가다 보니 그 길에 나와 함께 자라나는 무엇이 생겼다면, 그런 게 소명 아닐까. 그리고 그 자라난 무엇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내 옷같이 느껴진다면 그 옷을 입고 지는 해를 향해서 가도 좋을 것이다.
글로벌과 로컬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복음주의 교회
by 문상철
2024-03-09
로잔 운동의 지도부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4차 로잔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역별, 이슈 네트워크별로 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를 초청하여 공청회(listening calls)를 개최했다. 2024년에는 지역별 리더들과 함께 총 12회의 지역 간담회, 그리고 23개의 이슈 네트워크(issue networks)와 YLGen(청년 지도자 세대, Younger Leaders Generation) 네트워크로 구성된 24회의 간담회도 개최했다. 회의는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 사이에 진행되었으며 각 그룹의 리더들이 회의에서 정리한 회의록을 제공했다.회의록의 질적 데이터는 근거 이론(grounded theory)의 절차에 따라 글로벌 공청회 팀(Global Listening Team)에 의해 분석되었다. 귀납적 분석 과정은 캐시 차마즈(Kathy Charmaz)의 코딩 전략에 따라 일차 코딩(라인별 코딩), 집중 코딩 및 이론적 코딩의 3단계로 진행되었으며[1] QSR 인터네셔널사의 제품인 윈도우용 NVivo라는 QDA(질적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코딩 및 분석이 진행되었다.회의록은 경청 과정에서 사용된 5가지 질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1) 지상대위임령의 성취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틈(gaps) 또는 남아 있는 과제는 무엇인가?2) 지상대위임령의 성취를 가속화할 수 있는 유력한 돌파구와 혁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3) 지상대위임령의 성취를 위하여 어떤 영역에서 더 큰 협업(collaboration)이 이뤄지는 것이 필요한가?4)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주제는 무엇인가?5) 경청의 과정으로 우리가 추가로 의견을 들어야 할 대상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지역 보고서 개요12개의 보고서를 한 줄씩 코딩하여 분석한 결과, 총 285개의 주제 코드가 도출되었다. 이후의 집중 코딩 및 분석은 4개 이상의 공청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56개의 코드에 대해 진행되었다.남아 있는 격차에 대한 첫 번째 질문에 나타난 주요한 주제는 ‘제자도의 필요성’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사랑과 연합’ ‘리더십의 다양성’ ‘외부 세계와 접촉하지 않는 교회’ ‘남아 있는 미전도 종족집단(UPGs)’ ‘이슬람의 팽창과 무슬림 전도의 필요성’ ‘환경 위기와 창조세계 돌봄’ ‘타문화 선교의 부족’ ‘상황화의 부족’ ‘직장 및 일터 사역의 필요’였다.돌파구와 혁신에 대한 두 번째 질문에서 분석된 지배적인 주제는 ‘사역을 위한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 사용’ ‘자생적 선교 운동’ ‘사역의 돌파구와 혁신’이었다.협업에 대한 세 번째 질문의 범주에 속하는 주된 주제는 ‘협력의 필요성’과 ‘플랫폼으로서의 로잔운동’이었다.추가 연구에 관한 네 번째 질문에서 중요한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이민자’ ‘사역의 사회문화적 상황’ ‘COVID-19 팬데믹이 사역에 미치는 영향’ ‘미전도 종족집단’ ‘신학의 상황화’ ‘교회 성장’ ‘교회의 협력’ ‘Z세대와 젊은 세대’ ‘리더십‘이었다.경청해야 할 추가 대상자들에 대한 다섯 번째 질문에서 중요한 주제는 ‘Z세대와 청년들’ ‘성령’ ‘현장의 사람들’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 ‘불신자들과 타종교의 사람들’ ‘서로’ ‘여성’ ‘학계의 목소리’ ‘현지인’ ‘정치 지도자’였다.이슈 네트워크 보고서 개요24개의 보고서를 한 줄씩 코딩하여 분석한 결과 총 247개의 주제 코드가 도출되었다. 집중 코딩 및 분석은 4개 이상의 이슈 네트워크 공청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59개 코드로 진행되었다.첫 번째 질문의 범주에서 나타난 주요한 주제는 ‘제자도의 필요성’ ‘청소년 참여’ ‘사랑, 일치, 동반자적 협력관계’ ‘새로운 외부 사역에 대한 교회의 수용’ ‘총제적 관점의 부족’이었다. ‘상황화 부족’ ‘외부 세계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 ‘사역자과 지도자 훈련’ ‘자원의 격차’ ‘현대 기술과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교회’ ‘비전과 신뢰의 부족’ ‘미전도 종족집단(UPGs)’ ‘언어 장벽과 성경 번역’ ‘반기독교적 입법과 정치’였다.두 번째 질문에 대한 중요한 주제는 ‘사역을 위한 새로운 기술’ ‘사역의 돌파구’ ‘교회의 영적 각성’ ‘교회들과 지도자들의 연합’ ‘자생적 선교 운동’ ‘새로운 지도자들의 부상’이었다.협업에 대한 세 번째 질문에 대한 주된 주제는 ‘협업의 필요성’ ‘플랫폼으로서의 로잔’ ‘정보 공유의 필요성’이었다.네 번째 질문의 범주에 속하는 중요한 주제는 ‘모범 사례 연구’ ‘경험적 연구의 필요성’ ‘전도사역 연구’ ‘미전도 종족집단 연구’ ‘기금 마련 및 자금 조달’ ‘Z세대 및 젊은 세대에 대한 연구’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보는 사역에 대한 연구’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 관한 연구’ ‘현재 이슈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관한 연구’ ‘신학의 상황화에 관한 연구’였다.다섯 번째 질문에서 나타난 중요한 주제는 ‘Z세대와 젊은 사람들’ ‘세계 다수의 지도자들’ ‘현장에 있는 사람들’ ‘토착민’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 ‘여성’ ‘성령’ ‘불신자와 타종교인’ ‘서로’ ‘비즈니스 리더’ ‘디아스포라와 이민자’였다.글로벌 종합 및 이론적 논증전체 그룹의 회의록에는 총 391개의 주제 코드가 나타났다. 주제 코드 중 115개는 4개 이상의 회의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10회 이상 회의에서 총 38개의 코드가 나왔고 20회 이상 회의에서 6개의 코드가 나왔다. 그 코드는 다음과 같다: ‘협업의 필요성’(36회의 회의); ‘사역을 위한 새로운 기술 사용’29회); ‘Z세대 및 청년 세대의 소리 듣기’27회); ‘제자도의 필요성’25회); ‘사랑, 화합, 동반자적 협업’(20회); 및 ‘사역의 돌파구’(20회). 36개의 모든 공청회에 협업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 네트워크와 이슈 네트워크 회의에서 총 102개의 집중 코드(이슈를 다루는 4개 이상의 그룹)가 나타났다.틈과 남은 기회복음주의 교회가 직면한 도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사역에 참여하는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을 위한 제자도와 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제자도와 사역 훈련의 기본 접근 방식은 사역 혁신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기독교 교육의 기본이 되는 또 다른 강조점은 사랑, 연합, 동반자적 협력 관계였다. 지도자들은 복음주의 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에 대처하는 데 있어 교파적 배경과 조직적 경계를 초월하는 기독교적 사랑과 일치에 기초한 협력적인 노력을 요청했다.복음주의 교회가 당면한 남은 과제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패러다임 전환의 측면이 증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2] 지도자들은 사역의 접근 방식에서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축적된 사역 지식을 통해 프로그램과 활동의 수행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길 원했다.돌파구와 혁신사역에서 사용되는 첨단 기술과 미디어의 유용성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의 사용 덕분으로 사역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많은 지도자들이 공감했던 것은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눈에 띄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더욱 연합되어 있는데, 이는 새로운 혁신적인 지도자의 출현에서 기인할 수 있다.다양한 사역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공감한 바에 따르면 복음주의 교회와 기독교 단체의 사역에서 돌파구가 목격되고 있다. 혁신적인 과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려면 젊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사역 접근 방식을 혁신하는 문제는 사역의 관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며 이것은 바로 상황화 작업의 일부이다. 창조적인 과정으로서의 혁신은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상황화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획기적인 혁신을 급진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사역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인다.[3]협업협업의 필요성은 많은 그룹에서 길게 논의되었다. 로잔운동을 글로벌 협력을 위한 플랫폼으로 사용한다는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도자들은 로잔운동에 대해 대단한 신뢰를 표명하고 다양한 수준에서 그 역할을 더욱 확장할 것을 제안했다 .정보 공유에 대한 강조는 협업을 위한 상호 노력의 기반이 되고 있기에 주목할 만하다. 사역의 협업을 위한 촉진자(faciliator)이자 플랫폼으로서 로잔운동의 역할을 설정하는 데 그런 기대감은 매우 건설적인 것으로 보인다.연구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사역과 관련된 관심과 이슈들을 광범위하게 반영한 미래 연구 과제에 대해 제안했다. 연구 부족이라는 주제는 복음주의 선교계에서 취약한 영역을 드러낸다. 이 분야에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복음주의 교회와 단체들은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해결하는 데 통일성을 갖추지 못했고 체계적이지 못했다.전반적으로 향후 연구에 대한 논의와 제언은 실증적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미래 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과 더 많은 연구에 대한 요청은 인류의 상황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포함하는 선교 신학을 수행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4] 연구 결과를 세계 교회와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섬김의 표현이 될 것이다.추가적인 경청의 대상은?사람들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를 넘어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성령님께 귀기울인다는 것은 복음주의 신앙의 규범이지만 많은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같은 교단이나 단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듣느라 너무 분주하다. 동시에,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공동의 훈련으로 가능하다.[5]경청에 대한 학제간의 접근을 요구하는 제안들이 많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고려되어야 한다. 연구는 체계적인 경청의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경청은 연구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지식에 대한 총제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세분화되거나 계층화된 접근 방식보다는 학제간의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결론복음주의 교회 앞에 놓인 격차와 도전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그들의 사역에서 다루어야 할 현재의 문제와 도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사역에 대한 전망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이지 않다. 그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사역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동원한 돌파구가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대체로 글로벌화는 기독교 사역에서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수년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글로벌화는 많은 사역의 현장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내포하면서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공청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복음주의 공동체에서는 연합에 대한 확고한 결의가 표명되었다. 지역적, 교파적, 세대적 배경의 다양성 속에서도 강력한 연합이 느껴졌다. 동시에, 다른 사역의 경계를 넘어 더 높은 수준의 사랑과 일치를 보고자 하는 강한 열망도 있었다.사역의 전략적 제휴와 사역의 혁신을 위한 특별한 결집을 위하여 2024년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4차 로잔대회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복음주의 교회가 직면한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다년간에 걸친 다중심적(polycentric) 접근은 합리적인 방식이다. 경청하려는 노력은 발전을 이루는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공청회에서 공유된 공동체적 지혜로 우리는 사역 현장에서 창의적 접근을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안에서의 약속을 기억하게 된다.[6]1. Kathy Charmaz, Constructing Grounded Theory, 2nd Edition (London: SAGE, 2014). 근거이론의 초점은 귀납적인 분석의 과정의 결과로 이론을 생성하는 것이다. 차마즈의 일차코딩, 집중코딩, 이론적코딩의 개념들은 근거이론의 구성주의적 패러다임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제안들이다. 2. Larry Laudan, Progress and Its Problems: Towards a Theory of Scientific Growth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139. 또한 Larry Laudan의 다른 책들도 참고하라, Science and Relativism: Some Key Controversie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1-32; Larry Laudan, Beyond Positivism and Relativism: Theory, Method, and Evidence (Boulder, CO: Westview Press, 1996), 21-25. 3. 그러나 시장창조형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이 지속형 혁신이나 효율성 혁신 만큼 필요하다. See Bryan Mezue, Clayton Christensen, & Derek van Bever, ‘The Power of Market Creation: How Innovation Can Spur Development,’ Foreign Affairs, January/February 2015을 참고하라,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africa/2014-12-15/power-market-creation. 4. Paul Hiebert, The Gospel in Human Contexts: Anthropological Explorations for Contemporary Mission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9), 44-53, 127. 5. 폴 히버트(Paul G. Hiebert)는 초대교회가 교리적인 선언문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기보다 하나의 신학적인 과정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사도행전 15장에 묘사된 예루살렘공회를 해석학적 공동체(a hermeneutical community)의 성경적 모델로 이해한다. Hiebert, P. G. (1994). Anthropological Reflections on Missiological Issues. Grand Rapids: Baker. p. 95. 6. 이 기사는 공청회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요약한 것입니다. 분석 보고서의 전체 내용은 로잔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lausanne.org/l4/global-listening/the-evangelical-church-interacting-between-the-global-and-the-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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