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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뉘우침 없는 사과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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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Sam Allberry  /  작성일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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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t Rozetsky on Unsplash

거의 매일 뉴스에서 보는 것이 있다. 


공인 한 사람이 많은 이들의 윤리 기준을 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그러고는 고통받은 이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유감 성명을 발표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공적인 신용을 계속 유지하곤 한다. 나는 이런 류의 태도를 “미안, 그런데 별로 안 미안해” 식의 뉘우침 없는 사과(non-apology apology) 또는 모조 사죄(faux-pology)라 부르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한 일로 인해 분노했을 사람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합니다” 또는 “내가 실수를 했네요”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회개하는 것 같은 면은 있지만 이는 구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 태도는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우리가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우리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불만을 표하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반응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도 그렇게 대할 수 있다. 성경을 묵상해보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배우게 된다. 예수님도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에 대한 우리의 가장 합당한 태도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막 1:15)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뉘우침 없는 사과가 때로 사람들에게는 먹혀드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도 그럴까?


유감을 표명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마음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는 사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흉내만 낼 뿐이어서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유감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깊은 애통을 동반한다. 뉘우침 없는 사과는 사람들과 관련된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다윗왕이 좋은 예다. 그는 밧세바와 동침하는 큰 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밧세바의 남편까지 죽게 하는 죄를 저지른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뉘우침 없는 사과 뒤에 숨고자 한다면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했던 것과 반대로 하면 되는데, 필자는 네 가지 정도의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죄를 죄라고 부르지 말라


다윗은 그가 죄를 범했음을 인정한다. 최선의 것이 아니었다거나 불완전했다고 얼버무리지 않았다. 윤리의 기준선은 엄연히 실재한다. 다윗은 자기가 그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사탕발림 같은 말이 아니다. “실수”였다거나 잠깐 “넘어진 것”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은 “악”이다(4절). 다윗은 “죄가 범하여졌습니다”라거나 “범죄가 발생했습니다”와 같은 애매한 수동적 표현을 하지 않았다. 다윗은 회피하지도 않고 빠져나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가 스스로 행한 일이었고 그의 잘못이었다. 


2. 그저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하라


자기 잘못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보통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한다. 


다윗의 태도는 정반대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다윗의 요점은 분명하다. 그가 한 일은 그 자신 깊숙한 곳에 도사린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가 간음의 죄를 범한 것은 다윗 자신이 그 마음으로 이미 간음을 범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은 그가 그 마음으로 거짓말하는 자이기 때문이고, 그가 살인한 것은 마음으로 이미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것이 마음의 문제지 일회적인 일탈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범죄한 것은 그가 마음으로 이미 죄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깊은 속사람이 기본적으로 선하다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모든 일을 다 완벽하게 잘 해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자신의 깊은 속사람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이를 직면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진단은 우리를 불편케 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9–20).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을 내리시는데, 바로 우리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성(sexuality)을 오용하는 것 역시 우리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이 예전과 같은 상태가 아님을 알고 즐거워한다(롬 8:9). 우리에게 새로운 본성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죄인 된 본성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우리 마음 안에 아직 죄가 잔존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범한 죄만 아니라 우리 마음의 죄악된 상태에 대해서도 고백해야 마땅하다.


3. 죄의 인간적인 결과에 대해서만 인정하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행한 잘못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그저 몇몇 사람에게만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과실을 최소화하려고 할 수 있다. 내가 한 잘못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극소수고 다른 이들은 괜찮다는 것이다. 내 잘못이 무슨 대수냐는 뜻이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잘못이라는 말이다. 이런 태도는 내가 행한 잘못보다 오히려 그 사람들에 대해 초점을 두게 만든다.


다윗은 다시금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그는 이렇게 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얼핏 보기에 다윗이 자신의 죄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밧세바에게 행한 다윗의 악행은 가벼운 것이 아니며 매우 심각한 것들이다. 그는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밧세바를 범했다. 그녀를 과부로 만들었고 밧세바의 행복한 삶을 망가뜨렸다. 밧세바에 대해 행해진 이 악행이 심각한 이유는 이 악행이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대해 행해진 악행이기 때문이다.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죄다. 밧세바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그녀를 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였다. 다른 이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한 범죄다. 


4. 하나님을 멀리 하라


진정성 있고 깊은 회개를 회피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나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국 옳다는 착각 속에 계속 살고 싶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윗은 만약 죄를 시인한다면,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안전한’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1).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들을 보며 여호와께서는 ‘진실로’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고 신실함과 사랑으로 가득한 분임을 목도했다. 이 사실은 바로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가장 분명히 드러났다. 사복음서 중 어디를 읽더라도 예수님이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우리가 그저 마냥 좋은 사람들인것처럼 이야기하시지도 않고 우리의 현재 모습에 근거하여 우리를 징계하시지도 않는다.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삶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자신에게로 옮겨 가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께서 하신 일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숨을 필요가 없다.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 마음 속 최악의 죄들을 진실되고도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How to Turn Repentance Into a Non-Apology Apology

번역: 이정훈


작가 Sam Allberry

샘 올베리는 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nistries의 국제 강사로 섬기며 미국 TGC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Is God Anti-Ga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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