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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 시작하는 인종차별 가면 벗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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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ene Joo  /  작성일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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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himetalor Akhere Unuabona on Unsplash

마스크를 쓴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면서 나는 이 행진의 목적이 인종차별이라는 마스크를 벗기기 위한 것(unmask)이라는 사실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흔히들 흑인 민권 운동(civil-rights movement,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미국 흑인이 주도하여 시민권 신청과 인종차별의 해소를 요구한 대중 운동)을 인종적 불의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하나의 변곡점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이 인종차별이 정복되기는 커녕, 그동안 인종간에 집단적 의식의 그림자 뒤로 후퇴한 채 오히려 정의와 평등에 대항해 끝없는 게릴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요즘 들어 인종차별이 끼치는 독은 그 어느 때보다 유해하고 교활한데, 그것은 훨씬 더 교묘한 형태로 그 정체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COVID-19가 특히 무서운 이유는 다름 아닌 무증상자로 인한 감염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몇 달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마찬가지로 인종차별도 그럴듯한 거부 이유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 정체를 규명하고 제거하는 게 매우 어렵다. 미국 남부에서 노예 제도가 극에 달했던 안티벨럼 시대(Antebellum South, 1781–1860)에 동조하거나 짐 크로우 법(Jim Crow,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던, 인종차별을 강제했던 미국 남부의 법)을 옹호하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인정하게 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일까? 오늘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인종적 불의에 동참하고 있음을 인정할까? 


COVID-19처럼 인종차별도 제대로 처리되고 추적되려면 그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규명되고 또 진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가면을 벗기는 작업이 선결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내부가 아닌 외부의 정의롭지 않은 시스템에 의존해서 인종차별자를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결코 시스템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반드시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기 고백과 더불어 회개가 따라야 하는 문제다. 그렇기에 그것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하는 문제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지난 주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하나님이 나의 가면을 벗기고 나로 하여금 내 평생 내 속 아주 깊은 곳에서 또아리 틀고 있던, 거기에 있는지 나 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죄와 쓴 뿌리를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구호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이다. 최근의 경험과 과거 여러 사건들을 통해 국가적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흑인의 생명이 종종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과연 이런 흑인의 생명이 나한테도 정말로 중요한가? 이론적 또는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당연히 그렇다.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에 누구나 다 내재적인 가치, 고귀함 그리고 존엄함을 갖는다. 그러나 정말로 정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이 구호를 최근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내가 겪었던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함께 나눠보도록 하자. 


가면 아래서


나는 대부분의 이웃이 동양인인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웃 중에는 푸에르토리코인, 쿠바인 그리고 도미니카인도 있었고, 그들 대부분의 피부는 검었다. 어디를 가나 나는 “치노(Chino, 중국인을 부르는 스페인어)”라는 말을 들었다. 네 살 때 나는 치노가 내 이름인 “진(gene)”을 뜻하는 스페인어인줄 알았고, 어머니한테 어떻게 저 사람들이 다 내 이름을 아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그 호칭이 사람들이 나를 놀리기 위한 것임을 알려주었고, 이 기억은 아직까지도 수치심과 분노와 관련한 나의 가장 오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시간이 가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나는 급기야 괴롭힘까지 당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도둑맞았을 때, 어머니는 앞으로 절대로 남미 아이들 또는 흑인 아이들과 놀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고, 우리집은 그 즉시 주민의 40 퍼센트가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마을로 이사를 갔다. 


나는 열한 살 때 LA를 휩쓸었던 폭동 뉴스를 부모님과 같이 보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의 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이 코리아타운에서 장사를 했는데, 그 사람의 가게가 타겟이 되어 약탈당했다. 나는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로드니 킹(Rodney King)을 때린 건 백인 경찰인데 왜 흑인들이 한국 가게를 공격하는지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버지의 대답은 이랬다. “왜냐하면 흑인은 나쁜 인간들이거든.” 어떤 뉴스는 무기로 무장하는 어느 한국 가게 주인의 모습을 방송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뉴욕 콜럼버스 서클에서 옷가게를 했는데, 나의 다음 질문은 이것이었다. “아빠, 만약에 뉴욕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아빠도 총을 사서 흑인들을 쏠 거에요?” 아버지의 대답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당연하지.” 아버지의 그 대답은 나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나는 그날 밤, 우리 부모님을 나쁜 인간들로부터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정말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나는 말 그대로 흑인 문화 속에 풍덩 빠져서 살았다. 나와 친구들은 살해당한 래퍼 투팍과 비기(Tupac and Biggie)의 죽음을 애도했고, 우리는 또 힙합 그룹인 우탱(Wu Tang)과 갱스타(Gang Starr)를 우상시했다. 칼 카니(Karl Kani) 청바지를 엉덩이에 대충 걸쳐 입고 돌아다녔고, 또한 팀버랜드(Timberlands) 옷을 입고 락 음악에 몸을 흔들었다. 고스트패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의 새 앨범에 사인을 받기 위해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 버진 메가스토어(Virgin Megastore)에서 무려 네 시간이나 줄을 서기도 했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어서 고스트패이스 킬라 앞에 섰을 때, 그는 나를 보고는 눈을 돌리더니 함께 사진 찍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당황했고 상처받았으며 무엇보다 분노했다. 쿵푸와 샤올린 절에 관한 그 유명한 랩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아시아인 팬을 그렇게 단숨에 무시할 수 있는가?  


콜럼비아에서 미국 역사를 전공한 나는 4학년 때 “미국 내의 인종 그리고 피부색”이라는 한 학기 세미나를 들었다. 백인 여학생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급우와 교수는 다 흑인이었다. 한 학기 내내 아시아인에 대한 단 한 장의 읽기 과제물도 없었다. 나는 교수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그의 대답이 충분히 명확하게 들렸다. 내가 그 교수로부터 들었던 대답, 그리고 내가 살면서 겪은 여러가지 일들에 비춰 볼 때, 그의 대답은 이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도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그렇다고 마냥 이런 기억만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만났던 흑인들은 나로 하여금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만들었다. 나는 한번도 내 흑인 친구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거나 또는 무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속에는 인종에 대한 잠재적인 어떤 선입관이 있었고, 그것은 시시때때로 수면 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사회를 본 흑인 배우 크리스 락(Chris Rock)이 할리우드 영화가 인종의 다양성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한 예다. 아시아인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잘해야 고작 우스개 코메디거리로만 등장하는 게 현실이니까. 또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온라인 토론에서 스타이베산트(Stuyvesant) 학교에 흑인 학생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학생들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인에 대해서는 미디어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 때 내가 반응했던 방식이 또 하나의 예다. 


무엇보다 경찰이 정말로 잔인하게 흑인 커뮤니티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에 떠올랐을 때, 나는 나 자신이 흑인을 향해 진심 어린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비극이고 누가 봐도 부당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미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수백만 가지의 불의가 난무하지 않는가? 왜 이번 건만 그렇게 더 특별하고 중요하게 취급받아야 하는 건가?  


그러나 진짜로 이기적인 내 마음에서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흑인들한테 중요한 존재가 아닌데, 왜 저들이 내게 중요한 존재여야 한단 말인가?


박해받는 자들을 항햔 하나님의 마음을 보기


지난 주의 사건은 나로 하여금 한번 더 나의 무감각함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님은 부드럽지만 강하게 나의 가면을 벗겼다. 하나님은 내가 누리는 특권 때문에 아예 눈이 멀어버려 이제는 불의를 보고서도 내 속에 겸손함과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죄가 여전히 얼마나 견고하고 추악한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지난 주일 가족 예배 시간에 성경 본문은 공교롭게도 착한 사마리아인(눅 10)에 대한 것이었다. 여섯 살이 된 아들에게 대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지금 맞아서 누워있는 사람이 바로 너라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네가 지금 맞아서 피를 흘리면서 땅에 누워서 죽어가고 있어. 너를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려. 좀 있다 한 사람이 더 왔는데, 그 사람도 그냥 가버렸어. 그런데 좀 있다가 너랑 진짜 사이가 안 좋은 원수가 오는 게 아니겠니? 당연히 그냥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안 가고 너를 구해줬어. 우리 예수님이 그런 것처럼 말이야.”


잠시 나는 맞아서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내 아들의 모습과 그 옆에 있으면서도 무력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도와달라고 소리를 치는데도 사람들은 그냥 무심하게 지나간다.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내 아들의 연약한 몸뚱아리가 피를 흘리면서 땅에 엎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내게 불의의 희생자들을 향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마음 한구석을 보도록 허락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죽어갈 때, 또한 그 자리에서 분명 뭔가를 할 수 있었을 토우 타오(Tou Thao)와 같은 아시아인 경찰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나로 하여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왜 흑인의 생명이 내게도 중요한가? 내가 그들에게 중요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생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행진을 할 때, 너무도 깊은 내 죄, 인종차별 그리고 무관심 때문에 나는 울기 시작했다. 결코 앞으로는 나의 흑인 형제 자매와 관련해서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희생자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아마드 아베리(Ahmaud Arbery)!, 브레나 테일러(Breonna Taylor)!,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내 눈물이 바뀌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울었다.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 울었다. 그들의 공동체를 위해서 울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나는 흑인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행진과 같은 행동에 돌입하기 전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면서 그 속에 숨은 인종차별과 죄를 놓고 먼저 회개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나와 다른 이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서로에게 자신의 실패와 차가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흑인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더 진심으로 애통할 수 있고 또 그들로부터 더 잘 배우며 그들 곁에 더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희망은 오로지 우리 주 예수님에게만 두어야 한다. 불의를 증오하는 예수님은 언젠가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함으로 진정 영원한 왕국을 세울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Unmasking Racism, Starting with Me

번역: 무제


작가 Gene Joo

주진 목사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Div)를 졸업하고 현재 뉴욕에 있는 Exilic Presbyterian Church의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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