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 어떻게 변증할까?
by 박용기2020-07-16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은 ‘불변의 소망’에서 기독교 소망과 세상 소망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망은 내가 뭔가를 해서 즉, 간절히 바란다거나 노력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께 이미 받은 것으로 인한 소망이다.” 세상의 소망은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얻을 수 있지만, 기독교의 소망은 이미 받은 소망이다. 베드로 사도는 기독교 변증이란 신자가 소유한 소망에 대해서 불신자에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벧전 3:15).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항상 변증을 준비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기독교 변증을 준비해야하는지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defense, 변증)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1. 삶을 통해서  


변증은 헬라어로 ‘아폴로기아’(Apologia)다. 이 단어는 "from"(apo)과 "Reason" or "Logic"(logia)의 합성어로, 불신자들이 던지는 질문과 공격에 신자들이 이성적이면서 논리적으로 대답하고 방어하는 것이다. 1세기 변증은 삶과 동떨어진 사변적 논쟁이 아니었다. 불신자들이 신자가 소유한 소망을 보고 그 이유에 대해서 질문할 때 대답해 주는 것이 변증이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신자의 주관적 삶의 이야기와 객관적 변증의 관계를 ‘포스트모던 시대, 어떻게 예수를 들려줄 것인가’에서 설명한다.


‘변증은 개인의 삶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객관적인 복음 교리가 들어 있어야 한다.’ 복음서 역시 여러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 스토리들을 잘 들여다보면 복음의 핵심 교리를 찾을 수 있다. 베드로가 말하는 변증은 어려운 신학, 철학적 주제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보다는 신자의 주관적인 삶 속에 녹아있는 객관적인 복음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개인의 간증을 통해서 객관적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2. 그리스도로 거룩해진 마음으로


15절의 헬라어 본동사는 명령형으로 “거룩하게 하다”이다. 이 본동사와 묶여서 형용사 “준비하되”가 해석된다.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always being ready to make a defense, NASB). 형용사 “준비하되”는 본동사 “거룩하게 하라”와 연결되어 해석되기 때문에 명령형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자의 마음이 그리스도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곧 변증을 준비한다는 의미다. 결국 신자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마음이 거룩하게 되면서 변증이 준비되는 것이다.  


3. 소망으로 


바울은 성도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 8:24).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성도들이 소망으로 영화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다(롬 8:30). 1세기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 가운데서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고 선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운 구원을 성령님 안에서 보증(고후 5:5)받았기 때문이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자였지만 억울하게 매질을 당하고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살전 5:8) 쓰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옥문이 열린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은 그들을 본 빌립보 감옥 교도관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질문했다.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대답과 함께 자세하게 복음을 온 가족에게 변증했다(행 16:30-32). 
 

4. 온유와 두려움으로


온유는 연약함이 아니라 절제된 힘이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변증은 신자의 경험이나 지식을 의지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실  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변증의 결과가 성령님께 있음을 인정한다면 인간적인 부담을 내려놓고 온유하게 변증할 수 있다. 신자들이 개인 간증을 할 때 내가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인간적인 부담감 때문에 부풀려 이야기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조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신자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간증하고 변증해야 한다.  
 
청년들 사이에서 ‘희망 고문’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같이 헛된 희망으로 고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소망은 썩은 동아줄처럼 결국은 끊어진다(잠 10:28). 어릴 때 연날리기를 종종 했다. 중랑천 다리 위에 서서 연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하늘에 떠 있는 연이 움직였다. 1세기 성도들도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 영화로운 구원과 소망의 줄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망의 삶을 보여줌으로 변증할 수 있었다. 2020년 7월, 한 해의 하반기로 넘어왔지만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이웃들이 많다.  모두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는 때다. 산 소망을 소유한 성도들이 선한 행실과 진실한 믿음을 이웃에게 보여준다면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변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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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용기

박용기 목사는 사우스웨스턴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DMin)하고 사우스웨스턴신학교 초빙교수와 샌앤젤로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저서로 ‘팀 켈러의 변증설교 15편 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