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영혼을 지키는 네 가지 방법
by Matt Smethurst2020-08-03

왕 되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서는 날, “온라인 속 나 자신” 또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When we stand before King Jesus, our ‘online selves’ will be held to account.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인터넷이 사람의 진을 다 빼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스크린의 유혹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으로 피해를 입힌다. “오, 이거 정말 끔찍한데”라고 말하면서 디지털 세상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디지털 세상에 머무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와우, 이제 사는 맛이 나.”


성경은 “뭇 사람을 공경하며”(벧전 2:17)라고 말한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그 어느 때라도 결코 쉽지 않겠지만, 지금같은 SNS 시대라면 더 힘들지 않을까?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침을 준다. 여기 신실한 기독교인이 온라인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자판으로 치는 말을 심각하게 여겨라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이 말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에 관한 구절은 수도 없을 정도다.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결코 혼란스럽거나 애매하지 않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잠 18:21)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행여나 온라인에 쓰는 글은 말로 하는 것 보다 덜 중요하고 덜 직접적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설마, 최후의 심판날에 다루기에 트위터에 쓴 글은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왕 되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서는 날, “온라인 속 나 자신” 또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실 온라인 속 내가 진짜 나다.


2. 상대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라


알란 제이콥(Alan Jacobs)은 그의 책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서로 상충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이드(How to Think: A Survival Guide for a World at Odds)’에서 적으로 인식한 상대와 자신이 다름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점점 더 관계를 멀리하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경향에 대해서 자세히 고찰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대를 가치 없는 존재(delegitimize)로 몰아가기 위해서 비인격화(depersonalize)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습관에는 높은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상대는 이제 비단 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제이콥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토론과 논쟁을 전투로 받아들여서 대화하는 상대를 악마로 여김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인간성의 한 측면을 잃었다. 누군가가 우리가 근절하고자 하는 입장을 대표해서 나올 때, 그 상대는 이제 우리 눈에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고, 정말로 열의를 다해서 그 상대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 속에 있던 인간을 향한 공감까지 소멸시키고 만다. 나와 다른 사람이 가진 욕망과 원칙 그리고 두려움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제 우리 속에서 찾을 수 없게 된다. 논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너무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기독교 진리까지 가볍게 다루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을 기억하자. 한 개인은 그가 잘못 알고 있는 여러 의견들을 모아 놓은 종합체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형상은 결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만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 그렇기에 겸손해야 한다. 겁을 먹자는 것도, 미지근해지자는 것도, 침묵하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겸손하자는 것이다. 


3. 최대한 좋은 쪽으로 이해하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익숙해서 쉽게 잊는다. 그러나 이 황금률은 사실상 누군가를 상대하는 모든 순간에 언제나 필요하다. 


소셜 미디어로 증폭된 유혹 중 오늘날 가장 교활한 것 가운데 하나는 상대를 비방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왜 상대를 좋게 생각해야 하지? 왜 더 강하게 치고 나가면 안 되는 거야? 저 사람들이 나를 아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리트윗이라는 방법도 있다. 


성경에 34번 나오는 비방이라는 단어는 다 사탄을 가리킨다. 사탄은 엄청난 고소자다. 사탄의 행위를 소셜 미디어에서 따라하는 것은 단지 유감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수도 아니다. 그것은 사탄적 행동이다. 

 

비방은 훼손의 한 형태다. 다름 아니라 지구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그분의 신성한 창조물을 훼손하는 것이다. 야고보가 무모한 말은 지옥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은 당연하다(약 3:6). 그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근거해서 말씀을 이어간다(8-9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모든 사람은 무한한 위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언제나 거기에 맞게 취급되어야 한다. 대충 훑어 내려가면서 읽은 댓글이나 사진 등은 금방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셜 미디어 속 언어라고 해도 인격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 온라인에서 대화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4. 서로를 격려하라


성경은 나누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자신의 권리까지 포기하라는 명령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다음 명령은 서로 간에 선의의 경쟁을 부추긴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10). 


우리는 이 경쟁에서 잘 하고 있는가?


오늘날 성경적인 격려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격려는 너무도 소중하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최선을 가정하고 최선를 보고 또 최선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밖에 모르는 죄인인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자신을 부인하는 노력, 자신을 잊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록 힘들지만, 그것은 실로 훨씬 더 멋진 방법이다. 


청교도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겸손한 기독교인을 “자신의 허물과 다른 이의 탁월함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그 순서를 뒤집어서 나 자신의 탁월함과 다른 이의 허물을 연구하기 시작하면, 아마도 우리는 좀 더 나은 위치를 누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4 Ways Not to Be a Jerk Online

번역: 무제


사탄의 행위를 소셜 미디어에서 따라하는 것은 단지 유감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수도 아니다. 그것은 사탄적 행동이다

Slander is not unfortunate. It’s not mistaken. It is satanic.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Matt Smethurst

맷 스메서스트는 리치먼드에 있는 River City Baptist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Before You Share Your Faith: Five Ways To Be Evangelism Ready(2022)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