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비전을 놓고 깊이 고민하는 목회
by 김상일2020-08-06

중간 지대의 신학함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경 읽기와 교리 풀어내기라는 작업 안에 이미 목회와 사역에 관한 고민과 질문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때만 팀 켈러가 말하는 중간 지대에서의 신학함의 방향성을 알고, 또 실제로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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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들은 늘 복음을 사람들의 마음과 중심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만 복음이 단순한 신앙 문답이 아니라, 깊고 지속적인 변화의 능력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복음 적용 없이 단지 교육이나 설교, 세례, 훈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센터 처치, 115쪽)


팀 켈러의 ‘중간 지대 신학하기’ 작업을 통해서 성경과 교리를 어떻게 중간 지대의 신학함을 위한 뼈대로 세워갈 수 있는지를 이전의 글에서 살펴보았다. 삶을 흡수하는 성경이 아닌, 삶을 풀어내는 성경, 그리고 삶으로 들어가는 교리와 전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배운 것은 성경 안에, 교리와 전통 안에 이미 실제적인 목회 사역과 프로그램, 방법론에 관한 풍부한 시사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켈러가 말한 신학적 비전이기도 하다. “그럼 무엇이 신학적 비전인가? 그것은 복음을 충실하게 재서술한 문장으로서, 역사의 현 시점에서, 그리고 한 특정 문화의 삶과 사역과 선교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지에 대한 풍성한 시사점을 포함하는 것이다”(센터 처치, 29-30쪽)


그러므로 중간 지대의 신학함이란, 다름 아닌 신학적 비전 세워가기다. 특정 교회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비전은 여타의 성공하는 교회들의 그것을 그대로 베끼거나 반복해서는 절대로 세울 수가 없다. 교회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비전은 오직 그 교회의 상황적, 문화적, 시대적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는 목회자와 일꾼들이 한마음으로 자신들이 속한 교회적 전통 속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교회 안에서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며 소통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중간 지대의 신학함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경 읽기와 교리 풀어내기라는 작업 안에 이미 목회와 사역에 관한 고민과 질문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때만 팀 켈러가 말하는 중간 지대에서의 신학함의 방향성을 알고, 또 실제로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은 중간 지대 신학하기의 뼈대 작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어떻게 해야 중간 지대 신학하기에 합당한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을 세워갈 수 있을까? 일단 먼저 전제하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교회에 잘 맞는 목회 프로그램이나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 지대의 신학함에서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을 찾아 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정도의 창의성과 목회적 맥락에 대한 고민을 필요로 한다. 이런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은, 많은 경우 성도들의 고민과 질문을 한 축으로, 그리고 성경 해석과 교리가 복음에 대해서 전하는 메시지를 다른 축으로 해서 어떻게 교인들이 복음을 제대로 알아듣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의 목적이 혹시 교회 성장은 아닌가? 만약 그것이 프로그램과 방법론을 고안하는 구체적인 목표라면, 켈러의 이 말을 들어보라.


“교회 성장 운동은 사역 현장에 지속적인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기법과 결과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사역자들에게 많은 부담을 안긴 것도 사실이다. 무리한 교회 성장 운동이 경건한 성품과 하나님의 주권의 중요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센터 처치, 18쪽)


교회 성장 운동은 기본적으로 기법과 결과를 강조하는 운동이다. 목표가 교회 성장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심리적, 경영학적 기법을 도입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일이 목표가 되면 저절로 기법이나 결과가 중요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목표는 중간 지대의 신학함과는 전혀 맞지 않다. 그런 기법이나 결과는 복음 메시지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복음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특정한 목표 즉, 교회의 양적 성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성장만을 위한 기법과 결과는 도리어 교회 공동체가 복음에서 유리되어 복음과는 별 상관없는 길을 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치 고고한 백로처럼 목회 방법론이나 프로그램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목회자들이 더 낫다는 말도 아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말은 단지 기법이나 결과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로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복음이 자신들의 삶에 들어와서 변화를 일으키면 바로 알아차리게 되어 있고,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교회는 어떤 식으로든지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을 경험하게 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목회 방법론이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목회자들을 은근히 깔보면서 자신들은 오직 교단적인 전통과 성경에 대한 “올바른” (즉, 교인들의 삶의 맥락에 대한 관심은 접어둔 채로 오직 성경 본문의 본래적 의미만을 추구하는) 해석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목회자들도 또한 중간 지대에서 신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중간 지대의 신학함에서 뼈대가 되는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이 상정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팀 켈러는 그것을 복음 부흥이라고 규정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동체적 복음 회복은 종종 ‘부흥’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신자들 전체가 개인적인 복음 회복을 함께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교회들은 아무리 그들의 신학이 건전하다 하더라도 복음의 고유성을 간과하기 시작하고 다른 종교들에 빠지거나 불신앙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교리 교육은 각각의 교리들이 복음의 메시지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놓치게 되고 윤리 교육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완성된 사역에 근거하지 않게 된다.”(센터 처치, 114-115쪽)


만약 수적인 성장 대신 복음 부흥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목표가 된다면, 기법이나 결과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목회자와 사역 리더들은 복음이 무엇인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이 과연 어떤 메시지인지를 계속해서 묻는 일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성경으로 돌이키도록 이끌고, 교리와 전통 속에서 밝혀진 복음으로 되돌아가기를 촉구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명심할 것이 있다. 목회자와 사역자는 복음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과 더불어 그 복음이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성도들은 특정한 문화적, 지역적, 시대적 맥락 속에서 나름의 질문과 고민,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복음이 어떤 메시지인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그들이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들에 비추어서 하는 고민이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가 복음을 피부에 와닿게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기관으로서의 교회는 사역의 조직과 프로그램을 갖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이런 고민은 조직과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프로그램과 방법론을 세워가는 일은 중간 지대의 신학함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직 교회를 섬기는 리더들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 성장 대신 정말로 복음 부흥을 놓고 고민하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켈러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거라고 말한다.


“복음이 가슴에 깊이 들어올 때—신자들이 더 이상 유능하고 의로운 자기 이미지를 고수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사람들과의 관계들을 방해하는 장벽들이 무너지며, 진정한 공동체에 대한 경험을 더 깊이 할 수 있다. 더 이상 핑계나 회피를 할 필요도 없다. 복음으로 인해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공감하고 인내할 수 있는 겸손을 가지게 된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서 교회 안의 모든 관계들은 더 깊어지고 두터워진다. 기존의 문화와 뚜렷이 차별되는 이러한 교회의 특성들은 바깥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센터 처치, 170-171쪽)


복음은 메시지를 전하며, 그 메시지는 교회가 운영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교회가 운영되는 방식은 단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얼마든지 여러가지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면서도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며, 고민하는 바가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며, 관계 맺는 방식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체면 문화 속에서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게 하는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이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게 하는 목회 프로그램이나 방법론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중간 지대의 신학함을 세워가는 목회 프로그램과 방법론은 처음도 그리고 마지막도 복음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하는 일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오늘도 이 질문을 놓고 고민하는 많은 목회자들과 사역 리더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복음이 가슴에 깊이 들어올 때—신자들이 더 이상 유능하고 의로운 자기 이미지를 고수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사람들과의 관계들을 방해하는 장벽들이 무너지며, 진정한 공동체에 대한 경험을 더 깊이 할 수 있다 < 센터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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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상일

김상일 작가는 UC 버클리(B.A.), 고든콘웰 신학교(M.Div) 졸업 후, 현재 보스턴 대학교에서 기독교 교육과 실천 신학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현재 서평 쓰는 남자 블로그(www.likeellul.com)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팀 켈러에 관해서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 "좋은 나무" 웹진과 시니어 매일 성경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