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풍성하게 전달하라 : ‘언약과 성취’
by 고상섭2020-09-22

‘추방-귀향’의 주제에서 우리에게 세상을 치유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언약-성취’는 우리가 법을 어긴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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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단순하지 않다. 틀에 맞춘 복음은 늘 식상해진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동일한 복음의 선포는 오늘날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성경은 복음을 단일표준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음의 풍성함을 깨닫고 전하려면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을 통해 복음의 씨줄과 날줄을 엮을 수 있어야 한다. 팀 켈러는 ‘센터처치’에서 복음이 다양한 주제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세 가지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추방과 귀향, 언약과 성취, 왕국과 도래이다. 추방과 귀향에 대해서는 2020년 3월 19일 칼럼 ‘복음을 풍성하게 전달하라: 추방과 귀향’에서 다루었고 오늘은 ‘언약과 성취’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언약과 성취(The covenant and its fulfillment)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속하신 언약과 그것의 성취로 이루어져있다. 구약과 신약이라고 말할 때도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로운 언약을 의미한다. ‘추방-귀향’의 주제에서 우리에게 세상을 치유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언약-성취’는 우리가 법을 어긴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 창조의 목적은 무엇인가?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분임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아무 약속이 없으셔도 피조물은 전적으로 창조주에게 순종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심으로 피조물인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다. 인간은 하나님과 신실한 언약적 사랑의 관계를 맺는 대상이 된 것이다.


2. 죄의 정의와 결과는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는 기준이 있다. 만약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넘어서는 적극적 범죄이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극적 범죄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 단순히 한 번의 실수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신뢰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이다. 모든 죄는 교만이 뿌리이며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데이비드 폴리슨은 ‘악한분노, 선한분노’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차가 막힐 때 짜증과 분노가 나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내 마음대로 세상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세상을 통제하고 싶은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3.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는가?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래서 율법을 수여받았지만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2)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이 결혼 언약이었으며, 하나님이 남편이 되었지만 언약을 깨뜨렸다고 고발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언약을 어긴 대가를 받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그럼에도 공의를 지키셔야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4. 예수님은 무엇을 행하셨는가?


어떻게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를 지키시면서도 그의 백성을 사랑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은 언약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사야는 그 해결책을 말하면서 언약의 주님과 고난당하는 언약의 종을 둘 다 강조한다. 예수님은 언약의 저주를 담당하심으로써 언약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15)


언약을 지키면 축복을 받고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저주를 받는 언약의 법칙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언약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시고 자신이 지키신 언약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조건적인가 무조건적인가?‘ 라는 질문에 둘 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순종적이고 신실한 언약의 종으로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그 고난을 통하여 언약의 요구 조건들을 완벽히 성취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신실한 언약의 주님으로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5. 마지막 날의 언약의 회복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입맞춤한 곳이다. 하나님의 법과 사랑이 동시에 만족되었다. 언약을 깨트린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도시에는 더 이상 저주도 정죄도 없다. 유월절의 어린양 되신 그 분이 우리의 모든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과 신부가 될 것이며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언약과 성취의 역사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완성된다. 우리가 본래 지음 받은 궁극적 사랑의 관계가 성취되는 것이다. 언약을 어긴 아담의 저주가 언약에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된 것이다. 성경은 언약하시는 하나님과 그것을 깨뜨리는 인간,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이 모든 언약을 이루는 힘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칼빈의 고백처럼 지옥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죄를 멀리 하는 것이다. 언약을 깨뜨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 때문에 언약이 성취되는 것이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오래된 찬송가 가사처럼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내 삶의 모든 헛된 것들을 버리게 된다.


언약을 깨뜨린 인생들을 언약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삼으시기 위해 가장 고결하신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다.

모든 언약을 이루는 힘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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