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의 개혁자
by Burk Parsons2018-11-15

전승에 따르면, 1066년에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한 후, 노르망디의 공작인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의 왕좌를 차지했다. 그 결과로 영국의 황태자 에드가는 영국의 왕권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망명한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는 헝가리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에드가는 누이 마가렛과 함께 영국을 떠나 대륙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올라탔다. 그러나 폭풍이 불어 배는 북쪽으로 밀려갔고, 스코틀랜드의 바위투성이 연안에 도착했다. 스코틀랜드의 왕 말콤3세는 그곳에 도착한 영국 가족을 크게 환대했고, 시간이 지나 에드가의 누이 마가렛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다. 에드가가 영국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계속 고투하는 동안, 마가렛은 남편과 스코틀랜드 백성을 위해 헌신했다.

 

스코틀랜드의 왕후 마가렛(1045-1093년)은 교회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1세기 스코틀랜드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자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이 격렬하게 전개되는 동안, 동방에서 교회가 분리되는 동안, 안셈이 마가렛의 고국인 영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마가렛은 남편인 스코틀랜드 왕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전설에 따르면, 왕후 마가렛은 한밤중에 왕궁을 조용히 빠져 나와 근처의 동굴에서 남편이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남편의 왕국에 대한 반역을 꾸미는 것이 아닌가 의심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말콤이 기독교로 회심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마가렛은 다행히 혐의를 벗게 되었다. 말콤의 회심으로 그의 왕궁에 변화가 불어왔고, 궁극적으로 스코틀랜드 민족 전체의 변화가 이어졌다.

 

마가렛은 하나님이 크리스천의 성품과 거룩함, 그리고 예배의 본보기로 제시하신 경건한 여인이었다. 왕궁의 여인들과 스코틀랜드의 많은 여인들은 마가렛을 매우 존경하고 섬겼으며, 그녀를 겸손과 기도의 본보기로 삼았다. 마가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말씀’의 여인이었다(마가렛이 읽었던 복음서는 오늘날까지 영국의 가장 위대한 보물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으며, 옥스퍼드대학의 보들리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마가렛은 여덟 명의 자녀들을 낳고, 아홉 명의 고아들을 입양하여 양육했다. 또한 교회에 대한 대단한 열정으로 수없이 많은 교회의 건축과 사역에 사재로 후원했으며, 특히 무너져가는 교회들을 찾아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가렛은 주일 예배와 안식일을 지켰으며, 이에 감동받은 왕과 왕궁은 결국 그 예를 따랐다. 덕분에 그들에게 일요일은 예배와 안식 및 섬김의 날인 주일이 되었다. 마가렛은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였다. 그녀는 정의롭게 살았으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었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An 11th Century Reformer

번역: 김장복 (매일배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Burk Parsons

버크 파슨스는 올랜도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박사학위(MDiv, DMin)를 받았다. 현재 플로리다주 샌포드에 위치한 Saint Andrew’s Chapel의 담임목사이며, Tabletalk Magazine의 에디터이자 Ligonier Ministries의 작가로 섬기고 있다.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외래교수이다. 대표 저서로 'Why Do We Have Creed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