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를 정복하는 네 가지 방법
by Tilly Dillehay2018-11-16

질투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죄 중에 유일하게 재미없는 죄다. 


질투는 열등하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시작해서 원한이라는 불쾌한 감정으로 진척되었다가, 결국 옹졸하거나 공격적인 다른 죄를 양산한다. 설사 질투가 원하는 것, 곧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좋은 면이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드디어 보게 된다 하더라도, 질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다른 부분으로 촛점을 옮겨갈 뿐이다.


이중 어떤 부분도 두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지 않는다. 식탐, 탐욕, 색욕, 허영, 교만, 그리고 다른 유사한 죄악들은 적어도 그 죄만큼의 쾌락을 준다. 하지만 질투는 그 감정이 주인이 되고 사람을 종으로 만드는 죄다. 즉 질투라는 죄는 사람의 마음, 영혼, 생각, 에너지를 지배하지만 그 대가로 쾌락은 물론 그 무엇도 주지 않는다.


질투를 벗기 위해 사랑을 입으라


감사하게도 크리스천에게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일이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엡 4:22-24).


질투라는 죄와 싸우는 크리스천은 자신이 전쟁이 아닌 마음 속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질투는 비밀로 숨기기 쉽고, 심지어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죄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상상력이 질투라는 죄를 작은 것으로 착각하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질투는 간음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누구도 볼 수 없고 누구도 해치지 않으니까.’ 그런 뒤 질투가 또 다른 죄를 파생시키면, 우리는 질투라는 뿌리는 제거하지 않고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 잘라 내려 한다.


이런 태도로는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 질투를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삼상 16:7). 이는 질투가 ‘은밀한 죄’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판단인지를 보여 준다. 마치 태양 아래 두 사람이 어느 한명 숨김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하나님은 당신의 질투와 간음을 나란히 볼 수 있으시다. 은밀한 죄란 없다.


둘째, 성경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그 안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마 12:34; 15:18). 질투는 다른 모든 마음의 죄와 마찬가지로 행동으로 이어진다. 질투는 안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으며, 불쾌한 행위와 함께한다.


질투는 괴물이며,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는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한다. 에베소서 4장의 정신을 따르자면, 질투라는 죄를 ‘벗는’ 훌륭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덕목을 ‘입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으로 질투와 싸우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당신이 질투하는 사람의 성공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예수님은 우리 원수에게 선을 행하는 방식 중 하나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마 5:43-48). 하지만 질투하는 마음은 친구조차도 원수로 만들어 버린다. 질투심은 친구나 지인이 당신의 행복을 위협하는 원수라고 믿게 만든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졌거나, 당신이 되고 싶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상태 중에 있다면, 원수라 여기는 그 동료를 위하여 말씀에 순종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그 사람과 더불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선물에 대해 함깨 감사하라. 다시 말해, 그 사람에게 성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2. 당신이 질투하는 그 사람이 더 성공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라


그렇다. 그 사람의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특별히 질투하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해 기도하라.


모든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일류 대학에 진학한 친구가 있다면, 그가 그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도록 기도하라는 뜻이다. 또는 당신이 무척이나 선망하는 스타일의 이성과 친구가 결혼을 했다면, 그 친구가 배우자와 더욱 친밀해지고 그 결혼을 통해 성장하도록 기도하라.


곧, 자신을 위해 간구했을 만한 내용들을 가지고 친구를 위해 기도하라. 영적 안녕 뿐만 아니라 물질적 축복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3. 당신이 질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즐거워하라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지성, 미모, 은사, 대인 관계와 같은 그 사람만의 특색을 많이 질투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선물은 단지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복이 될 수 있다.


매력과 유머 감각을 가진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면, 당신은 신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동료가 여러 사람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들음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에게 재능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만일 당신의 형제자매가 음악을 잘 연주한다면, 좋은 음악을 접할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피해 왔던 일, 곧 타인이 가진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에 익숙해지라.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선물들을 즐거워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보라.


4. 당신이 질투하는 사람을 칭찬하라


일반적인 상황에서 칭찬이란 무언가를 즐기는 행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동시에 그것을 즐기는 ‘과정’의 일부이다. 따라서 친구나 지인이 받은 은사를 통해 내가 누리는 것이 있음에도 칭찬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는다면, 이는 사실 부자연스럽다. 마치 좋은 것을 누리다가 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지만 이 명령과 다르게 질투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모든 칭찬 속에 가시를 담아 낸다. 그는 자신의 질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험담을 만들어 낸다.


본문은 이와 반대로 행동할 때 기쁨과 은혜의 영향이 늘어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질투하는 대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은혜를 끼치게 하는” 말을 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과연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모든 좋은 선물의 유일한 원천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이웃을 자유롭고도 자연스럽게 칭찬할 수 있다.


질투가 끝나는 시간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다. 오직 성령만이 그의 약속처럼 우리 안에 사랑을 만드실 수 있다(갈 5:22). 우리 안에서 사랑은 지금도 흐르고 있으며, 마음속에 있는 다른 죄들을 밀어내고 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자신이 새롭게 하실 세상에서 모든 질투의 흔적을 지우실 것이다. 단언컨대, 천국에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무엇으로도 그 좋은 일을 전부 담을 만큼 넘칠 것이다. 


핵심은 우리의 반응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반응하여 그분을 사랑하게 되면, 동시에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 사랑이 역사하여 참된 기쁨을 낳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 질투는 지금 잠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랑은 영원하다(고전 13:8-13).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4 Ways to Conquer Your Envy

번역: 하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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