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로운 이단은 없다
by David W. Hall2021-01-25

해독 가능한 증상을 보이는 이단들만 놓고 보자면, '솔로몬 + 오류 진단 = 해 아래 새로운 이단이란 없다. 단지 재활용이 될 뿐'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를 가지려면 역사를 경멸하는 대신 역사에서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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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년 전, 엉뚱한 몇몇 기술자들이 나를 인터넷으로 끌어들여 어찌 보면 미국 최초의 개혁주의파 웹 사이트라 할 수 있는, Center for the Advancement of Paleo Orthodoxy(CAPO)를 위해 글을 쓰도록 했다. 당시 다소 자유로웠던 정통파(sub-orthodoxies)와 혼동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열띤 논쟁을 피할 마음도 없었다.(우리가 선택한 첫 번째 밈(meme)은 공룡이었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 우린 구닥다리 정통을 주장한다. 그래, 어쩔래? 그럼 잘난 당신네들이 주장하는 논지는 뭔데?) 우리는 당시 많은 에세이를 실었는데, 그게 모여서 결국은 ‘현대성의 오만함’이 되었고, CAPO 또는CAPO의 온라인 잡지 격인 ‘Premise’의 한 페이지를 형성했다. 


나는 아직도 당시 젊은 혈기에 썼던 치기 어린 에세이를 생각하고 웃곤 한다. 그런 주제를 지금 썼다면 훨씬 더 세련된 글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증에 열중한 추론이 항상 상대를 제압하고 말겠다는 과도한 뉘앙스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에세이를 모은 책 ‘현대성의 오만함’ 출간 기념일이 다가오는 지금, 모든 것을 포괄하는 주제를 담은 질문은 이것이다. “현대성(modernity)은 정말로 그토록 거대하거나 지속적인가?” (물론 이런 질문을 담은 에세이들이 모두 당시 가장 현대적인 미디어, 인터넷을 통해서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현대성은 여전히 오만한가, 아니면 오만함이 덜 해졌는가? 또한 그 어떤 수사학적 주장이라도 '새로운' 연구 또는 혁신적인 계획을 도입함으로 자연스럽게 더 큰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유행, 소셜 미디어, 또는 현대적인 모든 것보다 분별력 있는 솔로몬의 인식론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우리 사이트가 지향한 원래 모토는 솔로몬의 말, ‘Nihil novum sub sole’, 즉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였다)


몇몇 에세이는 꽤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다가오는 십 년을 위한 전략’이라는 주제를 다뤘던, 나의 첫 에세이를 1989년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에서 발표한 이후, 나는 아직까지도 그 글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계속 발표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전혀 상반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정통과 전략: 다가오는 새로운 십 년 또는 밀레니엄을 놓고 아무런 전략을 가지지 않는 것에 관하여' 이 논문이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 접한 사람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이 논문이 주장하는 핵심,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그토록 근시안적이고 세상 문화에 굴복하는 접근법을 강요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는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략적인 사고를 가진 많은 설교자들이 강단에 섰지만, 그 상승세 또는 생명력(durability)은 짧았다. 오늘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때 “연예인급”의 명성을 누렸던 복음주의자들의 추락을 한번 보라. 


‘바꾸고, 변형시키며 또 재구성하는 이단’(Heresies That Transform, Deform, and Re-form)이라는 에세이에서는 많은 오류가 형태를 바꾸는데, 그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중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변형(deformity)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동일한 바이러스가 복제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re-form)되는 경향이 있음을 드러내려고 했다. 예를 들어, 영지주의는 컬트와 오류로 가득찬 신학 시스템의 반복을 통해서 싹튼다. 결코 묻힌 채로 머물지 않는 펠라기우스 이단은 한층 정교해진 소시니안주의(Socinianism,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로 부활, 재구성되거나 치명적인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 이신론의 영향을 받는 반삼위일체 이단)라는 돌연변이를 만든다. 해독 가능한 증상을 보이는 이단들만 놓고 보자면, “솔로몬 + 오류 진단 = 해 아래 새로운 이단이란 없다, 단지 재활용이 될 뿐”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를 가지려면 역사를 경멸하는 대신 역사에서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이 도덕률 폐기를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antinomian evangelicals)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르키오니즘(Marcionism,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단)의 귀환이든 또는 자유주의자인 슐라이어마흐(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가 주장한 이성을 뛰어넘는 감정 절대론(Schleiermachian absolutization of feeling)이든 상관없이 지금 시대에 분별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기독교인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 있다. G.K. 체스터턴(G.K. Chesterton, 20세기 영국 작가)이 1905년에 쓴 ‘이단’(Heresies) 또는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이 쓴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다. 


역사의 유용성(The utility of history)을 다룬 아주 짧은 에세이는 우리 중에 있을 지 모를 도덕적 순수주의자들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오늘날 거만한 윤리적 귀족들, 결함을 가진 초기의 사례가 드러내는 악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순수한 눈을 가진 귀족이라면, 실제로 로버트 대브니(Robert Dabney, 19세기 미국 신학자이자 목사, 소설가)가 1854년에 쓴 ‘교회 역사의 활용과 결과’(The Uses and Results of Church History)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대브니는 역사를 포괄적인 학문으로 평가했으며, 역사에 능통해지는 것은 지식인 또는 공적 지도자에게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그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 현재에 꼭 필요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썼다. 더욱이 그는 현재 목격하는 잘못된 사고가 지닌 “합리적이지 않은 주장”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고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역사를 예방적 기능을 수행하는 무엇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현대 이단을 무장해제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그 이단이 대단히 진보한 것처럼 드러내는 사상이 사실상 과거 오래 전 기독교 국가에서부터 비난 받은 원조 이단이 가진 오류와 분열적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브니는 프랑스 혁명을 근대성의 상징으로 분류하고 비판했으며, “교회 역사라는 무기고”는 유용하고 필수적인 무기라고 믿었다. "무정부주의적 오류"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현대 문제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읽어야한다. 단지 '뉴'(neo-)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무조건 거부하는 그에 대한 재조명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굳이 원한다면, “영국인들이 불건전한 습관을 드러낸다”에서 우리는 체스터턴,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Sayers, 20세기 영국 추리소설 작가), 그리고 마이클 오크쇼트(Michael Oakeshott, 20세기 영국 철학자)를 가볍게나마 비교할 수 있다. “19세기 교회 개척의 십계명”은 비록 내용이 빈약하지만 초기 장로회 회의 회의록에서 나온 것으로, 대부분의 교회 개척과 관련해서 여전히 탁월한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활용함으로써 도움을 받는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게 웨스트민스터 신자들의 영성을 검토하는 일이든지, 아니면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9세기 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와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 20세기 신학자)의 아버지 역할을 했으며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20세기 신학자)에게는 할아버지의 역할을 했던 하윌라우머 흐룬 판 프린스테러르(Groen van Prinsterer, 19세기 네덜란드 정치인)의 기여를 연구하는 일이든지, 또는 이 책의 주제이자 반복적으로 다루는 내용, “해석학: 자신감을 가지고 또는 역사를 가지고”(Hermeneutics: With Hubris or History)의 주된 해석을 살펴보는 데까지 다 유용하다. 


역사를 좀 더 살펴보기 위해서, 예닐곱 개의 에세이는 각기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다. 창조에 관한 전통적인 입장의 주장, 고해성사의 가치, 그리고 교회와 윤리 그 외에 다른 여러 주제가 이 책의 자료가 되었다. 물론, 이 컬렉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셈페르 레포르만다’(semper reformanda,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칼 바르트에 의해서 주창되었다)에 대한 조롱이다. 그와 더불어 자유주의 신학(달리 말해 정통신학의 거부)의 확장을 막는 데 필요한 활동을 위해 현금 지원을 제안한 글도 있다. 또한 마지막 장에서는 다문화주의, 위기주의(crisis-ism), 포스트 모더니즘 및 기타 자유주의를 놓고 어떻게 역사를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결론으로 P.J. 오루크(P.J. O’Rourke, 20세기 미국 언론인)으로부터 인용한 멋진 글을 담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기하학에서도 실패한다.” 실제로 역사는 현대의 많은 생각과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과거를 버리는 것은 진리에 눈을 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대성의 오만함’ 개정판이 예정되어 있다.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크리스 라슨(Chris Larson)은 “이 책은 엄청나게 팔릴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이 책 안에 있는 몇 개의 에세이는 여전히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현대성이 그 오만이라는 면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너무도 많은 교회가 숨도 쉬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현대성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쫓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족쇄로 여기며 여전히 과거를 경멸하는 현대성은 많은 세대를 종합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지 않은 신생 학자들의 손에서는 창피함을 모른다. 오만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행여 도덕적 우월감과 자기 중요성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또는 체스터턴이 그로서는 예외적일 정도로 진보주의에 대항하여 광범위한 측면에서 경고한 바와 같이, “진보적으로 되는 유일한 이유는 사물은 그냥 두면 자연적으로 악화되기 때문이다. … 모든 보수주의가 기본으로 삼고 있는 생각은 이것이다. 사물을 그냥 가만히 놔두면… 그것은 급격한 변화에 휘말리게 된다. 하얀 기둥을 가만히 놔두면, 그 기둥은 곧 검은 기둥이 된다.” 따라서 그는(그리고 보다 거룩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겸손하게 과거를 활용하여 현재를 새롭게 색칠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했다. 체스터턴은 조언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그 오래된 흰색 기둥을 계속 가지고 싶다면, 당신은 그 기둥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얗게 칠해야 한다.”




원제: Arrogance of the Modern: Twenty Years Later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무제

현대 이단을 무장해제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그 이단이 대단히 진보한 것처럼 드러내는 사상이 사실상 과거 오래전 기독교 국가에서부터 비난 받은 원조 이단이 가진 오류와 분열적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로버트 대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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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W. Hall

데이비드 홀은 미국 조지아주 파우더 스프링스에 위치한 Midway Presbyterian Church에서 2003년부터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칼빈 500시리즈의 에디터로 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The Arrogance of the Modern and The Genevan Reformation and the American Founding'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