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가기 싫을 때
by Gaye Clark2018-11-19

남편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에 말했다. “당신, 이제 직장을 떠나도 되겠어.”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간호사로 출근한 첫날부터 가진 계획이었다.


물론 남편의 죽음은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떠날 때, 두 아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집은 수리를 위해 벽을 겨우 허물어 놓은 상태였다. ‘진정 이 때입니까, 주님?’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는 반대로, 생명보험은 나에게 특별한 부를 안겨 주거나 과부가 된 나의 삶을 지탱해주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 이후, 나는 집을 이사하는 대신에 직장 생활을 여러 해 더 해야만 했다.


내가 결혼할 당시에, 남편은 결혼 언약에 한 가지 약속을 덧붙이길 요청했다. 만약 그가 일찍 죽더라도, 나는 계속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거나 후회하게 될 모습으로 삶을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사실  남편은 십대였을 때 암으로 진단받았다. 의학적으로는 치료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인식하며 매일을 살았다.


남편의 장례식을 마친 후에 나는 직장에 되돌아갔다. 가족과 친구들은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렴”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나는 그때의 삶을 ‘계획하지 않은 계획’이라고 불렀다.


내가 간호사로서 일을 하는 내내, 기도하며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곤 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직장은 내게 생계 수단이었다. 내가 직장 동료 및 환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12시간씩 퉁퉁 부은 다리로 근무를 할 때에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린이집에 갈 때 아이들이 흘렸던 눈물, 내가 참여할 수 없던 학무보 참관 요청 공문, 그리고 가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던 여성성경공부 모임 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크리스천 직장인


고린도후서 12장 9절이 적힌 액자가 침실 벽에 걸려 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 말씀은 아침에 정말 일어나기 싫을 때, 내가 침대에서 떨치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신학적으로 세속적인 일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이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를 알고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전히 나는 무의식적으로 부차적인 선택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50대에 전일제 직장에 복귀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언젠가 한 젊은 간호사가 다가와서 “선배 간호사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나 말고 다른 선배 찾아서 물어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되돌아 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불렀다. “잠깐만, 무엇이 필요하지?” 우리는 함께 병실로 들어가서 어떤 환자의 손을 잡고 그의 농담을 들으며 웃었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꾹 참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후배 간호사가 물었다. “왜요?” 그러자 나는 “그냥, 내가 오랜만에 직장에서 웃어 본 것 같아서. 고마워”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직장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 중 하나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또 나는 지나온 길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많은 실수를 통해 배운 교훈들이 병원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여러 차례 지켜봤다. 그 결과로 나는 신입 간호사들에게 자기비하에 관한 발표를 두 번이나 했다. 한번은 “정말로 실수를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부제도 붙였다. 그 발표를 준비하면서 파워포인트에 성경 구절들을 찾아 넣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롬 12:18)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까지 ‘모든 것들’을 찾아 넣었다.


그 ‘모든 것들’에는 인생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그로 인해 오는 비통함까지도 속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슬픔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한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이 길에서 겪는 슬픔이 간호사를 만들지요.”
 
은퇴 계획


올해 내 딸과 사위는 첫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엄마,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는 걸 생각해 보세요. 우리 딸이 할머니 근처에서 자라면 좋겠어요”라고 사랑스러운 사명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사직서를 냈다. 9월 20일,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일 마지막으로 직장에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잘 어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집에 와서 내일은 절대 출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출근을 했습니다.
내 아들을 죽일 수도 있었던 초과민반응을 멈추게 해 준 일에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심한 심장마비를 겪기 전에 동맥을 열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심장 수술에 문제가 생겨 그를 떠나 보내야 했을 때 나를 위로해줘서 고맙습니다.
또 남편의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을 때 나와 함께 울어 준 일도 고맙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을 때를 돌아 보면, 두 걸음 나아가면 한 걸음 후퇴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에서 간호 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학병원에는 지칠 줄 모르고, 이 세상 누구보다 용감하며, 영감이 있고 지적이며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웅들과 동등하게 일하는 특권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내일 나는 대학병원을 떠날 것이며, 이제는 정말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습게도 나는 항상 이 순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대학병원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30년 넘게 일하며 배운 교훈이 하나 있다. 직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이 희생은 곧 ‘사명’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희생을 몸소 실천하셨다. 모든 크리스천은 그분의 길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나는 주님께서 오랜 시간 그 사명, 곧 희생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게 하신 일에 감사한다. 주님은 나를 그분이 원하시는 자리에 두셨고, 그 자리는 바로 30년 가까이 출근한 대학병원이다. 이제 나는 주저함없이 그 시간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확신한다. 내 직장은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길보다 더 나은 길”이었다고 말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en You Hate Going to Work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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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aye Clark

가예 클라크는 Parkridge Health Systems의 수간호사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