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무조건적 연합을 말하지 않는다
by Quina Aragon2021-02-18

삼위일체 하나님은 연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고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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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미국 국회 의사당에서 일어난 난동 이후, 국가와 교회가 연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 논의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이러한 딜레마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러 해 전 일어났던 ‘처치투’(ChurchToo, 교회 안에서의 MeToo운동-편집자주) 운동으로 그동안 ‘연합’이라는 명목 아래 학대를 은폐하려던 교회들의 상황이 드러났다. 그 후 2016년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대다수의 교회에서 흑인 교인들이 ‘조용한 탈출’을 했다. 이들은 교회에서 인종에 대한 정의(racial justice)가 부족하다는 우려를 표명했을 뿐이지만 그것이 ‘분열을 초래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연합은 '분열되지 않은 상태’ 또는 ‘하나됨’이다. 그러니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먼저 성경이 말하는 ‘연합’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적인 연합


삼위일체 하나님은 연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고의 모델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요일 4:8)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완벽하게 순전한 연합체로서 영원히 존재하고 계신다(신 6:4; 마 28:19).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평화롭게 교제를 누렸지만, 그들의 죄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분열을 가져왔고, 그 결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도 분열이 생겼다(고전 15:22). 하지만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셨다(벧전 3:18). 그리스도 아래 모든 것이 하나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것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전 우주적으로 실현될 것이다(엡 1:7-10; 빌 2:9-11).


기독교의 연합은, 하나님이 인종과 배경과 사회 계층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한 가족(혹은 몸)이 되도록 모으신 결과다(고전 12:27; 갈 3:26-28). (이미 영적 실체지만 아직은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교회의 연합은 영광스러운 삼위일체를 반영하며 이를 바라보는 세계가 복음의 진리를 믿도록 촉구한다.


크리스천들은 불신자들과 마음을 같이하고 합당한 목표를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지만, 불신자들과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연합할 수는 없다.


초기 크리스천들에 의해 구체화(행 2:42-47)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연합은,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요 17:17; 엡 4:13)을 통해 우리를 연합시키는 성령의 힘을 얻어 사명을 공유하고(마 28:19-20), 형재애와 봉사를 실천하며(갈 6:10; 벧전 1:22), 서로 화목하는(엡 2:11-22; 마 18:15-20) 것이다.


비성경적 연합


1. 연합 그 자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 133:1) 선하고 아름답다고 했지만, 연합 그 자체가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바벨탑에서의 연합(창 11:1-9)이나 헤롯과 빌라도 간의 연합(눅 23:12)은 연합이 선이 아닌 악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는 수단임을 보여준다. 진리와 정통을 인정하고 이를 적용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 연합의 본질을 거스르는 것이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노예 소유를 인정하는 크리스천 노예 소유주들과의 연합을 거부하면서, 이런 예를 들어 설명했다. “다른 신조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는 주의 만찬에 함께 참여하지만, 노예 소유주들과는 어떤 교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교회 안으로 살인범을 받아들이면 곧…사람을 훔치는 도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연합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리와의 연합이 목표다.


2. 획일성


더욱이 성경적 연합은 획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가족은 믿음으로 한결같은 성숙을 위하여 서로 섬기는 은사를 받은 다양한 사람들이다(엡 4:11–13).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고유한 은사와 능력과 개인적 선호, 혹은 성별이나 나이 같은 다른 특징들을 부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을 지워버리지 않으신다(계 7:9).


당파적 충성을 요구하거나 개인의 고유 유산을 버리게 하거나 혹은 문화적/사회적 계층의 규범을 영적 의무와 융합시키는 일체의 요구는 성경적 연합이 아니며, 단지 그 요구에 동화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이다.


3. 정의와는 거리가 있는 것


구약 시대 이후로 하나님은 범죄자들이 사죄하게 하는 것보다는 피해자를 온전하게 하는 데 관심이 있으셨다. 범죄자가 주님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자신이 피해를 준 이웃에게 배상해야 하는 배상법(레 6:1-7; 출 22:1-15; 마 5:23-26)을 참조하라.


유대 동족의 돈을 빼앗은 세리 삭개오는 이것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기독교 연합은 취약한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고통받는 동안 '쿰바야'를 부르며 춤추는 원을 유지하기 위해 악을 은폐하거나 강한 비평이나 갈등을 무시하지 않는다(암 5:21–24; 고전 11:17–21). 다윗 왕은 자신의 딸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당한 후에 이에 대한 정의를 집행하지 못했을 때, 그 교훈을 힘들게 배워야 했다(삼하 13). 그 결과로 가정과 왕국에 치명적인 분열이 일어났다.


바른 정의를 저버린 연합은 가짜 연합이며,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로 연합을 원하는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가해자가 회개하도록 촉구하지 않는 공허한 연합에 참여하도록 우리가 요구받을 때는 특히, 성경적 비전을 반드시 새겨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참되고 덕이 있는 연합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그리고 그 참됨과 덕이 모두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연합을 표현하는 것인지, 우리의 뜻만을 고집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빌 2:3-4; 눅 10:25-37),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회개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 새로이 결심해야 한다.


성경적 연합이 때로 쉽거나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성경적 연합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라는 말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이다.




원제: What Do You Mean by ‘Unit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정은심


당파적 충성을 요구하거나 개인의 고유 유산을 버리게 하거나 혹은 문화적/사회적 계층의 규범을 영적 의무와 융합시키는 일체의 요구는 성경적 연합이 아니며, 단지 그 요구에 동화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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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Quina Aragon

퀴나 아라곤, 작가이자 낭송 아티스트(spoken-word artist)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의 시선으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린이 도서 Love Made, 이 책의 후속편으로 성육신과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Love Gave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