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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은 성경적이고 아름다우며 실용적인 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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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eff Robinson  /  작성일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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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harles Deluvio
일부 교인들에게 ‘예정’이라는 단어는 변덕스럽고 나쁜 하나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기 임의대로 인류 중 얼마는 구원하시고, (일찍 생을 마감한 영유아까지 포함하여) 죄인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크리스천 중에는 예정을 저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런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서 목사가 예정에 대해 언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목사는 쫓겨나거나 주먹다짐 혹은 그 이상의 심한 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생각에 예정하시는 하나님은 반(反)민주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정을 청교도적인 종교의 산물이요, 16세기의 광적인 목사가 만들어 낸 교리적인 창작물로 여긴다. 그 후손들이 예정 교리에 근거해서 신학적인 ‘주의’(ism)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의 생각을 가진 교회들은 예정을 크리스천에게 중요한 성경 교리를 일깨워 주는 소중한 단어로 생각한다. 예정은 이 세상의 분자나 원자 혹은 그보다 더 작은 미세한 개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적인 통제 속에 존재한다는 위로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주는 말이다. 그리고 예정이 주는 위로와 확신은 구원의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경적인 교리

미국 종교 역사에서 몇 가지 교리들은 다양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예정 교리는 가장 분명하고 변증할 필요가 없는 교리이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1장 5절은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라고 분명히 선언하기 때문이다. 또 에베소서 1장 11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었다”라고 말씀한다. 이 에베소서의 말씀은 로마서 9장과 요한복음 6장의 많은 부분들과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와 함께, 나를 자원하여 신학에 헌신하게 만든 말씀이다. 여기에 사도행전 13장 48절은 나를 완전히 그 앞에 엎드리게 했던 말씀이다.

예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또 그와 비슷한 교리인 ‘선택’은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는 미움 받는 교리이기도 하지만,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교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 해석가들은 예정 교리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복음 전도자들과 목사들이 예정 교리를 방치해 둔다. 또 이를 통해 신학적인 열매를 거두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매우 문제가 많고 위험한 교리로 여기기도 한다. 그들은 예정 교리는 실용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 예정론은 그저 신학교 수업의 한 토론 주제일 뿐, 삶의 전반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주제이다. 그러나 예정론을 만들어 낸 사람으로 다들 잘못 인식하는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존 칼빈은 앞서 언급한 복음 전도자들이나 목사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을 한다.

“이 위대한 주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단순히 까다롭고 격한 논쟁만 일으키는 주제가 아니다.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피곤하게만 하는 추상적인 주제도 아니다. 오히려 경건한 자들의 섬김에 유익을 주는 주제이다. 왜냐하면, 예정 교리는 우리를 온전한 믿음에 이르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선하심을 찬양하도록 한다. 예정 교리는 우리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도록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정론에 관한 주제를 지금까지 가장 심도 있게 다룬 책을 쓴 로레인 뵈트너(Lorraine Boettner)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예정 교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차갑고, 쓸모없고,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이상한 교리들을 부자연스럽게 엮은 체계도 아니다. 오히려 예정론은 하나님이 인간과 맺는 관계에 대한 가장 따뜻하고 살아 있는, 가장 생명력 있고 중요한 설명이다. 예정론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갖게 하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도록 적용될 수 있는, 차원 높지만 실용적인 진리의 체계이다.”

아름다운 교리

예정은 아름다운 교리이다. 예정의 아름다움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정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칼빈과 뵈트너가 지적한 것처럼, 예정은 크리스천의 삶에 중요하고도 실용적으로 적용되는 교리이다. 예정은 단순히 호기심을 가진 신학생들을 위한 토론이나 논쟁을 위한 주제가 아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첫째, 하나님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세심하게 인류 역사를 써 나가신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은 없다. 전능하고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영원 전에 계획되지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신다”라는 말씀이 실제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그로 인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다(롬 5:8).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자신의 생명을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내어주셨다(벧전 3:18).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다.

셋째,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죄인 된 우리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연약한 질그릇과 같은 자들을 선택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신다(롬 10:14-15).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바로 그들에게 죽음을 이기는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는 놀라운 특권을 허락하신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은 무궁하지만 인간의 영광은 무궁하지 않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지으셨다(사 42:8). 그러므로 인생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과 관련되어 행해진다.

또한 예정 교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고, 죽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엡 2:1). 그러므로 우리가 예정을 무시해서 살면, 영적 영양 실조에 걸리게 된다.

실용적인 교리

사람들에게 자주 왜곡되어 온 예정 교리는 우리의 영적 진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음 세 가지 방법으로 강화해 준다.

첫째, 예정은 우리를 선택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가 장차 받을 하늘의 기업은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장차 받을 기업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기업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없다. 또한 우리에게서 그 기업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도 없다(롬 8:31-39). 분명 수많은 위험과 수고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백성들은 끝까지 보존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예정을 통해 배우는 진리는 매일 고난과 아픔의 인생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 진리로 인해 매일의 영적 전투를 치루느라 연약해진 성도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당신을 확실히 지키실 것이다(요 10:28).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신앙을 세워가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듣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우리가 예정에 대해 들을 때,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임을 확증하신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선한 의지 때문임을 우리가 보고 알게 하신다. 무엇도 이 예정을 철회할 수 없다. 세상의 어떤 폭풍우도, 사탄의 공격도, 어떠한 변화나 육신의 결함이나 연약조차도, 하나님의 선택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안에서 그 원인을 찾을 때만 안전하다.

둘째, 예정은 우리의 구원이 주권적이고 선하신 하나님께 영원한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슬픔과 핍박과 실패가 우연이 아님을 알려 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지 않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고난의 사냥개는 하나님이 그들을 자유케 하실 때까지 재갈을 물고 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결코 늦게 오시지 않는다. 결코 다른 주소로 가시지도 않는다. 당신이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통은 당신을 아들의 형상으로 만들기 위한 그분의 끊임없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늘 함께하시는 절대적인 주권은 인간의 근심을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이다.

셋째, 예정 교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두렵게 하거나, 논쟁을 불러 일으켜 시간을 허비하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겸손하고 감사하게 한다. 왜 하나님이 나를 가족으로 선택하셨을까? 왜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이웃은 믿지 않을까? 왜 나는 교회를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을까? 왜 나는 매주일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있을까?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분은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엡 1:5). 내가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들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이 나를 겸손하게 한다. 모든 순간마다 내 입술에 감사가 있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이 없다. 내 인생이 이런 모습이 되기에는 자격이 없고, 철저하게 거리가 멀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지금의 나 되게 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늘 나에게 선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나를 참아 주셨다. 그러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예정 교리와 씨름을 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전해야 한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처음 예정론을 접했을 때,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혀 놓고 불의를 피력했다. “하나님의 예정은 불공평합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실 수 있습니까?”

이런 주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듣는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다. 하지만 참되게 행동하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불평하는 나를 부드럽게 감싸 주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대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나의 눈을 열어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예정 교리의 아름다움과 삶에 안정감을 주는 그 교리의 힘을 보게 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내가 따지고 들었던 바로 그 의(justice)를 따라 행하셨다면, 나는 그 의에 근거하여 지금 이 순간 지은 죄에 합당한 진노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비롯하여,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셨다. 그 선물은 바로 ‘자비’이다.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원제: Predestination Is Biblical, Beautiful, and Practical
번역: 김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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