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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우정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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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ames Eglinton  /  작성일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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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media Commons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우정을 나누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방(echo chambers)에서만 만나 서로를 격려하는 것을 우정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화 속에서, 이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우리로 하여금 우정의 본질에 대해 기독교적(Christianly)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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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의 죽음으로 인해 한 가지 대화가 촉발되었다. 그것은 삶과 세상에 대한 관점이 전혀 다른 사람들 간의 우정이 가진 가치에 대한 것이다. 진보주의자였던 긴즈버그는 법조계 경력 내내 동료 판사인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와 오랜 우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스칼리아는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 긴즈버그와 더 이상 다를 수 없을 정도로 상반된 사람이었다. 


그들의 우정은 가족으로까지 확장되어 때때로 함께 새해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기념비적인 사진이 하나 있는데, 스칼리아와 긴즈버그 가족이 인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에 이 두 사람이 함께 즐겁게 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친구란 모름지기 나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두 사람의 우정은 실로 놀라움 그 자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이 보여준 ‘이상한 커플’ 우정은 적지 않은 논평 기사와 라디오 쇼, 심지어 오페라의 주제로까지 등장했다. 그들이 보여준 반문화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상한 우정은 많은 이로 하여금 이런 질문들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왜 저들은 저런 우정을 유지하는 것일까? 저들의 우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친구로 만나는 동안에는 서로의 차이점에 눈을 감기로 한 건가, 아니면 오히려 그 차이점 때문에 우정이 더 커진 건가? 아니, 저 두 사람에게 우정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던 걸까? 나도 이념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친구로 둬야 하나? 이런 질문은 그리스도인과 관련이 있다. 과연 우리도 이런 우정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 


이상한 커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기독교인이자 급진적 회의론자였던,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 중 한 명인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와 나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유주의 회의론자이자 그의 평생 친구였던 흐리스티안 스눅 후르흐론녀(Christiaan Snouck Hurgronje) 사이의 비슷한 흥미로운 우정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살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네덜란드 상황을 생각할 때, 당시 저명 인사였던 이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을 놓고 이상한 커플이라고 불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바빙크와 스눅은 1870년대 라이덴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처음 만났고 두 사람 다 목사의 아들이었다.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는 조금도 비슷한 점이 없었다. 스눅의 아버지는 주류 네덜란드 개혁 교회의 목사였는데, 그는 조강지처를 버린 혐의로 목사직에서 물러났고 젊은 여성(스눅의 어머니)과 함께 런던으로 피신한 사람이었다. 부모의 성을 다 사용한(double-barreled) 스눅 후르흐론녀 가족은 네덜란드 귀족층이었다. 흐리스티안은 나름 고귀한 젊은 귀족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 의심스러운 가계도를 배경에 깔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빙크는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얀은 아주 작고, 보수적인 기독교 개혁 교회의 목사였고 목수의 아들이었다.


학생 때 친구가 된 헤르만과 흐리스티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애 동안 긴밀한 연락을 유지했다. 물론 둘이 함께 코끼리를 타는 사진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 동안 편지를 교환하며 개인적인 아픔을 나누고, 신앙과 정치 문제를 놓고 서로를 설득하고, 또한 서로의 글을 읽고 비평하며, 삶이 주는 기쁨과 투쟁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우리는 그 두 사람의 우정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편지가 보여주는 것은 기독교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믿음을 가진 깊은 사상가 또는 친구들이 나누는 풍부하고 솔직한 우정의 창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우정을 나누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방(echo chambers)에서만 만나 서로를 격려하는 것을 우정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화 속에서, 이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우리로 하여금 우정의 본질에 대해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실용적 출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대학인 라이덴대학 주변의 문화는 귀족층 아들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1870년대 전형적인 라이덴 학생은 부모의 성을 다 사용하였고 또한 귀족 출신이었다. 또한 서로가 혈통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가 많았다. 원칙적으로 스눅은 그런 환경에 속했지만 바빙크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빙크의 가족 배경은 충분히 고급스럽지 않았고, 스눅의 가족은 아버지의 스캔들로 오염된 상태였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교수들이 가르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바빙크는 교리와 삶에서 정통에 전념한 반면, 급진적 회의주의자인 스눅은 교수들이 가르치는 대담하고 간편한 비정통에 대해 오히려 의심했다. 


각각 다른 이유로 두 사람 다 외부인이었지만 바빙크와 스눅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 것은 아니다. 라이덴대학에서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학생이 바빙크 혼자가 아니었고 또한 스눅은 스눅대로 자기와 맞는 다른 자유주의 귀족 그룹과 친하게 지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 특별한 우정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라이덴에서 처음 2년 동안 학생들은 전공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공통 과정을 수강해야 했다. 그 기간에 바빙크와 스눅은 처음으로 교양 과정 중 하나인 아랍어 수업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그들의 우정은 연구 파트너가 되었을 때 시작되었고, 그들이 서로에게 깊은 우정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했다는 결심을 굳힌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해졌다. 


1878년, 두 사람은 같은 시험에 응시했다. 바빙크는 우등상을 받았지만 스눅은 단지 통과한 수준이었다. 바빙크는 이런 결과에 심각한 불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교수가 스눅에 대한 개인적 혐오가 작용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바빙크는 그 교수가 주는 학위를 거부했고 그 결과는 그에게 주어진 우등상의 취소였다. 스눅은 바빙크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이 보여준 우정은 내게 상장에 적힌 글과는 비교가 안 되는, 무한한 가치다.”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 그들의 우정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깊어졌다.

 

다른 방향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빙크과 스눅이 걷는 길은 완연히 달라졌다. 바빙크는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고, 그가 구축한 독특한 브랜드는 정통을 중시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기독교의 경건을 사회 곳곳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스눅은 이슬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메카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러는 중에 무슬림 전용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스눅은 메카 순례 기간 동안 메카의 첫 번째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그 책은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지금 인도네시아가 된 땅에서 수년 동안 살았고, 그곳에서 압달 가파르(Abd al-Ghaffar)라는 이름으로 무슬림 아내와 결혼했으며 또한 무슬림 자녀를 낳았다. 그리고 나중에 네덜란드로 돌아와 자유주의적 네덜란드 정체성을 되찾고는 네덜란드 여자와 다시 결혼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세대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학자였고, 당시 그의 신학자 친구였던 바빙크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인사였다. (물론 이제는 그 명성이 바뀌었다.) 


신념과 삶에서의 이런 놀라운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빙크와 스눅은 평생 동안 직접 만나서든 또는 편지로든 접촉을 유지했다. 편지를 보면 두 사람 모두 ‘비판적인 우정’을 소중히 여겼고,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릴 때 그 결과는 무디어진 통찰력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진정 예리한 사상가라면 믿을 수 있는 친한 친구,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가정(assumptions)은 공유하지 않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믿었다. 바빙크는 한때 그들의 우정을 “친구지만 동시에 적”이라는 말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정기적으로 서로의 글을 읽고 토론했다. 이슬람, 세속화, 성경의 권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의 진리 주장에 대해서 그들이 서로 나눈 글을 보면 어떻게 달라도 이렇게까지 다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내가 ‘바빙크: 비판적 전기(Bavinck: A Critical Biography)’에서도 썼듯이, 바빙크는 메카와 인도네시아에서 스눅이 이중적 이슬람 생활을 했던 것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그는 스눅이 메카에 들어가기 위해 무슬림이 됐다는 사실도 몰랐고, 또한 무슬림 십대 여자와의 결혼에 대해서는 스눅이 바빙크에게 거짓말을 한 게 사실인 거 같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그들의 우정이 지속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바빙크가 쓴 ‘계시의 철학’(Philosophy of Revelation)은 회의론자를 타겟으로 한 변증론 책인데,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스눅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책을 놓고 나중에 그들이 토론한 내용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눅은 바빙크의 주장에 설득된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더 커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비판적인 우정’을 유지했다. 예를 들어, 바빙크가 사망하기 전날 스눅은 친구의 아내인 요한나 바빙크 쉬퍼(Johanna Bavinck-Schippers)에게 친구의 임종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방문에 관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아직도 마지막 방문이 준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낙담이 크지만 배움도 있었습니다. 나는 경건함을 빼고 나의 좋은 친구를 기억할 다른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았던 1874년 부터 1921까지의 시간 내내 말입니다.”


그러한 우정에는 확실히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빙크와 스눅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신학적이고 사회적으로 동일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전제와 관점에서 그 질문을 던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과연 하나님을 아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종교는 단순히 인간 문화의 문제인가(스눅), 아니면 더 높은 것을 가리키는 어떤 실제(바빙크)일까? 


그들의 평생을 통해서 살펴볼 때, 그들의 우정은 두 가지 동기를 공유한 두 사상가 사이의 정직하고도 매우 긴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동기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이다. 비록 한 세기가 지났지만, 그들이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익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통찰력 넘치고 날카로운 신학자 바빙크를 만드는 데 그의 친구가 한 역할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런 우정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라이벌 판사를 만나는 게 드문 것처럼 말이다. 




원제: Why Befriend Your Opponents? Bavinck on ‘Critical’ Friendship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진정 예리한 사상가라면 믿을 수 있는 친한 친구,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가정(assumptions)은 공유하지 않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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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ames Eglinton

제임스 엘링튼은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개혁 신학을 담당하는 선임 강사이다. 저서로는 ‘바빙크: 비판적 전기(Bavinck: A Critical Biograph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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