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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설교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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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형익  /  작성일 20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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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Bloch - Sermon On The Mount

타락은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가져왔지만, 하나님의 구속은 당신의 영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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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자네가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케 하는 은혜를 꼭 설교해야 하네.”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가 홀리트리니티교회의 젊은 후임 설교자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에게 한 말이다.

 
목사로 수련을 받는 신학생들은 설교학을 배울 때,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말하라든가, 구속사적으로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정작 강단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말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험하기 시작하고, 또 구속사적 흐름을 분명하게 짚어내는 것 같지만 정작 구속의 은혜를 충분히 보여주는 일에서 실패를 경험하곤 한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기도 하고 또 많은 동료 목사들의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말이나 구속사적 설교를 하라는 말의 요지는 리처드 십스의 말을 빌리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케 하는 은혜’를 드러내라는 말이 아닐까?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지 못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한다거나 구속사적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리처드 십스가 토마스 굿윈에게 한 말을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케 하는 은혜를 설교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를 말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께서 죄로부터 분리되셨고 당신의 영광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추구하신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지만,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목적이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출 19:6). 타락은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가져왔지만, 하나님의 구속은 당신의 영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시킨다. 엄격하게 구별된 영역인 광야의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의 회복을 현시하는 상징이었다.


물론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 수 있지만, 특별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본문은 율법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당신의 거룩하심을 온전하게 계시하셨다. 그래서 율법을 설교하는 것은 중요하다. “복음의 은혜를 드러내라고 하면서 율법을 설교하라고?” 그렇다! 율법을 설교하지 않고 은혜를 드러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율법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기준을 타협없이 드러내는 것은 중요하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 수준의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하).” 하지만 거룩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갈 3:11). 주님도  산상수훈에서 율법을 이렇게 재진술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리고 구체적인 예시까지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율법은 타협없이 이 기준을 고수한다. 사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한다. 그렇기에 성경 본문을 설교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우리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고 슬픈 일이다.


둘째로, 은혜를 설교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성을 충분히 드러내야 한다. 사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선명하게 드러날수록 사람의 죄성도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부름을 받는 장면을 생각해보라(사 6). 환상 중에 이사야가 성전 안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다. 높이 들린 보좌, 성전에 가득한 그의 옷자락,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스랍들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준다.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창화하자,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찬다. 이것이 이사야가 본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묘사들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면한 이사야는 즉각적으로 자신은 죽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이사야의 반응은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면할 때, 자신의 죄성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설교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자신의 죄성을 제대로 마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칼빈이 말한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 우리 자신을 알 수 없고,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고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설교는 이 두 가지 지식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좋은 친구쯤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설교하는 것은 특별히 중요하다. 이사야가 본 것과 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면하지 않는 한,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죄의 개념과 죄인됨에 대한 인식은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설교자는 피상성을 넘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그 말씀으로써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부패성을 드러내야 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설교자는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회중이 이것을 경험하고 인정하게 하는 사람이다.


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 이 두 가지 요소를 선명하고 충분하게 말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십자가와 복음의 은혜를 말할 준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 사이의 간극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부르짖게 만드는 죄인의 딜레마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 간극은 십자가의 복음이 채워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성 사이의 간극은 오직 십자가 복음의 은혜로만 채워질 수 있다. 회심은 이 두 요소를 처음으로 인식하는 순간이다. 성화는, 회심한 신자가 설교를 통해 점점 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자신의 죄성의 심각함을 깊이 봄으로써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과정이다. 이 인식이 점점 더 깊어질수록, 십자가의 은혜가 채워야 할 영역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이것은 결국 그가 경험하는 은혜의 풍성함과 깊이를 반영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나의 죄성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진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복음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고 있다는 믿을만한 표지다.


만일, 신자가 은혜를 드러내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성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간극은 우리의 익숙함 속에서 점점 더 좁아지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거의 수렴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은혜가 채울 수 있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오랜 세월, 복음의 은혜를 받아 누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종교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20세기의 탁월한 복음 설교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험의 특징은 경외감(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인식)과 무가치성(인간의 죄성)이 동반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설교했다”라고 싱클레어 퍼거슨은 증언한다. 목사인 우리는 매주일 이것을 설교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리처드 십스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케 하는 은혜를 설교하라고 젊은 사역자인 토마스 굿윈에게 했던 조언을 주의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 이 두 요소를 충분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말하지 않고 은혜를 말할 수 있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구속사적 설교 다 좋다. 그러나 설교자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케 하는 은혜’를 설교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을 선명하고 충분하게 말함으로써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 우리 자신을 알 수 없고,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고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설교는 이 두 가지 지식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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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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