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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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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  작성일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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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azuo ota on Unsplash

복음은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지혜롭거나 더 도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은혜'라는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자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탁월한 사람들이 있고, 인간적으로 더 나은 사람들이 있음을 함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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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영국 교회의 침체 원인이 세상은 다원주의 사회로 변했는데 교회는 여전히 기독교 국가인 것처럼 생각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중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있는 문화 참여’라고 말했다. ‘이미’ 임했다는 것을 강조하면 기독교 승리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에 집중하면 ‘기독교 염세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팀 켈러는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에서 오늘날 복음전도가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를 겸손, 소망, 사랑, 용기의 결핍 때문이라 분석한다. 이 네 가지 자질은 훈련을 통해 길러야 하는 습관이나 기술이 아니라, 복음을 분명히 이해할 때 우리에게 맺혀지는 은혜의 결과다. 즉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전도가 열매를 맺으려면 복음의 회복이 필요하다.


복음은 어떻게 네 가지 자질을 길러주는가?


첫째, 복음은 교만을 제거함으로써 겸손하게 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지만 복음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무례한 기독교’를 양산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은혜를 자신들만 특별히 받는 특권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무시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말씀은 먼저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빛과 소금의 삶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라는 의미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사람들을 배척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의 결과이기에 아무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복음은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지혜롭거나 더 도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은혜’라는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자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탁월한 사람들이 있고, 인간적으로 더 나은 사람들이 있음을 함유한다. 복음은 구원받은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정체성을 가진 겸손한 사람의 모습을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라고 말했다. 복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교만을 제거함으로써 낮은 자세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겸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둘째, 복음은 냉소주의와 비관주의를 제거함으로 소망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은 도저히 안돼”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구원에서 소외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일 정도로 잔인했던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서 사도로 변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잔인한 범법자들도 감옥 안에서 복음을 듣고 회개했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된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분이시다. 복음은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준다.


셋째, 복음은 무관심을 제거함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3~47).


예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차별 없이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관용과 사랑을 배우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팀 켈러는 로마서에서 거짓된 사랑의 특징 중 하나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라 말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은혜를 따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고 좋아한다. 그러나 동일한 저자가 쓴 요한일서 3장 16절을 외우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요한일서 3장 16절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스도가 목숨을 버리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 은혜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형제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복음은 우리에게 관용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도록 도와준다.


넷째, 복음은 두려움을 제거함으로 용기를 준다. 복음을 전하기가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복음을 전했다가 거절을 당한다면 자신이 쌓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또 단순한 거절이 아닌 복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이런 거절과 비판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더욱 위축시킨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에 상관없이 영원한 사랑과 안정감을 우리에게 공급한다. 목숨을 버리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사랑이며, 누구도 흔들 수 없는 확신이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로마서 8장은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런 사랑의 확신이 사람들의 인정이나 박수가 없어도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심지어 거절이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우리가 복음을 진정으로 믿고 기뻐할 때 복음은 이 네 가지 자질을 우리에게 공급한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자질을 갖는다고 해서 복음의 열매가 저절로 맺혀지는 것은 아니다.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는 분명 이렇게 물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겸손과 인내와 사랑과 용기로 대해도 그들이 분노와 독설로 대응하고 우리를 소외 시키려고 하면 어떻게 해 야 하나요?’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이 길을 가는 이유는 성공이 보장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옳은 길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반드시 사랑은 길을 찾기 마련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다. 복음을 누리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다. 복음은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고, 또한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한다.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교회가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복음이다.

팀 켈러는 로마서에서 거짓된 사랑의 특징 중 하나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라 말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은혜를 따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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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상섭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 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팀 켈러 연구가’로 알려져 있으며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 공저한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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