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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the Game Ch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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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형익  /  작성일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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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an Asaki on Unsplash

신자는 눈에 보이는 그 게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믿음이라는 그 나라의 게임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고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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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대학생 집회를 마친 후, 집회에 참석했던 형제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었다. 그는 3포를 아는지를 물었고 5포, 7포를 이야기했다. 당시 10년 넘게 미국에 거주하던 나에게 그 말들은 생소하기만 했지만, 나는 그 형제 덕분에 우리나라의 청년 세대가 겪는 고충을 조금 알게 되었다. 질문의 핵심은 “이런 암울한 현실을 사는 청년들에게 복음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었다. 이르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경쟁을 시작해서, 좋은 대학, 좋은 성적, 높은 연봉, 멋진 결혼식, 괜찮은 평수에서 신혼 시작하기, 멋진 차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퇴 플랜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 일평생 사는 동안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복음은 이런 끝없는 경쟁 사회 속에서 더 잘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가? 정확히 이런 의미에서라면 복음은 그다지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믿는 자에게 좋은 대학, 높은 연봉의 직장, 멋진 가정, 소위 ‘성공적인’ 삶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면, 이 복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특히 N포로 일컬어지는 암울한 시대적 환경에 서 있는 기독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전제가 있다. 복음은 성공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하여 경쟁하는 세상 속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몰두하는 그 ‘게임’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한다. 말하자면, 거듭난 신자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비록 이 땅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이전의 그 게임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회심 이전과 이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던 그 그라운드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이 그라운드에서 이전에 하던 그 게임을 계속 해야 한다고 느낄 뿐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 게임을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가지게 된다. 내게는 믿음의 힘이 있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가? 그래서 소위 ‘고지점령론’같은 성경적이지 않은 주장들이 한때 기독청년들에게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의 모토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의 고지(高地)에 올라 멋지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사실, 성경은 이런 생각들을 승인하지 않는다. 복음은 신자의 삶의 목적을 바꾸고 삶의 내용도 바꾼다. 이전의 삶의 목적은 성공이었지만, 이제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음으로써가 아니라, 기꺼이 패자가 되는 방식을 통해서다.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게임의 법칙도 바뀌었다.


가령,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은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임의 법칙—이김의 원리—을 설명해준다(마 5:3-10). 그것은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고 애통해야 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이런 게임의 법칙으로 살아간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심령이 가난하면 무시를 당할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 온유한 자는 짓밟힘 당하기 일쑤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얻으며, 애통하는 자는 하늘의 위로를 경험하고,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세상에서 하던 그 게임의 법칙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게임의 법칙으로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문제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이 중첩된 시대를 살고 있고,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신자는 눈에 보이는 그 게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믿음이라는 그 나라의 게임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고후 5:7).


신자가 살아가는 위치가 이러하다 보니, 때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적당한 선에서 살아가기가 너무나 쉽다. 적당히 심령이 가난하고, 적당한 선에서 그리고 최소한의 선에서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살아가려는 유혹을 받을 뿐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신자가 부름 받은 삶은 그렇게 해서 무시를 당하면 무시를 당하고, 짓눌리면 짓눌림을 당하고, 바보나 이상한 사회부적응자로 여겨지면 기꺼이 그렇게 여김을 받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신자는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바,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의 상황에서 “넉넉히 이기는 자들”이 된다(롬 8:35,37).


히브리서는 배교의 상황에 처해있는 유대-기독교회를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진 성경이다. 히브리서 11장은 그들이 익히 아는 구약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었는지를 말한다. 그들이 영웅이어서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흠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그렇게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았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믿음 때문에 세상에 살면서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한 사람들임을 증명한다. 우리의 게임은 세상에서 승패가 결정되지 않지 않는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게임을 하는 사람이다. 신자는 세상에서 더 높은 연봉과 좋은 직장, 넓은 집, 좋은 차를 얻기 위해 살지 않는다. 신자는 세상에서 얻는 보상만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알고’ 일하는 사람이다(골 3:24). 죽을 때 만기가 되어 찾는 하늘나라 적금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1세기 후반의 신실한 성도들이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히 10:34).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긴’ 것은 바로 ‘상 주심을 바라봄’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히 11:26).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의 결론부에서 거의 참을 수 없어 외치듯이 말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8).” 신자가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세상의 경쟁에서 더 나은 위치를 점하고, 성취를 이루고 성공을 구가하면서, “이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게임으로 우리는 부름을 받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세상의 법칙으로 살아가는데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복음은 세상이 도무지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위하여 달려가는 그 게임에서 구속받은 사람들이다. 영끌해서 대출받아 좋은 집을 얻는게 이들의 단기적 목표가 아니다. 집을 가지고 못 가지는 것은 어쩌면 안중에 없다. 연봉과 직장, 멋진 결혼과 집과 차가 이들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새로운 인류다. 새로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게임의 법칙으로 말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십자가에 무력하게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골 2:15).” 이렇게 주님은 이 세상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승패의 기준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다. 그분은 그렇게 진정하고 유일한 의미에서 이 세상의 게임 체인저(the Game Changer)가 되셨다. 그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로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 진정한 게임 체인저들이다.

주님은 이 세상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승패의 기준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다. 그분은 그렇게 진정하고 유일한 의미에서 이 세상의 게임 체인저(the Game Changer)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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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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