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국가주의 바로 알기
by Tim Keller2021-08-17

기독교 국가주의는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훨씬 더 “인종적(ethnic)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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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무엘 페리(Samuel L. Perry)와 앤드류 화이트헤드(Andrew Whitehead)가 쓴 ‘미국을 다시 하나님에게로: 미국의 기독교 국가주의(Take America Back for God: Christian Nationalism in United States, 옥스포드, 2020)’에 관한 팀 켈러의 서평으로 두 번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하나님과 국가 


올해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폭도들은 기독교 상징물을 전시하고 또 카메라 앞에서 공개 기도를 했다. 그 이후로 주류 언론을 움직이는 논리적 가설(assumption)은 이것이다. 복음주의는 이제 민주적 절차를 뒤집는 일이 있더라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백인 우월주의 봉기 세력임이 밝혀졌다. 이제 “기독교 국가주의자(Christian nationalist)”는 백인 복음주의자를 묘사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인가? 기독교와 국가주의자라는 이 두 용어가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을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최근에 들어서야 이 문제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사실 이건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1975년 나는 버지니아 주 호프웰에 있는 웨스트 호프웰 장로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개척 목사인 윌리암 힐(William E. Hill, Jr.)에 의해 (PCA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던) 웨스트 엔드(West End) 장로교회로 시작한 그 교회는 내가 왔을 때, 힐 목사는 이미 은퇴한 상태했고 그를 이은 담임 목사는 케네디 스마트(Kennedy Smartt) 목사였다. 그러나 힐 목사가 얼마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남부 지역에서는 현충일이나 독립기념일 전후에 “하나님과 나라” 축하 행사와 예배가 항상 열렸다. 종종 신도들은 예배 중에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애국적인 찬송가와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당시 보편적인 예배의 모습이다.


“군대에서 나온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애국가를 부르고 사회자가 엄숙하게 말한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이 나라를 인도하고 보호하셨습니다. 미국에게 주어진 모든 승리는 모두 다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신도들 때문이며, 하나님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우리 편입니다.”


그러나 힐 목사가 담임이었던 동안 그런 예배는 있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 애국가를 부르거나 하나님이 항상 “우리편”이라는 식의 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에 성조기를 걸어두는 것조차 그는 일종의 우상숭배로 여겼다. 힐 목사(항상 검은 양복에 흰 셔츠와 끈으로 묶는 넥타이를 매는 키가 150cm가 조금 넘는 둥글고 작은 체구)는 장례식 예배 때 성조기가 드리워진 관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것으로 유명했다. 다음날 리치먼드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문은, “힐 목사를 비애국적이고 공산주의적이며 반미적인 사람으로 낙인찍는 기사를 실었다. … 많은 참전 용사들이 그런 언론을 믿었고 … 교회는 아마도 이 사건 때문에 이삼백 명의 신도를 잃었을 것이다.”라고 실었다. 힐 목사는 1940년대에 기독교 학교를 설립할 당시 처음부터 인종 통합을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에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버지니아 그 지역 기독교 학교 대부분은 백인 학교였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교회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국기로 상징되는 애국심 그리고 미국의 백인 중심적 이익을 신앙과 결합해도 되는가를 놓고 싸워왔다. 애국심과 백인의 이익을 기독교와 결합하는 것을 우상숭배라며 반대했던 힐 목사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다 내 경우 운이 좋게도, 1970년대 중반 내가 그 교회에 갔을 때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교회 지도자들이 대체적으로 힐 목사의 경고와 모범을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한 장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미국’이라는 기독교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런 구호는 기독교적이라고 보다는 미국적인 거니까요.”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한 노동계급 기독교인의 분석이었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기독교 국가주의가 무엇인가?


이것은 사회학자 새뮤얼 L. 페리와 앤드류 화이트헤드가 쓴 중요한 새 책이 탐구한 기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풀뿌리 개신교 속에서 “하나님과 국가”라는 날개는 수십 년, 심지어는 수백 년 동안 우리와 함께했으며, 이제는 새롭고 두드러진 정치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페리와 화이트헤드는 세심한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기독교 국가주의라는 세력을 다음과 같은 정의로 구분한다.


첫 번째, 그것은 “기독교(거의 다 개신교), 인종(백인), 그리고 출생(미국 출생) … 그리고 거기에 정치적 이념(사회 및 재정적 보수주의)”이 융합된 미국인의 정체성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무슬림이거나 유대인인 경우, 이민자인 경우, 또 백인이 아닌 기독교인인 경우에는 진정한 미국인이 될 수 없고, 심지어 아무리 미국인이라고 해도 정치적 자유주의자라면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주의자는 연방 정부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선언하고 기독교 가치를 법으로 규정하고 또 기독교 상징을 전시하고 공공장소에서 기독교식 기도를 드리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기독교 국가주의자는 지역 사회에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기뻐하지만, 정부가 이슬람의 모스크 건축은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기독교 국가주의는 미국 역사에 대한 특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들의 관점에 의하면, 미국은 애초부터 명백한 기독교 국가로 설립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과 거의 (많은 사람들이 ‘거의’라는 이 단어를 빠뜨린다) 언약 관계를 맺은 수준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식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리고 계속되고 있다. 좌파와 불신자는 계속해서 미국을 세속적이고 상대주의적 국가로 만드려고 한다. 우리가 이들에게 밀려서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지도자를 제대로 선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미국을 축복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기독교 국가주의는 아주 오랜 상하 관계의 사회 질서를 암묵적으로 때로는 명시적으로 지지한다. 즉, 외국인보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보다는 기독교인이, 타 인종보다는 백인이 상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또 강조한다. “기독교 국가주의는 따라서 미국인이 사회와 세계를 인식하고 탐색하는 데 필요한, 우리가 ‘문화적 틀’이라고 부르는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이상과 가치 그리고 신화의 복합체를 제공한다.”


기독교 국가주의자는 누구인가?


기독교 국가주의 신념이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페리와 화이트헤드의 연구는 그리 놀라운 게 아니다. “미국의 기독교 국가주의에는 크게 네 가지 경향이 있다. 미국인은 거부자(Rejecters), 저항자(Resisters), 수용자(Accommodators) 또는 대사(Ambassadors)이다.” ‘대사’는 본격적인 기독교 국가주의자로 전체 인구의 19.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에 인구의 약 48%는 기독교 국가주의 신념이 전혀 없는 강력한 “거절자” 또는 거의 없는 “저항자”이다. 그러나 마지막 그룹이자 32.1%를 차지하는 가장 큰 단일 그룹은 일정 부분 기독교 국가주의 신념을 갖고 있고 또 거기에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지만,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는 ‘수용자’이다. 어떤 면에서 이런 수용자가 핵심이다. 왜냐하면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그들이 비록 과격한 기독교 국가주의 신념을 고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극단적인 지지자를 향한 이들의 동정과 지원은 극단주의자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다양한 기독교 국가주의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분명히 대사 그룹을 차지하는 대다수는 정치적 견해가 보수적인 백인 종교인이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하는 바로 이 결과 다음에 페리와 화이트헤드가 제공하는 또 다른 발견은 놀랍다.


백인 미국인은 위에서 말한 네 가지 그룹이 거의 같은 비율로 나뉜다. 그러나 아프리카 계 미국인은 백인보다 기독교 국가주의를 더 지지한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65%가 대사 또는 수용자이며, 이건 모든 인종 그룹을 통틀어서 가장 큰 비율이다. 아시아인 및 기타 인종과 마찬가지로 히스패닉은 두 개의 중간 그룹 비율이 가장 많다. 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게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백인들만의 입장이 아님을 나타낸다. 백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도 성향에 있어서 종교적, 전통적, 그리고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또한 미국의 이상과 과거 역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정치 견해를 밝히는 진보적 태도를 불편해한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기독교 국가주의자의 약 50%가 복음주의자이지만, 강력한 저항자 또는 거부자 중 거의 25%가 또한 복음주의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주의적 믿음이 자동적으로 기독교 국가주의를 유발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음주의는 오히려 국가주의를 거절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국가주의는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훨씬 더 “인종적(ethnic)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국가주의는 결코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믿음이 빚어내는 불가피하거나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입맛에 맞는 구절을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는데, 주로 역대하 7장 14절 같은, 율법을 지키는 경우 이스라엘에게 번영을 약속하는 구절을 미국에 적용하는 식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와 이민자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구약의 구절을 무시하고, 또한 원수를 사랑하고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대라는 신약의 명령은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 국가주의는 “특정 종교 전통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신교 복음주의, 가톨릭 또는 다른 그룹이 지향하는 확고한 기독교 신앙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 (특정 신학에 대한) 종교적 헌신과 기독교 국가주의는 비판적인 방식으로 상호간에 완전히 다른 도덕적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결국 기독교 국가주의가 기독교 가르침의 많은 부분을 무시하고 출생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극히 편협한 방식으로 성경 구절을 골라서 결합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주의를 바라보는 지혜’로 이어집니다.



원제: A Book Review on the Topic of Christian Nationalism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종교적 헌신과 기독교 국가주의는 비판적인 방식으로 상호간에 완전히 다른 도덕적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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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