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가장 두려워했던 일, 가족의 장례 설교
by Hershael York2021-09-25

장인은 그들이 계속해서 노래하는 찬양의 가사 속 한 단어, 한 단어에서 바로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내 아내를 바라보며 이렇게까지 말했다. “얘야, 이 사람들, 자신이 노래하는 가사를 정말로 믿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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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나는 장인 장례식에서 설교했다.


결혼 생활 32년 내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장인을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 일어날 이 끔찍한 일을 두려워했다. 그는 그리스도나 그의 복음의 어떤 부분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했고, 직접 전도했고, 또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5년 전에는 투쿠나레(공작농어)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브라질 마나우스로까지 모시고 가서 전도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우리는 그의 영혼을 위해 발버둥쳤다.


그의 영혼을 위한 노력


마나우스에 머무는 내내 우리는 숙식을 제공한 절친한 친구인 데이비드와 페니가 섬기는 노바 바티스타 교회(Nova Igreja Batista)에 참석했다. 데이비드 부부와 노바 교회의 모든 교인이 장인을 향한 우리의 구원 계획에 공모자가 되었다.


나는 구세주를 숭배하고 찬양하는 수천 명의 브라질 사람들로 가득한 거대한 성소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장인은 그들이 계속해서 노래하는 찬양의 가사 속 한 단어, 한 단어에서 바로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내 아내를 바라보며 이렇게까지 말했다. “얘야, 이 사람들, 자신이 노래하는 가사를 정말로 믿고 있구나.” 그녀는 그 순간을 십분 활용해 예수님이 지금 찬양하는 모든 이의 삶을 바꿨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 열렬히 찬양하는 이유라고 증거했다. 


우리가 켄터키로 돌아왔을 때, 공항에 나온 조카가 할아버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조카가 나중에 말하길, 할아버지는 집에 가는 내내 노바 교회와 데이비드 그리고 페니에 대한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루마 강에서 보낸 삼 일 간의 낚시, 그리고 민물 돌고래, 카이만, 고함 원숭이 등등 장인이 브라질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것들은 정작 장인의 머리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 복음을 향한 명백하고도 깊이 있는 믿음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몇 달 후, 장인은 쓰러졌다. 어느 날 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다시는 걷지 못했다. 가족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병시중이었고, 결국 한 때 드넓은 대자연도 좁은 공간인 양 활개치며 살던 장인은 네 면의 벽으로 제한된 요양원 작은 방에 등을 대고 누워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 사오 일 동안 우리는 장인 방에 텔레비전을 들여놓기 위해 각종 행정 절차를 거쳐야만 했지만, 결과적으로 난청 때문에 텔레비전도 그에겐 우리가 없을 때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가 그를 강권했고, 결국 그는 가장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요양원의 조용한 방에서 누군가 그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예수님이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생각나게 하셨다. 그는 마침내 복음이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사망한 아내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도무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위, 자네가 내게 설교해줘’


요양원에 들어간 바로 다음날 장인을 다시 만난 아내와 나는 그의 태도에 놀랐다. 솔직히 우리가 예상한 것은 요양원을 퍽이나 싫어하는 장인의 비협조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긍정적이었고 뭔가에 집중한 듯 보였다. 그는 분명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그를 살아남도록 만든 동일한 투쟁심으로 현재의 도전에 대처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우리가 가려고 일어났을 때, 장인이 손을 들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사위, 자네가 내게 설교해줘.”


그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혼란스러운 상태이거나 아니면 나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너무 이례적이어서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난 32년 동안, 그러니까 그 때 그 순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자기를 위해 또는 함께 기도하자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며칠 전에 그가 했던 말은, “날 위해 좋은 말 좀 해줘.”였고, 나는 그게 기도해달라는 말로 받아들여 기도를 했었다. 이제 나는 “설교해달라”는 말을 해석해야 했고, 그건 분명히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장인의 손을 하나씩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께 그의 뜻대로 그를 강하게 하시고 낫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임을 그가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나는 장인이 너무 오랫동안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았음을 하나님께 고백했고, 장인이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에 압도되어 완고한 마음을 회개하고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이 자라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아멘”하고 기도를 마쳤을 때, 장인은 내 손을 두드리고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나, 이미 그렇게 했다네.”


“나, 이미 그렇게 했다네”


우리 부부는 회의적이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와 비슷한 말 조차도 과거에 한 적이 없는 장인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너무 쉽게 구원을 확신한 게 아닐까 걱정했다. 


“뭐라고요?”


“이미 그렇게 했다니까.”


“그러니까 죄를 회개했고, 오로지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나 이미 다 회개했어.”


“저기, 장인어른, 이거 정말로 중요하거든요.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장인어른하고 함께 영원을 보내고 싶어서 그래요.”


“그렇게 될 거야. 나 회개하고 구원받았다니까.”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을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날로부터 시작된 장인의 마지막 삼 년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제대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도 역사한 은혜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장인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래서 7월 27일 장례식 설교는 결코 내가 두려워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그날 내가 한 설교는 라합이나 룻 또는 마지막에 구원받은 십자가의 도적의 장례식에서나 했음직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구속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손조차 닿을 수 없을 것이라 보았던 한 사람에게까지 확장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였다. 새벽부터 일한 자와 똑같은 상을 받은, 오후 다섯 시에 도착한 일꾼의 이야기였다(마 20:1-16). 그것은 은혜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원제: Preaching the Funeral Sermon I Once Most Dreade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그것은 구속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손조차 닿을 수 없을 것이라 보았던 한 사람에게까지 확장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였다. 새벽부터 일한 자와 똑같은 상을 받은, 오후 다섯 시에 도착한 일꾼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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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Hershael York

허샬 요크는 남침례신학교의 신학부 학장이자 설교학 교수이며, 켄터키주 프랭크포트에 있는 Buck Run Baptist Church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