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by Elliot Clark2021-10-18

창조주가 만드신 선한 피조물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가꾸라는 하나님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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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무구했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홍수와 기근 같은 자연재해를 초자연적 원인으로 돌렸던 시절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아테네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현실성 없는 우리의 선조들은 이런 모든 재앙을 신이 내린 것이라 여겼다. 홍수가 휩쓸든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일이 생기든 누구를 탓해야 할지 알았다.

현재 우리는 과학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이런 미신 같은 해석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탐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왜 자연재해가 일어나는지 안다. 산불과 드레쵸(돌풍), 허리케인과 산사태, 만년설이 녹고 오존층이 파괴되는 현상의 원인은 한 가지다.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

내 의도를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창조주가 만드신 선한 피조물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가꾸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후 변화를 말하는 과학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지지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회가 한 가지 이야기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리적 현상과 생태학적 고통이라는 하나의 설명에 안착한 것이다. 마치 자연재해가 재판대에 올라섰는데 모든 증인이 같은 증언을 하기 위해 서로 짜 맞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손가락은 모두 우리를 가리키고 있다.

이 단일 증언은 상상력이 풍부했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황당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다. 그들이 자연재해 원인을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과학적인 미개인들이 아니었다. 다산과 불임을 위해 신에게 제사했던 바로 그 세대에 인간의 생식 기관과 주기를 정확하게 인식했다. 농작물 재배와 동물 사육을 알아낸 것도 같은 세대였다. 현대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의료 행위를 했다.

현미경이 없다고 곡식이 어떻게 자라는지 아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초자연주의적이었던 이유가 소중한 농작물이 망가지거나 아기가 생기지 않는 일, 질병에 걸려 죽는 일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모든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현대 신화는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하기 때문에 너무 단순화되었다. 그래서 너무나 우울하게 느껴진다. 20년 전 미국인들이 에이즈 전염병, 허리케인 카트리나, 9·11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었을 때 복음주의 목사들과 인기 있는 텔레비전 전도자들은 그러한 끔찍한 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일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많은 질타를 받았다. 사실상 그 설교자들은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는 폭풍, 개인 질병 및 테러 공격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한 종교적 발언과 추측이 오늘날 행해진다면 아마도 ‘영성 남용’이라고 했을 것이다.

비난과 수치심

누군가는 우리 시대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일이 우리 문화에 해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을 물리적 남용이라고 불러야 할까?

복음주의자들이 인간의 질병과 자연재해를 보고 우리를 탓하는 것에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과학자, 전문가, 정치인은 모든 나쁜 일에 우리(그리고 서로)를 비난하는 것 같다.

한쪽에 따르면 인종차별문제, 아프가니스탄 사태, 허리케인 아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인간 탓이다. 다른 한쪽에 따르면 그와 같은 문제가 일반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지만, 여전히 인간 때문이라고 한다. 개인의 선택이든 공공 정책의 책임이든,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의 문제가 자연적 원인에 의한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과학 전문가와 정치가들은 뉴스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또 상대방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묻고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이 문제를 스스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이 이야기는 별로 좋게 들리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다르게 살겠다고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조상들처럼 순진무구하고 무지한 삶의 방식을 회복한다면 어떨까?

복음 이야기의 회복

나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 아니며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가 과학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심지어 코로나 백신도 맞았다!) 나는 모든 사람을 탓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학적 확신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 대신에 초자연적인 증인들의 입장을 수용하고 약간의 신비를 나누도록 한다면 어떨까? 세상의 모든 문제를 우리의 어깨에 올려놓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어떤 유익이 있을지 궁금하다.

기독교인의 증언에 따르면 가장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기꺼이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은 인간의 실패에 대해 솔직하다. 심지어 인간의 선택에서 비롯된 질병, 재난 및 죽음에 대한 고대의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의 좋은 스토리인 기독교 복음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우리가 누리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을 어긴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는 질병과 죽음이 생겼으며, 하나님은 이러한 폭풍과 같이 거대한 짐을 짊어지시려고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실패를 손수 책임지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이었다.

사전 경고에 주의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재난에 대한 책임을 지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성경에 따르면 질병과 자연재해는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근본적인 현실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영감을 받은 시각 자료들이다. 그것은 더 큰 재앙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고안된 섬광일 것이다. 예수님은 전쟁, 질병, 자연재해를 재난의 시작이라고 부르셨다. 따라서 그러한 현상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방을 싸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산모의 진통과 같고, 응급실로 가야 하는 발열과 미각 상실의 증상과 같고, 쓰나미를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알려주는 사전 경고 시스템과 같은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린다고 믿는다. 자연적인 사건도 그분의 통제 안에 있다. 심지어 우리를 위해 끔찍한 재앙도 계획하신다. 참으로 미스터리 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야기는 자연주의적 인과관계와 인본주의적 구원의 독특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나은 이야기라고 믿는다.

기후 변화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거나 하나님이 주신 진통은 아니라고 믿는다. 성경은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롬 8:22). 이 땅은 이 모든 재난 끝에 오게 될 더 나은 것을 기다리는 중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 새로운 기후, 더 이상 슬픔도 애통도 고통도 없는 세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기꺼이 우리의 비난을 짊어지셨기 때문에 가능한 세상이다.



원제: God Wants the Blame for Climate Change
번역: 김은혜

기독교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린다고 믿는다. 자연적인 사건도 그분의 통제 안에 있다. 심지어 우리를 위해 끔찍한 재앙도 계획하신다. 참으로 미스터리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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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lliot Clark

엘리엇 클라크는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MDiv)를 졸업하고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다문화 교회 개척 사역을 했다. 현재 Training Leaders International에서 해외 교회 리더들을 훈련시키고 있다.